동지가 가까와 오면서 날씨도 꽤 추워졌다. 오늘은 바람까지 기승을 부린다. 퇴근시간이 되기도 전에 밖은 언녕 어둑어둑하다.
오늘도 하루사업을 마무리짓고 옷깃을 여미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집가까이 굽인돌이를 막 돌아서려는데 “어이! 어이!”하고 부르는 소리가 바람 타고 들려온다.
‘나를 부를 사람은 없는데.’
소리나는 쪽을 피뜩 뒤돌아 보니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웬 할머니가 나를 향해 손짓하면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곧장 길을 가로질러 온다. ‘분명 나보고 서라는 것 같은데 누구지?’
“저를 부르십니까?” 하고 되물으며 볼라니까 우리 아래집 1층에 사시는 한족 할머니가 아닌가!?
“어디 다녀오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할머니는 빵을 가득 채운 비닐주머니를 내밀며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띄우며 마침 잘말했다.
“응, 마침 잘 만났네. 이거 가져다 맛보게. 찐빵일세. 호박이랑, 좁쌀가루로 한건데 맛있을는지 모르겠네.”
노르무레하게 잘 부풀어오른 빵들이 주머니 속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겠네요. 그런데 왜 그쪽에서 오세요?”
우리네 집은 저 앞인데 집에서 수십메터 밖에서 나타난 할머니라 궁금하여 물었다.
“아들집에 가던 길이네. 아까부터 2층에 올라가니까 집에 사람이 없더구만. 그래서 아들집에 먼저 갔다 오려는데 마침 지나가는 걸 보니 자네 같아서 불러세웠네.”
순간 나는 코마루가 찡해났다. 혈연관계도 아닌 남남인데 뭐가 아쉬워서 아들한테 주려던 만두를 나한테 먼저 주지!?
“그래요? 그럼 아드님한테 먼저 드리시죠.”
“아들이야 다음에 또 해서 주면 되지. 허허. 어서 가져다 애하고 함께 먹게. 아직은 따뜻하네.”
“정말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날씨도 추운데 어서 갑시다.”
나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얼른 빵주머니를 받아쥐고 할머니를 부축하였다.
“어서 앞서게나. 난 다리가 불편해 천천히 갈테니.”
참 자상한 할머니시다. 전에는 한족이라면 민족이 달라서인지 깨끗하지 못하다고 경계하는 때가 많았었는데 이 할머니만은 례외인 것 같다.
할머니와 가까와지게 된데는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아빠트에서 살다보니 창고가 없는데다 출근 뒤에 갑자기 남한테 부탁한 물건이 오면 부득불 할머니네 집(집안장식도 안한대로 살고있음)에 먼저 맡겨두게 되였다. 그리하여 한번 두번 할머니네 신세를 지게 된 우리가 미안하여 과일이랑 농산품을 조금씩 가져다드렸다. 우리는 당연한 걸로 생각하고 인사한 것인데 할머니는 그냥 받을 수만 없다면서 물만두며 찐빵이며 심지어 햇고추가루까지 들고 올라왔다. 언제가는 산동성에 있는 동생집에 다녀왔다면서 이쁘게 포장한 맛난 대추를 두봉지나 가져다주었다.
물만두가 올라오면 김밥이 내려가고 찐빵이 올라오면 포도송이가 내려간다. 가는정이 있으면 오는정이 있다고 이렇게 우리 두 집사이는 사랑의 바구니가 오고 가며 두터운 민족감정을 쌓아가게 되였다.
시장경제의 신속한 발전에 따라 민족지간에도 아니 한 가족지간에도 인정이 점차 색바래져가고 있는 이 때 타민족 사이에 쌓아가는 친선의 정이 새봄을 맞으며 더욱 탐스러운 꽃송이로 피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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