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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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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좌권현을 떠나 석루현으로
2014년 05월 23일 15시 42분  조회:4907  추천:0  작성자: 김성룡
항일전쟁시기 자랑찬 우리 조선혁명가들이 조선청년련합회를 창립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편성하였던 오늘의 좌권현 동욕진 상무촌 아직도 옛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태항산기슭의 홍복사 옛터와 작은 언덕에 이름없는 조선의용군 무명렬사의 묘소....마을은 그지없이 적막하기만 하였다.
 
마을의 좁은 골목길과 옛집들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예나 마찬가지로 소박하고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골목길 너른 마당에 모여 삼삼오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조선혁명가와 조선의용대 전사들은 바로 이 마을 선량한 사람들과 군민의 정을 나누면서 고락을 함께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상무촌의 홍복사 옛터와 조선의용대 무명렬사 묘지를 답사하고 다시 마을을 빠져 나오다가 마을 중심에 《로신예술학교옛터(魯迅藝術學校舊址)》라는 낡고 간판 하나가 흙벽에 붙어있는것을 우연하게 발견하였다.
 
너무 낡아 글을 알아보기도 힘든 간판이였지만 유명한 로신예술학교가 이곳에 있었다는것을 발견하여 여간 기쁘지 않았다. 팔로군이 세운 로신예술학교는 수많은 예술인재를 양성한 곳으로서 조선혁명가이며 음악가인 정률성이 다녔던 학교이다.
 
로신예술학교는 1938년에 연안에서 창설되였다. 예술인이며 또한 전사였던 학원들은 수요에 따라 전선에 나가기도 하였는데 많은 학원들이 팔로군이 개척한 태항산항일근거지에 오게 되였다. 그들은 상무촌에 주둔하면서 소규모의 로신예술학교, 위생학교를 만들어 계속 학습하고 싸웠던것이다. 연안에 있는 로신예술학교에서 공부하던 정률성도 수요에 따라 태항산항일근거지에 와서 한동안 활동한적이 있다. 그러니 아마 정률성도 상무촌의 로신예술학교에서 활동했을것으로 생각되였다.
 
간판이 붙은 입구로 들어가니 작은 정원을 가진 비교적 괜찮은 벽돌, 기와 건물이 나타났다. 지금은 민가로 사용되고있는듯 정원에는 만발한 화초와 커다란 옥수수 타래가 걸려있었다.
 
호기심 많은 동욕진 어린이들이 촬영장면을 지켜보고있다
 
동욕진의 로신예술학원 옛터(일부 학원들이 단련을 목적으로 이곳 태항산 근거지에 와서 한동안 활동하였음)
 
마을어구에서 한담하는 마을 녀성들
 
좌권현 동욕진 진정부대문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와 다른 답사지인 마전으로 떠났다.
 
좌권현 마전진은 현소재지에서 45킬로메터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차는 계속 남으로 달려 태항산 대협곡을 빠져나왔다. 앞에는 넓은 평지가 나타났고 멀리 민가들이 보였다. 마전에 도착한것이다.
 
태항산 산줄기가 담처럼 둘러있어 마전의 기온은 다른 곳 보다 조금 높았다. 일조가 좋은데다가 청장하가 수원으로 되여 이곳에서는 논농사까지 하고있었다. 마전은 《태항산의 작은 강남》으로 불리우고 있다. 수려한 마전의 풍경에 도취되여 있는데 차는 벌써 팔로군 총부 기념관 앞에 멈춰섰다.

흰 담으로 둘러싸인 기념관에 들어서니 아늑한 정원이 있었고 량쪽으로 벽돌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항일전쟁시기 팔로군 총부가 이곳에 자리 잡았다. 유적지에는 20여개 방이 있었는데 각기 팔로군총부기념관, 팽덕회장군 및 좌권장군 기념전시관으로 사용되고있었다. 그리고 총부 각 부서 집무실과 경위실이 있었다. 기념관과 전시실에는 항일전쟁시기의 많은 사진과 유물이 있었다.
 
팔로군 총부 기념관은 마전진 최남단에 위치했다. 그 옆에는 등소평이 살던 옛집이 있었고 마을 중심에 중국공산당 북방국 옛터가 있었다. 마전진 동북쪽으로 멀리 산봉우리들이 보였는데 그곳이 바로 좌권장군이 희생되였다는 십자령이라고 한다.
 
팔로군 전방 총사령부와 중공중앙 북방국은 5년간 마전에 있었다. 주덕, 팽덕회, 좌권, 류백승, 등소평, 서향전, 섭영진, 진의를 비롯한 수많은 중국 당과 군 지도자들이 이곳에서 사무를 보았고 태항산의 항일투쟁을 령도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곳을 《작은 연안》이라고도 했다.
 
저녁녘에 우리는 답사를 마치고 귀로에 올랐다. 차는 다시 207국도를 따라 북상하여 태항산 대협곡을 지나 좌권현에 도착하였다.
이튿날 오전 9시에 우리는 좌권현을 출발하여 산서성 소재지 태원으로 떠났다.
 
소강남으로 불리우는 태항산의 마전진 전경
 
마전의 팔로군 본부 기념관
 
기념관 정원
 
기념관 일각
 
기념관실내(팽덕회 부사령원의 침실)
 
작전지도
 
기념관 외벽
 
 
좌권현에서 태원까지는 2시간 남짓이 가야했다. 좌권현 선전부에서 승용차를 내여 우리를 태원까지 보내주었다.
 
태원은 분하(汾河) 기슭의 분지에 위치하였다. 산서성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 중심인 태원시는 수천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다. 일찍 춘추시기에는 진양(晉陽)이라고 불렀으며 조나라 도읍지였다.
 
점심시간이 퍼그나 지나서 태원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방송국부터 찾아갔다. 중앙인민방송국 태원기자소의 리세박(李世璞)주임이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있었다. 59세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는 분이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방송국 부근에 호텔을 정했다.
식사를 마치니 오후 3시가 되였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 반중건중한 시간이였다.
 
리세박주임은 오후에 회의가 있다며 나갔고 최룡수교수는 피로했기때문에 호텔방에서 휴식하였다. 우리는 그냥 앉아 있을수 없어 남은 시간에 관광이나 하려고 호텔을 나섰다.
 
우리는 태원의 명승인 진사(晉祠)를 보기로 했다. 택시를 잡고 거리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시 중심에서 25킬로메터 가면 진사라고 하였다.
 
진사는 태원시 서남부 현옹산(懸甕山) 기슭에 축조된 사원과 원림이 결부된 고대건축이다. 진사의 유래는 아득히 먼 기원전 주나라시기에서 기인된다. 기원전 11세기 주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고 제후(諸侯)를 봉했는데 주무왕(周武王)의 차남 숙우(叔虞)가 당(唐)나라 땅을 분여 받았다. 바로 지금의 산서성 지역이다. 당나라에 온 숙우는 진수(晉水)를 리용해 농토수리에 전념하면서 농업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때로부터 700여년간 이 지역에는 재앙이 들지 않았고 사람들은 유족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릴수 있었다 한다. 북위(北魏)시기에 와서 누군가 숙우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사당을 짓고 《당숙우사(唐叔虞祠)》라 하였다. 그후 이곳을 흐르는 진수에서 《진》자를 따서 《진왕사(晉王祠)》로 고쳐 불렀는데 사람들은 그냥 진사라는 약칭을 쓰고있다.
 
진사에 도착하니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고 광장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줄지어 있었다.
 
진사에는 전당과 정자, 루각, 고목이 많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고목이 숲을 이룬 사이로 정교하게 축조된 옛 루각과 전당이 나타났다. 진사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성모전(聖母殿)이다. 성모전은 지금으로부터 900년 전인 송(宋)나라 시기 축조된 커다란 전당이였다. 전부 나무로 축조된 전당 건물앞에는 8개 나무 기둥이 있었는데 기둥마다에 나무로 조각한 룡이 있었다. 나무기둥을 맴돌며 치솟아 오르는 룡의 형상은 아주 생동하였다. 그리고 성모전에는 33개 인물조각상이 있었다. 흙으로 빚은 성모(聖母)와 시녀 군상은 인물의 형태가 각이(各異)하고 표정이 다양하여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았다. 이들 군상을 보노라니 녀인들의 명랑한 웃음소리와 다정한 속삭임, 은은한 탄식 소리를 금시 듣는것만 같았다.
 
성모전 앞에는 금인대(金人臺)가 있었다. 동서남북으로 갑옷차림의 철제 조각상 네 개가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힘찬 팔뚝을 쳐들고 여러자세로 서있는 이 네 철제 조각상을 《금인(金人)》이라고 하였다. 위풍당당한 4개 금인은 성모전의 부르럽고 온화한 녀인들의 조각상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였다. 4개 금인 가운데서 서남쪽의 금인이 1097년 송나라 때 만들어진것으로 력사가 가장 유구하였다.
 
진사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았다. 맑은 호수물과 정교한 정자, 아름드리 고목, 다양한 화초들은 마냥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태원의 명소, 짐사 입구
 
저녁 식사후 기자소의 리세박주임과 함께 석루현(石樓縣)의 임석평(任石平)부현장과 태원시 당사연구실의 거문휘(巨文輝)처장을 만났다. 우리는 석루현에 가서 조선혁명가 양림의 사적지를 답사할 뜻을 이야기했다. 임석평부현장은 래일 석루현에 돌아가니 함께 가자고 열정적으로 요청하였다. 그리고 석루현에 홍군동정기념관(紅軍東征紀念館)을 새로 만들었다고 하였다. 저녁 늦게까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이튿날 만나기로 하고 헤여졌다.
 
2003년 10월 26일에 우리는 석루현으로 떠났다. 조선혁명가 양림의 싸웠던 전적지를 찾고 홍군의 동정기념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태원 기자소의 리세박주임도 승용차를 가지고 함께 떠났다. 리세박주임과 임석평부현장이 각기 태원에서의 일을 마무리하는걸 기다리다 보니 오전 10시가 되여서야 출발하게 되였다.
 
우리는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태원시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따라 곧추 서쪽으로 달렸다.
 
석루현은 려량산의 서부 황하 동안에 위치하였다. 4개 진 10개 향에 근 10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석루현은 황토고원의 한 부분으로서 지세는 동부가 높고 서부가 낮다.
 
동부는 려량산맥의 한 줄기인 통천산(通天山)이 남북으로 뻗어있다. 해발 2000m에 달하는 통천산의 주봉은 괴석이 층집처럼 쌓여 석루라는 이름을 가졌다한다. 석루현 서부는 구릉지대이다. 두텁게 덮인 황토는 빗물에 씻겨 이곳에 수많은 골짜기를 형성해놓았다.
 
한시간 정도 달리니 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임석평부현장은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면 안되기때문에 지름길로 가자는것이였다. 계속 고속도로를 달려 류림(柳林)에 간 다음 그곳에서 남하하면 석루현에 갈수있지만 길을 너무 에돈다고 했다. 그렇게 가면 길은 괜찮지만 저녁에야 도착할것이라고 하였다. 도로상황을 모르는 우리는 그냥 따르는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석루로 가는 길이 그처럼 엉망일 줄은 좀 더 가서야 알게 되였다.
 
이윽고 차는 흙 길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도처에 두터운 황토가 쌓여있었는데 차가 지나면 먼지가 연기처럼 일어 하늘을 가린다. 게다가 이따금 길에 널린 커다란 흙덩이가 승용차 밑바닥에 긁혀 요란한 소음을 내기도 하였다.
 
한적한 곳이기때문에 석루현으로 가는 차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마주 오거나 지나쳐 버리는 차만 있으면 아주 위험하였다. 길에 다른 차가 있으면 그 차가 일으키는 먼지가 뒤덮여 지척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때문에 먼지에 가려 차가 어느 나무에 가 부딪칠지 어느 바위와 충돌할지 모를 일이다. 다행이라면 임석평부현장의 기사는 이 길을 다닌 경험이 풍부한것 같았다. 그냥 감각으로 앞의 차를 지나치거나 마주오는 차를 피해 달렸는데 기사의 운전솜씨에 저도 몰래 감탄이 나왔다.
 
산을 몇개 넘으니 구릉지대가 나타났고 산의 나무도 점점 적어졌다. 이따금 산간마을이 보였는데 길가나 골짜기의 평지에 집 몇채가 있었을뿐 대부분 마을사람들은 산에 굴을 파고 만든 토굴집에서 살았다.
 
5시간의 긴긴 려행을 거쳐 이날 오후 우리는 2만여명의 인구가 살고있는 석루현 현성에 도착하였다.
 
중국의 본격적인 항일전쟁이 개시되기 직전에 2만 5천리 장정을 마친 홍군은 황하를 건너 동정을 진행하였으며 산서성 서부인 석루현을 공략하고 항일구국 무장선전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 동정의 선견대를 거느리고 황하도강작전을 성공시킨 조선혁명가 양림의 사적이 석루현의 홍군동정기념관에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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