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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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날 혼잣말
2017년 11월 10일 19시 56분  조회:4559  추천:0  작성자: 김인섭
별일없이 며칠간 두문불출하다 잔뜩 가라앉은 기분이나 추스를 료량으로 집 뒷산으로 산책을 떠났다.
 
이 동네는 대륙성 계절풍 기후에 속하고 동북의 최남단 해변에 위치하고 있어 해양 특성이 짙은 편이다.하여 상강이 지나면 은행나무들은 단풍을 맞아 이파리들이 조락을 서두르나 다른 활엽수들은 대개 짙은 록색을 확보하면서 사람들에게 가을날의 시원한 정취를 안겨준다.하지만 초목들이 한살이 정리에 서두르는 자연의 숭고한 섭리를 헤아려보며 계절이 남기는 의미에 대하여 찰나적인 자문자답이 불끈거리기도 한다.이 맥락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이 줄지어 떠오르며  이 가을의 상념은 좀 무겁고   란잡하다.
 
속절없는 세월을 따라 쉼없이 달려왔는데 다가오는 무술년이면 오락가락하던 생계 마당에 종지부를 찍고 다른 의미의 생활에 방향을 틀고 내 인생은 새 전환기에 들어서게 된다.어쩐지 제풀에 가슴 부위가 후줄근해 지면서 어깨가 낮아지고 과거를 반추하는 시간이 시나브로 많아진다. 청춘과 정열을 밑천으로 세상살이 스타트라인(起跑线)에서 출발하여 화복의 산맥도 수없이 넘고 아득한 희로애락의 초원도 지나왔다.정작 일터의 골라인(终点线)이 밟히게되니 뒷등에서는 찔리는 통증이 감지된다.돌아서서 지난 발자취를 헤아려보니 탐욕에 눈이 멀었던 시절의 어리석은 소행들이 인과응보로 되어 고민거리들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 불안이 생긴다.불타는 홍엽들은 부유인생(蜉蝣人生)을 살고 있다는 처연한 기분에 북을 돋구어 준다. 
 
대자연의 초목들이 고색을 내비치는 절박한 이 시절에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도처에 피여나는 들국화가 감동의 기분을 곰삭아 내고 있다.뿌리내린 땅의 비옥이나 척박에 연연하지 않고 찬가을을 맞아 꽃을 뿜어내고 싱싱한 잎사귀를 피워내는 그 자태야말로 삼라만상 속의 백미(白眉)이다.잔꽃,소엽과 가냘픈 수관으로  강직한 진실을 소박한 모습으로 드러내는 겸손함인가 본다.만추의 계절에  개화와 토향(吐香)을 연출하는 그 대견한 모습은 인간의 눈길과 가슴을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으슥한 수림속에서 그가 전달하는 멧세지는 ‘목 마른 사람에게 들리는 물소리’ 이고 생명의 절대적 진수와 활력소가 아닐 수 없다. 
 
 도전이 이어지던 지난 세월에 나름대로 원칙의 틀에서 자아실현을 위해 무엇을 우직하게 고집하며 살아오다 귀착지에 이르러 보따리를 풀어보니 남들께 보일만한 뭐가 없어 황당하기도 하다.속세의 생존년대 구분법을 짚어보니 이젠 이순의 문턱을 넘어섰는데 자기는 인생의 이모작 초입에서 무엇을 해야하나 갈피를 잡지못해 허둥대는 풋내기로 복원된 모습이다. 그래도 ‘인생은 60부터’라는 사촉에 현혹되어 미래 요행수를 바라며 어디에 덤비기 싶다는 심사만 지우기가 어렵다.가부간에 우선  ‘맥도 모르고 침통을 흔드는’ 웃음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야 할 터이다. 
 
다른 삶에 돌입하는 길목에서 지난날 쌓은 좌우명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곰곰히 명상하고 있다.지금부터라도 세속의 천박한 가치에 연연하지 말고,우직한 졸장부의 틀에 매이지 말고, 매일매일 자기삶의 뜰을 한바퀴 돌면서, 적정 안경을 걸고 세상 만물을 심시세람(审视细览)하며 꼿꼿이 살아야 할 것이다. 물신주의에 함몰되어 리타(利他)와 리기의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넘나들던 짓들도 살판뛰기이니 이제는 금물이다. 분수에 넘는 바람은 절대 절제하고 오만 방자의 ‘미세먼지’와는 아예 담을 쌓고 벽을 친다. 
 
과거 일상에서 기를 쓰고 토해냈던 언사들은 꿍얼거려도 잠꼬대일 것이고 늦으나마 웨치는 각성의 소리도 남들에게는 조지약차(早知若此)의 넉두리가 될 것이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과는 듣든말든 곱씹을 생각이다.더우기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种秋后悔)'라는 진리는 귓등으로 듣더라도 틈만 보이면 되풀어 보려한다.
 
이제 생활전선에서 퇴장하면 뒤가 켕길 일도 없고 애들도 내 노릇은 내 한다고 호언하니 거칠 것도 없다.그저 홀몸으로 어느 한 모서리를 찾아 정성을 쏟고 가졌던 생각이나 실천해 보려 한다. ‘소 힘도 힘이요 새 힘도 힘’이라 하였다.
(끝)
 
2017-11-10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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