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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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잎의 찬가
2005년 06월 01일 00시 00분  조회:3466  추천:72  작성자: ljh
즐거운 토요일, 매주 토요일이면 우리 등산팀은 한 주일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몸의 피로를 풀고저 등산길에 오르곤 한다. 오늘 우리 일행은 성자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산의 공기는 유달리 맑아 폐를 적셔 주었고 밟히우는 락엽의 소리는 귀맛을 돋구었다. 때는 4월말이지만 락엽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가파로운 언덕길인지라 얼마 안 올라가서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까지 찼다. 그래서 우리는 락엽위에 앉아 잠시의 휴식을 취했다.
바싹 마른 봄바람 때문인지 락엽은 잘도 말라 쏘파에 앉은 듯 편안하고 푹신푹신 하였다. 언제나 감사한 낙엽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삼림에 대하여 그토록 많은 찬미의 글을 써왔으나 나무잎에 대하여서는 글을 아껴왔다. 하긴 나무잎으론 가구도 만들수 없고 집도 지을수 없고 또 종이 공장에서는 종이를 만들수도 없으니 어찌보면 나무가 보배라면 나무잎은 제일 가치가 적은 ‘보배’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여 나무의 각도에서 볼때 나무잎의 공헌이 제일 크지 않은가고 생각해본다. 나무잎의 공능과 작용을 정리하여 보니 아래와 같았다.
나무잎은 나무의 폐이다. 나무의 호흡은 대부분 나무잎의 기공으로 이루어 진다. 신진대사에 필요한 산소를 흡입하고 신진대사에서 산생한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내보내는 공기교환 작용은 주요하게 나무잎에서 진행된다. 만약 한그루의 나무가 잎이 없으면 그 나무는 호흡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여 죽어버리고 말것이다. 그러니 나무잎을 나무의 폐라고 하는것은 하나도 과장된것이 없다.
나무잎은 또 나무의 에네르기 공장이다. 누구나 알다싶이 나무잎은 녹색을 띠고 있다. 그것은 나무잎의 엽록소를 이용하여 광합성작용을 통하여 태양에네르기를 화학에네르기로 변환시켜 탄수화물에 저장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놓고 보면 소화계통에 해당한다고 말할수 있다. 생장에 수요되는 에네르기를 공급받지 못하면 그 나무는 생장은 고사하고 살아 남을수 조차 없게 된다. 그러므로 나무잎은 나무의 생명활동에 있어 그 중요성은 더 말할나위 조차도 없다.
나무잎은 또 나무의 심장이라고 말할수 있다. 사람은 심장을 통하여 혈액순환을 유지함으로써 신진대사에 필요로 되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신진대사과정에서 생긴 로페물을 밖으로 배출한다. 이런 혈액의 정상적인 순환은 힘있게 박동하는 우리의 심장에 의거하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나무에는 심장이 없다. 나무는 나무잎의 수분을 공기중에 증발시킴으로써 땅속으로부터 나무에서 나무의 수분의 증발로 인하여 생기는 수분의 부족부분을 보충하고 있다. 물론 이때에 나무는 나무의 생장에 수요되는 광물질과 영양분을 물에 용해시켜 가지고 뿌리로 부터 흡수하는 것이다. 만약 나무잎에서의 수분의 증발이 없으면 이 수분의 류통과정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나무잎은 나무의 심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나무잎은 또 나무의 감시군이고 보호병이다. 나무잎에서는 각종의 화학물질은 휘발함으로써 많은 세균과 병독을 죽이고 또 세균과 병독으로 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1헥타르의 삼림은 약30키로그람의 살균소를 분비하는데 백후, 페결핵, 리질 등 질병의 병균을 죽인다. 공기중에는 갖가지 많은 세균과 병균이 존재하는데 백화점이나 영화관 같은곳의 매립방메터의 공기중에 약 49700개가 있지만 삼림속의 세균은 약 1000개 라고 한다. 거의 50분의1이다. 나무의 살균력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수치인것이다.
나무잎의 공능과 작용은 이처럼 많지만 이보다 나를 더욱 경모하게 하는것은 이러한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수요되면 나무잎은 언제나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이다. 먼저 나무가 꽃이 피기 시작하면 벌써 나무잎은 성장을 중지한다. 그것은 나무잎의 양분을 절약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이다. 꽃이 지고 열매를 맺고나면 나무잎은 열매의 성장을 위하여 나무잎은 자신에게 공급되는 수분과 양분을 감소시켜 결국 말라죽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일편단심으로 나무만을 위하여 살아온 나무잎, 나무의 건실한 성장과 열매의 성숙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은 받쳐왔던 나무잎, 그는 이렇게 서서히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처량한 가을바람은 나무의 이런 처지를 위안해주기라도 하듯이 나무잎을 쓸쓸히 흔들어주면 나무잎은 끝내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런데 나무잎의 사명은 여기에서 그치는것이 아니다. 나무잎은 낙엽으로 되여 나무밑에 떨어져서 서서히 썪는다. 결국은 양분높은 부식토로 되여 나무가 다시 흡수할수 있는 푸석푸석한 토질을 형성한다. 측정에 의하면 비가 내릴때 약 20%는 나무가 흡수하고 나머지 80%는 지면에 떨어지는데 이는 지면에 대한 충격을 감소하여 수토류실을 매우 효과있게 방지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식토는 또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그 푸석푸석한 공간에 수분을 많이 저장하여 두어 나무가 혹독한 가물속에서도 더욱 건실하게 성장하게끔 하는데 쓰인다. 삼림이 저수지라는 말도 이래서 나왔는가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라져서도 나무잎은 한결같이 나무를 위해 서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정신인가! 나는 나무잎을 보면서 나의 부모님을 회상했다. 내가 어릴적에 부모님께서는 처마밑에 제일 귀한 손님을 접대하려고 해물고기를 달아두곤 하셨댔는데 내가 장성한후 집에 가면 그것은 의례 나의 몫으로 되였었다. 내가 이미 장성하였으니 이제는 부모의 부속물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이며 “남”이라는 뜻이리라. 그 구차한 살림에 시름시름 않는 연로한 몸을 이끌고 나의 학비를 장만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하시던 부모님, 다 자라면 “남”이 되는 자식인데 부모님은 무엇을 바라고 하셨을까? 자식의 금의환향이 였을가? 나는 그러한 부모님에게 보답해드린것이 정말로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그래도 부모님은 나를 탓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자기 삶에 모대기는 자식을 안타까이 바라보시다가 다시 못 올 길을 영영 가신 부모님들이 셨다. 정말로 나무잎과도 같은 인생이시다.
세월이 흘러 나도 어느덧 초중생아들을 둔 아빠로 되였다. 인제 나는 부모님의 인생을 다시 직접 체험할수 있게 되였다. 나도 나무잎으로 될 때가 된것이다. 모든것은 자식을 위해서! 지금의 나는 이 한마디면 모든걸 해석할수 있고 설명할수 있다. 자식에게 보다 훌륭한 교육환경을 지어주고 자식에게 더욱 건강한 신체를 마련해주고 덕도, 지도, 체도 모두 훌륭한 사회에 쓸모가 있는 한 인간으로 양성하는것이 나의 욕심이고 목표이다. 그리고 보다 훌륭한 환경을 마련하여 우리의 자손들이 깨끗하고 청신한 공기를 마시고 맑은 물을 마시며 무공해 식품을 먹게 하고 무공해 의류를 입게 하는것이 나의 일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자원을 남겨두어 자손들이 사용할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와 단호히 싸워왔으며 나 자신도 될수록이면 공공뻐스 등 대중교통도구를 이용하였고 될수 있으면 보행을 택하거나 자전거를 사용하여 왔다. 회상하여 보면 이 역시 나무잎으로 되기 위해서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지어 자식을 위하여 탐오하고 강도질하는 등 범죄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행위에 대해서 까지도 조금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였다. 비록 사회의 질책을 받고 도덕과 법률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 귀중한, 자신의 일생을 걸고 분투해온 자신의 명예와 직위를 가지고 도박하는 행위를 통하여 나는 그러한 인간들의 자기의 자식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나무잎 같은 마음을 보았고 또 그 가운데서 어떠한 우주의 법칙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위의, 스스로 그러한,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의 마음의 어쩔수 없는 운명의 흐름을 느꼈던 것이다.
생명은 연속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생명은 연속되고 있다. 사람은 그저 나무잎과도 같은 존재이다. 자기의 생명을 계승할 후대를 위해서라면 나무잎처럼 자기를 휘생하는 인간은 또 다시 생명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아니, 기실 인간은 나무처럼 죽지 않는지도 모른다. 매개 부모는 나무잎에 해당하다. 나무잎이 4계절을 한번씩 주기로 하는것처럼 인간은 일생을 하나의 주기로 하면서 영원한 삶——유전자라는 이 ‘나무’를 위해 생존을 영위해 나가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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