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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소설문학의 새로운 양상
‐《2005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의 단편을 두고
류대식
2006년도부터 해마다 한권씩 전해의 우리문단을 점검하는 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 품집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묶어내기로 하여 일목료연하게 우리조선족문학의 흐름을 볼수있게 되였다. 본지에서는 2005년도 중국조선족우수문학작품집에 실린 몇 편의 단편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단편이 모두 5다섯편 선정되였데 그중4편이 녀성 작가의 작품이라는데는 녀성문학의 궐기라는 말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마당이기도 하다. 그래서 4편의 녀성작가의 작품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째,박옥남의 《둥지》를 보기로 하자. 사실주의수법으로 일인칭의 어린이 시각 으로 현재 우리농촌의 실상을 묘사하고있는 이 소설은 현재 우리농촌사회의 축도라고 할수있겠다.일방이 한국진출로 인한 단란했던 가정의 파탄상,도시진출과 저출산으로 인한 조선족농촌교육의 쇄락상,한족들에게 조선족농촌의 전통기반이 야금야금 잠식되여가는 현황… 우리농촌의 피페상이 한눈에 안겨온다.가정은 파탄되고 부모는 돈을 위하여 자식곁을 떠나고 성장의 터전인 학교마저 한족들에게 팔리여 양우리로 변하여 버렸으니 둥지 잃은 아이들은 어떻게 하여야하며 전통적 삶의 기반이 허물 어져가는 조선족사회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깊은 사색의 질문을 던져주는 소설이다.15,16년전 둥지와 비슷한 풍격의,연변일보제일당대상을 안은 김명윤의 《민들레동산》이 바야흐로 향상하는 조선족농촌교육의 상황과 활기로 넘치는 밝은 조선족농촌사회의 생활상을 그렸는데 겨우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조선족사회는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또 얼마나 심각한 진통을 겪고있는가?단편이란 작은 편폭에 이처럼 다면적인 내용과 심각한 주제를 담고있다는 그자체부터 이소설의 성공이라고 보아진다. 그러면서도 짙은 우환의식속에 꾸지람도 아끼지 않고 남의 일손도 잘돕는 칠성이 할머니의 존재, 긍정인물은 아니지만 수완과 능력이 있어서 남 다 떠나는 농촌에 덩실하게 기와집 짓고 잘사는 지부서기‐야림이 아버지, 《나》를 비롯한 아이들의 밝은 심성 등은 비애만이 아닌 우리 조선족사회와 조선족농촌의 밝은 미래의 가능성도 제시해준다.
무었을 썼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썼냐도 중요한바 이소설의 성공은 공명을 일으키는 예술적기법도 묵과할수 없다.우선 소설의 언어풍격은 전통적인 조선언어의 구수한 흐름이지만 표현이 순후하고 류창하면서도 생신한 언어사용으로 하여 사뭇 열독의 열의를 뚱겨주고 미감을 느끼게 한다.《풀방구리에 쥐드나들듯》,《허리를 갑삭거리다》,《꼴깍 잠이 들다》,《물뿌린듯 잠누룩하다》,《슬픔을 그들먹 채워놓다》,《발기발기 찢어놓기 시작하다》,《검은 흙이 굴뱀처럼 꿈틀굼틀 뒤집혀올랐다》,《오밀조밀 부탁도 많다》,《볶은 머리》,《눈가를 찔금찔금 문지르다》,《미꾸라지가 박신거리다》,《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다》,《자냥스럽게 들려오다》… 등등의 구체적인 언어사용에서 표현되고있다.그리고 향토냄새가 짙게 풍기는 방언의 사용은 소설의 사실주의 맛을 짙게 해주었다.다음으로 소설은 이야기전개에서 몬따쥬식의 표현수법도 쓰면서 스케치식 묘사를 하고있는데 일정한 거리감을 산생시키며 소박한 모호성의 미감을 불러일으키고있다.소설은 이야기전개에서 적당히 절제하였고 주요인물에 대한 외모나 심리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고 있다해도 《짱짱한 편》,《군밤둥구리같은 어뎅이》 등 같이 간단하고 응집된 언어로 개성을 표현할뿐인데,그리하여 소설속의 인물들에서 현실속의 수많은 류사한 사건과 인물들을 상상하고 겹쳐놓을수 있는 보다 큰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물론 이야기구성에서 도식화경향도 보이지만 요근년에 보기드문 사실주의문학의 수작임은 틀림없다.
그다음은 허련순의 《그녀 몸속의 열마리 고양이》를 말해보자. 《그녀 몸속의 열마리 고양이》는 둥지와 완전히 다른 풍격의 소설로 생활의 론리를 떠나서 작품자체의 론리에 의하여 질서가 이루어지는 소설이다.소설의 녀인은 온순이라는 고양이같이 생겼고 고양이같이 행동하며 서른이 되도록 셈 셋도 못세는 백치인 딸과 일상을 살아간다.물론 행복한 일상은 아니다.아니,괴롭고 고통스런 일상이라 해야 적절할것이다.《서로 할말도 없고 늘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지난 삶과 악몽이 수시로 떠오르게 하는 존재가 되여》 살아가며 그래서 《딸이 영 집을 나가기를 바랄 때도 있었고 버릴려고도 생각해보았지만 자신의 손으로는 버릴수 없었고 누가 버려주던지 아니면 스스로 없어주었으면 하고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그래서 《두사람은 그렇게 서로 섞이고싶은 사람들이였지만 누구의 잘못도 없는데 이몸과 이가 들뜨듯이 무엇도 씹기 괴로운 사이였고 서로를 서서히 질식시켜가고 망가지게 하고있는 악의 존재로만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누구의 잘못도 없는걸가?그런것도 아니다.고양이와 심통한 아이를 낳게된 경위부터 살펴보자. 녀인은 열여섯살부터 신열이 나고 신다리 안쪽이 부어곪아터지는 이름모를 병을 알았는데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큰병원에 가지 못하고 민간처방대로 허연 두꺼비,말린 두꺼비,지렁이,노래끼 그리고 고양이까지 닥치는대로 먹는다.비극은 고양이를 먹은데서부터 시작되였다. 사람들 관념속의 고양이는 령물스런 존재로 사람의 귀여움을 받으며 함께 살아왔고 어떤민족들에게는 토템적으로 받들리우고 신성시되기도 하는 동물이다.그래서 고양이를 잘못다치면 화를 입는다는 민간설들이 있다.그래서인가 《녀인은 가끔씩 이미 씹어서 소화가 된 고양이살점들이 짝짓기를 하여서는 몸속에 뛰여나와 자신의 목을 물어뜯는 환각에 시달리기도 하고》 후에는 《아버지의 망치에 맞은 고양이가 머리에 선지피를 철철 흘리면서 찾아와서 목을 물어뜯는 환각》으로 《거의 밤마다 환각으로 헛소리를 질러 집식구들을 깨워놓는 사단을 일으켰다.》불행은 여기서 끝난것이 아니다. 먹은 고양이 마리수가 열번째에 이르렀을 때 온집안은 그어떤 희망의 흥분속에 잠기게 된다.그것은 회색얼룩을 띤 열번째고양이가 특별히 커서 호랑이새끼같았는데 또 연분적으로 얻게 되였다.하지만 열번째고양이는 더욱 큰 불행의 화근으로 되였다.땅에 이틀씩이나 묻었는데도 살아나서 도망가고 밤에는 앙칼진 저주의 울음을 울다가는 녀인의 집문앞에 스스로 찾아와 꽁꽁 얼어죽어서 녀인의 약으로 먹히운다.공포에 신비함까지 씌워주는 열번째고양이다.열번째고양이를 먹은후 고양이 얘기를 꺼낸 옆집할머니는 갑자기 돌아가고 이듬해 녀인의 아버지도 돌아가며 녀인은 《얼어죽으면서 부릅떳던 고양이의 눈이 자기 몸속에서 죽어있는 고양이 아홉마리를 불러내여 뜯겨져나간 자기들의 살점과 몸둥아리를 찾아서 아우성치는것 같은 환각에 빠지군 하였》고 《그럴 때마다 신열이 나면서 온몸이 비틀리듯 아팠다.》 이런 괴로운 생활이 지속되던 서른살이 되던 해 환락이 찾아들었으니 뒤집의 친척이라는 잘생긴 남자와 짧은 사랑이 있게 되고 그래서 고양이 같이 생긴 딸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물론 소설자체는 황당하지만 토속적인 신앙에 기초를 두고 그자체의 예술론리가 잡히면서 황당속의 합리한 상징으로 충격적이고 몽롱한 미감과 깊은 사색의 예술적효과를 일으키고있다. 그렇다면 소설의 흐름을 끌고나가는 고양이는 무엇을 상징하고 소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고양이는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물이다.이런 의미에서 볼때 고양이는 인간생존과정중의 보편적인 상관물을 대변하고 상징한다고 할수 있다.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부단히 상관물들을 상해하고 파괴하고 소모한다.지어 어떤 경우는 생존을 위해서는 부득불 자신들마저 꺼려하고 두려워하고 과분하다고 생각되는 소행마저 자행하게 된다.그래서 소설속에서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영악스런 동물이라 하면서도 고양이까지 잡아먹는것이다.결과는 에네르기대등법칙처럼 얻은만큼 잃게 되고 아픔을 준만큼 아픔을 받게 되며 고양이딸은 임신까지하고 아기를 보존하기 위하여 탈가까지 하므로써 자기세대에서 결속지으려던 비극은 끈질기게 연장해나간다.이렇게 소설은 생태주의문학의 특점을 띠면서도 주제는 그 범위를 벗어나 인간세상의 보편적인 선과 악, 생존과 파괴, 운명과 해탈을 위한 모지름,인과보응 ,어쩔수 없는 모순과 막무가내한 갈등 등 보편적인 주제내용까지 암시하고있다.
그다음은 조성희의 《리탈》이다.리탈은 대도시로 진출한 당대조선족청년들의 하층생활상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그》와 윤이라는 청년인데 《그》 는 고향에서 복장장사에 숱한 빚을 지고 안해와 리혼하고, 윤이는 사기치기를 일삼다가 안해와 리혼하고 모두 대도시(북경)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그 삶이란 《빨래감이 쌓이고 도처에 쓰레기가 널려져있》고 《물에 불궈놓은 빨래감에 선 퀴퀴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세집에 눈이 맞은 녀자들을 데리고 와서는 얼마간 사랑놀음을 하다가 정리해버리고, 《낮이면 분명히 하는 일없이 동분서주하며 저녁이면 이 친구 저 친구 만나 술먹고 심심풀이로 카드놀이 하고 아니면 마작으로 시간을 때우면서 시시껄렁한 이야기 혹은 온갖 음담패설을 주고받고 낄낄대다가 카드놀이에서 딴 돈중 얼마쯤 꺼내여 술을 마시고》, 《어찌어찌해서 돈을 벌게 되면 서로 찾아서 술을 마시고 그날로 다 탕진해버리》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다.물론 그들도 《한몫 단단히 잡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빚진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자고》 생각하고 《금의환향하여 로모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로모를 모 시고 힘들게 사는 누나네 가족에게 행복을 주》려는 아름다운 념원을 갖고있다. 하 지만 《날마다 펑 뚫린 고속도로처럼 고속으로 질주》하는 대도시에서 성공이란 쉽지 않았으며 더구나 하층에서 헤매는 그들은 《실패만 거듭》한다. 물론 그들이 실패를 하는데는 객관적원인도 있지만 주관적원인이 더 클것이다.특히 그들과 같이 경제기초,인맥 등이 박약하고 특수한 재능도 없이 대도시의 하층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성공하려면 더욱 큰 노력을 지불해야 할것이다.그래서 그들도 그런 도리를 알고있고 새출발을 해보려 하지만 고질을 고치고 새출발을 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소설은 윤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가 고속도로에 뛰여들어 교통사고로 죽었으므로 교통부문에서는 자살로 인정했다.정상적인 추리로는 맞는 결론이였 다.하지만 성격적으로 볼 때 윤이는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쾌활하고 무슨 일이나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자살할 사람이 아니며 비록 사고 며칠전에 가이드사업실패로 타격이 있었지만 자살의 원인이 되기에는 너무나 리유가 빈약 했다.소설은 이렇게 서두에 궁금증을 달아주며 전도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던중 《별로 장원한 타산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그들에게,특히 윤이에게 새생활의 메시지가 보여졌으니 그것은 《이젠 이런 생활이 신물이 나》고 《이렇게 사는데 질》린 윤이에게 《죽도록 따르겠다는 녀자가 있》게 되여 참된 생활이 시작될것 같기도 하다.하지만 새생활이란 쉽지 않았고 또 사업에서 실패를 하게 되며 윤이는 또 《맘을 잡지 못》하게 된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였다.
《그》는 윤이와 절친한 사이다.그래서 《윤이 동거녀》에 대해 의무감적으로 관심하게 되고 어느날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데 윤이의 죽음을 두고 기절할 지경으로 오열을 터뜨리고 《며칠전 야밤에 흐느끼》며 전화하던 녀자답지 않게 명랑하고 천연덕스럽다. 둘은 술을 마시고 취하게 되며 《그》는 그녀를 자기가 사는 세집에 데려오게 되고 이어서 둘은 육정을 나누게 된다.일이 끝난다음 《그》는 심한 량심적가책을 받게 되며 이런 《자신이, 이 집, 이 생활이 역겨》워 택시를 잡아타고 무작정 떠난다.그런데 가던중 고속도로에 갑자기 안개가 쫙 깔려서 5백메터쯤 앞이 보이지 않는데 그곳을 벗어난후 《그》가 놀랍게 발견한것은 그곳이 바로 윤이가 교통사고로 죽은 현장이였다는것이다.즉 윤이의 죽음은 자살인것이 아니라 역시 《그》처럼 《이런 생활에 신물이 나서》 《죽음을 생각하기보다 몽유하듯이 무작정 뛰쳐나가다가》 안개때문에 차량을 보지 못하여 변을 당한것이다.소설은 이렇게 윤이의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결속되는데 윤이의 이런 죽음의 설정은 당대 대도시로 진출한 하층생활인간들의 참된 생활개척의 어려움과 새출발 간거성의 주제를 묘미 깊게 제시하여주면서 《각성소설》, 《새생활출발소설》의 새로운 모식을 창조하지 않았나 생각된다.하지만 인물들의 형상을 사회환경과 더 긴밀히 결부시키며 좀 더 돌출하게 풍만하게 표현하지 못한것이 유감이면 유감이라 하겠다..
그다음은 리진화의 《바늘》이다. 《바늘》은 언어라는 화필로 그린 한폭의 인상 파유화같이 평온함속에 조금은 우울하고 그러면서도 밝은 힘이 내재되여있는 소설이다.소설의 주인공은 수놓이로 살아가는 30대의 녀인이다.물론 로동은 모두 신성한것이지만 차원이란것이 존재하는바 수놓이란 직업은 평범한 삶이라 함이 정확할것이다. 그래서 수놓이를 하던 녀인의 할머니도 어머니도 남편의 버림을 받았고 그녀 역시 남편의 버림을 받게 된다.《처마밑의 거미처럼 아무리 짜고 엮고 붙잡으려 발머둥쳐도 비바람이 불면 스스로 엮은 한가닥 미련을 붙들고 울수밖에 없는 운명, 녀자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녀인은 어쩔수 없이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본능적인 욕구에 가까운 충동때문에》 수놓이를 하게 된다.하지만 수놓이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바람직한 삶이 아니기에 자페증을 앓게 되며 수놓이 한점이 완성되면 바늘로 자신의 팔을 찌르는 자학행위로 심리평행을 잡아간다.그의 이런 변태심리는 또 손님들에 대한 심드렁한 태도와 자신보다 천해보이는 신깁기로인에 대한 괄시로 전이되기도 한다. 소설은 마지막에 가서 녀인이 또 한번의 곡경을 치른후 업수보던 신깁기로인에 대해 태도가 우호적으로 변하고 바늘을 그리워하고 수놓이를 하고싶어 하면서 새롭게 바로잡은 삶의 자세를 밝게 보여주면서 평범한 삶을 긍정하는 주제도 제시하여주고있다.
특히 이소설은 바늘이라는 녀성적인 장치를 교묘하게 리용한데도 묘미가 있지만 언어구사에서 바늘과같이 예리하고 섬세한 언어로 이미지들의 핵을 유연하게 꿴것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된다.제한된 언어 넘어로 무한한 환상을 펼쳐주며 평범한 내용을 유화같이 함축하여 은근하고 힘있게 표현했다는건 새로운 탐구와 우리문단의 새로운 풍경이라고 본다.
《남자가 두번째로 감탄을 할 때 녀자는 호수우에 뜬 물오리처럼 가만히 앉아있다.사유는 그렇게 소리없이 흘러가고 잔잔한 물결밑에서 별의별 괴상한 생각들이 오리의 발과같이 빨갛게 요동치고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놓이 바늘은 공중에서 표류하는 환각의 빛줄기와 흡사하다.가느다란 금속의 내면에서 녀자는 분명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추락하는 새의 부리처럼 빛나는 금속 하나가 허공에서 완미한 포물선을 그으며 곧추 그녀의 하얀 팔우에 내리꽂힌다.》… 무척 인상깊은 화폭들이다.하지만 조선족적인것이 부족된것이 유감이라면 유감이겠다.
이렇게 네 녀작가의 네편의 작품을 살펴보았는데 가히 요근년 우리문단 단편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네작품은 제재상 풍격상 서로 판이하게 다른 각이한 특점을 갖고있지만 동시에 아래와 같은 공통점도 갖고있다.
첫째.네작품은 모두 결말의 불명확성과 불투명성을 갖고있다. 《둥지》 와 《그 녀 몸속의 열마리 고양이》가 전형적일뿐만아니라《리탈》과《바늘》도 어떤 결론이 있는것 같으면서도 역시 비슷한 경향을 다룬 재래의 소설에 비해 다방면적 가능성의 미래를 상상하게 하고있다.때문에 이런 결말의 처리는 작품의 방사성적인 여운을 남기는 예술적 매력을 가첨하여주었다.이런 특점은 단일한 가치관이 허물어지고 중심이 해체된 현시대생활에 대한 더욱 본질적인 반영을 위한 수요에서 생겨난 예술의 법칙에 따른것이 아닌가 싶다.
두번째는 녀성 글쓰기의 섬세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다는것이다. 네편의 작품이 모두 녀성의 글인데 모든것이 세분화로 그질서가 분산적으로 복잡해지는 현시대의 흐름을 두고 이런 녀성글쓰기의 특점은 본질적인 세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예술적으로 펼쳐주는 무기로 되지 않겠나 생각된다.그리고 오직 녀성의 체질로 녀성의 감수로 녀성답게 쓰는 글이라는 여기에 바로 남성문학과 대립할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것이 아니겠나 생각 된다. 무엇이든《헤겔로인이 말한 바로 그것》일때 바로 독일무이(独一无二)의 경지에 다달을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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