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프로필(나는 누구인가)
[기행수필]록음의 나라 해남도
류대식
2.해남도의 명소들(1)
3성급호텔에서 해남도의 첫날밤을 편안히 자고 이튿날아침 간단한 식사를 한후 우리일행은 전용뻐스에 실려 유람의 첫코스인 유명한《박오아세아론단 (博鳌亚洲论 坛》의 회의지점인 박오(博鳌)로 향했다. 해년마다 진행되는《박오아세아론단》은 아세아의 구역적협력을 가강하고 아세아와 세계와의 교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국제 성적인 회의이다.
차창너머로 우리는 무르익고있는 한여름의 풍경을 만끽할수 있었다.길량옆에는 줄기가 미츨하고 머리부분에서 한발씩이나 되는 잎사귀들이 아래로 처진 야자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있었는데 나무마다 아기골만한 야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이곳의 야자는 사시장철 달리고 여무는데 동북의 감자보다 더 흔한것이 야자란다.
가는 도중 해구의 인물명소인《오공사(五公祠)》를 지나게 되였는데 려행코스에 없었으므로 가이드는 간단히 소개했다.오공사란 당,송 때 해남도로 적강되여와 해남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당나라 명상(名相)인 리덕유(李德裕),송나라 명상들인 리강 (李纲), 리광(李光),조정(赵鼎),명신(名臣) 호전(胡诠) 을 기리여 지은 사당인것이다. 또 해남도의 인물명소로는 명나라때의 청관 해청천(海青天)으로 불리우는 해서(海瑞)의 묘지가 있다고 한다.해서는 해남도가 고향인 사람이다.역시 우리의 려행코스에 없었으므로 갈수가 없었다.
가는 도중 우리 시야에 안겨오는 해구의 건축물들은 원래의 상상과는 많은 거리를 갖고있었는데 160만의 인구에 성소재치고는 규모가 좀 작았고 어순선한데가 많았다.해남제도는 원래 광동성에 소속되여있다가 1988년에 해남성으로 부상되였는바 1990년대초 대폭적인 도시건설중 포말경제로 하여 건축업에서 나라에서 몇백억의 손실을 입었고 그래서 이만큼의 회복도 요근년의 일로 쉽지가 않았다고 가이드가 소개했다.그리고 관광유람도 해구로부터 삼아에 이르는 동부해안선에 치중되고있는데 중부와 서부는 한창 개발중이란다.
도시를 벗어나자 한여름의 대자연이 시야에 안겨왔다.길옆에는 여러가지 꽃들이 만발하였고 유유한 산들은 울창하지는 않았지만 푸르싱싱한 열대나무들로 뒤덮 혀있었다.더우기 우리에게 신기하게 안겨오는것은 전야의 풍경이였다. 한쪽에서 한창 벼모를 꽂고있는데 한쪽에서는 다 여문 곡식을 가을하고있는것이다.보통 일년에 삼모작을 한다한다.그야말로 사시장철 여름이고 여름속에 봄과 가을이 엇섞인 록색의 왕국,록음의 나라였다.
그리고 해남도는 한국의 제주도처럼 바같일은 대부분이 녀성들이 한다는데 남성 들은 집에서 아이나보고 일이 없으면 차집에 나가 차나 마시며 소일한다고 가이드는 소개했다.그렇다고 여기고 눈여겨보니 과연 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에 얇은 수건을 두른 녀인네들이였다.
《…보십시오. 모든 남성분들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어려있습니다.해남도에 와서 살고싶지요?》
가이드가 묻자 《예!》하고 모든 남성분들은 약속이나 한듯 일치하게 대답했다.
드디여 목적지에 도착했다.정차장에는 벌써 몇십대의 관광뻐스가 와있었고 해변가는 유람객들로 붐비였다.매년 해남도에 유람오는 유람객은 인차수로 2천만이 된다는데 해남성 인구의 두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수자이다.그러니 유람업에 힘입는 경제효익도 가히 짐작할수가 있었다.
박오는 만천(万泉),룡곤(龙滚),구곡(九曲) 세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입구로써 물속에 섬이 있고 섬속에 물이 있는 기묘한 조합의 명승으로 이름이 높다.푸른바다를 마주 하고 야자나무에 둘러쌓인 《박오아세아론단》의 주회장이 멀리서 보였다. 깔끔 한 현대식풍격이 주체가 되고 중국고전풍격이 이곳저곳에 슴베인 그리 높지 않은 아 담고 매력적인 건축물들이였다.
《생각하던것보다는 못하지. 텔레비죤에서는 또 얼마나 멋있소.!》
누군가 조금은 실망이 담긴 말이였다.다 사람이 사는 곳인것만큼 아무리 명소라도 상상속의 세계보다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나는 몇번의 경험으로 명승에 림하여 현실적인 마음자세를 갖추고있기때문에 모든 아름다움에 깊이 매혹될수가 있었다.
우리는 바다가로 갔다.구수하고 시큰한 바다냄새가 페부를 시훤히 가셨고 춤추듯 넘실대는 푸른바다는 모든 사람의 시야를 신선하게 자극했다.아,몇년만에 오는 바다였던가?그렇다,십년전 북대하에서 첫바다를 본이후 나는 다시는 이 아름다운 바다와는 연분이 없을번 했다.그런데 이렇게 또 다시 바다와 만나게 되였으니 나의 마음은 저도몰래 격동되며 가슴과 눈굽이 찡— 해난다.인생은 무상한 법,살아있다는 그자체만으로 얼마나 행복스러운가를 가슴 뿌듯이 느끼는 순간이다.
걷어올린 다리를 시원히 만져주는 밀물썰물, 사람들은 물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고하며 려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있었다. 유람객들 사이로 조개껍질공예 품,진주 목걸이 같은 것들을 들고 사라고 지꿎게 따라다니는 당지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였 는데 모두가 키가 작고 여위고 가맣고 동글납작한 얼굴에 코등이 푹 꺼져들어가고 코구멍은 하늘로 벌름 쳐든것이 못나보였다.한 당지남자가 조선솟뚜껑만한 거부기를 안고있기에 희안해서 만졌더니 우호적으로 넘겨주며 일없다고 사진을 찍으란다. 그래서 우리일행 몇이 너도나도 거부기를 안고 사진을 찍었는데 다 찍고나니 매인당 5원씩 내란다.
《공짜가 없구만!》
우리 모두 마주들 웃고는 돈을 주었다.
《박오아세아론단》주회장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는 만천하(万泉河)가 에돌아흐르 고있었는데 중국의 유명한 남고음가수 리싸강(李双江)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그《나는 오지산을 사랑하고,나는 만천하를 사랑하네(我爱五指山,我爱万泉河)》의 만천하이다.우리 려행코스속에는 만천하의 참대뗴목놀이가 있었다.
강은 꽤나 넓었고 물은 푸르고 깨끗하였고 깊어보였다.떼목 한척에 여덥명씩 구명의를 입고 타는데 7,8척이 하나의 그루빠가 되여 똑딱선이 앞에서 끌었다.떼목에 시름놓고앉아 푸르른 물과 수풀이 우거진 량안의 풍경을 번갈아보며 선선하고 아늑한 기분속에 잠겨있노라면 이것이 신선노름이 아니냐하는 초탈의 유아무아경 지속에 빠져 들어가며 첨벙!개구리처럼 물속을 뛰여들고픈 충동을 느낀다.오고가는 떼목우의 유람객들은 스쳐지나갈때면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이곳의 관습대로 우호 적으로 서로 물을 치고 물총을 쏘고하며 웃고떠드는데 꽤나 즐겁고 화락한 분위기가 강심에 넘쳤다.
지정코스를 따라 한바퀴 돌고오면 사람들의 옷은 거의 물에 젖게 된다.
《보십시오..해남도려행 첫날에 벌써 지키지 못하고 정조를 잃었 (湿身→失身) 습니다.》
가이드가 또 우스개를 해서 모두들 즐겁게 웃었다.
그날저녁은 흥륭(兴隆)이란 자그만한 진의 금엽(金叶)대주점에서 묵게 되였는데 금방 지은 호텔이라서 4성급에 걸맞게 호화롭고 환경 또한 좋았다.려행사에서는 해남도에 유람온 유람객들을 거의 흥륭에 하루 묵도록 안배하는데 그 리유인즉 이곳에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허가한 태국(泰国)의 국수(国粹)라는 인요(人妖)공연이 있기때문이 란다.가이드의 소개에 의하면 해남도에 유람오는 유람객은 대부분이 국내손님인데 그것은 세계적으로 열대지방의 유람지가 많고많아서 다른곳에 비하면 해남도는 아직 시설,써비스 등 제면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외국손님들이 아주 적다는것이다.그래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중의 하나가 바로 인요공연을 허가하고있다는것이다.
인요들은 주로 태국에서 물색해온다 한다.국내의 많은 사람들의 인요에 대한 인식은 중성인이다,변성인이다라는 정도에 그치고있는데 인요는 태국에서는 주류사회에는 못들어가 있지만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접수되고있는 부류인바 그 이름도 우리가 부르고있는 좀 모욕적인 색채를 띠는 인요라 하지 않고 홍예 인(红艺人),람예인(蓝艺人) 혹은 귀염둥이(小可爱)라고 한다 한다. 그만큼 인요들의 아릿다움은 남성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녀성들이 스스로 무색해할 정도란다.또 태국에서는 해마다 인요미인선발대회도 있단다.지금 태국의 인요수는 상당한바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20세기 90년대말에 그수가 이미 2만이 된다고 한다.태국의 인요는 대개 두가지부류로 나눌수 있는데 한부류는 군대,경찰을 위주로한 중산 층가정의 남자애들이 어머니와 많이 있게 되여 기질이 녀성쪽으로 기울어지며서 인요가 되고싶어 되는것이고 한부류는 가정이 가난하여 가정을 먹여살리기 위해 인요로 되는것인데 어려서부터 전문학교에 들어가 정규적이고 엄격한 훈련을 받고 일단 기예가 뛰여나서 인기를 누리기만 하면 한사람이 온집식구를 잘살게 할수 있다는것이다.하지만 인요들이 원래는 남성인데 변성을 위하여 녀성호르몬을 주입받으며 변태적으로 녀성화 되는것이기에 자식이 있을수 없고 또 대대부분이 수명이 짧아 사십중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듣고보니 좀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세상이 넓다보니 별난일이 다 있는것이다.
호기심 많은 몇사람이 구경울 가고 대부분은 힘든지라 일찍이들 쉬였다.나는 몇년전에 대련에서 피뜩 본적이 있는지라 가지 않았다.
어둠이 어슬어슬 깃들자 사람들 자취도 드물어졌다.문득 침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이상하다 하며 문을 열고보니 화장을 짙게 한 아가씨가 안마를 받지 않겠는가고 물어왔다.낮에 차에서 가이드가 저녁이면 안마아가씨들이 돌아다닐것인데 명색은 안마지만 들여놓으면 색정봉사로 유인하기에 알아서 처리하라고 귀띰을 주어서 두말없이 거절하고 문을 닫아버렸다.보매 색정봉사가 반공개화되고있는것 같았다.
열어논 창문으로 시원한 해풍과 함께 듣기좋은 풀벌래의 울음소리가 멀지 않은 다른 호텔에서 나는 흥겨운 음악소리와 한데 어우러져 들려왔다.속담에 《30년 하동이고 30년 하서이다(三十年河东,三十年河西) 》 더니 본세기 50,60에는 남방의 사람들,바다가의 사람들이 흑토(黑土地)를 찾아 《촹꽌둥(闯关东)》으로 산해관을 넘어 동북으로 밀물처럼 밀려들던것이 지금에 와서는 동북의 사람들이 반대로 남방으로 해변가로 밀물처럼 쓸어들고있는것이다.세상이 돌아가는 주기가 대개 이러할진데 30년후에 우리 흑룡강,동북은 무엇으로 열점이 되여 재다시 호황을 누릴까?경제로는 남방을 릉가하기 어렵고,그렇다면 자연환경,기후,인구밀도?깊이 생각해볼 큰 문제다.
줄기차게 흥성발전할 해남도의 래일을 암시나하는듯 멀지 않은 호텔에서 나는 흥겨운 음악소리는 밤의 정적을 휘젓으며 장밤 그치지 않았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