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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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시도와 다채로운 풍경
2008년 06월 05일 08시 10분  조회:2550  추천:127  작성자: 류대식
 

창의적 시도와 다채로운 풍경


2007년도 “도라지” 6호에 청년작가특집으로 구호준,한영남,리진화,김서연,김춘택,김경화 등 6명작가의 소설이 실렸다. 6명 모두가 소설, 시, 수필 등 분야에서 적잖은 성취를 거둔 청년작가라는 점에서 이번 소설특집은 우리문단 젊은 작가들의 소설문학양상을 일정하게 대표하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청년작가라면 우선 떠올리게 되는것은 시대의 흐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새로운 사물에 대한 빠른 접수 그리고 정열적인 탐구와 창조력이다. 6명작가들의 작품들에 모두 이런 기상이 보이면서 다채로운 풍경을 형성하여 사뭇 정서를 즐겁게 한다.


1.본질에 대한 해체와 구원에로의 탈출


우리는 지금 불확실의 시대속에 살고있다고 다들 말한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세계일체화의 정보시대 ,하나의 질서가 채 형성되기도 전에 새로운 질서가 기존질서에 대한 도전과 함께 그 합리성을 팽창하는 혼돈과 무질서, 다원가치 공생공존의 미로, 이런 시대속에 살고있는 인간은 여느때보다 삶의 곤혹을 느끼며 방황한다.

구호준의 “바람의 대화”는 이런 실존 상태를 마주하고 존재의 구원을 본질적인것에 대한 해체를 통한 탈출에서 찾고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작품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포스터모더니즘(후기현대주의)수법에 많이 기대여 완성시킨 작품이다. 그것은 포스터모더니즘은 가치서렬의 전도 내지 붕괴에서 그 특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기때문이다.

 “바람과의 대화”의 주인공은 2인칭으로 되어야 할 너가 1인칭으로 등장하는 “너”다. 어느 회사 내부신문-직원이 모두 두명-의 주필인 “너”는 그리 잘나가지 못하는 가난한 지식인이고 “하층” 엘리어트이다. 때문에 이런 “너”는 외롭고 “아픔이 있어 너는 고통스러웠고 고통이 있어 너는 절망을했다.” 이럴 수밖에 없는 “너”다. 마음의 높이에 비해 쇠외된 현실,이런 “너”를 구원하는 길을 “너”는 본질적인것에 대한 반역과 해체로 찾고있다. 본질이란건 풀어서 해석하면 기성의 진리 혹은 진리적인 원칙이나 가치관념, 이런것이라 할수 있겠다. 그리하여 “너”는 인생의 중요한 구성부분인 사랑을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자유분방한 녀인과 해후의 한번의 대작에서 살을 섞고 이어 결혼하게 되며 녀인은 임신하게 되고 임신을 알던 날 너는 오히려 “세상 모든 것이 막막”해나며 집을 뛰쳐나와 30대의 나이에 40대의 기녀를 찾아 외도하고 안해가 아이를 낳자 오히려 “허탈감에 너자신을 지탱하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진다.” 기본줄거리뿐만 아니다. 소설은 처처에서 반역과 해체가 보인다. 자식공부를 위하여 몸을 판다는 40대 기녀에 대한 변태에 가까운 긍정, “녀인, 자식, 돈, 명예, 삶자체도 무의미한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는 “너”의 인생관, 더욱이 전률을 느끼게 하는것은 “아기가 아빠를 닮으면 리혼하겠다“는 “너”의 안해가 담담하게 내던지는 말이다. 이런 기존 질서와 본질적인것에 대한 반역과 해체는 결국 기존 본질에 회의를 느끼고있는 존재주체의 구원을 위한 탈출의 시도에 다름아니다. 특히 소설은 폭풍우속의 나비라는 교묘한 장치를 잘 리용하여 주제를 탄력있게 조응시키고있다. 나비에 대한 묘사는 이야기전환 사이사이에 부동하게 등장하는데-처음은 “창밖의 호랑나비 한마리가 창을 향해 돌진하고있다. 유리에 부딪쳐 잠간 물러났다가는 다시 창문을 향해 돌진한다. 폭풍우전야의 하늘을 보면서 어떤 알수 없는 위기감으로 안식을 찾는 모습이다. 옆으로 한뼘만 더 비켜서면 열린 창인데 나비는 그것을 보지 못한채 생의 마지막 모지름을 쓰고있다.” 그다음은 “호랑나비는 이젠 지친 모습이다. 요란하던 날개짓 대신 창문유리에 매달려 힘없이 날개를 퍼덕이고있다.” 그다음은 소설의 결말인데  “그리고 유리 한 장 사이두고 호랑나비 한 마리가 생과 사를 넘나들면서 모지름을 쓰고있다. 바람은 말이 없는데 나비는 바람이 두려워 도망간다. 자신도 모르는 아득한 곳으로.” 이렇게 소설은 나비에 대한 묘사에서 전반 소설의 몽롱하고 담담하며 우울하고 회색적인데 비해 정열이 일고있으며 지치고 곤혹스런 현실 삶에 대한 강렬한 몸부림을 나비에 의거하여 말하고있다. 바람은 정처가 없고 나비는 귀속이 없다. 바람은 불확실한 방향을 제시하는 불확실한 존재다. 때문에 “나비”는 바람과 대화에서 답안을 못찾고 바람을 떠나가며 따라 존재 주체의 구원을 위한  탈출과 몸부림은 계속 진행될것이다.

소설이기때문에 허구의 특권을 지닐수 있었고 그래서 다른 예술이 닿지못하는 내용을 소설적허구로 말할수 있었다.

언어에서도 참신성이 돋보인다. “바람이 손끝을 할고 지나간다”, 미소를 “녀인의 입가에는 하얀 장미 한송이가 피여올랐다.” 고 비유했다던가, 흐린 얼굴을 “녀인의 얼굴에서 락엽덜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했다던가, “파산신고를 들은 녀인의 얼굴에는 회오리바람이 불어쳤다”, “초췌한 몸태에 하얀 머리까지 빠져 한여름 땡볕에 시든 풀잎을 떠올리게 한다” 등등은 작자만의 언어로 낯설기에 성공하여 별미를 음미하는 기분이다.

문화적인 철학적인 이미지를 많이 깔고 인물들을 좀 더 진하게 부각(?)하였다면 좀 더 심도가 깊어질수 있지 않았겠나 생각해본다.


2. 시간과 공간, 감각의 포위속의 존재의 실상


우리는 보통 절대적시간과 상대적공간속에 살고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간은 초, 분,시, 하루, 일년 이렇게 흘러가고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은 물질의 끊임없는 운동으로 하여 상대성을 띠고있기때문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상대적시간 절대적공간으로 될수 있으니. 독특한 풍경의 소설들을 쓰고 있는 리진화의 “에레베터”가 눈앞에 나타난다. 한 직장녀인이 한밤중에 직장에 나왔다가 직장의 허름한 엘레베터의 고장으로 에레베터속에 장밤 갖혔다가 이튿날 구원되는 이야기를 쓰고있다.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의 엘레베터라는 밀페된 공간에서의 감수와 생각을 의식흐름의 방식으로 진척시키고 꾸며나가고있다. 과학과 물질의 급속한 발전으로 현대인은 보편적으로 여느때보다 자아주재의 시간과 공간을 떼우고있다. 특히 드바쁜 현대생활과 절주는 코를 꿴 송아지처럼 타의에 어쩔수 없이 끌려다니며 물질적부의 풍요로움을 얻는 대신에 마음과 령혼의 자유는 점점 협소하게 박탈되여간다. 진정한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공간의 자유를 소유한다는건 현대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치인가? 엘레베터속의 젊은 녀인-감수가 예민한 지성인-은 남의 눈에는 행복한 녀인이다. 결혼을 앞둔 괜찮은 남자친구가 있고 건강한 부모가 있고 주위인간관계도 나쁘지 않고 좋은 선후배도 두루 있는 녀인이다. 하지만 떨쳐버릴수 없는 진한 피곤을, 말할수 없는 “어딘가 상당히 불편”함을 늘 느끼고 있는 녀인이다. 녀인이 에레베터속에 갖혔을 때 그녀는 진정 어디도 자신의 구원을 청할수 없는 고독한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 오직 에레베터문이 스스로 열리는것이 자신이 구출되는 가장 좋은 방도가 됨을 깨닫는다. 녀인은 자기만의 공간과 자기만의 시간을 소유하고 있는 에레베터속에서 자신의 실존상태와 몸과 마음과 령혼을 깐깐히 성찰하며 잃었던 시간과 공간을 찾아간다. 느낄수 있는건 시간의 흐름과 진정한 자아와 존재의 실상이다. 감각은 여느때보다 밀도 있게 나래친다. 외로움, 억울함, 무료함, 공포, 귀신의 이야기, 귀신과의 대화, 잃어버린 밤을 찾은 잠, 령혼과의 대화,  “나는 왜 여기 왔는가”, “나는 무엇을 찾으러 왔는가”, “나는 무엇이 그리워 왔는가” 이런 끊임없는 물음과 함께 존재 주체의 과거, 현재, 미래의 가장 겉면적인 표상과 가장 심원한 본질이 이 한마당에 모이게 되며 따라서 시간은 절대성이 풀리고 상대적시간으로 이화하며 녀인은 열반의 희열속에 자아를 찾으며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상대적공간도 그 상대성을 잃고 새로운 탄생의 절대적 집이 된다.

예민한 감수성의 자유분방한 사변과 질서있는 언어표현론리, 작가의 천부를 잘 말해주고있다. 계속 좋은 작품을 기대하면서 이야기성의 상실은 소설에서 일종의 모험임을 귀띰하고싶다.


3. 상처의 치유와 생명의 완성


김서연의 “내인생의 고양이 한 마리”는 또 하나의 색다른 풍경이다. 한폭의 상징주의 유화작품을 흔상하는것 같은 소설이다. 어지간히 산만하고 어지간히 혼란스럽고 어지간히 몽롱한, 그러나 꼭 그렇게 표현해야만 작자 내심의 격정과 심령의 웨침을 작자식으로 최대한 물화할수 있을것 같은 리해심이 저도모르게 열리는 그런 소설이다. 그마큼 물의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소설이다. 다섯살적에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열두살에 할머니를 잃고 열네살에 “당신”이라 대호가 되여있는 남편을 만나서 끝내 귀속을 찾은 녀인의 성장과정을 쓴것이 이소설의 경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건 줄거리가 아니다. 중요한것은 여러가지의 몽롱한 상징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이 어떻게 내재적련계를 갖이면서 소설을 완성시키는가 하는 궤적을 살펴보는것이리라. 기대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작자는 명료성을 애써 소멸하려 하였고 “총체적상상”을 주저없이 서술하면서 여러가지의 상징물을 애매하게 등장시키고있다. 코스모스, 고양이, 녹쓴 자물쇄와 열쇄, 꽃씨 등이다. 우선 등장하는 코스모스, “코스모스 나붓거리는 들판의 아름다움으로 내마음을 뒤흔드는”“코스모스가 그 꽃잎을  나붓거리며 내게로 다가오”는 그 코스모스는 죽은 부모의 몪까지 담당하고 있는, 부재를 채워주고있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가 그에게 끼치는 모든 영향범위-사랑, 관념 등등- 같은것을 상징할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모스는 주인공의 성장의 보금자리일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죽고 보금자리가 깨여지면서 “할머니가 회색 구름이 되던 날, 그  회색구름이 처음으로 비를 내려주던 날” 제목의 고양이가 등장하며 “코스모스 그 꽃밭에서 울고있던” 고양이가 “나를 따라 쫄랑쫄랑 집까지 왔다.” 그후 고양이는 주인공녀인의 인생과정에 처처에서 참여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고양이는 할머니-코스모스가 사라지고 그 부재를 대체한 정신기둥적관념, 인생철학 아마 이런것들을 상징하리라. 보편적으로 인간과 가장 친밀하게 살고있고 귀염을 받고있는 고양이라는 소도구에 이런 상징의미을 부여한다는건 소원감은 없을것이다. 그후 열네살이 되던해에 스스로 고양이를 죽이고-새로운 질적인 비약을 위해서는 버림이 있어야 할것이다- 고향을 떠나 다른곳-도시로 갔는데 그곳에서 “혼자인 나”는 “혼자인 당신”을 만나고 나의 탈가, “당신”의 자살기도 등 우여곡절을 통해 끝내는 “녹쓴 열쇄로 녹쓴 자물쇄”-상처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상징할것이다-를 “당신”과의 화합속에 열고 마음속의 “꽃씨”-새로운 생명의 상징이리라-는 “날개를 펼쳐 푸른 하늘로 가볍게 가볍게 날아오르”고 “당신의 눈물은 별처럼 빛나고” “나, 그 눈물로 내안에 어여쁜 꽃 한송이를 피우고싶”으면서 부재의 공간을 “당신”으로 채우면서 상처의 치유와 함께 과거자아의 멸각속에 새로운 나의 생명이 탄생되게 된다.

꽤나 힘들게 읽었지만 다 읽고난후 진하게 미적인 충격을 주는 소설이다. 계속 좋은 작품을 기대해보며 소설은 필경 소설이기에 소설의 기본을 너무 탈리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4. 기타작품


시인이 한영남씨가 소설을 쓰고있다. 소설의 제목 “소설만들기”처럼 시인나름으로의 소설을 만들고있다. 소설은 가난한 지식인의 일상적인 삶을 파편적으로 서술하고있는데,두부도 따져가며 사야하고 화장터 문지기직업도 반가와해야 하는 가난한 지식인 가난한 서민의 생활, 애환도 많고 불평도 많으련만 너무도 담담하게 세상을 지켜보고 사색을 하고있어 두렵기까지 하다.“침묵속에서 사멸하지 않으면 침묵속에서 폭발하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침묵속에서 사멸하지도 않고 폭발하지도 않을것이다. 그것은 주인공 나름의 인생철학이 있기때문이다. 여러수의 이미지시를 배태하고있는듯한 미학이 있어 좋았다. 하지만 소설이 너무나 담담하게 흐르고 이미지도 어지간히 우유부단하여 좀 곤혹스럽다. 어쩌면 격정이 사라지고 리상이 무마된 현실사회의 한단면을 이렇게 써야만 공평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소설은 그어떤 갈등구조 같은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가? 좀 더 선명한 소설을 기대해본다. 소설가의 소설이 아닌 시인의 소설을.

H시인이 김춘택의 “H시인의 7선 종점 월세방”에서 걸어나온다.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금전을 초개 같이 여기는 가난한 H시인, 호방하고 유모아적이며 완세불공(玩世不恭)의 H시인, 하지만 시와 령혼에 군더더기가 생겼을 때에는 가차없이 몽골도로 군더더기를 썩뚝 베여버리는 H시인, 신비한 원시린에서 걸어나오는 원시인같은 H시인, 이런 H시인은  물질의 부와 반비례로 인간성 사막해져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스스로의 비춰보며 반성케하는 좋은 거울이 되지 않겠는가? 독특한 인물형상을 부각하여 인상깊다.

김경화의 “춥고 긴 어느 겨울날의 기억”은 인물일대기식으로 쓴 소설이다. 담약하고 소심스럽고 착하고 부지런하나 큰능력이 없는 아버지, 병으로 죽어가면서도 링게르 하나 맞는것도 아까와 하는 기막힐 정도의 자린 고비 아버지, 절름발이 병신이란 리유도 안해의 외도도 묵인하는 아버지, 어렸을적 할아버지 탈가로 하여 병태에 가까운 가정애를 갖고 자식들을 옆에 두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지난날 우리의 어두웠던 그림자를 보는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며 작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밉살스럽고 안타까운 아버지지만 이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뿔뿔이 흩어질 가정이 미래를 예견하며 비애에 잠기는 결말은 정체성이 해체되는 현실을 영사(影射)하는것 같아 사색의 여운이 짙다.

이렇게 6명작가의 소설특집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런저런 표현, 기교 등 면에서 성숙이 모자라고 과분한 자아세계로의 한정과 사회참여의식의 결여로 무게감이 제한되여있고, 소설의 기본을 너무 떠난것 같은 등 부족점이 보이지만 이색적인 한상의 향연이요 창발적인 시도가 놀라운 다채로운 풍경임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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