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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컵] 꽃 피는 춘삼월은 지나갔어도
2020년 09월 21일 15시 23분  조회:58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꽃 피는 춘삼월은 지나갔어도
김옥


살구꽃 활짝 피는 춘삼월이면 나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생일을 맞게 된다. 연분홍 살구꽃, 눈송이처럼 흰 배꽃, 휘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파랗게 돋아난 연록색 잎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늘어나는 나이를 다시한번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나는 대자연 속의 모든 생물체들이 기지개를 켜며 대자연을 맞이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이 무작정 좋다.

“인간 칠십 고래희”란 말이 무색해질 만큼 곳곳에서 ‘백세시대’를 높이 웨치고 있다. 80 고개를 지척에 두고 있는 나 역시 요즘 따라 여생을 어떻게 보낼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파란만장했던 지난날은 하늘의 구름마냥 흘러가고 붉은 해살 따라 걸어가는 여생엔 웃음의 꽃, 행복의 꽃이 만발하길 기대하며 또 한번의 춘삼월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올해 춘삼월에는 꽃도 어김없이 피고 화창한 봄날도 왔건만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청객―신종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의 삶 전체가 송두리채 흔들리고 말았다. 요긴한 일이 아니면 될수록 집 밖을 나가는 걸 자제해야 했고 거리에 나가도 전부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린 무표정한 얼굴들이 태반이였다. 꽃 피는 춘삼월은 그렇게 적막과 공포 속에서 우리 곁을 소리없이 스쳐지났다.

자식들이 그립고 보고 싶어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겨끔내기로 전화를 걸어와서 안부를 묻는 딸들한테 엄마는 괜찮으니 너희들 몸이나 잘 챙기라고 부탁하고도 전화를 끊고 나면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한동안 멍하니 있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렇게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머리 속은 여러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이렇게 멍청하게 생활의 노예가 되여 나를 걱정해주는 친인들에게 걱정만 끼칠 수는 없었다. 수많은 무명 영웅들이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가장 위험한 곳에서 사투를 벌리고 있는데 나만 성 쌓고 남은 돌처럼 이렇게 집에 붙박여 허송세월을 보낼 수는 없지 않는가?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없이 살아야겠다는 신념을 굳히고 나서 이튿날부터 곧바로 움직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잠시 접었던, 십여년간 꾸준히 익혀온 태극권부터 골랐다.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는 운동인지라 실내에서도 넉근히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시간에 맞추어 온라인 수업을 시청했다. 건강상식, 방역 등 방면의 내용을 시청하면서 관련 지식들을 습득했고 독서와 글쓰기를 날마다 놓지 않았다. 저녁이 되면 또 텔레비죤을 시청하면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최신 동향들을 살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보람차게 지나가는 가운데 생일날이 소리없이 다가왔고 내 머리 속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집에 갇혀있어도 초라하게 무너지고 있는 파파 할머니가 아니라 꾸준히 도전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멀리에 있는 자식들, 근처에 있어도 만날 수 없는 친지, 동료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나는 이내 동영상을 찍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한곳에 모아놓았다. 아무리 저울질해봐도 실내에서 태극권을 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내는 게 자신 있었다.   
                               
실내인지라 제일 얇은 태극권 복장을 골라입고 창문을 열어젖혀도 흐르는 구슬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땀에 흠뻑 젖은 옷들은 물자루가 되였다. 그래도 동작 하나하나 제대로 하느라 나름 대로 신경을 가다듬었다.

생일을 며칠 앞두고 십여벌도 넘는 태극옷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입고 정성 들여 화장하였다. 몇달 동안 다듬지 못한 흰머리는 가발로 가리웠다. 이어 사위한테 부탁하여 동영상 제작에 들어갔다. 생일 전날, 내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워이신을 통해 여러 친인들에게 보내주었다. 저녁에 휴대폰을 확인해보았더니 감동을 먹었다는 메시지들로 꽉 차있었다.

메시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나의 눈가도 어느새 촉촉히 젖어들었다. 주변의 긍정과 응원이 이토록 큰 힘이 될 줄 미처 몰랐기에 그 감동이 곱절로 와닿는 순간이였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머나먼 복건땅에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먼 사돈 벌 되는 조카가 99원의 훙뽀(红包)와 함께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돈할머니, 생일을 축하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앉으라는 의미에서 99원의 훙뽀를 함께 보냅니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엔 심양에서 지내고 있는 외손녀가 문자를 보내왔다.

“외할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 500원은 할머니한테 드리는 생일선물입니다. 내 생에 처음으로 탄 월급을 음력설에 할머니 집에 가서 절을 올리면서 드리려고 했는데 바이러스 때문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너무 아쉽네요. 이 돈으로 맛 있는 걸 사드세요. 그리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앉으세요.”

그저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인 줄 알았는데 할머니 생일이라고 인생에서의 첫 수확을 이렇게 메시지와 함께 보내오니 그 순간 울컥하며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은 이미 황혼에 접어들었더라도 혹독한 역경 속에서도 꽃 피는 춘삼월에 생일을 변함없이 즐길 수 있었던 건 마음속에 늘 푸른 젊음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로년세계>> 2020년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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