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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컵] 큰시누이의 특별한 외출
2020년 11월 06일 10시 22분  조회:468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큰시누이의 특별한 외출

최선자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는 8월의 어느 날, 나의 70세 생일을 축하해주기라도 하는듯 해살은 유난히 눈부셨고 싱그러운 바람까지 솔솔 얼굴을 간지럽혔다. 나는 가족과 친지들의 뜨거운 축복 속에 백산호텔에서 생일파티를 가지게 되였다. 좌석을 둘러보니 초대한 사람은 다 자리에 앉은 것 같아 모임을 시작하려고 할 때 복무원아가씨가 손님 한분이 더 오셨다고 알려주었다.
 
‘누굴가? 올 사람이 더 없을 텐데.’ 하면서 출입문 쪽을 바라보았더니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띤 왜소한 체구의 한 녀인이 서있었다. 뜻밖에도 큰시누이였다. 나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우두망찰 굳어져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놀란 나머지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잊은 채 멀뚱멀뚱 그녀만 쳐다보았다.  
 
큰시누이로서는 수십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가족모임이였다. 구겨진 종이처럼 제멋대로 쪼그라붙은 몸과 얼굴, 화상이 남긴 흉터로 온통 볼품없이 되여버린 그 끔찍하다 할 만한 모습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이 없어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젊은 시절 그녀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1968년, 하향지식청년으로 화룡현 로과공사에 내려갔다가 그 곳에서 처음으로 큰시누이를 만났다. 맞춤한 키에 유난히 까맣고 반짝거리는 눈매와 오목조목 또렷한 이목구비, 총명한 데다 마음마저 따뜻했던 큰시누이는 나보다 한살 우였다. 그녀와 나는 마음이 잘 맞아 인츰 친한 친구로 지내게 되였다. 그러다가 그녀가 부대에서 복무중인 둘째오빠를 나한테 소개해주면서 우리는 친구에서 올케와 시누이 사이로 되여 한가족이 되였다. 그 뒤 나 역시 큰시누이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주었는데 연분이 없었던 건지 두 사람은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하였고 얼마 뒤 큰시누이는 같은 생산대에 있는 농촌남자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남자는 지독한 술고래였다. 돈만 나지면 술을 사마셨고 심지어 집에 있는 식량까지 팔아가면서 술을 사먹을 정도로 알콜에 푹 절어있었다. 결국 술 때문에 간경화복수로 시름시름 앓던 큰시누이의 남편은 41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홀로 나게 되니 소학생, 중학생인 두 아들을 키우는 것이 오롯이 큰시누이의 몫이 되였다. 그 때로부터 큰시누이는 낮에는 논일과 밭일을 하고 새벽에는 두부를 앗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느라 억척스레 살았다.
 
1990년의 어느 가을날, 이른새벽에 일어난 큰시누이는 그 날 따라 몸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워나고 머리가 어질어질해나는데도 국경절 전날에 아침, 점심으로 거퍼 두번 두부를 앗아 팔다보니 몸에 무리가 갔던 모양이라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편히 쉴 수도 없는 처지인지라 아픈 몸을 끌고 이를 악물고 두부를 앗으려고 문지방을 넘어섰다.
 
가마에 콩물을 붓고 불을 지핀 다음 콩물이 가마에 눌어붙지 않도록 정신을 바싹 가다듬고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그러다가 주걱에 묻은 콩물에 손이 미끌면서 주걱을 놓쳐버렸는데 순간적으로 쏠리는 힘을 주체하지 못한 채 고단한 몸이 그만 펄펄 끓고 있는 콩물가마에 그대로 미끌어 들어가고 말았다. 입구가 한메터 반이나 되는 ‘한족가마’에 빠진 큰시누이는 사력을 다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으나 야속하다 할가 아무도 그 처절한 울부짖음을 듣지 못했다. 날도 밝지 않은 꼭두새벽이였던지라 아이들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고 이웃들도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살겠다는 본능 하나로 사력을 다해 익어서 살갗이 다 벗겨져버린 손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가마언저리를 짚으면서 곤두박질치며 겨우 가마 안을 빠져나온 큰시누이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날이 밝아와 잠에서 깨여난 아이들이 인사불성으로 쓰러져있는 엄마를 보고는 놀랄 새도 없이 대대위생소의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가 큰시누이의 속옷을 벗겼더니 익어서 물렁해진 살점들이 옷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게 실로 눈 뜨고 보기 힘든 장면이였다. 환부가 너무 큰 데다 환자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 현병원에서 인차 연변병원으로 이송했고 그 뒤로 큰시누이는 지방의 부대병원에 옮겨졌다.
 
밀페된 유리관 안에서 맨몸으로 장장 45일간 무균상태로 치료를 받고서야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만 다시 눈을 뜬 큰시누이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예쁘장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살갗이 마구 엉켜붙어있었고 사지 또한 마음대로 펴지도 굽히지도 못할 정도로 한데 쪼그라들어있었다. 매일 온전한 정신으로 흉측하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와닿아 큰시누이는 사람과 마주치기를 꺼려하면서 대문 밖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친척들은 명절이거나 크고 작은 가족모임에서 더 이상 큰시누이 얼굴을 보지 못했고 약속이라도 한듯 그녀를 부르는 일도 적어졌다. 따뜻한 위로와 관심이 큰시누이한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나름 대로의 판단에서였다. 상처를 입은 새처럼 몸을 잔뜩 옹송그리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큰시누이를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리 가족들도 마음이 괴롭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그녀가 가족모임에서 빠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상사로 되여버렸다.
 
이런 큰시누이가 나의 생일파티에 불쑥 나타났으니 나는 물론 객석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 흉터가 많이 나아져서 나타났나 싶어 찬찬히 훑어보아도 별로 달라진 데라곤 없었고 오히려 세월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붙은 초로의 모습이였다. 나는 반갑다는 인사마저 잊은 채 큰시누이를 부여잡고 어찌 된 일인가부터 두서없이 다그쳐물었다.
 
“왜서라니요? 그냥 올케가 보고 싶어서 온 거지요.” 
 
해맑은 얼굴로 슬쩍 롱담까지 건네는 큰시누이를 보면서 그제서야 내가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에 아차하면서 게면쩍게 웃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큰시누이의 방문이 못내 반갑고 고마운 한편 마음 한구석이 알짝지근해났다. 술주정뱅이 남편 때문에 새각시 시절부터 지지리도 속을 끓이더니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것도 모자라 끔찍한 변고까지 당한 뒤로는 아예 세상과 담을 두르고 다른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 만치 아프고 힘든 날들을 혼자 속으로 씹어삼키면서 보내온 가련한 큰시누이였다. 흉측하게 변해버린 겉모습 때문에 극심한 대인기피증에 모대기고 있다는 걸 알고 난 뒤로부터 늘 잊지는 못하면서도 떨어져 지켜보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나름 대로 믿고 바라보기만 했던 지난 시간들이 무거운 죄책감이 되여 사정없이 가슴을 허비였다. 생일파티가 끝나자 나는 큰시누이의 손을 꼭 잡고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동안 외롭게 버텨오면서 속으로 삼켰을 하많은 고충을 차근차근 들어주면서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위로받은 건 그녀가 아니라 나일 줄 누가 알았으랴.
 
담담하게 지난 이야기를 풀어가는 큰시누이의 얼굴에서는 불행의 흔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을뿐더러 놀랍게도 그녀의 자태에서 여유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불행한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였던지라 그녀가 이렇게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이였는지 무척 궁금해났다. 그래서 진작 품고 있던 의혹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혹시 남자라도 생긴 거 아니오? 너무 행복해보이오.”
 
큰시누이는 말없이 웃을 뿐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새 사람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하긴 고생만 하다가 늘그막에 기댈 수 있는 동반자가 나타난 거라면 이보다 더 큰 희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한편으론 은근슬쩍 걱정부터 앞섰다. ‘어떤 남자가 큰시누이같이 가진 거라곤 없는 데다 외모마저 볼품없이 이그러진 녀자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려고 할가? 괜히 상처만 주고 도망 갈 남자면 어쩔가?’라는 생각이 갈마들면서 마음이 착잡해났다.  
 
“요즘은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 여태껏 지금처럼 마음이 편안해본 적이 없었다니까.” 
 
나의 마음을 읽은듯 큰시누이가 그제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그렇지. 만나는 남자가 있구만. 어떤 사람이요?”
 
큰시누이의 말에 확신을 얻은 나는 조바심이 들어 다그쳐 물었다.
 
“있지, 그것도 한둘이 아니야…” 
 
뜬금없이 튀여나온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나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말뚱말뚱 큰시누이를 쳐다만 보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무척 재미 있었는지 큰시누이는 시물시물 웃기만 했다. 이윽고 웃음을 거둔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남자는 아니고 요즘 료양원에 봉사활동하러 다니고 있어. 거기서 운신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식사를 도와주고 옷을 빨고 목욕도 시켜주는데 글쎄 내가 하루만 가지 않아도 보고 싶다고 전화까지 와서 독촉한다니까. 내 이 못난 얼굴이 보구 싶다나. 믿기 힘들겠지만 내가 그렇게 이쁘대. 나를 보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고백’을 들을 때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겨나. 진정 아팠던 사람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읽을 수 있다는 리치를 깨쳤다고 할가. 지금은 내가 도움을 드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기분이야…
 
그제서야 엉켰던 실뭉치가 시원스레 풀리면서 기분이 약간씩 가벼워졌다. 지옥이나 다름없는 암담한 그늘을 벗어나 밝게 웃으면서 성큼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도록 그녀를 떠밀었던 비결을 알고 나니 새삼 만감이 교차하면서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긴 자신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될 때 다시 세상을 마주할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가 아닐가? 료양원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긴긴 시간을 잔뜩 움츠리고 살아왔던 큰시누이가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의미와 가치 그리고 즐거움까지 되찾았다는 말에 그동안 무겁던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
 
한오리의 불행, 참담이란 회색빛도 찾아볼 수 없으리만치 밝게 빛나는 큰시누이의 얼굴이 전처럼, 아니, 전보다 더 예쁘게 안겨온다. 그동안 가시덤불만 헤치며 아프고 힘든 길을 외롭게 걸어온 큰시누이가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속에서 더불어 자신의 아픔도 덜어가며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고 당당하고 밝은 삶을 살아가는 게 감격스러웠다.

《로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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