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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치는 사랑
2020년 12월 29일 09시 36분  조회:882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여울치는 사랑


송련분


아버님은 금광에 출근하고 어머님은 농사일을 하면서 시골에서 두 자식을 어엿하게 키우고 잘살아보겠노라 애면글면하던 시부모님은 아버님이 내부퇴직을 하자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시내로 들어가 양꼬치가게를 차리게 되였다. 자그마한 구멍가게였지만 어머님의 뛰여난 음식솜씨와 부지런하고 인품이 후더운 아버님의 외조로 가게는 날마다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몇년간 밤낮없이 바삐 돌아친 보람으로 시부모님은 드디여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거리에 번듯한 영업집을 장만하고 아들한테도 그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아빠트까지 남 보란듯이 장만해주었다.
일이 잘 풀리나 싶더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가게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치느라 몸을 혹사한 아버님은 우리 딸애가 돌이 갓 지난 1998년에 식도암이라는 무서운 진단을 받았다. 시부모님은 바로 가게문을 닫고 큰 병원을 찾아 상해로 들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되고 본인의 의지가 강한 데다 어머님의 살뜰한 보살핌 덕분으로 수술을 받고 얼마 뒤 아버님은 건강을 되찾게 되였다.
흥성하던 양꼬치가게를 접은 아쉬움이 늘 가슴 속에 앙금처럼 남아있었던지라 아버님의 건강이 회복되자 시부모님은 다시 일거리를 찾는다고 떨쳐나섰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잘살 수 있는 이 좋은 세월에 뺀 낫자루처럼 놀고만 있을 수는 없다면서 매일 날이 희붐히 밝아오면 시골에 내려가 캐온 들쑥이며 민들레뿌리 그리고 어머님이 손수 담근 된장이며 고추장, 간장을 밀차에 싣고 아침시장에 내다 팔았다. 아침시장이 파하면 시장에서 아침을 대강 때우고 어머님은 또 동시장의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개인 날, 궂은날이 따로 없이 따가운 해볕과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받아가며 물건을 팔았고 아버님도 오토바이에 액화가스통을 싣고 다니면서 푼돈벌이를 하셨다.
년세가 많아 오토바이운전이 위험하다고 우리가 한사코 말렸지만 누구도 아버지의 외고집을 꺽지 못했다.
가게를 꾸리면서 모아둔 저금은 병치료에 깡그리 밀어넣다 나니 얼마 안되는 아버님의 퇴직금과 매일 벌어들이는 푼돈이 전부의 수입이였다. 그럼에도 시부모님은 한푼이라도 남겨서 우리에게 보태주려고 왼심을 쓰셨다. 추운 한겨울에도 나의 생일이 돌아오면 아버님은 해마다 강추위를 무릅쓰고 오토바이를 몰고 나의 직장으로 찾아와 떨리는 손으로 허름한 옷호주머니에서 돈 200원이 들어있는 봉투를 전해주었다. 그렇게 두분이 애면글면 모아둔, 피땀이 슴배여있는 목돈을 차를 갖추는 데 보태라며 우리 앞에 내놓았을 때 우리 부부는 그 한량없는 사랑에 그만 목이 꽉 메였다.
2014년 5월의 어느 날이였다. 그 날은 우리 가족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힘든 날이였다. 출근길에 올랐는데 갑자기 교통경찰이 아버님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는데 사고현장에 와서 오토바이를 가져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당시 남편과 시누이는 한국에 로무송출로 나가있었던 터라 떨리는 마음을 애써 눅잦히며 한달음에 달려가 오토바이를 끌고 시병원으로 향했다. 엎어질듯이 병원으로 달려들어가니 아버님은 머리에 심한 타박상을 입고 피못이 되여 혼수상태로 병실에 누워계셨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님은 얼굴이 백지장이 되여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자나깨나 그리워하던 자식들의 그리운 얼굴도, 그렇게 예뻐하던 손녀가 대학에 붙는 모습도 보지 못한 채 74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영영 떠나버렸다.
아버님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우리 모든 가족은 비통에 잠겼다. 무서운 암도 이겨내고 젊은이들 못지 않게 액화가스통을 메고 층집 계단을 오르내릴 만치 박달나무처럼 단단했던 분이였으니 그 충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님은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면서도 아침시장에 나가는 일만은 접지 않았다. 그만두고 집에서 쉬면서 편안하게 로후를 즐기라고 했더니 시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 얘기라도 나누면 답답한 가슴이 트인다면서 고집을 꺽지 않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매일 시장에서 신선한 과일이며 채소를 사서 오토바이로 우리 집에 실어다 주는 일이 어머님의 몫이 되여버렸다. 퇴직금도 없고 얼마 안되는 보조금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어머님이 하도 안스러워 용돈이라도 좀 드리려고 하면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에 장사해서 버는 돈까지 하면 족하다면서 오히려 대학생 딸애의 뒤바라지를 하는 나를 걱정하면서 한푼이라도 더 얹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였다.
자식들한테 손 한번 내밀지 않고 남편을 잃은 큰 슬픔을 가슴 속에 꽁꽁 묻고 억세게 살아가던 어머님은 심한 뇌경색을 앓고 난 뒤 때론 집을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기억이 흐릿해지고 당뇨병, 고혈압까지 심해져 끝내는 장사일을 접게 되였다. 그 해 어머님은 70세였다. 요즘은 백세시대라며 너도나도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로년대학에 다니고 광장무용을 추며 즐겁고 편안하게 만년을 보내고 있는 여느 로인들과 달리 평생 일손을 놓은 적이 없고 취미생활이란 게 뭔지 모르고 살아온 어머님은 갑자기 하던 일이 없어지니 적적해서 어쩔 바를 몰라했다. 그 무렵 나도 매일 직장일로 팽이처럼 바삐 돌아치다 나니 자주 어머님을 찾아뵐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어머님을 아예 집에 모셔오려고 했지만 어머님은 아버님과 함께 생활하던 집이 편안하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한동안 우두커니 빈집을 지키던 어머님은 이러다가 병이라도 날 것 같다며 동네 로인들을 따라 차츰 홍보관이며 물리의기로 치료받는 곳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날로 기력이 쇠잔해지는 로인들이 자식들에게 부담을 안겨주지 않으려는 소박한 마음을 롱락하여 온갖 감언리설로 그들의 목숨 같은 돈을 빼내려는 목적으로 영업하는 시설들도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지라 시어머니가 뜬금없이 그런 곳으로 다닌다는 걸 알고 난 우리는 깜짝 놀라 발길을 끊으라고 잡아당겼다. 돈이 아까워서라기보다 괜히 심신에 해가 될가 봐 더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동안 어머님의 곁을 지켜드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또 심한 건망증 때문에 며칠 건너 한번 쓸 만큼씩 용돈을 드리니 상품을 마구 사들일 근심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말동무를 찾아서 재미 삼아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홍보관을 다니면서부터 어머님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보내면서 점차 활기를 되찾아갔다. 어느 날인가부터 집에는 비누며 휴지 같은 예전에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홍보관 같은 데서 하루 동안 강의를 들으면 주는 선물들이란다. 어머님은 내가 찾아뵐 때마다 모아두었던 비누와 빗 같은 생활용품을 건네주는가 하면 염소젖을 부어주면서 몸에 그렇게 좋다며 얼른 마시라고 했다.
한눈에도 어머님이 다니는 곳에서 타온 물건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지만 며느리에게 주려고 꽁꽁 싸두었다가 챙겨주는 그 사랑에 진한 감동을 받고 빗을 받아서 머리를 빗어보이며 확실히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다고 능청을 떨기도 하면서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닐지라도 매번 감사하게 받군 하였다. 그러면 어머님은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띄우군 했다.
시집 와서 20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싫은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고 하나뿐인 며느리라며 친자식처럼 아껴준 시부모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듬뿍 받아온 나, 당연한듯 그 남다른 사랑을 받기만 하고 변변하게 효도 한번 못한 며느리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어머님을 정성껏 보살펴드리며 다복한 만년을 보내드리게 하고 싶다.

《로년세계》2021년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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