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가신 길은...
외할머니가 가신 길은...
류정남
한마디로 외할머니는 밭에서, 들에서 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80세 고령에 이르러서도 외할머니는 5, 6리 떨어진 자류지 근처에 작은 괭이로 한뙈기, 두뙈기 밭을 일구어 감자를 심고 옥수수를 심어서는 가을이 되면 그것들을 등짐으로 집으로 거두어들이군 하였다. 온 집 식구가 그렇게 말리는데도 외할머니는 몰래 작은 호미를 등뒤에 감추어갖고는 대문밖으로 가만가만 빠져나가군 하였다. 후에 우리 집에서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산등성이를 도거리 맡았는데 할머니는 나무를 꺾고 풀뿌리를 뒤엎어 자그마한 뙈기밭을 일구었다. 그리고 가을에 몇 마대 되는 감자와 곡식들을 거두어들여 우리 집 식구들을 무척 놀래우기도 하였다.
밭에서 집으로 올 때면 언제나 마른 쑥단이나 나무가지단을 등짐으로 지고 돌아오는데 동네사람들이 그걸 보고 마을에 들어서면서 “네 할머니가 나무짐을 지고 집으로 오고 있더라.”라고 일러주면 나는 자전거를 타고 싫은 마중을 가야만 하였다.
밭일이 없는 계절이면 외할머니는 또 동네를 돌면서 골탄도 줏고 나무가지도 주어오고 푼돈이 될 만한 페품들은 다 주어다 집마당에 모아놓군 하였다. 우리 외손주들은 그러는 외할머니 때문에 동네가 창피해서 못살겠다고 그냥 징징거렸다. 그렇다고 몇십년 동안 고집스레 쌓아온 습성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가 없었다. 부지런해서였는지 그 때까지 외할머니는 고뿔 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였다. 이대로라면 외할머니는 100세까지는 쉽게 앉을 수 있을 거라고 동네사람들도 모두 입을 모았다.
평생을 사위집에 얹혀살아서 그랬던지 외할머니는 집식구들과 큰소리 한번 치지 않았고 음식타발 한마디 안했다. 주면 주는 대로, 입히면 입히는 대로 살아가는 데 굳어져버렸다. 다만 한가지에서만은 외할머니를 이기지도 돌려세우지도 못했는데 바로 밭에서든 울안에서든 일을 하는 할머니를 끌어들이는 일이였다.
그러던 외할머니가 86세 되던 해에 남들 모두가 동경하는 한국행을 하게 되였다. 서울 KBS 사회교육방송국을 통해 리별한 지 50년도 넘는 두 아들을 만나러 향항을 거쳐 비행기편으로 서울로 가게 되였던 것이다. 50여년전에 엄마를 유복자로 남겨놓고 박명한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몇해 뒤 한국에 있는 엄마의 삼촌이 중국에 찾아와서 조카 둘을 데려가게 되였는데 그들이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 그 때 큰외삼촌은 11살, 둘째외삼촌은 9살이였다. 11살밖에 안되는 나이에 엄마와 젖먹이 녀동생과 갈라지게 된 그 때의 그 리별이 얼마나 가슴 아프게 남았으면 5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눈물을 휘뿌리면서 생리별을 했던 그 곳—흑룡강 림구현소재지 동쪽으로 10여리 떨어진 작은 간이역의 이름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가? 그 역에서 ‘ㅅ’자 모양으로 갈라진 어느 수레길로 얼마간 올라가게 되면 오른쪽에 나무 몇그루가 서있고 그 아래에 아버지의 산소가 있는데 산소 앞에 이름을 적은 나무패쪽을 묻었다는 그림지도까지 그려서 보낸 게 아니겠는가? 생살점을 뜯기는 듯한 고통 속에서 두 자식을 그렇게 보내야만 했으니 일자무식이였던 외할머니였건만 그 때로부터 두 아들이 살고 있는 고장의 이름만은 가슴 속 깊은 곳에 꼭 새겨두고 있었다. “강원도 울진군 근남면 내살리…” 덕분에 세월이 많이 흘러간 뒤에도 방송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외삼촌 둘을 찾게 되였다. 외삼촌들이 기어이 엄마를 생전에 곁으로 모셔가겠다면서 비행기티켓까지 보내왔다.
온 동네가 축제 분위기였다. 동네 늙은이들은 우리 집 식구들을 만날 때마다 할머니가 이제 한국에 가게 되면 평생 상상도 못할 호강을 누릴 것이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이제 한국에 갔다 오면 단번에 벼락부자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대놓고 부러워하는 동네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 식구들의 기분은 그 때문에 많이 가라앉았다. 외할머니가 생전에 50여년 동안 갈라져있던 두 친아들을 만나게 된다니 어떻게라도 지지해줘야겠다만 외할머니를 그렇게 먼 곳으로 보내고 나면 우리 집 식구들과는 영원한 리별이 될 수도 있다는 예감에서였다. 하지만 엄마가 외할머니를 모시고 한국에 갔다 오면 우리 집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속구구가 없는 건 아니였다. 결국 우리 손주들까지 눈물을 휘뿌리면서 외할머니를 떠나보내게 되였다. 목단강역까지 배웅하면서 떠나기 전 기차에 함께 올라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도 모를 외할머니를 안고 울면서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도 한국에 가서 외할머니 볼 수 있다”고 뻔한 거짓말 같은 위로의 말만을 해주었을 뿐이였다. 우리들 눈에서는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데도 한국이란 곳이 얼마나 먼지 모르는 양 외할머니는 눈물도 말라버렸는지 멍한 표정뿐이였다.
이렇게 고령의 외할머니는 고역 같은 려행길을 시작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커다란 약가방 두개에다 운신이 불편한 외할머니를 부축해 가면서 엄마도 남은 인생의 기억에서 영영 잊혀지지 않을 고역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로서는 현대화 도시라 불리는 향항에 도착하여 엘레베터에서만 몇번이나 짐과 함께 뒹굴었는가 하면 고급호텔에 들어서는 날 밤엔 금방 숨이 넘어갈듯이 인사불성이 된 외할머니를 안고 소리내여 통곡을 하기까지 했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한국 인천에 도착하여 두 아들을 만나고 나서도 할머니는 그 뒤로 사흘 동안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외할머니를 두 외삼촌한테 모셔다 놓고 석달 만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과연 예견했던 대로 그것이 또 모녀간의 생리별이 되여버리고 말았다.
인천시교와 강원도 산골에서 살고 있는 두 외삼촌네도 가정생활이 썩 좋은 편은 아니였다. 뾰족하게 출세한 자식 하나 없었고 생활난으로 장가 못 간 벙어리아들까지 있다보니 외삼촌네도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런데도 생전에 마지막길을 편히 보내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고집을 세우면서 외할머니를 곁에 모셔간 외삼촌의 효성이 눈물겨웠다.
그렇게 갖은 애로 끝에 두 아들과 상봉을 하게 된 외할머니였지만 불행하게도 3년도 채 앉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화장실 변기에 앉을 줄도 몰라서 실수도 여러번 저질렀다. 그런데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니 일밭으로 가야 한다며 밖으로 나가겠다고 란리법석을 피웠다고 한다. 작은 골목 동네를 돌면서 종이곽도 줏고 남들이 버리는 페물도 집으로 끌어들여서는 모아두었다가 금란이네(큰외손녀)를 준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러는 외할머니를 지키는 게 외삼촌과 외숙모의 하루 일과로 돼버렸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매일 어디서 주어온 것인지도 모르는 작은 호미를 등뒤에 감추고서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일밭으로 찾아간다고 란리를 부렸는가 하면 한동네 앞마을에 살았던 금란이네 집으로 찾아간다고 길에 나섰다가는 집을 찾지 못해 온종일 밖에서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는 밭으로 간다고 나간 길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외할머니의 손에는 작은 호미가 들려있었고 품속 호주머니에는 우리 집 여덟 식구들이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한장이 들어있었다.
이처럼 외할머니가 가신 길은 천당길도 아니였고 50여년간 가슴 속에 깊이 남겨진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따뜻한 길도 아니였다. 한국행을 선택한 그 순간부터 주름지고 메마른 외할머니 가슴 속에는 아마도 새로운 아픈 상처를 빚어가는 오불꼬불한 오솔길이 뻗어나갔을지도 모른다. 만약 외할머니한테 그냥 호미 한자루를 쥐여주면서 매일 일밭으로 나가라고 하였더라면, 동네사람들 보기에 구차할망정 실컷 동네를 돌면서 골탄이나 페품을 줏고 쑥나무단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오게 하였더라면 외할머니는 긍정코 무병장수하게 100세를 넘겨 살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외할머니를 잘못 떠나보낸 것이였다. 그 길이 외할머니의 모든 고생과 뼈저린 지난 력사를 깡그리 지워줄, 채색꽃보라가 깔린 ‘천당’으로 향하는 길일 거라 착각한 게 우리의 잘못이였다.
지금도 내 꿈속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외할머니가 저 먼 언덕길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뒤모습이 나타나군 한다. 외할머니의 쭈글쭈글 주름진 손에는 날이 다스러진 작은 호미가 들려있었고 활등처럼 구부정한 등에는 코를 찌르는 쑥향기가 짙게 풍기는 나무단이 지워져있었다.
아, 외할머니가 가시는 길은 초라할망정 신근한 로동의 길이였다. 어쩌면 그게 할머니의 숙명이였을지도 모른다.
《로년세계》2021년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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