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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으로 배우는 인생
2021년 02월 04일 10시 17분  조회:658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춤으로 배우는 인생

김경희



정년퇴직하고 나서 매일 집에서 빈둥거리려니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하고 무료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심심풀이 삼아 집부근에 있는 춤교실에 다녀보고 싶었다.
등교한 첫날,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니 알록달록한 무용복을 차려입은 녀인들이 눈부시게 안겨왔다. 나는 쑥스러워 맨 뒤줄 구석켠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걷기를 기초로 하는 춤동작은 얼핏 보기엔 간단한 것 같아도 일일이 기억하려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게다가 일부러 뒤줄에 서다 나니 앞에 서있는 선생님의 동작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앞줄의 학원 한명을 정해놓고 그녀의 춤동작을 따라하기로 했다. 대렬이 바뀌면서 앞쪽으로 나갈 때마다 수십쌍의 눈이 혹시 나만 여겨보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였다. 바싹 긴장하니 손발이 맞지 않고 몸까지 휘청거리였다. 거울에 비낀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꼴불견이였다. 선생님이 다가와 어깨의 힘을 빼라고 일러주는데도 몸이 도무지 따라주지 않아 못내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을 따라 하늘하늘 률동을 타는 학원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고 슬쩍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누구든 그런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니 조급해하지 말라며 옆에 있던 학원들이 조언을 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위로가 되는듯 싶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오늘 춤교실에서 배웠던 춤동작을 한번 복습해보려고 거울에 마주섰다. 그런데 동작이 잘 떠오르지 않는 건 둘째 치고 억지로 떠오른 동작마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모든 일엔 다 순서가 있다는데 어찌 단술에 배 부르랴. 하루하루 나아지겠지.’
스스로 위안하며 몸을 천천히 움직여보았지만 여전히 그 상이 장상이였다. 이 때 친구 문화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때? 춤은 배울 만하던?”
“어이구, 말도 말아, 힘들어 죽겠어. 나만 못난 새끼오리 같은 게 얼마나 쑥스러웠다구.”
“괜찮아.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그래도 일년치를 끊었는데 어쩌겠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녔더니 반년 뒤부터 자세가 약간씩 잡히는 게 알리더라구. 그러니까 너도 꼭 잘해낼 수 있을 거야.”
밝고 씩씩하게 응원해주는 친구의 기운을 받으니 나의 목소리에도 조금 기운이 실렸다.
“그래. 이왕 발을 들여놓았으니 열심히 해야지.”
“남들과 비기느라 하지 말고 열심히 배워. 넌 워낙 춤을 좋아하니 잘할 수 있을 거야. 나한테 동영상이 몇개 있는데 보내줄 테니 눈으로라도 먼저 익혀두렴.”
잠시후, 문화가 조선춤 기본동작을 다룬 동영상을 보내왔다. 열어보니 춤사위가 우아하고 동작이 그다지 어려워보이지 않았다.
동영상을 거듭해서 보고 나서 큰 거울에 마주섰다. 그런데 첫 동작부터 제동이 걸릴 줄이야. 다시 동영상을 반복해서 연구하다가 될듯 싶어 해보았는데 이번에도 순리롭지 않았다. 슬슬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하긴 내 나이 쉰여섯이니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거기다 몸까지 뻣뻣하니 동작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한나절이 되도록 역사질을 하니 그래도 서툴게나마 흉내를 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였다. 노루꼬리 만한 진보더라도 퍼그나 위안이 되였다. 팔을 많이 움직여서였을가, 그러는 사이에 지긋지긋하던 경추의 통증마저 가뭇없이 사라지니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신심이 용솟음쳤다.
이튿날, 문화가 여벌로 둔 무용복이랑 줄 테니 만나자고 련락을 해왔다. 맛집에 도착하자 바람으로 문화는 가방에서 널직한 까만 바지와 자주색저고리, 하얀 무용신을 꺼내놓았는데 얼핏 보기에도 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나한테 좀 널직하니 너에게는 딱 맞을 거야. 무용복을 차려입으면 기분이 좋아져 춤을 더 잘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고마워. 잘 입을게.”
이튿날, 무용복을 입고 무용신까지 신으니 과연 기분부터 확 달라졌다. 그 날 더욱 신바람이 나서 춤동작을 따라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련습하였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이 맥주 한잔을 기울이고 나면 동작이 예뻐질 수도 있다며 롱담을 던지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배를 그러안고 웃었다.
나는 수업이 있는 날이면 하루도 거를세라 춤교실에 나갔다. 전날에 배운 동작을 반복해서 익히고 나서 새로운 동작을 배우는데 그 즈음이면 정력과 체력이 모두 슬슬 딸리였다. 몸이 심하게 힘든 날이면 집에 돌아와서도 춤동작이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 때마다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그럴 때면 뭐든 배우려면 게으름을 부리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일찍 등교하여 다른 학원들에게 가르침을 청하군 했다. 내가 깨칠 때까지 차근차근 가르치면서 잊지 않고 응원도 해주는 학원들이 곁에 있어 너무 고마웠다.
하루는 사정 때문에 춤교실에 나가지 못했는데 다음날에 이어진 춤동작들을 전혀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날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심드렁해져 대충 수업을 때웠다. 수업이 끝나자 춤을 가르쳐준 적 있는 선배가 나한테 다가와서 전날에 오지 않은 연유를 묻고 나서 춤을 제대로 배우려면 한동안은 춤을 일순위에 놓는 것이 좋다고 따끔하게 일깨워주었다.
선배의 조언을 새겨들은 나는 그 뒤로 하루도 빠질세라 꼬박꼬박 춤교실에 나갔다. 한달 가량 지나자 선생님의 동작을 무턱대고 따라하던 데로부터 자신의 춤자세를 살펴보면서 조금씩 조률을 할 수 있을 만큼 수준이 부쩍 늘었다. 물론 몸 따로 마음 따로여서 애간장이 타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호흡, 손발의 놀림, 춤사위에 골고루 신경을 쓰며 열심히 춤을 배워나갔다. 논 자취는 없어도 공부한 공은 남는다고 어느덧 춤동작 몇개를 제법 멋지게 다룰 수 있게 되자 서서히 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였다.
어느 날, 시조카에게 요즘 춤교실에 다닌다고 자랑했더니 한복을 가져다줄 테니 무용복으로 고쳐입으라면서 진달래색 한복 한벌을 가져왔다. 시조카의 배려가 참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였다. 나는 이튿날로 문화와 함께 서시장에 찾아가 그 한복에 어울리는 곤색과 보라색 저고리감을 하나씩 끊어 복장집에 맡기였다. 빨리 입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틀후면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고맙게도 급한 것 같으니 먼저 해주겠다며 시원하게 대답해주었다. 기분이 붕 뜬 나는 시장을 돌다가 빨간 바탕에 자잘한 눈꽃 무늬가 돋친 저고리감까지 한벌 더 사서 복장점에 맡기였다.
“넌 역시 춤을 좋아하는 게 맞구나. 난 춤교실에 다닌 지 반년이 되여서야 겨우 무용복을 한벌 갖추었는데. 넌 틀림없이 잘 배워낼 수 있을 거야.”
문화가 꿀물이 뚝뚝 떨어지는 달콤한 말로 응원을 보냈다. 추운 날씨에도 함께 시장을 돌면서 저고리감을 추천해주고 자기가 단골로 다니는 복장점을 소개해준 고마운 친구의 끈끈한 우정에 나는 마음이 더없이 따뜻해났다.
이틀후, 복장점에서 무용복을 찾아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무용신에 받쳐신을 하얀 양말도 샀다. 예쁜 무용복을 차려입고 춤을 출 모습을 머리속에 떠올리면서 나는 무용복을 차려입고 사진을 찍어 가족 워이신 그룹에 올렸다. 어느새 둘째올케가 그걸 보고 이쁘다며 새것이나 다름없는 고급스러운 곤색치마가 있으니 가져다가 무용복으로 고쳐입으라고 하는 것이였다.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일이였다.
다음날, 진달래색 치마에 보라색저고리를 받쳐입고 춤교실에 들어서니 학원들은 예쁘다면서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큰 거울에 비춰보니 확실히 나한테 잘 어울리는 차림새였다.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면서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피여올랐다. 수업을 앞두고 우리는 예전에 배운 내용을 한번 복습했는데 옷이 예뻐서 그랬던지 춤동작도 여느때보다 더 우아하고 예뻐보였다.
춤교실에서 배우는 춤동작은 날이 갈수록 배우기가 힘들어졌다. 다리를 들고 솟구치는 동작을 할 때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쳤다. 선생님이 다가와 틀린 동작을 짚어주며 몇번이고 교정해주는데도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자 또 수십쌍의 눈길이 나에게 쏠리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오늘의 부끄러움을 참고 견뎌야 배울 수 있다. 이제 몇년만 지나면 이 순간을 떠올리며 얼굴에 미소를 지을 날이 기필코 올 거야.’ 나는 슬며시 어금이를 깨물었다. 천부가 없으니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고 마음을 추슬렀다.
요즘 들어 춤이 나의 하루일과로 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는 춤에 흠뻑 빠져있다. 학원들도 처음보다 몰라보게 나아졌다며 볼 때마다 고무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참으로 친절하고 따뜻한 분들이다. 내가 힘들어하고 흔들릴 때마다 해주었던 그들의 고무와 격려는 나에게 보약이 되고 지팡이가 되여주었다. 집에 돌아와 춤동작을 익히다가 어려운 동작을 어렵사리 해낼 때면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작은 성적에도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나의 행복비결이라고 할가.
두달을 넘어서자 나는 동영상을 보면서 〈노들강변〉 춤을 익혀냈고 몇가지 조선춤 기본동작도 소화해냈다. 이제 남은 몇가지 동작도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익혀나갈 것이다. 잠시는 고통이 동반되더라도 배움은 역시 즐거운 일임이 틀림없다. 나는 책을 보고 글을 쓰다가도 목덜미가 뻣뻣해나면 춤을 추군 한다. 반시간 가량 거울에 마주서서 춤 추는 그 시간 만큼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할가. 가끔씩 “돈도 나오지 않는 춤을 배워서 뭐하냐? 그 시간이면 차라리 돈이나 벌겠다.”라며 권하는 친구들도 있다만 춤이 너무 좋다. 춤을 배우게 되면서 스스로 몸단장에 신경을 쓰게 되였고 성취감과 함께 즐거움을 만긱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아직은 많이 서툴고 가끔씩 힘들 때도 있지만 흥겨운 가락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전에는 쩍하면 침대에 몸을 맡기던 내가 이제는 수업이 없는 날이면 집에서 무용복을 입고 한시간 가량 춤련습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행복의 엔돌핀이 용솟음쳐나오는 느낌이다. 매일 즐겁게 보내니 몸이 건강해지고 따라서 얼굴에도 생기가 넘쳐흐른다.
지난 30여년간 쭉 가정과 직장에만 충실해왔지만 요즘 들어 자신에게 속하는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도 역시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새삼 깨우치게 되였다. 춤교실은 우리 녀성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둘도 없는 아지트이다. 춤교실에 드나들면서 우리 부부 사이도 더욱 애틋해졌는가 하면 집안분위기도 한결 밝아지고 화기애애해졌다. 춤이라는 삶의 활력소가 나와 가족에게 행복의 깊이를 더해준 것이다.
생에 주어진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가? 남은 생에는 내가 원하는 걸 하나씩 찾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익히려고 한다. 오늘은 춤교실에, 후날에는 노래교실, 랑송교실에 다니면서 더 늙기 전에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고 싶다.
오늘도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춤교실로 가는 길에 올랐다. 마음은 진작 춤교실에 날아가있다. 방불히 귀전에서는 흥겨운 가락이 울리고 눈앞에서는 우아한 춤사위가 어른거리는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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