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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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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흘러가 버린 꽃구름
2012년 03월 04일 09시 58분  조회:2870  추천:0  작성자: 림금산
 흘러가버린 꽃구름(1)

 
                                             림금산
 
그때는 초원을 달리는 들말을 보고 내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푸른 하늘에 동동 뜨는 햇솜같은 꽃구름은 나의 꿈이고 재잘거리며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를 날으는 새떼를 나의 노래로, 휘늘어진 록음방초 그 진한 숲을 나의 가슴으로 생각했다.
  허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열두살 아이의 아버지이고 40고개를 바라보는 녀인의 남편이고 보니 꿈은 회색을 띠기 시작했고 모든것이 정식이다. 그 무슨 환상이나 타산은 다 거짓말로 보인다.
  말꼭지를 떼면 절반은 거짓말이고 절반말은 애둘러맞추는 말이니 진실한 향기는 오간데 없어졌다.
  눈을 뜨면 눈길 절반은 주위환경과 주위 인간들의 눈길을 살피는데 랑비하고 절반은 웃음, 눈짓, 음험한 빛, 간사한 빛을 보내는데 쓴다. 후더웁고 믿음과 뜨거움을 철철 흘리는 눈빛은 오간데 없어졌다.
걸음을 떼면 시내를 찾아가거나 산이나 모래불을 찾아가는게 아니라 상점이나 권력자들의 집이나 노래방이나 양고기뀀점에 찾아간다.
친구를 친해도 자기한테 리득이 있는가부터 생각하고 필요없는 친구는 멀리한다.
녀자를 만나도 잘생긴 녀자를 만나고 밉게 생긴 녀자는 멀리한다.
시를 쓰면 시를 만들어내고 글을 쓰면 글을 지어낸다.
매일 성스런 일은 한가지도 못해내면서 시간이 모자라 맴을 돈다. 몸은 보기 싫을 정도로 피둥피둥 살이 찌고 머리속에선 온 하루 비루한 생각만 돋쳐낸다.
그 별밭에 수없이 쏘아올린 내 학창시절의 꿈은 지금쯤 가버렸는지 아득하다. 교정의 라일락꽃나무옆에서 친한 녀학생과 함께 속삭이던 그 비밀은 지금쯤 어느 하늘밑에 말라버렸는지 아리숭하다.
처음으로 푸른 바다 그 넓은 가슴을 안았을때 랑만의 갈매기를 따라 훨훨 바다섬으로 날아가던 그 퍼덕임은 지금쯤 어느 물보라에 휘말려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그애의 까아만 눈동자에 호올랑 빠져 진실과 량심과 신비를 헤적이던 그 숨결은 나의 페부에서 주소까지 없어졌다.
정은 말라버리고 피는 식어간다. 정신을 가다듬지 않고는 이 불타는 가을앞에 나설수가 없게 되였다. 그래서 가슴을 두드리며 밤잠을 설친다.
이젠 흘러가버린 꽃구름이지만 해는 졌다가도 다시 동녘에 솟아오르는것처럼 나의 꽃구름도 지금 저쪽에서 가득 떠오고있다. 사춘기의 미묘한 꿈도 끔찍히 아름답지만 땅을 꺼지우고 바위를 쪼개는 오춘기의 사랑은 이 불타는 가을과 함께 내 마음에 더욱 세찰것이다.
 
 
 
흘러가버린 꽃구름(2)
            
  학창시절은 사람의 일생에서 제일 소중하고 아껴 사랑해야 할 절호의 시절이다.
  언젠가 안해의 심부름을 하느라고 아침에 상점에 달려가 간장을 사오다가 나는 그만 놀랐다.
그렇게도 미츨하고 싱싱하게 생긴 대여섯명의 녀학생들이 치렁치렁 물결치는 머리를 휘날리며 서로서로 웃고 떠들면서 학교로 가고있지 않겠는가! 그 청춘의 물결속에 나도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건 될수도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너무도 부러워 한참이나 멍하니 서서 그애들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저도 몰래 피씩 허구픈 웃음을 웃어버렸다.
 게다짝을 마음대로 끄슨 나의 엉망이된 모습과 해빛을 튕기며 그냥 흘러가는 그애들의 맑진 얼굴, 참으로 선명한 대조였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던가 생각하니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애들이 랄랄라 노래부르며 좋다고 야단일때 나는 가스통을 메야 했고 그애들이 들놀이를 떠날때 나는 늙으신 아버님의 병시중을 들어야 했다.
 나는 아들애의 숙제를 검사해야 했고 밤중에 일어나 난데없는 전화를 받아야 하고 멀리 해변도시에 돈벌이간 옛친구한테 회답편지를 써야 했다.
 집을 방금 옮겨서 전화를 다시 놓아야 하고 쩍하면 있게 되는 중학생동창회, 대학동창회에 참가해야 했다.
 시시껄렁한 재미없는 일이 련달아 찾아오는 이 세상에서 하루만이라도 사라져버렸으면 속이 편할것같다. 하루만이라도 학창시절로 돌아가보고싶은, 소설도 맘껏 읽고 외우고 싶은 영어단어도 맘껏 외우고 탁구도 치고 수영도 하고 사랑도 하고싶다. 그리고 해박하고 열정이 끌어넘치는 몇몇 딱친구들과 함께 도시락 싸들고 멀리 단풍구경이라도 가고싶다.
 한번쯤은 누구네 집에 모여서 남녀학생들10여명이 짝을 무어 무도회 비슷한 무슨 파티같은것도 굉장회 치러보고싶다. 그리고 아빠엄마를 졸라 돈 몇천원씩 얼려내여 우리 몇몇은 또 중국의5악중의 하나인 태산이나 황산같은 산에 한번 올라보고싶다…
 학창시절은 실로 천금주고도 못사는 황금시절이다. 다신 돌아올수없는 그 빛나는 시절을 다시 아무리 설계해봤자 헛수고일뿐이다.
 지금 한창 학창에 몸담구고있는 애들은 얼마나 좋을가? 생각만 해도 막 부러웁다. 우리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옥수수밥을 먹으며 십여리길을 걸어다녔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에 올라가 땔나무를 해야 했고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먼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마시고 너무 배가 고파서 감자밭에 가서 생감자를 파내 씹어먹었다. 그래도 얼마나 눈물나게 재미있던지.
 학창시절은 지금의 학창시절이 진짜 제격이다. 새하얀 이밥을 먹으며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택시를 타고 호주머니엔 또 얼마간 용돈도 있고…
 아무리 부러워도 내겐 하등 관계없는 지나가버린 꿈이다. 새록새록 밝아오는 새날만이 나한테 새 꿈과 새 마음과 새 이야기를 엮어달라고 속삭일뿐이다. 그래 그렇지. 오늘 하루를 난 좀 재미있게 뜻있게 살아보겠다. 오늘이 지나가면 또 나와는 관계없는 추억이 되기때문에 나는 오늘은 꼭 열두가지 일을 해놓겠다. 그리고 저녁엔 중학생들처럼 고운 일기도 척 써놓겠다.
 나의 학창시절은 흘러갔다지만 어쩐지 오늘 아침부터 시작되는가 싶다.
 
 
 
 
 흘러가버린 꽃구름(3)
                
     
오늘도 학창시절의 노오란 꿈이 새록새록 내 마음에 꽃씨를 뿌린다. 아마도 소리날 정도로 익은 가을이 추억을 에워오기엔 둘도 없는 계절인가본다.
그때 나는 짝사랑의 왕자였다. 봉숙이라고 하는 눈이 특별히 크고 까아만 소녀가 나의 눈에 들었다. 공부는 나보다 좀 못하는 그였지만 그 유난히 반짝이는 크고 고운 눈동자는 가을날 샘물같이 시원하고 맑았다.
이팔청춘 나이에 몸이나 머리카락이나 눈동자속에 숨어있는 불씨까지 다 한창때여서 우리 사내들은 그녀가 옆에 다가와도 불이 확 일것같은 황홀감에 모대기였다.
<<야, 그 봉숙일 봤지, 방금 혼자 집에 가더라.>>
이때라, 나는 고개넘어에서 학교에 다니는 봉숙이의 뒤를 밝았다.
어슬어슬 땅거미지기 시작하는 황혼의 고향마을은 한창 무르녹는 가을이였다. 시내물도 너무나 맑아 물밑의 자갈까지 다 들여다보이고 가끔 노란 단풍잎도 떠서 흐른다.
얼마 가지 않으니 앞에 하학하고 돌아가는 봉숙이의 동실한 뒤잔등이 보인다. 뭐라고 말을 걸가?
<<어마나 깜짝이야!>>
갑자기 뒤를 돌아보던 봉숙이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사위는 고요하고 누구도 없었다.
<<널 좀 바래다주려고 뒤를 밟았다. 저 고개마루까지 가서 네가 내려가는걸 보구 인차 돌아설게…>>
봉숙이도 무척 반가와하는 기색이였다. 우리는 누구도 수집음을 타면서 애꿏게 가슴만 동동거렸지 말한마디 하지 못하였다.
무엇이라고 말을 뗏으면 좋을지 부끄럽고 무서웠다. 마치도 고운 유리그릇을 받쳐들고 있으면서 떨어지면 깨여질가 황황해하는 기분이였다. 소홀히 지껄였다 다시 그와 단둘이서 이 산향길을 걸을수 있는 자격을 잃을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나의 일생에서 이성과 함께 그 어떤 미묘한 감정에 두근거리며 걸어본 일은 그때가 제일 인상적이고 제일 감회깊은 것이였을 것이다.
그후 나는 나의 인내와 지혜로 여러번 그애와 함께 길을 걸어볼수 있는 기회를 얻어내였다.
지금도 우리의 끓는 마음이 토옥-떨어져있는 그 고향길에 찾아가 보면 그곳 어디에나 소녀시절 봉숙이의 숨결과 눈빛이 알뜰하게 묻어있다. 가끔 시를 쓰다도 봉숙이의 눈동자는 자연스레 나의 시줄에 찰랑이며 흘러들어 나의 시를 살찌게 해주고 싱싱하게 다듬어준다…
후에 그앤 해군으로 있다가 제대되여온 미끈한 도시 남자한테 시집을 가고 나는 대학으로 날아가 문학창작의 대문을 두드리였다.
요즘엔 그와 가끔 전화도 통하는데 그앤 이미 열한살 아이의 어머니로 되였다.
아, 세월은 빠르기도 하다. 벌써 또 나는 새 가을을 맞았다. 나의 일생에서 맞는 서른 아홉번째 가을, 이 가을에 봉숙이도 그냥 무사하기를 빌면서 내 마음에 사랑이란 두 글자를 심어준 그한테 감사를 드린다
 
 
흘러가버린 꽃구름(4)
 
 
요즘 기말시험이 추위와 함께 들이닥치니 얼굴이 파리해지는 학생들이 가끔 보인다.
시험을 잘 치지 못하면 수고하시면서 뒤바라지를 해주시는 부모님한테 미안해 그렇겠지.
하지만 난 어쩐지 요즘 애들이 불쌍해보이고 가련해보인다. 공부가 별로 축이 안나고 아침부터 밤중까지 진땀을 빼는게 안타깝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때는 자유의 세상이였다. 나는 더구나 자유의 세상이여서 훨훨 날아다녔다. 공부도 매우 자유롭게 해냈는데 체육이나 놀음이나 지어<<권투>>련습 같은것도 자유자재로 했었다.
    안개가 자오록한 고향의 강변은 새각시가 하아얀 면사포로 아기를 덮어준듯 포근하고 싱싱했다. 그러면 나는 옆구리에 교과서나 소설이나 하여튼 필요한 책을 끼고는 강변에 나가 책에 정신을 던진다. 그러면 거의 반나래는 책에 매혹되여 배고픈줄도 모를 때가 많았다. 한번은 일요일날에 묘포장안이 아늑하고 폭신하다고  그 안에 들어가 책을 본것이 묘목도적으로 몰린 일까지 있었다. 또 한번은 숲속에서 책에 정신을 팔다가 소낙비가 내리자 냅따뛰여 철다리밑에 가서 두시간이나 비를 끊은 일도 있었다…
     나는 또 밤12시까지 책보기가 일쑤였는데 때론 밤참을 덮혀먹느라 아버지 어머니를 다 깨워놓은 일까지 많았다. 고즈넉한 저녁,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한데 나는 책속에 파묻혀 훨 훨 지식의 나라로 헤염친다… 어머니께서 나의 방에 그냥 불이 켜져있는걸 보고 잠내나는 사설을 던진다.. “둘째야, 이젠 그만하고 자거라…” 나는 나직이 “네”하고 대답하고는 그냥 책속에 빠진다…
방학이면 신체단련을 하느라고 쩍하면 20여리나 장거리달리기를 했댔는데 반년후엔 그것도 성차지 않아 축구공을 구을리며20리씩 달리군 했다. 거리가 너무 멀어 때론 친구집에서 밥을 빌어먹고 돌아올 때도 있었고 때론 너무 더워 20리밖의 강물에 몸을 잠구고 저녁때까지 미역감은 일도 수십번이다.
  등산은 자별난 애호였는데 많이는 혼자서 나무막대기를 휘두르며 산행했다. 집에서 떠날때 고향의 주위를 휙 둘러보고 먼저 목적지를 정한다. 아무리 높은 산도 내앞에선 머리를 숙여야만 한다. 온 하루 산을 헤메고 나면 한몸은 더없이 거뿐하고 정신은 한결 맑아진다.
  나물철이면 자연은 무더기로 나물을 선물하는데 우리 집엔 남자애들밖에 없어서 나는 나물 뜯는데 선수였다. 지금도20여가지의 나물을 알고있다. 냉이캐러 다닌 일, 도라지파러 다닌 일, 나무하러 다닌 일 실로 농민들이 해본일은 거의다 해봤다.
 나의 학창시절이 이러해서 그런지 나는 자유롭게 사는 인생을 권고하고 싶다. 학창시절은 더구나 자유의 왕자여야 한다고 본다. 사회에 나오면 하는 일이 많고 또 복잡하지만 학창은 한창 날개를 키우고 꿈을 키우고 자유로운 맘을 키울 때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넥타이를 꽁꽁 매는 사람보다 웃옷 단추를 한개쯤 채우지 않는 청년을 더 좋아한다. 양복을 쭉 빼입은 젊은이보다 홀태바지를 입은 청춘을 더 부러워하고 부드런 바람에 칠칠한 머리를 기발처럼 휘날리는 녀자애들을 더욱 부러워한다.
 학창은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것이지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의 것이 아니다. 학창은 꿈동산이고 웃음동산이지 감옥이 아니다. 자기의 학창을 활발하고 유쾌하고 뜻깊고 매력있게 가꾸자면 남의 눈치만 볼것이 아니라 학창의 주인인 우리 자신이 자유의 기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좀 더 떳떳하게 좀 더 자연스럽게 좀 더 생기있게 허리를 쭉- 펴고 살아보자!    
 
                                                                                                                                                                                      1999년
(중학생신문에 련재되였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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