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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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성장소설《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경우(우상렬)
2016년 07월 22일 10시 37분  조회:3650  추천:0  작성자: 우상렬
 
평 론
 
성장소설《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경우
 
우상렬
 
 
인생은 고비고비 고개길인줄 안다. 이 고비가운데서 사춘기는 하나의 진고개라고 해야 하겠다. 이 진고개를 잘못 넘어 인생을 망치는 비극도 종종 벌어진다. 그러나 이 진고개를 잘 넘기면 인간은 훌쩍 커버리고 성숙된다. 사춘기의 야누스적인 존재는 문학의 프로포즈를 받기에 족하다. 이로부터 18세기 유럽에서는 독일작가 괴테의 “소년 웨르트의 번민”으로부터 시작하여 일련의 사춘기 남녀들을 다룬 소설들이 창작되였는데 이를 아울러 “교양소설” 혹은 “성장소설”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중국의 경우를 놓고볼 때 전통적으로 유교적로인문화의 지배때문에 소년 소녀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그러다가 1919년 “5.4운동”과 더불어 본격적인 현대사회에 들어서게 되면서 엽성도, 빙심 등 문학대가들에 의해 어린이들이 문학적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새 중국이 성립된후 어린이들이 혁명사업의 후계자라는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그들을 반영한 많은 문학작품들이 산생되였다. 《반짝이는 붉은 별》, 《붉은 아이들》, 《어린 병사 장알》 등 작품은 그 보기가 되겠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치사상적인 리념적색채만 추구하다보니 성장소설 본연의 모습과는 좀 다르게 표현되였다. 이것은 어쩌면 당시 정치 제일의 시대적콘테스트하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정통적인 성장소설의 중국에서의 독특한 변종이라고 볼수 있겠다. 
개혁개방은 정치적정서를 약화시키면서 문학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하였다. 이로부터 중국의 새로운 시기 문학에서도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성장소설이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중국주류문단에서 왕삭의《동물의 사나움》, 조선족문단에서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 허련순의 《뻐꾸기는 울어도》 등은 그 보기가 되겠다. 
본고는 왕삭의《동물의 사나움》과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비교고찰을 통하여 한족과 조선족 성장소설의 전형적인양상을 살펴보고저 한다. 
 
 
1)본격적인 비교론의
 
 
《동물의 사나움》과《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모두 “문화대혁명”을 시공간으로 하고있다. 왕삭은 1958년에 출생했고 김혁은 1965년도에 출생했다. 이로부터 체험의 차원에서 그들은 “문화대혁명”세대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공간배경을 보면《동물의 사나움》은 작가가 자란 북경을,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작가가 나서 자란 룡정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동물의 사나움》이 북경의 지역성을 많이 나타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민족성을 많이 나타냈다고 볼수 있다. 례컨대 《동물의 사나움》이 “70년대 중기, 자동차와 고급호텔, 상점 등이 그리 많지 않고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북경을 배경”으로 하고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는 “프롤로그”에 나오는 룡드레우물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해란강지명에 관한 유래 및 “지금으로부터 백년전 우리 고장은 천만년 묵은 진펄에 갈대숲이 우거진 이름 없는 고장이였는데 어느해인가 전주 리씨성을 가진 사람 하나가 처자를 데리고 들어와 집을 잡게 되여 처음으로 인가가 생겼다.”는데서 보여지는 민족의식이나 이주민의식을 나타내고있다. 
《동물의 사나움》과《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왕삭과 김혁의 체험의 문학으로 볼수 있다. 왕삭이 실제로 중학교때 이미 “투스타(두번의 감옥행)”를 했었다면 김혁도 실제로 갓난아기때 버려진 경력 및 야성적인 패싸움경력 등을 갖고있는데 이런 느낌과 경력은 이들이 작품을 창작하는데 좋은 바탕이 되였을것이다. 사실 김혁은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프롤로그에 관한 창작경위에 대해 “저에게 제일 큰 충격을 가져다준것”을 운운하면서 그 체험의 문학을 증명하고있다. 그러나 그들의 체험의 문학적형성화는 지극히 다르다. 
 
 
(1)홀가분함과 무거움
 
《동물의 사나움》과《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일인칭 회억형식을 취하여 주인공들의 사춘기이야기를 꺼내고있다. 일인칭 주인공들로는 15살의 왕소군과 13살의 김찬혁. 물론 이 일인칭은 내포적작가로서의 작가의 그림자가 짙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꺼내는 출발점은 서로 사뭇 다르다. 
《동물의 사나움》이 “이 도시의 모든것은 신속하게 변화하고있었다. 집이나 거리 외에도 사람들의 복식이나 화제까지도 변화하고있었다. 오늘에 와서 이것들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였는데 류행어로 한다면 모던한 도시로 변한것이다. 유적도 남지 않았다. 모든것이 철저하게 박탈당했다.”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노스탤지어적인 시각이였다면《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일종 “그때 왜 그랬지?” 하는 반성적인 시각이였다. 이로부터 두 작품은 “문학대혁명”에 대해서도 상당히 다른 시각을 나타내고있다. 이를테면《동물의 사나움》에서 “문화대혁명”이 어른들의 광란이였다면 어린 자기네들한테는 더없이 자유롭고 즐거웠던 시기였다는것이다. 자기네들은 “배워도 쓸모 없고 잊어버릴 그러한 지식들”을 배우지 않아도 되였지만 오늘의 애들은 무거운 책보에 눌려 쓸데없는것을 배우며 입시때문에 숨돌릴 새도 없는데 그 모습이 불쌍해난다는데서 이 점이 더 잘 드러난다. 그들은 당시 “어디로 가는 청춘남녀들이 똑같은 군복을 입고있었다. 군복은 류행과 신분을 보여주고있었던것이다.” 라는 시대적분위기하에서 잘 나가는 선택받은 군관자제들로서 그럭저럭 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군대에 들어갈수 있는 자신의 앞날에 만족하며 현실을 즐기고 놀자는 쪽으로 많이 흘렀다. 《동물의 사나움》의 영화제목이 “해빛찬란한 나날”들로 된것이 그 사정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문화대혁명”을 어른들뿐만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음영을 드리워준 악몽으로 받아들인다. 이 글에서는 김찬혁을 비롯한 상철형님, 짜그배누나, 똥파리 등 인물들이 사회독버섯으로 변한데는 그들 나름대로의 피해갈수 없는 객관적원인이 있다고 쓰고있다. 어릴 때 숭배해마지 않던 경찰아버지가 정치풍파때문에 “5.7간부학교”로 쫓겨가고 결국 목숨을 잃은 김찬혁, 젊음의 전도를 가로막는 봉건적혈통론의 피해자로서 아버지와 “계선을 똑똑히 갈라야 하는” 상철형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오히려 죄가 된 그래서 결국 그 희생양이 된 짜그배누나… 이들은 “그 사회에서 그래야 살아남는다는것”을 알게 된다. 하여 “상철형님 같이 성정미 좋고 열심히 사는 사람도 건달틈에 끼이게 되는것”이다. 
보다싶이 결손가정의 사회적비극이 이들 순진무구한 애들의 마음을 뒤틀리게 했던것이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이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있다. 례컨대 문예콩쿠르준비를 할 때 김찬혁은 고리끼의 “해연의 노래”를 외우려 하지만 결국은 이붓아버지의 강권으로 마야꼽스끼의 시 “당과 레닌”을 외우게 된다. 김찬혁은 처음에 연극 “농부와 뱀”에서 농부역를 맡았댔지만 체육과대표의 아버지가 혁명위윈회 주임이여서 결국은 그 역을 체육위원에게 넘기고 자기는 뱀역을 한다. 한 학급의 “앵무새”는 공부를 잘하지 못하지만 모주석어록을 잘 외워서 최우수상을 받는다. 그래서 김찬혁은 “앵무새”를 미워하게 된다. 사실 어린 “앵무새”가 “벙어리 엄마를 위해 리해도 가지 않는, 한자라도 틀릴가봐 걱정되는 모주석어록을 힘들게 외우’는 장면은 하나의 시대적비극이라고 볼수 있는것이다. 무관심과 무방비 상태에 놓인 아이들은 변태로까지 나갈수 있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사사로이 떠돌아다니는 《만나의 회억록》을 읽고서 “내”가 모든 아름다운 감정에 멸시와 증오의 감정이 생겼다고 한것은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기도 한다. 눈을 슴벅거리며 손가락을 빠는 김표는 영낙없는 애이다. 그런 그가 변소틈새로 녀자의 치부를 훔쳐보다가 나중에는 속옷을 훔치는데로 나간다. 볼품 없는 속옷은 물론, 생리대까지 훔치고 다닌다. 여러번 걸려 혼쭐이 나도록 두드려 맞고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하지만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심지어 콘돔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도 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김표의 이런 형상을 통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또 직접 어른들의 세계를 통하여 맹렬한 현실비판을 가하고있다. 
례컨대 회충 할아버지가 모택동초상을 그리다 점의 위치를 잘못 그린 일로 문화관에서 쫓겨난다든가, “현성(마을)의 화가들은 모두 우경기회주의분자로 지목되여 그림 그릴 사람이 없었다”든가, 결국 회충 할아버지가 그리게 되였는데 도료가 엎질러지면서 모택동초상화의 얼굴을 덮어버리게 되였고 그 일이 커지게 되자 투쟁 받으면서 고생하기보다는 자살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것 같아 자살하게 되였다는 사건은 당시의 “좌”적경향 및 개인우상숭배의 엄중성을 잘 보여주고있다. 
 
“귀신의 집”에 사는 “마스크귀신”의 정체규명을 통해서는 “문화대혁명”시기 연변의 류혈사건을 폭로하고있다. 그리고 회충의 음식에 대한 집착을 그린 대목에서는 “공급이 어려운 시대다. 음식을 비롯한 모든 물건은 표에 따라 공급했다. 회충네는 남자 형제가 다섯이였는데 외할아버지까지 계셨다. 회충- 길룡이는 막내다. 음식에 대한 그의 탐닉은 이러한 사정에서 기인한다. 녀석의 혀바닥에는 늘 설태가 끼여있었다.”, “장례날 회충이 보이지 않아 식구들이 법석이는데 회충은 헛간에서 장례에 쓸 음식을 훔쳐먹다가 발각된다. 화가 난 형들은 회충을 때리며 회충이 주머니속에 감춘 음식을 꺼내 그의 입에 강제로 밀어넣는다.” 이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수 없는 절대적으로 빈곤한 당시의 시대상을 폭로하고있다. 이로부터 작가의 말을 빌리면 “어른들의 세계가 빚어낸 공포가 그렇게 우리를 강요하고있다. 우리는 공포를 스스로 접수해서는 꿈에까지 안고갔다가 비명을 지르며 해탈의 쾌감을 맛보군 했다. 우리는 자주 공포와 만났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의 해탈방식을 찾군 했다.”(《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에필로그에서. 이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인용은 모두 에필로그에서) 
여기서 보다싶이《동물의 사나움》에서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들에게 별로 큰 영향을 주지 않고있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우리”에게 의식적인 측면뿐만아니라 “꿈에까지 안고가”는 무의식적인 측면까지 영향을 주는 절대적인것이였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의 해탈방식》으로 반사회적인 청춘의 반항을 했던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자극과 그 자극 뒤에 숨겨진 쾌감”을 즐기군 했던것이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작가는 소년소녀들이 학생의 본분에서 벗어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련애나 무리싸움 같은 일탈적행위를 하는것에 대해 “사춘기의 애젊은 기분으로 놀아난 랑만”으로 보면서 은근히 마스터베이션을 하고있다. 하지만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작가는 “이는 일종의 건강치 못한 욕구였다. 생명의 욕구는 특별히 왕성하나 리성이 외려 깨여있지 못했던 우리는 어둠을 더듬으며 공포속에서 방향을 찾고있었다. 그래서 벗어나려 종주먹을 쥐고 달리는 아이들, 우리는 방황과 허무속을 헤매던 우리의 어제날 모습에 부정적인 시각을 들이대고있었다.” 고 했다.
보다싶이《동물의 사나움》이 사회성이 거세된 한무리 사춘기악동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일탈의 노스텔지아적인 희극을 보여주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사회성이 절대적으로 가미된것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한무리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무서운 악동들로 될수 밖에 없는 사회적비극을 보여주었다. 이로부터《동물의 사나움》은 왕삭 고유의 의미해체 즉 무의미를 표방하는 “건달문학”적특색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아래 작가의 술회는 이 점을 직설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신체가 한창 발육단계에 있을 때 우리는 불행하게도 3년재해를 맞게 되였다. 그리고 한창 교육을 받아야 할 나이에 ‘문화대혁명’을 경과했다. 하기에 우리 세대는 이른바 전형적인 ‘영양불량세대’인것이다. 아무런 재간도 가진게 없이 고작해야 두부모만한 글 3, 5천자를 읽을수 있을뿐이다. 뜻은 크면서도 재간은 그닥지 않은 우리 세대는 평생을 그처럼 평범하게 살아갈수 밖에 없는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발밑에서 묵묵히 받침돌이 되여줄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래도 사람에게 막다른 길밖에 없는것은 아닌지 사회가 변혁을 가져온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풍을 타고 안일만 탐할수도 없었다. 금후 세상에 발을 붙이기 위하여 다시 옛 늪에서 솟아나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여 글을 쓰게 되였다-왕삭” 
이렇게 심히 자조적이고 피해의식이 있는 작가, 그는 단지 생계를 위해 옛것을 뒤져 긁적일뿐이라고 말한다. 물론《동물의 사나움》은 왕삭의 의도와 달리 객관적인 차원에서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없던 사회적원인을 추적할수 있다. 이에 반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김혁의 치렬한 작가정신에 기인된 의식적인 사회적의미에 대한 추구의 사실주의정신을 보여주고있다. 김혁은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자기의 사춘기 성녀-짜그배누님과 “사람장사”를 하며 경찰서를 들락날락하게 되는 그의 타락적인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현실비판의식을 오늘날에까지 끌어오고있다. 
 
 
(2)사춘기 본연의 모습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사춘기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어 우리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있다. 
그럼 사춘기 본연의 모습이란 어떤것인가?
사춘기는 말그대로 이성에 눈을 뜨고 사랑을 추구하게 되는 시기이다. 그런데 사춘기때 이성은 알쏭달쏭하고 신비하다. 그것은 알고싶고 한번 따먹고싶은 금단의 열매이기도 하다. 《동물의 사나움》에서는 고씨형제무리들이 왕부정거리에 몰켜서서 오가는 녀자애들을 집적거리는것과 미란의 고씨형제네 집에서의 외박에서 보여지는 시탐적인 금단의 열매―성적접촉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그것은 관음증으로 많이 나타난다. 김표와 김찬혁의 녀성생리해부도환등보기, 녀자목욕탕 엿보기는 그 일례가 되겠다. 물론 이런 관음증이 병적으로 치달을 때는 문제가 된다. 김표가 전형적인 실례이다. 그러나 김표도 나중에는 짜그배누님의 성녀 같은 보살핌에 정상을 찾는다. 
사춘기에는 보통 사랑을 하는데 그 사랑은 대개 첫 눈에 반하는 순수하고 헌신적인데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짝사랑에 가깝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마소군은 우연히 미란의 집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는 순간,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김찬혁은 사진관에서 우연히 짜그배누님을 보는 순간 그만 사랑에 빠지고만다. 하여 마소군은 거리에서 미란을 만나는 순간 친구사귀기, 프러포즈 등을 하다가 그것이 먹혀들어가지 않으니 누나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일종 남자의 공격성이 묻어나는 접근-치근덕거리기이다. 김찬혁에게 있어서 짜그배누님에 대한 사랑은 보다 많이 짝사랑으로 나타난다. 그는 꿈에 몽정을 하고 사진 한장에 흥분해하며 시원한 마스터베이션적배설도 한다. 
그러나 김찬혁의 사랑은 지극히 순수하고 고상하고 헌신적인데가 있다. 짜그배누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수 있다. 동네아줌마들이 아무리 짜그배누님을 남의 남편을 빼앗는 성품이 나쁜 여우라고 불러도 찬혁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머리칼이 길지 않은데도 짜그배누님이 보고싶고 또한 그녀한테서 머리를 깎고싶어 리발관을 찾아가기도 한다. 또한 짜그배누님을 위해 이붓아버지의 빠찌나 정신이 안 좋은 “체조선생”의 빠찌를 훔쳐다준다. 찬혁이가 짜그배누님의 소원을 풀어주려고 필사적으로 무용신훔치기에 골인하는 모습도 그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사춘기사랑은 충동적이고 맹목적이며 일종 허영의 만족에 불과한것일수도 있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은 다 당시로는 상상도 할수 없는 “년상의 녀인”을 사랑한다. 그런데 마소군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벌 되는 미란과 사귀는 목적은 일종 친구들한테 자랑하기 위한데 불과한것이기도 하다. 마소군이 친구들에게 미란을 소개할 때 얼마나 기분이 좋고 어깨가 으쓱해했는가. 그리고 마소군과 김찬혁은 자기가 좋아하는 녀자를 위해 일종 기사도적인 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마소군이 위험을 무릅쓰고 높은 보이라굴뚝에 올라간다든가, 김찬혁이 짜그배누님을 위해 아줌마들 집문에 “꼬끌피새”를 걸어두는것으로 보복을 한것은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사춘기사랑에도 질투 같은것이 없는것은 아니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미란이 고씨네 형제와 좋아하자 질투의 불이 붙은 마소군은 미란이를 만나기만 하면 괜히 트집을 걸고 약을 올린다. 그리고 술기운을 빌어 한달음에 미란의 집에 달려가 그녀를 강제로 범하려고 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도 찬혁이는 짜그배누나가 똥파리와 좋아하는데 대해 은근히 기분이 잡쳐한다. 김찬혁이 이붓아버지를 미워하는 원인은 양어머니에 대한 은근한 사랑때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하여《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사랑의 백태를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사춘기사랑의 무의식적인 측면까지도 잘 보여주고있다.
사춘기는 독립적인 자아의식이 싹트는 단계이다. 어디에 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한다. 사춘기때는 누구든지 한번쯤은 집을 뛰쳐나갈 생각을 할것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악동들이다. 그들은 어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며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학교 가기 싫어하고 아예 학교에 가지 않기도 한다. 《동물의 사나움》의 마소군은 늘 일로 멀리 출장 가있는 아버지가 더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아버지가 출장 가면 아버지의 단속에서 벗어날수 있는 자유로움을 얻을수 있기때문이다. 마소군은 아버지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진지하게 연설을 하는데도 건성으로 들을뿐이다. 그는 언제나 그 모양 그대로이다. 공부는 머리에 아예 없다. 만능열쇠로 남의 집 문을 따고 들어가 빈둥거리는것이 재미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무료함의 극치를 연출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김찬혁은 자기가 어머니의 친자식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자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오며 자기의 근본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가출하여 똥파리무리에 가입한다. 그리고 늘 보기 싫은 이붓아버지를 골탕 먹이며 “흐루쑈브” 등 별명을 붙여 풍자, 조소한다. 
사춘기는 청춘의 활력이 넘친다. 그래서 어른이 된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은 금기를 깨고 어른들을 모방하여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것을 멋으로 여긴다. 이로써 어른이 된듯한 느감을 향수하려고 한다. 그들의 솟구치는 청춘의 활력은 영웅심리로 발동되기도 한다. 이로써 남자애들은 한번쯤 싸움도 해보고싶어하게 된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마소군은 스스로 “나에게는 세계인민의 해방을 위한 밀어버릴수 없는 책임이 있다”고 여기며 어느 본보기극에 나오는 영웅처럼 자신의 “동지”들을 위해 의리를 지킬것을 다짐한다. 그는 어느날 중국과 쏘련이 싸우게 되면 참군하여 영웅이 되려고 생각한다. 고씨네 형제는 마지막에 실제로 입대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똥파리조차도 어릴 때 영웅이 된 삼촌을 우상으로 받들었고 군인이 되고파 입대하려 한다. 하지만 그가 너무 어려 받아주지 않자 무지막지하게 출장 온 해방군의 머리를 돌로 쳐 군모를 빼앗는다. 이로부터 똥파리는 “군복 입는것만을 고집하는 꼴볼견”으로 된다. 그들의 이런 영웅심리는 제대로 발산되지 못할 때 강호의리식의 패거리작당을 묻게 된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고씨네 형제를 중심으로 한 군관자제들무리,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똥파리를 중심으로 한 영국더기무리, 사마귀무리, 마씨네 형제무리가 바로 그 보기가 되겠다. 그들은 “어느 골목에서는 누가 우두머리”라는 식으로 힘겨루기를 하고 패권을 다툰다. 이것은 스스로를 “잘 났다”고 증명하는 하나의 진실한 보기로 된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고씨네 형제무리가 복수를 위해 출동하여 상대아이들과 싸우고 마소군이 무자비한 영웅성을 나타내며 나중에는 차까지 동원하여 크게 무리싸움을 준비하는것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똥파리무리와 사마귀무리, 쌍두마차무리, 마씨네 형제무리 사이에 서로 찧고 빻기 그리고 마지막에 대판으로 벌어진 무리싸움 등은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3) 통과의례
 
인간은 커가는데 고비고비 인생의 고비를 넘기게 된다. 그 많은 고비가운데서 사춘기는 하나의 중요한 고비이다. 일종 성년의 고비라고 할수 있겠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른들이 사춘기의 청춘들에게 의식적으로 정해진 과업을 주었는데 그것은 일종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였다. 그래서 이 통과의례는 성년의례가 되기도 한것이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춘기를 지나고 난후 훌쩍 커져있다. 이로부터 사춘기는 통과의례적인 원형질로 우리 문학에 나타난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바로 이런 통과의례적인 사춘기를 이야기하고있다. 두 작품은 모두 도입부 “지나간것은 아름답다.”는 회억식프롤로그를 지나 본문에서 사춘기의 충동으로 성년식통과의례를 거치게 되며 에필로그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하기에 이 두 작품은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장소설로 정립된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들은 모두 꿈을 갖고있다고 했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나”는 영웅이 되고싶은것이 꿈이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나”는 룡이 되고싶다는 꿈을 갖고있다고 했다. 물론 “나”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꼭 영웅이 되고 룡이 된것은 아니다. 《동물의 사나움》이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들은 어른이 된 시점에서 일단 자기네들이 겪은 사춘기때의 유치함, 유아독존 등 모든 부정적인 면을 잘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부정적인 면이 그들의 가장 아름다왔던 소년소녀 시절의 한 모습이였고 또한 그것이 오늘 훌쩍 커버린 성년의 전사(前史)임을 상기할 때 그들은 바로 상반상성(相反相成)의 인생의 정, 반, 합으로 흐르는 변증법을 보아내기도 했을것이다. 인생은 상반상성속에서 커가는 법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 마소군이나 김찬혁은 눈 먼 짝사랑을 하고 사랑의 질투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사랑을 배워가게 된것이다. 그들은 그속에서 육체적으로도 컸다. 어느날, 나는 거울앞에서 신체의 변화를 깨닫고 “옷을 홀딱 벗는다.” 나의 양물을 보고는 놀라 “얼른 옷을 입는다.” 김찬혁은 라체는 부끄럽게 생각한다. 
고씨네 형제들은 어엿한 인민해방군이 되고 다른 친구들도 그럴듯한 사업가로 성장한다. 김찬혁은 처음의 겁쟁이로부터 결국 사마귀의 유혹과 위협에도 드팀없이 견뎌내는 용감한 사나이로 커간다. 그는 파출소에서 놓여나왔지만 도로 파출소로들어가는 동고동락의 “의리”도 배우게 된다. “사람질을 할것 같지 못하던 김표”는 두눈이 실명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자기의 두손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이로부터《동물의 사나움》이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어른이 된 주인공들은 감회가 새롭다. 마소군과 김찬혁은 어엿한 문필가가 되여 자기 인생의 성장서사를 한다. 
《동물의 사나움》의 주인공은 20년 동안의 거대한 변화에 노스텔지아적인 향수에 젖는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의 주인공은 사춘기의 광란을 겪고도 거뜬히 사회의 어엿한 일군으로 자라난데 대한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있다. 이를테면 “그동안 많은 기분 나쁜 일 또 기분 좋은 일이 있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모든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였다. 제목처럼 말이다. 수두를 할 땐 그렇게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는데 그 시기를 이겨내고나니 그 흔적들이 꿈만 같고 소중하게 여겨지는것처럼 말이다.” 그럴진대 김혁은 “지나간 세월을 다시 돌이켜보면 숨길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 작품은 진락정애(尘埃落定)의 지나간 사춘기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현실을 정시하고 앞을 내다보는 결연함을 내비치기도 하는것이다.
 
 
(4)사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창작방법에 있어서 사실주의적인 특색을 보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좀 다르다. 이를테면 《동물의 사나움》이 시대의 본질이요, 주류요 하는데서 많이 벗어난 신사실주의로 흘렀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그래도 시대의 본질과 주류를 물고 늘어진 정통적인 사실주의로 많이 흘렀다. 그래서《동물의 사나움》이 시대적인 거대담론보다는 주변부의 미세담론으로 나아갔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주변부의 미세담론을 하면서도 간접적으로 시대적인 거대담론을 담아낸것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세부묘사에서 상당히 성공적이다. 특히 세부묘사를 통한 인물심리의 표현은 상당히 성공적이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고씨형제무리들이 왕락해를 위해 복수하러 갔을 때 마소군이 벽돌장을 들고 과장된 동작으로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때리면서 일종 무독불장부(无毒不丈夫)의 독함을 보이려 한다거나 복수를 하고 와서 목욕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의 천진란만성 그리고 파출소에 잡혀갔을 때 족쇄를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는 친구들한테 짐짓 그것은 하나의 쇼에 불과했다고 거짓말하는 장면에서는 무의식과 의식의 이률배반 등을 잘 보여주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도 똥파리무리가 김찬혁을 위해 체육과대표를 혼내주는 장면에서의 김찬혁의 여린 심성 그리고 첫 무리싸움에 참가한 김찬혁이 상철형님의 권고로 허겁지겁 달아나는 장면에서 깡패초보로서의 심리, 마지막 패거리싸움장면에서 김찬혁이 돌을 왼손에 쥐였다가 오른손에 바꿔 쥐는 동작을 반복하는 장면에서 알게 모르게 갈마드는 두려움,짜그배누님의 구미에 맞추는 일련의 짝사랑표현 등은 그야말로 일미라고 할수 있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다양한 예술수법도 구사하고있다. 례컨대 패러디, 아이러니, 풍자, 상징, 자기반영성 등 특색을 나타내고있는것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일종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무용담 같은 호기를 보여주고있다. 그것은 어쩌면철모르는 어린이들이 멋모르고 놀아나는 짓거리에 다름 아니라고 할수 있다. 이로부터 그것은 자연히 일종 어린이들의 어른되기 내지는 어른을 모방하기라고 할수 있겠다. 이런 모방을 나타내는데는 패러디수법이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줄로 안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영웅호걸들을 그린 중국고전 《수호전》에 대한 패러디를 보여주고있다. 《동물의 사나움》에서 고씨형제를 산대왕으로, 왕락해를 이신(贰臣)으로, 우북배를 구미호로, 미란을 사교계의 꽃으로 명명한다든가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똥파리, 회충림표, 짜그배누님, 홍상청형님, 마스크귀신, 앵무새 등 별명을 쓴다든가 하는것은 모두 《수호전》에서 영웅호걸들의 별호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김찬혁이 똥파리무리에 가입하는 대목에서 투명장으로 자전거를 훔쳐오도록 하는것은 《수호전》에서 산적들이 행하던 행태와 아주 비슷하다. 이를테면 림충의 량산박 입적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깡패, 건달을 취급한만큼 “씨팔, 내 알게 뭐야(我他妈才不关心)”, “똥꼬치 같은 놈새끼” 등 사실주의적인 걸죽한 쌍욕도 제격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아이러니수법도 돋보인다. 례컨대 김찬혁의 똥파리무리 입적대목에서 똥파리가 “모주석을 배반한 림표를 똥꼬치라고 생각하고 언뜰언뜰한 사막에 떨어져 죽은 림표라 생각하고 피나게 쳐봐.”라고 말한것이나 악동들이 “동방홍”. “산아제한”,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등 혁명노래를 열심히 부르는 장면, 쌍두마차의 형 마가가 술을 부으면서 “계급립장을 튼튼히 하자”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그 동기와 효과, 신분과 행위의 모순으로부터 아이러니를 창출하면서 유머감을 주고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독자의 현재적시각과 당시 인물들의 력사적시각의 모순에서 생겨난것에 다름이 아니다. 물론 “당시 말마디에 모주석어록과 정치적구호를 끼워넣는것이 법도처럼 집행되고 시체어처럼 류행된 상황”을 고려하는 력사적시각에서 볼 때 이런 아이러니는 아주 자연스러운것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풍자적수법도 효과적으로 리용하고있다. 례컨대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김표가 “나”를 집에 데려다가 녀자생식기해부도를 보여주는가 하면 목욕탕에 끌고 가 그 안을 훔쳐보게 하고는 본보기극보다 낫지 않느냐며 우쭐댄다. 이것은 당시 따분하고 메마른 문화생활에 대한 하나의 시니컬한 풍자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집안의 술표를 훔쳐 회충 할아버지에게 갖다 바치는 에피소드는 절대적빈곤시대의 눈물겨운 시대적공소를 통한 풍자에 다름이 아니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상징성도 잘 나타내고있다. 제목 자체를 보아도 그것은 상징적메시지임에 틀림 없다. 《동물의 사나움》은 한무리의 사춘기에 처해 제멋대로 놀아나는 아이들을 사회성이 거세되고 “동물성”이 살아나 “사납게” 놀아나는 원초생명의 약동쯤으로 본것 같다. 그러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그 한무리의 사춘기 아이들을 꽃으로 보면서 그것을 “응달”로 상징되는 광란의 사화환경속에서 핀 보기 싫은 “마마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주인공 “내”가 똥파리무리에 들어 잘 적응되지 못하는 상황을 “온몸에 마마꽃이 피였을 때처럼 병적인 가려움을 느낀다”로 상징하고있다. 육체적인 상황으로 정신적인 상황을 상징하고있는 셈이다.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전반적으로 볼 때 에필로그와 프롤로그가 조응을 이룬다. 이 소설들을 중간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는 일인칭수법의 사실주의소설로 볼수 있다. 그런데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동물의 사나움》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자기반영성(메타글쓰기)의 수법도 구사하고있다. 이를테면 진지한 사실주의방법으로 독자들을 글속에 들어가게 하다가 가담가담 창작과정 그 자체를 반영하는 글쓰기의 허구성 및 개연성을 곁들여 독자들을 뜻밖으로 느끼게 하는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니 믿지 말라는둥,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정확히 얘기할수 있겠는지 모르겠다는둥 하는 제스처로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든것이다. 실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작가의 진정성이 무너지고있다고 봐야겠다. 
이외에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인물형상부각에 있어서 아이들을 취급한만큼 간단명료하고 단순할수 밖에 없을것 같다. 그러나 이것 또한 성장기 아이들을 그린만큼 복잡다단해질수 밖에 없을것 같다. 이런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놓고 볼 때 《동물의 사나움》이 인물형상 부각에 있어서 앞의 경우에 많이 치우쳤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후자의 경우에 많이 치우친것으로 볼수 있다. 어떻게 보면《동물의 사나움》은 개개인의 개성적성격보다는 동물처럼 맹목적으로 놀아나는 아이들의 일반적성격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는 보다 많이 개개인의 개성적성격을 부각하기에 힘썼다. 례컨대 짜그배누님을 그리는 경우에도 그녀가 상철형님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리익을 위하여 똥파리와 사귀기며 결국 상철형님과 결혼하고 마지막에는 리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먹충이 같은 회충의 “주머니에서 맨 마지막으로 령감의 틀이가 나온다. 회충은 이를 보고 황소울음을 터뜨린다.”고 한 대목에서는 회충을 단지 먹충이로만 볼수 없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있다. 그리고 방공동모험장면에서 길룡이가 나오지 않자 김찬혁이 초조해하고 “손전지를 그에게 줄거지” 하며 김표에게 화를 내기도 하다가 결국 길룡이를 찾아떠나는데서 그의 인간적인 면이 살아나고있다. 그리고 “회충은 마가를 내보내라며 침을 꿀떡 삼키면서도 고집을 부린다. 나는 식탐을 부려 속물 취급하던 회충이 다시 보인다”에서는 식충이로밖에 보이지 않던 회충의 사나이 같은 확실함 및 선견지명이 돋보이는것이다.
 
 
2) 마무리
 
이상 비교론의를 일언이페지하면 《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중국주류문단과 조선족문단의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한 케이스로 볼수 있다는것이다. 
왕삭은 《동물의 사나움》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적극적으로《동물의 사나움》을 영화 “해빛찬란한 나날”로 개작하는데 참여한다. 그는 “해빛찬란한 나날”에서 단역을 맡기도 한다. 김혁도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 대해 나름대로 애착을 가지고있다고 봐야겠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2003년-2004년까지 《장백산》잡지에 련재되였고 2005년에 작가의 수정을 거쳐 다시 합본으로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였다. 그리고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제6회 “진달래”문예상 문학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국 당대 주류평단에서는 왕삭이 “독특한 심미적가치와 개인적경험묘사에 주력한 작품”들을 쓴다고 평한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범범을 일삼는 도시 젊은이들의 삶을 거침없이 그려 내는것이 특징이다. 이때문에 그의 소설은 이른바 “범죄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동물의 사나움》은 전형적인 그 한 보기가 되겠다. 김혁은 문학을 “상처”우에 핀 꽃이라고 말한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이로 볼 때《동물의 사나움》과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비슷한 성질의 소설인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한 경지는 상당히 다르다. 《동물의 사나움》이 일종 “문학을 희롱하는듯”한 유희적경향을 나타냈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동물이 자기의 아픈 상처를 핥듯 진지한 유의미적경향을 나타내고있다. 이로부터 《동물의 사나움》이 일종 개인적인 성장에피소드의 한 잠꼬대로 안겨온다면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사회적인 인간성숙의 전사(前史)로 안겨오게 되는것이다. 
 
 
 
 
참고문헌:
 
왕삭, 《동물의 사나움》 대해출판사, 2001.
김혁, 《마마꽃 응달에 피다》 연변인민출판사, 2005.
장영봉, 륙만승, “자유의 곤경-왕삭의 소설 《동물의 사나움》을 읽고” 유방학원학보, 2005. 5.
서민, “왕삭과 문화대혁명후기의 도시류랑자-《동물의 사나움》을 시례로” 상해문화, 2009. 1.
조상, “《호밀밭의 파수군》과《동물의 사나움》의 부동점을 론한다” 새과정연구인문예술, 2009. 4.
갈동휘, “문학의 주체성 표현-《동물의 사나움》,《1975년에 부쳐》, 《작은도시의 호걸》을 실례로” 광동기술사범학원학보, 2009. 8.
중국조선족작가 김혁의 문학서재
전경업, “생명, 그 노래는 레드-김혁의 장편소설 《마마꽃응달에 피다》가 말하는 성장과 그 허무를 두고, “중국조선족작가 김혁의 문학서재”
 
“연변문학” 201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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