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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의 시맛으로 좀 느끼해진 설명절 맛을 바꾸자
2019년 07월 11일 14시 23분  조회:1014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김정권의 시맛으로 좀 느끼해진 설명절 맛을 바꾸자

우상
 

나는 김정권을 잘 모른다. 그가 소품을 잘 쓰는 소품가, 소설을 잘 쓰는 소설가 쯤으로 알고 있을 따름이다. 그의 소품이나 소설은 좀 능청스러운 유머나 해학이 있어 인상적이였다. 언젠가 그가 소설로 상을 탄듯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시 몇수를 접해보고 나는 그를 달리보게 되였다. 소품이면 소품, 소설이면 소설, 시면 시… 문학예술을 능수능란, 다재다능하게 다루는 모습이 부럽다.   

아직 설명절 기분이 가시지 않아 술에 절어 흐리터분하고 고기붙이에 좀 느끼하겠는데 김정권의 시맛으로 머리맛과 입맛을 상쾌하게 좀 바꿔보는 것은 어떨지.

〈혼길魂道〉을 좀 보자. 죽음을 얘기하고 있는듯하여 좀 께름직하다. “내 누이”의 저승길 천당행을 기원하고 있지 않는가. “꽃잎의 향기를 묶은 하늘 빈소에 / 별들이 조용히 문상 온다.” 그것은 “불아기佛亚旗”에서 보다 싶이 불교적인 천당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죽음은 서러운 것. “달의 눈물 똘랑 떨어지”지 않던가. “불아기佛亚旗”도 결국은 “찢어진” 것. 누이도 이 세상에 미련을 느끼는듯. “한밤의 모가지에서 떨어져나온 / 저-어 접동새 울음 한아름”이 들려오지 않던가. 김소월의 ‘접동새’처럼. 이렇게 놓고 볼 때 이 시는 반전을 가져오는가. 결국 그래도 이승, 이 세상의 인간생활을 긍정한 현세중심 시로 볼 수 있다.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살아볼 만한 것. 

〈노래가 울면〉은 바로 이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기원을 톺아내고 있다. 이 시는 ‘운다’는 비극적인 행위이미지로 관통되여있다. 바로 이런 행위이미지 주체들의 대비 속에서 시적 주제를 풀이해내고 있다. 여기서 호랑이, 사자, 사람, 달, 별, 강 이미지주체들과 노래, 꽃 이미지주체는 하나의 대비항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앞의 이미지주체들로 대변되는 이 세상 삼라만상 즉 모든 것이 울더라도, 바꾸어 말하면 비극적 상황에 잠기더라도 뒤의 이미지주체들로 대변되는 이 세상 가장 소중한 것, 즉 즐겁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희극적 상황의 영주를 기원하고 있다. 이를테면 극단적인 상황설정 속에 시적 자아의 인간세상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기원을 톺아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인도주의라 할 때 이 시는 바로 문학의 본령에 가닿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잎새〉도 마찬가지. 이 시는 인생의 마지막 로경의 지꿎은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늙어가기 마련이다. 늙다 보면 “눈도 다 곯아 별도 볼 수 없”게 되고 “이석이 없는 귀도 다 가”며 “피도 다 말라 입도 벌릴 수 없”게 된다. 여기에 가슴은 “세월에 짓이겨져 갈비살에 / 구멍이 숭숭 뚫린 그 흉벽으로” 남는다. 인생로경 본연의 실존적 비극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비극을 딛고 일어선다. 그것은 “황이 든 동공으로 무얼 보시려고 / 그처럼 마른 눈꺼풀을 떠시는 겁니까?”, “바람에 흩날리는 귀지만으로 / 누구의 말소리를 들으시려고 / 그처럼 가랑잎귀를 강구시는 겁니까?”, “해진 입술 하나로 무슨 말을 하시려고 / 그처럼 비인 하늘을 머금으시는 겁니까?”, “그 누구의 맥박을 품지 못해 / 그처럼 얇아진 가슴 접지를 못하십니까?”의 반복되는 반문법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그것은 “아, 흙으로 가기 직전까지라도 / 한사코 가는 손목 풀지 않는 / 저 처연한 몸부림이여!”에 다름 아니다. 사실 그것은 “처연한 몸부림”만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 늙어감에 굴복하지 않는 비장함이다. 〈마지막 잎새〉에 깃든 상징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실로 헤밍웨이의 명작 <로인과 바다>와 같은 경지를 창출하고 있다. 따라서 “아아, 그리움에 삭아버린 기발이여!”는 젊음, 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안겨온다. 그래서 그것이 “삭아버렸”을지라도 영원히 휘날릴 하나의 “기발”임에 틀림없다. 이상 놓고 볼 때 이 시는 한편의 인생 찬미시가 되기에 손색 없다. 현재 로인사회가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이 시는 한번 읊어볼 만한 시.   

인간세상은 이래저래 살아볼 만한 것. 그럴진대 그의 시 〈석류〉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당하는 폭압일지라도 그 불행을 묵묵히 꿋꿋이 삭이며 다른 사람에게 살맛을 돋구어주자는 삶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메시지는 “오직 안으로만 닫아맨 상처”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내 입속에서 새콤히 젖어라”는 미각적 이미지들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승화되면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래 인간세상에 어찌 아름다운 사랑이 없을소냐. 〈나팔꽃 순정〉을 보자. 이 시는 보았기에 벗었지, 벗었길래 보았지의 사랑의 짝자꿍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순진무구한 인간본연의 자연스러운 사랑모습이여라! 어쩌면 현대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언녕 잃어버린 그런 노스텔지아적인 순정사랑이여라!

그의 시는 인간세상을 초탈하여 우주공간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만큼 시적 령역이 넓다는 말이 되겠다. 〈시간의 광란〉을 보자. 이 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과 비극의 파노라마를 보고 젊음과 늙음의 변증법적 관계를 본다. 사랑이면 사랑이고 젊음이면 젊음이지, 여기에 비극과 늙음이 또한 생겨나고 따라붙으니 “시간의 광란”이든지 “광란의 시간”이라고 할 만도 하다. 그런 만큼 “열광하는가?”, “누구인가”로 의문을 가져보기도 하고 “누구의 손에 뿌리워져 / 저렇게도 식을 줄 모르고”, “그렇다면 저 태양을 동여 / 휘두르는 자”로 재미나고도 아름다운 상상을 가져봄직도 하다. 이 시는 이런 천고의 천진란만한 의문과 상상을 첫시작과 마지막에 조응시켜 강조함으로써 철리적인 우주시로 승화된다. 어쩌면 우주를 다 알기에는 영원히 역부족인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이런 철리시는 그 나름 매력이 있다. 또한 이런 철리시는 맑스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인류의 아동시기 천진란만한 상상을 보여주어 우리에게 영원한 매력을 주지 않는가. 이 시는 역시 천고의 의문과 상상을 거침없이 날린 굴원의 <천문>이란 시와 비슷한 경지를 창출하고 있다.  

그의 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정을 토로하는 마당에도 우리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을 보자. 이 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 아버지는 베옷을 입고 꼴망태를 메고 쪽지게를 진 촌부였다. 그런데 그것은 “땀에 삭은 베옷냄새 물씬”하고 “제비둥지 같은 살주름이 뭉클”하며 “휘여진 무릎이 야위게 걸어오”는 초라한 비극적인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의 “구멍이 숭숭 뚫”린 “물 낡은 뼈”는 이것의 보다 직실한 보기에 다름 아니다. 다음 순간 “저 뼈를 구멍낸 자는 누구던가?”로 시적 전환을 이루면서 시적 자아의 뼈저린 통한이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시적 자아는 스스로를 “한마리 철없는 벌레”로 단죄한다. 왜서? 그것은 “내가 파먹은” 구멍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구멍으로 바람이 불어와” 가슴이 시린 것이다. 이 시는 이런 통한을 통하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고양시키고 있다. 그래 이 시는 내리 사랑이 있고 올리 사랑이 없고 이제 모시자 하나 모실 어시가 가고 없다고 할 때 우리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가. 자식된 사람으로서 부모에 대한 이런 느낌은 영원히 빚으로 남는 것이다.  

그의 시는 예술적인 면에서도 씹을 만한 감칠맛이 난다.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을 보자. 이 시는 시적 이미지 및 그 조합이 뛰여나다. 일단 질경이, 하늘, 베옷, 쑥국새, 제비둥지, 꼴망태, 쪽지게, 벌레, 쓰르라미, 저대라는 객관 상관물을 동원한 이미지 및 그 조합으로 전통적인 비극적 농촌서정을 잘 톺아내고 있다. 여기서 질경이, 하늘, 베옷, 쑥국새, 제비둥지, 꼴망태, 쪽지게는 아버지와 클로즈업되면서 아버지의 상징기호로 된다. 그리고 벌레, 쓰르라미, 저대 이미지는 시적 자아와 클로즈업되면서 시적 자아의 내면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이 시는 우의 세 련에서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을 첫구로 반복하면서 전통적인 비흥比兴수법에서 흥, 즉 사실적인 이미지로 흥을 돋구고 분위기를 잡았다면 아래 세 련에서는 흥을 받아물고 분위기에 잦아들면서 그것을 고양시키는 수법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서사와 서정의 유기적인 결합을 잘 이루고 있다. 이외에 구체적 이미지 및 그 조합도 참신하고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황혼 한아름 짊어진 쪽지게”로 늦게 귀가하는 아버지, “야위게 걸어온다”와 “물 낡은 뼈”로 객관의 주관화, 즉 가엾은 아버지를 리얼하게 잘 이미지화했다면 “쓰르라미 노래 해금줄에 스쳐온다”와 “마디마디 구멍 뚫려 바람에 시린 저대”로 주관의 객관화 즉 시적 자아의 주관적인 감수를 리얼하게 잘 이미지화했다. 특히 “시린 저대” 이미지는 새로운 발견이 있는 독특함을 기하고 있다.

이외에 〈나팔꽃 순정〉에서는 아무 관계도 없는 객관적인 나팔꽃과 별을 엉뚱하게 련결시킨 데서 시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소녀를 나팔꽃으로 대유하되 본문에서는 나팔꽃 소리 하나 안한 것이 특색이면 특색이다 하겠고 마지막에 “별이 쑥스러운듯 얼굴 돌린다”로 파제破题, 즉 해답을 줌으로써 수수께끼를 푸는듯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석류〉에서는 적극적인 삶의 메시지라는 원 관념을 보조관념인 ‘석류’를 끌어들여 효과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시적 상상력 또한 일품인데 례컨대 벌겋게 익은 석류를 “천둥의 주먹에 맞아 / 벌겋게 터진 입술”로 ‘낯설게’ 이미지화하고 계속해서 석류 속 모습을 “그 속엔 피 묻어 / 아픈 이발이 오구구”로 참신하고도 재미나게 이미지화하고 있다. 

물론 김정권의 시는 일부 껄끄러운 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례컨대 이미지 조합이 좀 어색하고 난삽한 경우가 있다. 〈혼길魂道〉에서 “바람의 노래 실은 달구지”라든가, “찢어진 불아기佛亚旗는 노을”이라든가, “젖은 락엽 같은 / 내 누이의 허벅지”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이미지를 조합한 감을 준다.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에서 “쓰르라미 노래 해금줄에 스쳐온다”는 좀 당돌한 감을 주고 ‘꽃잎의 향기’는 ‘꽃의 향기’로 하는 것이 론리적이고 자연스럽다. 〈석류〉에서 “빨간 울음” 같은 통각적 이미지는 앞뒤 문맥으로 볼 때 론리적으로 잘 맞지 않는 감을 준다. 그리고 “소녀의 성기”(〈나팔꽃 순정〉) 같은 원색적이고 딱딱한 표현은 좀 삼가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이외에 〈시간의 광란〉은 좀 의론적인 산문화로 흐르고 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 느끼해진 설명절 입맛을 좀 바꿨는겨요? 김정권선생한테 감사할지어! 김정권선생, 다음 설명절 때 또 봅시다. 아니, 요 근간에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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