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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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 변태
2005년 04월 26일 00시 00분  조회:4009  추천:71  작성자: 우상렬
직업적 변태

흐름식 온라인작업에서 자기 앞에 차례지는 나사조이기가 바쁜 주인공, 퇴근해서도 나사와 비슷한 모양새만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조이기 동작으로 달려들기. 그러다가 어느 중년여성의 가슴팍으로 달려들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는 주인공-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챠프린의 <모던타이즘>의 주인공. 무심코 웃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데는 정말 ‘왔다리 갔다리’하는 내 마음에 나도 헷갈린다. <모던타이즘>의 주인공은 우리의 실존, 직업적 실존을 일깨우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 챠프린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직업적 존재다. 사회라는 것은 유기적인 직업적 네트 속에서 형성되며 발전한다. 그럴진대 직업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기본 표지의 하나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직업을 갈구한다. 현재 우리 대학생들이 졸업해서 직업이 주어지지 않을 때 느끼게 되는 허전함은 그 욕구불만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나 정작 직업이 주어질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직업적 변태를 가져온다. 인간 실존의 딜레마, 비극.

나는 얼마 전에 국제적 레벨을 자랑하는 한국 삼성그룹의 수원에 있는 TV공장을 참관 갔었다. 몇 분만에 TV 한대가 조립되어 나온다는 말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직접 흐름식 온라인작업장에 들어서는 순간 두 줄로 앉은 깨끗한 작업복의 깔끔한 처녀애들이 자기 앞에 차례지는 일감을 주무르기에 바쁜 모습들을 보고는 그만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챠프린의 <모던타임즈>의 21세기판이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단순노동, 반복적인 단순한 육체적 노동은 인간육체의 변태를 초래한다. <모던타이즘>의 주인공처럼 시도때도 없이 조건반사적인 행동의 편집광적인 증상을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적 직업관은 이것을 더 조장한다. 준확하게, 빨리-숙련공, 월급인상... 그래서 우리는 다람쥐 채바퀴 돌 듯 하면서 이런 편집광적인 증상을 더 보이고...

정신노동도 마찬가지다. 정신노동자들이 육체노동을 깔보며 어깨에 힘을 주고 있지만 실은 100보에 50보. 어쩌면 더 정신병자 같은 증상을 보인다. 소학교 선생노릇을 하는 부모들을 만난 애들은 꾀나 골치 아플 거. 시도때도 없이 하는 공부타령에 지겨울 것이고 이것저것 다 간섭하는 ‘愛管閒事’에 정말 너들머리가 날거다. 내 꼬라지도 사람웃기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대학교수랍시고 조금은 시뚝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남 말 할 기회는 주지 않고 혼자 씨벌이기 좋아함. 그것도 으흠으흠, 훈계투에. 그리고 교단에 서서 강의를 할라치면 학생들이 듣든말든 자든말든 제멋에 좋아 입에 거품을 물면서까지 찧고빻고. 이 세상에 천상 말을 하기 위해 온 사람처럼. 나는 위에서 한 자리하는 우리 샌님들을 우숩게 보는 모모한 분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항상 위계질서 속에서 아래위 눈치보기에 바쁜 그들, 그리고 권위를 세우느라고 더워서 땀을 쫄쫄 흘리면서도 넥타이를 졸라매고 머리를 빠빳이 쳐드는 그 자세...

세상은 요지경이요, 변태의 요지경. ‘三句不離本行’이 아닌가. 그리고 직업은 사회적 수요요, 그러니 직업은 평등이요 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같은 수 없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러니 공자가 말하지 않았든가. ‘勞力者力於勞心者’. 그래 똥 퍼는 사람과 나라 주석이 같을 수 없는 변태.
직업은 변태다. 무섭다. 이 세상 자기 직업에 만족해하는 사람 없다. 다른 사람의 직업에 비긴 상대적 만족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업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으로는 敬業정신이요 뭐요 하며 직업의 신성성을 기저로 한 직업도덕을 고취한다. 그러니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호박 쓰고 돼지우리에 기어드는 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해방, 직업적 변태에서의 해방이 최종 목표가 아니겠는가?

인간은 우선 지겨운 단순노동의 멍에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많은 일하는 로봇들의 개발, 현실적으로 이런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농민들의 시커멓게 탄 얼굴, 장알 박힌 손과 화이트칼라 사무원들의 백지장 같이 흰 얼굴, 말랑말랑한 손,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에서 오는 변태. 이로부터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가 아닌 하나가 되는 그런 경지의 직업을 창출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사회적인 노동분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전근대적인 노동, 육체와 정신 노동을 아울러 하는 경지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현대 노동분공으로부터 오는 직업적 변태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분명한 것은 육체와 정신이 전면적으로 발전하는 全人이 깨여지지 않는 그런 경지의 새로운 직업적 경지를 창출해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세계 보편적으로 행하는 주5일 근무제, 직업적 변태에서 오는 육체와 정신의 이탈을 하나로 아우르는 실제적인 시간적 여유를 주고 있다. 이 시간에 육체노동자는 육체적으로 푹 쉬면서 정신적 식량을 습취하고 정신노동자는 스포츠를 비롯한 팔다리를 많이 놀리는 활동을 하여 육체적으로 다져 가도록 한다. 그리고 요즘 휴가시간에 많이 하는 여행을 비롯한 레저붐은 우리의 다양한 개성을 살려 나감과 아울러 직업적 변태를 치유하는 효과적인 방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직업관을 가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FreeLance, 자기의 글쓰기 적성에 기초한 자유기고가, 말 그대로 자유로운 직업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쓰고 싶을 때 쓰는 글쓰기의 자유로운 경지다. 물론 돈의 냄새를 빼면. 변태 운운할 여지없다. Jod-Nomad, 직업유목민. 요즘 직업 찾기 힘든 세월에 생존의 한 방편으로 전락한 초라함이나 玩世不恭이지 않을 때 그것은 정말 멋있다. 어느 든든한 대기업이나 철밥통 같은 공무원 자리에 죽치고 앉아 변태고 타성이고 무엇이고 착착 들어오는 월급에 맛을 들이고 연금에 연연하며 한평생 살아간다는 종전의 직업관하고는 전혀 다르다. 인생은 나그네 길처럼 이들은 직업 나그네들이다.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아무 직업이나 다 해본다. 언제 쫓겨나거나 싫어지면 미련 없이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난다. 직업적 변태가 올 소지가 적다. 요즘 우리 대학생들 졸업해서 직업 없다 아우성치지 말고 이런 느긋한 직업관도 한번 가져봤으면.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직업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초라하다. 按勞分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살기 위해 직업을 갖게 되는 초라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하루빨리 먹고 살기 위한 단계를 초월한 按需分配의 공산주의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이런 경지에 도달할 때 직업이라는 것이 정말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 되고 고봉체험의 자아실현이 된다. 그리고 이런 경지에 도달할 때 직업은 정녕 유희화, 예술화된다. 우리가 소꿉놀이할 때 하던 일처럼 말이다. 나는 정말 배우들이 부럽다. 배우들은 배우인 만큼 정말 이 직업, 저 직업 배역을 다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직업은 체험적이며 일회성적이며 말 그대로 ‘연극’이다. 이런 배우들의 직업‘연극’이 바로 고봉체험의 자아실현의 경지이고 유희화, 예술화된 경지이다. 이런 경지에서 노닐 때 직업적 변태는 우리와 거리가 멀어지고 우리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200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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