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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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주술
2005년 04월 20일 00시 00분  조회:4809  추천:99  작성자: admin
유감주술(類感呪術)

사냥을 나가기 전 원시인들이 짐승을 잡는 동작 및 성공적인 노획의 흉내를 내며 한바탕 열광의 ‘연극’을 논다. 그 다음 출정한다. 그들은 사냥의 성공을 이 ‘연극’으로 확신한다. 가상적인 세계 속에서 그 어떤 특정한 모방행위를 통하여 자기 소원이 진짜 성취되는 것으로 그들은 믿었다. 이것이 이른바 유감주술이다. 동일한 생각이 동일한 생각을 부르고 동일한 행동이 동일한 행동을 부른다는 사물현상의 표면적인 유사성에 착안점을 둔 것이 이 유감주술이 되겠다.

이런 유감주술은 우리 인간의 지성이 낮은 단계일수록 보편적으로 행해졌다. 원시유목민족들이 칩거하던 동굴 벽에 창에 찔린 짐승을 그려 놓고 ‘축제’파티를 벌인 것이나 원시농경민족들이 봄씨붙이에 앞서 남녀광란의 섹스‘파티’를 벌인 것, 그리고 깃털을 머리에 꼽음으로써 새처럼 날 수 있다는 믿음, 뿔을 머리에 장식함으로써 그 뿔이 달린 짐승의 위용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 얼굴이나 몸에 특징적인 화장이나 문신을 함으로써 그 화장이나 문신이 나타내는 효과를 소유할 수 있다는 믿음 등등은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사실 어떤 원시종족들은 꿈에 대해서도 유감주술적인 신비성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꿈에 내가 옆집 사람의 물건을 훔쳤다. 그러면 이튼 날 내가 그 사람을 찾아가서 사죄하고 배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원시인들이 언어의 신비성을 믿어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유감주술은 인간의 생명의식에 기초한 모방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우리 인간의 무의식적인 유전인자로 되어 면면히 흘러내려 왔다. 한국 대하역사드라마에서 왕궁의 여인네들이 시기와 질투에서 상대방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저주를 퍼부으며 죽음의 침세례를 가한 것도 중세기에 있어서 그 단적인 일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고대문학사를 보면 가락국에서 하늘이 내리보내는 임금을 맞이하기 위해 신의 계시에 따라 산꼭대기에 올라가 춤을 추고 땅을 파며 ‘거북아 거북아/머리를 들어라/머리를 들지 않으면/구워서 먹으리!’라고 부른 노래, 그리고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해가던 길에 문득 바다의 용왕이 나타나 그 부인인 멋진 수로를 납치해 바다 속으로 사라졌을 때 속수무책인 그에게 한 노인이 나타나 ‘옛 사람의 말에 입은 무쇠도 녹인다 했으니, 이제 속의 짐승이 어찌 많은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인근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대기로써 언덕을 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 가르침을 받고 불렀다는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어라/남의 아내를 앗은 죄 얼마나 크냐/네 만약 어기어 내 놓지 않으면/그물을 넣어 잡아 구워 먹으리’라고 부른 <구지가>계통의 노래는 분명 무속적인 유감주술에 기초한 위협적인 언어주술의 한 보기로 되겠다.

사실 원시니 고대니 중세니 할 것도 없이 이런 유감주술은 우리의 민속이나 생활습관, 그리고 예의범절 같은 것을 이루어왔다. 우리 민속습관에 첫날 상차림에 닭에 대추를 물리는 것은 음양, 남녀화합의 유감주술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임신부 미역국 잘 먹인다. 영양가치 떠나서 그것은 미역처럼 미끌미끌하게 아이를 순산하라는 유감주술적 배려가 깃들어 있다. 우리가 미역이라면 漢族들은 닭알이라 한다. 이것도 그 어떤 영향가치를 떠나 짐승이 알을 쉽게 낳듯이 아이를 순산하라는 유감주술적 祈願이 깃들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임신부포함해서 우리는 평시 미역을 선호하는 미각이지만 고중입시나 대학입시에 나선 애들에게는 미역을 먹이지 않는다. 미역처럼 미끌어질가봐. 대신 엿이나 찰떡을 먹인다. 엿이나 찰떡처럼 붙으라고. 요새 우리 연길에서도 입시생이 들어가서 시험을 보는 학교대문에 찰떡서니 없이 안쓰럽게 붙어있는 엿이나 찰떡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리고 예의범절, 이를테면 ‘웃어른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림자를 웃어른의 형상과 표면적인 동일시를 함으로써 그 웃어른으로 취급하는데서 기인한 유감주술적인 사고패턴을 기저에 깔고 있다.

가장 지성을 자랑하는 우리 현대 인간들은 이런 유감주술을 심할 경우에는 미신으로 치부하여 비판이요 근절이요 하며 야단법석을 피운다. ‘문화대혁명’ 같은 소아좌익병이 발작할 때 바로 그렇다. 이에 반해 어떤 사람들은 별 볼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기는 가벼운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정신적 유전자 및 민속이요, 습관이요, 예의범절을 이룰 때 우리는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대 인간들은 언어의 망망대해 속에 산다. 언어를 떠나서는 한시도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언어 속에 유감주술적 사고패턴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로부터 언어주술이라는 것이 형성된다. 갓난아이를 축하하러 갔다. 아이가 잘 생겼건 못 생겼건, 건강하게 생겼건 약골로 생겼건 떠나 무조건 잘 생겼고 건강하게 생겼다고 하는 것이 정상이고 근사하다. 반대로 못 생겼고 약골이다 했을 때 그것은 듣는 사람 차원에서 정말 거북스럽다 못해 저주로까지 들린다. 왜서? 사실 언어라는 것은 객관적인 지칭이요, 주관적인 표현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언어 자체를 그 언어가 나타낸 사물현상이나 사상감정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언어는 소리와 문자로 된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가치판단을 따나서 그것이 지칭하고 표현한 내용에 함몰되고 만다. 누구한테 열을 받았을 때 ‘개새끼, 죽어라!’하고 저주를 퍼부었을 때 마음은 후련해진다. 정말 그 ‘개새끼’가 죽거나 죽은 듯한 착각 속에. 사실 이런 언어주술은 비일비재하다. 諧音이 많은 漢語의 경우가 돋보인다. 언어적 유감이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漢族들 손님을 칠 때 정통적인 상차림에 있어 蛋類를 그대로 상에 올리지 않는다 한다. 구을 蛋이 곧 滾蛋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사이 배도 갈라먹지 않는단다. 分梨가 곧 分離와 통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사발이나 그릇 같은 것을 부주의로 깨었을 때 碎碎를 歲歲로 연결시키고 歲歲平安을 갈구한 것은 그들의 삶의 지혜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들 혼속에 시어머니가 신부한테 대추를 뿌려주는 것은 대추 棗가 早와 통하는 지라 早生貴子의 기원이 깃들어 있고 매년 年畵에 복성스럽게 생긴 아이가 물고기 큰 魚를 타고 있는 모습은 年年有余라 그들의 재미나는 민속임에 다름 아니다.

보다시피 언어주술은 언어에 대해 일종 마력적인 힘을 부여하고 그것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오~ 필승코리아! 오~ 필승...’, 2002년 월드컵 때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시도때도’ 없이 외운 주문. 한국 사람들은 분명 착차차 속에 ‘오~ 필승코리아!’를 믿었다. 이 믿음 속에는 ‘오~ 필승코리아!’의 언어마력이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아세아 출전에 16강, 8강에 이어 4강 진출을 하게 되자 믿음은 확실한 것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이로부터 ‘한강의 기적’으로부터 믿게 된 ‘하면 된다’와 어우러져서 ‘오~ 필승코리아!’는 오늘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우는 언어마력에 다름 아니다. 군인들의 ‘필승!’ 경례, 같은 맥락이다. 사실 우리 인간들이 종종 가지는 결의대회나 데모 때 萬衆一口로 웨치는 구호, 그리고 어떤 캠페인을 벌릴 때 내거는 슬로건은 은근히 衆口鑢金의 언어마력적 힘이 발산되는 듯한 무의식을 내비치고 있다.

바로 이런 언어주술 때문에 우리는 언어구사에 있어서 ‘입에 발린 소리’이나마 때와 장소에 맞게 긍정적으로 듣기에 좋은 말들을 골라 사용하기를 자기도 모르게 강요받고 있다.

사실 인간의 우상숭배도 이런 유감주술적 무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 약한 인간으로서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믿어’볼만 함.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을 때 믿는 것이 좋겠지. 하느님, 천당을 믿어 하느님 같이 되고 천당에 갈 수 있다 할 때 그것은 유감주술적 따라 배우기, 닮아가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자아의 小乘적 경지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는 ‘누구누구 대학에 붙게 해주소, 누구누구 시집장가 가게 해주소, 누구누구 병 낫게 해주소!’라는 大乘적 경지의 기도도 확실한 믿음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불교에서 석가모니 사리 봉송을 진행한 것은 유감주술적인 따라 배우기, 닮아가기를 불러일으키며 불교의 획기적인 전파를 가져왔다. 이런 유감주술은 현실 정치적인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신격화한 우상숭배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속에 나의 유감주술적 무의식심리는 충분한 만족을 받는다. 중국의 극좌적인 우상숭배가 팽배하던 ‘문화대혁명’시기 모택동을 한번 보는 것으로, 한술 더 떠 손 한번 잡아 보는 것만으로 감격에 목이 메이고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유감주술의 지대한 촉발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우상들의 題辭를 써 받았을 때 그것은 그대로 ‘성경’이 된다.

유감주술은 우상보다 좀 떨어지는 명인 숭배 및 따라 배우기, 닮아가기 효과추구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사실 이런 명인들도 센세이숀의 물결을 잘 타 우상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명인들의 무엇을 공유하거나 얻어가졌을 때 그로 인해 바로 그 명인과 닮아간다는 그런 유감주술 말이다. ‘문화대혁명’시기 우리 연변에 모택동저작 학습붐이 일었다한다. 무조건 많이 외우기가 장땅이었단다. 그래서 이제 겨우 소학교 눈을 틔웠을가 하는 한 촌아주머니가 얼음위에 표주박 밀 듯 모택동저작을 줄줄 외워 이름을 드날렸을 뿐만 아니라 크게 출세했다고 한단다. 그럼 무엇이 이 촌아주머니에게 기적을 창조하게 했는가? 물론 의식적인 차원에서 모주석에 대한 열애로 풀이할 수 있겠지만 무의식적인 차원에서는 바로 모택동저작외우기를 매개로 한 모택동 따라 배우기, 닮아가기의 유감주술적 마력의 발동으로 보아 무방하리라. 우리 사회에서 많이 진행하는 긍정적인 본보기 따라 배우기 운동은 사실 우리 인간들의 무의식심층의 유감주술을 동원하는 한 보기에 다름 아니다.

이런 명인 따라 배우기, 닮아가기 유감주술은 스포츠연예계스타들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숭배나 도취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이런 스타들의 사인받기는 전형적인 한 보기. 이런 사인들은 그 스타를 새겨 놓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국월드컵 때 한 나이 지긋한 사나이가 한국팀이 출전하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당시 한국축구팀감독 히딩크의 사인을 받는 것을 세상 최고의 낙으로 여겼다. 나는 TV에서 소개하는 이 사람을 보았다. 이런 스타들과 사진을 같이 박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이 사진을 박았을 때 마치 우리는 같이 있는 한 사람과도 같은 유감주술적 착각 속에 빠진다. 사실 이런 스타좇기는 어른들보다는 아이들, 특히 사춘기 純情少男少女쪽에서 더 발광이다. 이른바 ‘오빠부대’, ‘追星族’가 그들이다. 이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오빠, 오빠’하고 追星을 한다. 침실의 벽에, 침대맡에, 그리고 책가방에, 필통에... 그들이 수시로 쉽게 볼 수 있는 곳에는 다 이런 스타들의 클로즈업된 다양한 모습의 이미지 바라보기 세상을 만든다.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 만족되지 않는다. 그들은 스타들의 일투수 일투족을 모방하는 것으로 직성이 좀 풀리는 듯 하다. 그래서 헤어스타일로부터 화장, 패션에 이르기까지 정말 스타투성이로 변한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는 자기가 마치 그 스타가 된 듯한 착각 속에 마음이 스르르 녹아나는 자아도취에 빠진다. 이쯤 되면 뙬 데 없는 무의식 차원의 유감주술의 포로가 된 셈이다. 스타들은 바로 사람들의 이런 유감주술적 숭배 및 따라 배우기, 닮아가기 심층심리에 영합하여 시합이 끝난 다음 땀투성이에 절은 자기의 유니폼을 관중석으로 날린다든가 뽈을 날리기도 한다. 그리고 가수들은 관중을 향해 멋진 윙크 한번 해주거나 관중석으로 내려와 손을 한번 잡아주는 것으로 미칠 듯한 감동의 도가니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벼룩시장에 내놓은 명인이나 스타들의 유물이나 물품들이 값 비싸게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바로 무의식적 유감주술추구에 기인하는 것이다. 낡은 만년필이나 신, 별 볼일 없는 물건 같지만 그것을 사서 집에 잘 모셔두고 보고 외우는 것만으로도 자기 내지는 자손들이 그 명인이나 스타를 따라 배우게 되고 닮아가게 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은연중 그들은 믿고 있다.

사실 이런 우상, 명인이나 스타 같은 거창한 얘기 말고 극히 일상적인 생활에도 유감주술은 비일비재하다.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부상한 패션, 광고를 보도록 하자. 쭉쭉 잘 빠진 미스 세계들이 한 일자를 그으며 들썩들썩이는 자세로 걸어 나오는 패션쇼. 여기에 현란한 조명, 조화로운 음악. 아무 옷이나 입혀 놓아도 보기 좋은 것이 패션쇼다. 바로 여기에 바이어나 관객들의 유감주술을 자극한다. 나도 입으면 멋지겠지! 그래서 절구통 같은 제 주제도 모르고 기를 쓰고 패션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리고 당신을 위한 名牌, 브랜드, 당신은 고귀한 귀족!하며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도 마찬가지다. 광고마다 자기네 상품이 최고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로부터 광고는 가장 쉽게 소비를 유도하며 유감주술적 효과를 가져오게 한다. 이를테면 광고에 난 상품을 사용했을 때 선택된 차원으로의 따라가기, 닮아가기를 느끼게 된다. 너도나도 이런 따라가기, 닮아가기를 하는데서 현대대중문화라는 것이 형성된다.

이만하면 우리 삶에서의 유감주술적인 허와 실이 확연히 드러난 줄로 안다. 허, 실의 선택은 각자 나름대로의 명지한 소관에 맡긴다.

200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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