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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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물
2005년 05월 17일 00시 00분  조회:4380  추천:66  작성자: ysl
피, 물

피는 물보다 진하다, 피는 못 속여,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되어 먹었다. 한국TV 입양아들 친부모찾기 프로를 보라. 외국에 입양되었던 애들이 줄줄이 자기의 낳아준 부모를 찾아 한국으로 모여든다. 인간의 짓궂은 원초적인 뿌리의식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우리는 부모들도 피를 나눈 내 자식, 내 새끼 한다. 내 자식, 내 새끼가 있어야 죽어 제사라도 받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내 자식, 내 새끼 낳기. 그런데 내 자식, 내 새끼가 생기지 않으면 당황. 뗌빵 식으로 입양하기. 그런데 우리는 형제자매들, 특히 남자형제들 자식들 가운데서 입양할 애를 선정한다. 대개 간접적으로 나마 그래도 피를 나누었다는 것이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리고 입양할 경우 여자아이보다는 남자아이를 한다. 제사를 받들게 하기 위하여. 제사 받들 아이만 되었지 그 외에 아이는 입양 안한다. 그리고 또 입양된 아이로 하여금 입양사실을 모르게 하기 위하여 아주 어릴 때 한다. 마지못해 남의 집 아이를 입양할 경우 입양아 부모들로부터 아이포기나 찾아보지 않거나 되찾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기도 하는데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저 멀리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다. 입양사실을 자타가 모르게 하기 위해서다. 원초봉쇄를 하는 셈이다. 그리고 입양을 했는데 어쩌구려 피를 나눈 자기 아이가 생길 경우 그 입양아이는 개밥에 도토돌이신세가 되고 만다. 우리의 감정은 왜 요리 가볍고 옹졸하게 얄궂게 되어 먹었지.

나는 그 쑥 들어간 꺼진 눈확 속에 눈이 파랐고 콧대가 서고 모가 난 ‘양키’놈들을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괴물로 무서워했었다. 그런데 요새는 사람 좋게 두리뭉실하게 생긴 우리가 미워난다. 그 ‘양키’들이 자꾸만 돋보여난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당신네들’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마구 찧고 박고 하다나니 세계상에서 사생아 최고란다. 대한민국의 수치란다. 사생아처리 문제가 사회의 큰 골칫거리. 그래서 한국의 정부는 물론, 민간단체, 자선단체들에서도 발 벗고 나섰단다. 홀터아동복지센터를 비롯한 각종 고아원운용은 그 한 보기가 되겠다. 여기에 버려지는 불구아이까지, 여하튼 부모 없이 버려진 아이들을 다 수용한단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입양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운 부모들을 찾아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韓민족의 한 핏줄을 나눈 한국 부모들은 가물에 콩 나듯 한둘이 찾아오는데 반해 당신네들은 심심찮게 찾아온단다. 우리 부모들은 애가 없어서 입양하고 싶어도 그런 사생아, 버려진 아이들은 질이 나빠서, 종자가 나빠서 거들떠보기 싫단다. 그리고 그 불구 아이는 왜 긁어 부스럼 만들겠나 하는 식이란다. 그런데 당신네들은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 그들이 ‘어리석어’ 그런지 생각이 단순하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좋아하니깐’, ‘우리 부부는 아이 키우기가 재미있으니깐’, ‘저 아이들이 불쌍하니깐’... 좀 구체적 얘기를 한다는 것이 ‘우리는 한국 아이가 좋으니깐’, ‘우리는 아이 낳이를 못하니깐’, ‘우리는 남자애 혹은 여자애만 있으니깐’... 그들은 이렇게 간단 솔직하다. 그래서 어떤 부부들은 자기들이 키울 수 있는 만큼 데려가거나 어떤 부부들은 나름대로의 선호에 따라 남편은 여자아이, 아내는 남자아이 식으로 남자아이여자아이 다 데려간다. 그리고 한국부부들이 이리 튕겨보고 저리 튕겨보고 가장 똑똑해 보이는 남자애들을 데려가기가 보통인데 그들은 이런 것을 떠나 있는 것으로 어떤 부부들은 전문 불구 아이들만 데려 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한국아이’, ‘남자애 혹은 여자애’ 하는 식으로 자기 선호, 취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똑똑해 보이는 남자애’를 점찍어 출세시켜 제사 잘 받들게 하려는 그런 옹졸하고 용속한 이해타산은 없다. 그들은 순순한 인간애, 약자에 대한 인간적 동정과 같은 博愛, 인도주의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어린아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 같은 사회적 사명에 의한 것이다. 초라한 우리의 자화상을 비추어보는 좋은 거울이다.
애들을 데리다 키우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당신네들은 입양애들을 친자식처럼 키우지. 그 애가 너무 고와서 동네방네에 ‘방송’하지. 이 아이, 참 곱지? 내가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인데... 물론 그 애한테 성도 이름도 달아주지. 그렇다 해서 굳이 피를 확인시키는 그런 것은 아니지. 거저 편하게 부르기 좋도록. 우리도 애를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지. 그런데 우리는 입양사실 절대 비밀에 붙이기. 그리고 어느새 소유욕이 발동해 내 피의 도장 찍기. 내 성을 따르고 내 호적에 올리고... 당신네들은 친자식들이 수두룩해도 입양애를 박대함이 없이 똑 같이 대하지. 그런데 우리는 ‘어쩌구려’ 할 경우 개밥에 무엇이 되는 거야. 그리고 당신네들은 애가 다 크면 정중히 입양아사실을 알려주고 우리는 피가 다른 인종, 민족임을 확인시켜 주고 태어난 고국에 가서 부모들을 찾아보도록 하지. 입양지, 입양일시, 부모들의 선색까지 제공하면서... 그래서 인간의 뿌리의식에 만족을 주는 거지. 그런데 우리는 입양된 자식이 입양된 사실을 할까봐 겁나고 제 부모를 찾아갈까봐 겁나다. 그래서 우리는 갓난애만 입양하고 이사를 하고 어쩌고 하는 추태를 보인다. 그래 그 아이가 친부모를 찾았을 경우 당신네들은 같이 기뻐하고 그 친부모들과 친구가 될 수 있고 막연한 사이가 될 수 있지. 그리고 그 아이가 친부모를 찾아 가겠다 하면 홀가분하게 보내줄 수도 있지. 그렇지? 그런데 우리는 그럴 경우 당황하고 불안하고 경계심만 살아남. 그러다가 그 아이가 친부모한테 다니기만 해도 우리는 욱 하는 배신감에 울고불고 야단을 피운다. 내(우리)가 니를 혹은 저 아이를 얼마나 손발이 터지도록 키웠는데 니 혹은 당신네들이 이럴 수 있냐 말이다. 그러다가 잘 안 된다 싶으면 사생결단하고 이판사판에 피를 보게 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우리는 너무 탁 하게 옹졸하게 산다. 좀 홀가분하게 살 수 없냐?

가계, 사업, 재산 상속도 마찬가지. 당신네들은 피를 안 본다지만 우리는 피를 본다. 글로벌화된 대재벌, 회장이 죽게 되었다. 당신네들은 피에 관계없이 가장 유능한 인재를 뽑아 대재벌의 사업을 계승하도록 한다지.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야. 피, 피~ 피가 중요하다 말이야. 현대 정주영에 정몽구, 삼성 이병철에 이건희, LG 구자홍에 구본무... 우리가 우습게 보는 ‘쪽발이’만 해도 이 면에서 대범하다. 그래서 그네들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네들은 우리처럼 그리 피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도 ‘씨’, ‘종자’가 마를 때면 입양을 한단다. 물론 딸이 있을 경우에는 데릴사위를 해 친자식 맞잡이로 데리고 있지. 그리고 사업계승은 당신네들 스타일로 따라간단다. 재산 상속도 그렇다. 당신네들은 굳이 자식들한테 물려준다는 개념보다는 자기 쓸 만큼 쓰고 기증, 기부 등의 형식으로 사회환원한다는 개념으로 더 통한다. 그래서 당신네들은 애들이 18세라는 성년이 되면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거지. 당신네들은 재산상속세라는 것이 있어 사회시스템적으로 그렇게 돌아가도록 유도하고 분위기를 잡는다고 했지. 당신네들은 물 같이 덤덤하고 차갑다 못해 매정한데가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전인류적이고 보편적인 인도주의 맛이 있음. 그런데 우리는 안 되. 우리는 무슨 환원이고 다 떠나 내 피, 내 새끼한테 다 챙겨주고 물려줘야 눈을 감을 수 있어. 우리는 피의 끈끈함과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한치보기의 옹졸함이 있어. 요새 한국도 재산세를 때리고 있다니 세계보편의 논리로 노는가봐.

피는 물보다 진해, 피는 못 속여. 그렇다 해서 우리가 피에만 매몰되면 우리 삶은 오히려 옹졸해지고 살벌해질 수 있어. 우리는 물의 담담함, 차가움도 알아야 되. 그 담담하고 차가움이 우리의 피가 끓는 더운 여름의 갈증을 식혀주지 않는가?

200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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