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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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교의 학생회
2005년 07월 01일 00시 00분  조회:5136  추천:82  작성자: 우상렬
한국 대학교의 학생회

‘김XX 필승! 필승 김XX!’... 선거운동원들이 주술처럼 외워대는 슬로건. 똑 마치 월드컵 때 ‘필승 코리아!’를 신들린 것처럼 외쳐대는 모양. ‘안녕하세요? XX학과 XX학번 XX입니다. 좀 밀어주세요. 꼭 잘 할 겁니다! 공약 좀 봐...’, 학생들이 많이 나드는 길목 같은 데 서서 직접 전단을 발부하는 외로운 후보들. 남자 후보들이 좀 허스키한 목소리에 무게감과 카리스마스를 살리려 한다면, 여자 후보들은 ‘좀 쩍어주세요. 오돌찬 XX랍니다...’로 애교성에 똑똑함과 당당함을 살린다. 여하튼 학생회 회장 선거철이 되면 선거유세에 시껄벅적이는 한국 대학교 캠퍼스. 대통령 선거의 축소판. 회장에 출마하는 조건도 보면 별로 제한이 없는 것 같다. 우리처럼 사상 붉어야 되고 공부 잘 해야 되고 또 뭐 잘 해야 되고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이것이 이른바 민주선거란다.

일단 선거만 되면 그 기세나 파워는 대단하다. 학생회회장 사무실이 하나 떡 차례지고 사무책상 위에는 ‘제X대 XX대학교 총학생회 회장 XXX'라는 명찰대가 놓인다. 여기에 누구든지 사무책상 안쪽의 회전의자에 척 앉아 있으면 폼이 절로 잡힐 줄로 안다. 회장은 취임하는 즉시로 학생회 각 부처의 부장들을 임명한다. 제X대 학생회를 구성한다. 여기에 선생들의 눈치나 입김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완연히 대통령의 각 부서 장관들 임명하는 맞잡이다. 그리고는 자기네 나름대로의 모토를 내건다. 현재 내가 와 있는 배재대학교의 총학생회는 ‘제21대 실천총학생회’란다. 총학생회는 회장이 내세운 공약을 실현하기에 바쁘다. 공부는 좀 뒤전인 것 같다. 예컨대 통학버스를 증설하겠다고 했으면 뻔질나게 학교 총무과로 다니며 교섭한다. 말로 잘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는 학생들을 동원하여 농성을 부린다. 심할 때는 총장 사무실까지 점검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결국 답복을 받아 내거나 자기네 의지를 실현해내는 것이 훌륭한 회장이고 학생회로 꼽힌다.

철저히 학생들 입장에 서기, 당당하게 학생들 권익 보호하고 신장하기, 이것이 한국 대학교의 학생회의 철칙이다. 학생은 대학교의 주인, 우리 돈으로 학교가 영위된다. 그러니 우리 뭐 꿀릴 것 없다. 사립대학교일 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그래서 학생회관을 지어 달라, 기숙사 증축하라, 방학 간에 도서관 문 열어라, 그리고 또... 여하튼 학생들이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최선을 다 하도록 학교당국에 촉구한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교는 학생회관을 비롯하여 학생편의봉사시설이 없는 것이 없다. 수시로 언제든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인터넷, 학생증 하나로 곳곳에 드나들 수 있고 모든 것이 결재 가능한 시스템-프린터, 복사... 그리고 은행, 슈퍼, 이발실 등 시시껄렁한 생활세말사에 이르기까지 應有盡有. 내가 현재 있는 배재대학교는 복도마다 더운물, 찬물 나오는 정수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화장실에 룰로 된 화장지까지 비치해둔다. 그러니 학교 문을 나서지 않고도 충분히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다. 그래도 다른 학교와 자꾸 비기면서 또 뭐 뭐... 한다. 학생회에서 장애인전용주차장, 휠체어전용로, 장애인도서이용편리 등 장애인학생의 권익에 이르기까지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은 경이롭다 못해 존경스럽다. 학생회에서는 축제요, 스포츠대회요, 무슨 경색이요 하며 1년 사시절 학생들의 전반 생활을 조직하기도 한다. 무슨 행사 때마다 학생처를 비롯한 관련 부서에 협찬을 요구한다. 학생회에서 자꾸 문제를 제기해오고 권익을 신장해 오니 학교당국은 골치 아파한다. 그래서 쩍 하면 총장이나 관련 인사들이 나서서 대화하거나 해명하기에 바쁘다. 특히 민감한 등록금인상 같은 문제는 사전에 학생회에 아무런 해명 없이 혹은 통보 없이 혹은 결정했다가는 정말 큰 코 다친다. ‘돈만 아는 대학’, ‘엄마, 아빠 등 휜다’, ‘못 참겠다, 등록금!’ 하며 학교는 삽시에 일촉즉발의 팽팽한 분위기에 잠긴다. 교수들도 은근히 학생회를 두려워하는 눈치다. 나는 한국 대학생 개개인들 모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안녕하세요!’, 그저 한 1년 별 볼일 없이 와 있는 나를 만나도 항상 밝은 얼굴에 인사들을 한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너도나도 ‘안녕하세요’다. 그러면 인사 받을 준비가 잘 안된 나는 좀 당황해난다. 나는 원래 중국 대학교에서 학생들의 인사를 적게 받다보니 체질적으로 인사받기에는 습관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럴 때면 나는 우리 학과에 교환교수로 와 계시던 정통적인 선비스타일의 한국 교수 한분이 생각키운다. 이 교수는 항상 우리 학생들이 인사성이 없다고 불만이다. 그래서 자기가 가르친 학생들이 복도 같은데서 스쳐 지나면서 인사를 하지 않을 때는 꼭 세워놓고 인사를 시키고는 놓아주었다. 여기에 비기면 한국 학생들이 얼마나 깜찍하고 사랑스러운가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학생들에게 매서운 데가 있다. 교수의 강의시간 언어구사가 상스러울 때는 언어폭력이요, 술자리일지라도 교수의 손발이 점잖지 못하고 너덜댈 때는 性騷擾요 하며 들고 일어난다. 여기에 학생회가 나서고 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교수의 운명도 ‘경각’에 달릴 때가 많다. 그러니 교수는 학생들, 학생회 앞에서는 항상 근엄하고 조심할지고. 내가 가르키는 클라스에 학생회 간부 두 명이 있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바쁘다는 핑계로 강의를 잘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기말에 가장 낮은 점수 ‘D'를 주었다. 그리고는 은근히 이제 똥줄이 달아 나를 찾아오겠지 하고 깨고소해 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학생회 간부들은 저렇게 낮은 점수를 맞고는 간부노릇 못하는데 하면서 다른 한국 학생들한테 물어보았다. 제들 저렇게 공부 못해서 어떻게... 그런데 홀가분한 그들의 대답에 그만 내가 아연해지고 말았다. 걔들은 원래 공부는 땡이고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여 활동하면서 행정력과 조직력을 키우는데 주목표가 있고 그것이 또한 학생들에게 플라스적인 긍정적인 이미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사회에 나가 정치활동을 하며 국회의원 내지 대통령직에도 출마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적으로 직업적인 시각으로 학생회간부를 평가하고 있다. 전면적으로 발전한 학생회간부를 요구하는 우리하고는 애초에 좀 다르다.

한국 대학교의 학생회는 자기네 학생들 자체의 이해득실에만 매인 학교 내의 區區小事에만 국한되어 노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가장 발랄하고 순수한 대학생의 양식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그 엄혹한 군사정권 때 대학정의, 대학성역의 차원에서 어용교수들을 쫓아내기도 했으며 민주화를 위하여 많은 피를 흐렸다. 얼마 전에 전남대학교에 학술회의 차 갔다가 우연히 학교 5.18민주항쟁전시관을 들르보게 되었다. 학생들의 민주항쟁을 조직하고 앞장서 나가는 학생회 간부들. 그리고 분신자살을 해 5.18민주항쟁의 불길을 지피는 학생회회장... 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실로 한국 대학교의 학생회는 자기네 말대로 ‘싸우는 학생회’, ‘투쟁하는 학생회’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나는 우리의 대학교 학생회를 떠올려본다. 우리는 ‘싸움’, ‘투쟁’보다는 말을 잘 듣는 온순함에 더 가깝다. 학생들 말보다는 선생들 말을 잘 듣는 듯 하다. ‘학교 가 공부 잘 하고 선생님 말 잘 듣으’라는 소학교 때 엄마의 가르침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이제 斷乳, 정신적인 斷乳를 해야 한다. 자주독립적인 생각과 내밀성이 있어야 한다. 선생들 말보다는 학생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나는 우리 연변대학 정문 앞에만 서면 머리칼이 쭈빗 선다. 학교와 기숙사 사이를 가로지른 큰 길을 건너라고 오락가락하는 학생들, 여기에 택시를 비롯한 차량들이 큰 길을 따라 가로지르기에 바쁘다. 교통신호등이 있다고 하기는 하나 무질서와 난맥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님. 우리의 학생회 주석, 간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단 다른 것은 다 그만 두고라도 우리와 생명과 관계되는 이 무질서와 난맥상을 없애야 한다. 육교든지, 지하도든지, 우리의 학생들이 안전하게 오락가락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달라고 학교지도부에 건의하고 요구하고 이것이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는 항의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럴 때 진짜 학생들로부터 환영받는 학생회가 될 줄로 안다.

200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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