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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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自虐
2005년 08월 23일 00시 00분  조회:3936  추천:72  작성자: ysl
인간의 自虐

인간은 분명 자기애적인 나르시시즘적 존재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自私自利의 극단적인 합리화로 人不爲己天誅地滅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런 나르시시즘이 변태적으로 나타날 때 공주병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의 긍정적인 생명의식으로 나타나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은 또한 이런 자기애적인 나르시시즘적 존재와는 분명 다른 自虐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자기 스스로가 밉고, 밉다 못해 못살게 구는 것-이것이 우리의 부정적인 생명의식으로 나타나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바로 긍정적인 생명의식과 부정적인 생명의식의 역학적 관계 속에서 생의 무대에서 놀아난다.

술,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고 과음하면 독이 된다. 그런데 마시다, 마시다보면 과음하기 일쑤.

담배, 백해무익. 담배갑에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어떻게 나쁘다고 번연히 쓰박아 두었는데도 아직도 풀풀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무슨 금연의 날이요 하며 시끌벅적하다.

술담배 같은 기호품은 말 그대로 기호품이기 때문에 각자의 기호에 맡길밖에. 그런데 그 기호품 애용자들은 과음하고 폭음하고 골초가 되는 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술로 인한 간암유발, 담배로 인한 폐암유발 등등 의학적 경종이 수시로 울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기에 골인하는 데는 바로 인간의 무의식 깊숙이까지 자리 잡고 있는 自虐심리가 크게 한몫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술담배 같은 기호품은 1차적으로 바로 인간의 무의식적인 自虐심리에 영합하여 시장을 확보하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自虐심리는 성애에서 마조히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히스테리적인 정신병 발작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人生不如意, 人生如意보다 잘 불러지는 인생타령. 바로 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때문에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自虐심리가 발동되기도 한다. 에라, 모르겠다, 꾸르륵 술병을 들이키기. 푸-푸- 줄담배 내뿜기. 그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은 그 극단적인 상황의 한 보기. 그러나 이런 차원은 동물과 별로 다르지 않다. 얼마 전에 바다가 극심하게 오염되자 돌고래들이 집단적으로 모래사장으로 나와 자살을 한 거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서 도덕적 파탄을 전제로 한 自甘墮落의 自虐로 나아가는 것이 동물과 다르며 무서운 것이다. 일종 사회적 암이다. 얼굴에는 땟국이 흐르고 머리는 삼검불처럼 뒤죽박죽이 되고 옷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하고. 현재 세계적으로 골머리 아픈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많은 浮浪者-노숙자홈리스(Homelesser), 그 한 보기다. 1950~60년대 미국의 히피들은 自甘墮落의 해괴망칙한 自虐 스타일로 경직된 기성문화에 대해 반기를 들기도 했다. 요새 세계적인 패션으로까지 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입는 바지통에 구멍이 뻐끔뻐끔 난 乞丐服도 바로 기성세대들의 자애적인 正裝에 自虐墮落적인 散裝으로 맞선 데서 기인한 것이다.

사실 인간이 사람 되기를 거부하고 自甘墮落적인 自虐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비극적이다. 술담배의 自虐로 육체가 망가지는 것은 일회적이고 그 자신에 국한된 것이지만 自甘墮落적인 自虐로 정신적인 망가짐은 파급적이고 반사회적으로 흐르기 쉽다. 인생을 이판사판으로 보고 ‘막가파’식 인생을 사는 인간들이 바로 이런 부류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존재다. 人生이 아무리 不如意하더라도 열심히 살려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인간의 自虐는 여기서 기인되기도 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인간은 반성한다. 그 반성이 성차지 않을 때 인간은 스스로 쥐어뜯고 처박고 한다. 이것이 성차지 않을 때는 기꺼이 자살까지도 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자살을 말이다.

보편적 인간애로 넘치는 성인들의 인생경지는 한없이 높고 고상하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미몽에 허덕이며 죽어갈 때 살아 있는 자체를 한없이 죄스럽게 생각한 성인들, 그래서 그들은 항상 自虐속에 모대기며 인간구제의 심성을 키웠다. 나는 예수, 석가모니를 떠올려본다. 남이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더 때리라고 가르친 예수, 施虐보다는 분명히 自虐를 가르치고 있다. 그 자신은 결국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 못박혔다. 달갑게 自虐의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뭇중생들의 죄를 赦하기 위해. 석가모니, 그는 왕자다. 그러나 그는 普渡衆生의 길을 터득하기 위해 칠칠에 사십구라 사십구일 보리수 밑에서 自虐의 가부좌를 했던 것이다. 예수도 좋고 석가모니도 좋고 이들 성인들은 自虐의 아픔 속에서 인간구제의 종교-사랑이나 자비를 터득했던 것이다. 사실 기독교나 불교를 창립한 예수나 석가모니 말고도 진정한 종교인들이 굶주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금식기도를 하거나 금식일을 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톨스토이나 윤동주와 같은 위대한 문호들도 이들과 마찬가지다. 톨스토이는 대지주다. 그러나 그는 ‘도덕적 자아완성’이라는 부활을 가져오나 주위의 따가운 시선 속에 힘겨운 自虐에 모대겼다. 결국 그는 가출하여 객사하고 만다. 윤동주, 그는 십자가를 매고 민족의 제단에 달갑게 머리를 드리울 각오에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가슴을 아파했고’, ‘죽어가는 모든 것을/사랑해야지’로 더 높은 보편애적 경지를 창출하고 있다. 그는 항상 이런 각오와 보편애적 경지에 조금이라도 그 마음이 일그러질까봐 조마조마하고 조심스러우며 自律적인 自虐에 모대겼다. 이런 自虐는 도덕적 깔끔함이 돋보이고 있다.

예수도 좋고 석가모니도 좋고 톨스토이도 좋고 윤동주도 좋고 그들의 自虐를 통한 새로운 삶의 경지추구는 진실로 인간적인 경지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 인간이 동물과 다른 근본 특성이 있기도 하다.

200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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