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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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流가 漢流라
2005년 12월 20일 00시 00분  조회:4289  추천:100  작성자: 우상렬
韓流가 漢流라

한국사람들 韓流는 잘 알아도 漢流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 한국에 와 있는 나는 중국조선족으로서 漢流가 폐부에 와 닿는다. 사실 나는 사람들이 韓流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 정확히 말하여 韓流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 나는 언녕 알고 있었다.

1993년 처음 조상의 뼈가 묻힌 고국의 땅을 밟는 나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국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료로 박사공부 시켜주겠단다. 그런데 전제조건으로 한국어시험에 합격되어야 한단다. 그래서 흔쾌히 자신만만한 한국어시험보기.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낙제. 내가 조선어시험을 치렀지 한국어시험은 아니란다. 무슨 두음법칙이니, 띄어쓰기니 하는 것들이 전부 조선어식이란다. 그러니 이불짐 싸지고 돌아갈 준비를 하란다. 나는 속으로 꿍지랑 거렸다. 조선어가 한국어고 한국어가 조선어지, 뭘 별개나. 그래 가지고 통일을 하겠다고. 좁쌀은 좁쌀이네. 그래 기분은 잡쳐 그해 추석도 찌부둥하게 보내고 나니 무슨 한국어는 한국어고 조선어는 조선이야 하는 한바탕 교육을 하고는 입학시켜주더라. 그기에 무슨 자매대학의 추천을 받아왔으니 하는 꼬리표를 달면서.

그래 그럭저럭 공부를 하고 있을라니 진짜 중국사람, 반쪽이 아닌 온쪽의 중국사람 漢族들이 유학을 한답시고 몰려왔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어가 영 말이 아니다. 한국에서 한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는 친구들이 내 조선어 식 한국어보다는 형편없었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걱정을 했다. 저래 가지고 입학시험에 합격되겠는가고. 그리고 상상은 내달려 저래 가지고 대학원공부는 또 어떻게 하지?하고. 그런데 참 다행한 것은 이들이 시험 치는 쪽쪽 합격이란다. 나의 걱정은 杞憂였다. 나는 한국 사람의 너그러움을 높게 평가했고 그들을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슬그머니 속에 캥기는 것이 있었다. 한국어 수준 내 발바닥 때도 못 따라오는 그들이 쉽게 합격하고 내가 어렵게 합격한데는 무엇이 잘못 되도 한참 잘 못된 것 같다. 그 잘되고 못됨을 캐느라고 몇날며칠을 머리 싸매고 끙끙거리며 보니깐 그 갈래판이 의외로 너무 간단하여 허탈감을 느끼다 못해 허무맹랑해지고 말았다. 원래 이 漢族 유학생들이 한국교수들한테 폐부에 와 닿는 韓流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 韓流란 말이 없었지만. 어, 大國 사람들이 이제 우리 것을 배우러 와. 감사하고 기특할시구. 쏴라쏴라 합격. 한국 사람들 기분파니깐. 한국 사람들 눈에 나 조선족은 大國 사람이 아니다. 너는 어디까지나 우리 小國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같은 종자라 한데 끼어주는 것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럼 그렇다 하자. 그런데 공부하면서 열 받는 것은 아무래도 조선족 내 쪽이다. 漢族들은 과당시간에 거저 와서 자리만 지켜주고 형식적으로 레포터를 내고 시험을 건성건성 치도 곱게 보아주기. 레포터 발표에 꺽꺽거리고 뜨듬뜨듬 거리는 것이 애교성 있고 귀엽게 보였다. 조선족, 나는 연변억양을 좀 띠면 이상하게 여기고 북한 억양을 좀 띠면 눈살을 찌프린다. 그때 나하고 우리 조선족 젊은 여류 소설가 김영옥이가 같이 공부했다. 영옥이는 뚝 밸이 있고 개성이 있다. 작가로서의 기질이 있다. 영옥이는 그때 이미 한국에서 조선어인지 한국어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리말로 소설집『미친녀』까지 출판했다. 촉망받는 젊은 소설가임에 틀림없다. 영옥이는 그때 석사과정을 다 끝마치고 논자시험만 남은 상태. 그런데 그가 논자시험-학위논문제출자격시험 한국어에 합격되지 못했다. 다른 꺽꺽거리고 뜨듬뜨듬 거리는 漢族들은 다 합격하면서 말이다. 영옥이는 울먹울먹하며 나를 찾아왔다. 나는 할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그 여린 마음을 위로해줄 수밖에 없었다. 너, 왜 조선족인가고. 漢族이 아니고. 그리고 여기는 정신병원이라고. 내가 공부하는 곳은 그래도 공산주의적 무료혜택이 많아 조선족에 漢族에 여하튼 중국유학생들이 꾸역꾸역 많이 모여들었다. 그러면 나는 에헴, 에헴, 한국 식 선배 틀을 차리며 후배들에게 공부묘방을 알려주었다. 너네, 시험 잘 맞자면 중국사람 아니, 반드시 漢族티를 내야 한다. 조선족 너도. 공부는 대충대충해도 되. 거저 漢族으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이면 되. 알았쟈? 과연 내 말은 선배다운 가르침이었다. 중국 후배들 공부 좀 해보더니 그저 내 말이 딱 먹혀들어간단다. 그래서 이 친구들 내 말은 팥으로 미주를 쏜대도 잘 들었다.

사실 내가 있는 연구원뿐이 아니고 전반 한국사회가 그렇다. 여보세요, 중국에서 오셨지요? 얘. 중국에서 온 조선족입니다. 아, 그러니 우리말을 잘 하지/여보세요, 중국에서 오셨지요? 얘. 중국에~서 온 漢族입~니다. 아, 그래요. 속으로는 한국어를 잘 못한다하면서도 아, 그만하면 혹은 그래도 우리말을 잘 하시네요.하고 짜른 바지춰주기. 그리고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말을 잘 하는 조선족은 중국말을 잘 못할 거고 우리말을 잘 못하는 漢族(그가 아무리 방언투성이의 남방말을 구사하더라도)은 중국말을 잘 할 것이다. 그러니 중국말은 그래도 漢族이야하며 漢族한테 일감을 준다. 사실 한국에서 중국 관계 일이야 중국어와 한국어를 다 구사할 줄 아는 조선족(표준적인 북경말을 구사하는)이 제격임은 두말할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들 우리 중국조선들하고 교류를 놓고 보아도 그렇다. 한국사람들 처음에 그 四顧無親한 허허 넓은 중국 땅에 들어와 어리뻥뻥. 위압감도 느낀다.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교포요, 동포요, 친척이요 뭐요 하며 잡은 것이 조선족. 연변에 사는 우리 한국 손님 맞이하기에 바쁘다 바뻐. 우리 연변대학도 민족의 대학이라고 무슨 교수고 학자고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형제결연이요, 자매결연이요 야단법석.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은 꿩구워 먹은 자리. 조선족 별 볼일 없어. 산골짜기 촌놈들이라 말이야. 맥을 못 춰. 그러니 아무래도 맥을 추는 漢族들을 찾아가야지. 그래서 너도나도 북경으로. 북경이 포화상태니깐 상해로, 남방으로. 그래서 조선족이라도 북경에 사는 漢族 가까이 있거나 漢族 같은 조선족들이 텃세를 믿고 우쭐대기.

그래서 나는 결론적으로 韓流가 아닌 漢流가 자꾸 뇌리에 흐른다. 사실 한국에는 漢流의 맥이 언녕 용용히 흐르고 있다. 도처에 일어서는 중국어학원, 중국식료품집, 중국요리점... 중국농산품, 공산품 넘쳐난다. 중국본토에서는 언녕 일본유학생을 제치고 일약 1위 자리를 차지한 한국유학생수. 그리고 줄을 이은 기업들의 중국행, 여기에 보따리 장사까지 합류.

중국이 어떤 나라냐? 2000여년이나 漢流의 물결을 일으켜 한반도를 휩쓸었다. 이 2000여년의 줄기찬 漢流, 한국사람들의 한 원형질을 이루어놓았다. 그래서 한국사람들 산이 많아 농사짓기에 불편하고 삼면이 바다인 반도에 살면서 해양문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농경문화인 중국의 漢流에 이리저리 부대꼈다. 그래서 해양문화의 빛을 잠간 반짝인 장보고는 돋보이는 존재. 한반도와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에 처한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농경문화로 나아가지 않고 해양문화로 나아간 것은 바로 그들 주변에 漢流와 같은 강대한 이민족의 문화가 없었기 때문. 한국사람들 아직도 漢流의 물결에 헤염치고 있다. 에헴, 에헴 하는 공자제자들 한국이 중국보다 더 많다. 그래서 옛날의 조공관계를 떠나 현재 한국사람들의 머릿속에 중국은 문화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나라. 漢流의 깊은 뿌리는 바로 여기에.

중국은 무서운 나라. 디디해 보이고 어리숙해 보이는 중국이 하루아침에 거인의 활보로 다가오고 쫓아온다. 일종 ‘黃禍論’에 가까운 두려움.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고 세계를 지배한단다. 여기에 한국사람들 작은, 약자콤플렉스 발동된다. 큰데, 강한데 붙어야 산다. 그래서 중국한데 프로포즈하기. 수교. 북방외교 성공이란다. 그 어느 대통령의 공적으로 대서특필.

그런데 조선족은 정말 별 볼 일 없는 존재. 중국에서는 변두리 약자고 소수민족. 중국을 대변할 수 있는 주체민족이 아니다. 중국의 훌륭한 소수민족정책에 얹혀 살아가는 신세. 적어도 자본주의논리에 젖은 한국사람들의 눈에는 이렇게 보인다. 자본은 趨益避損의 趨益논리를 따라 움직인다. 그러니 조선족은 소외된 존재로밖에.
그러니 韓流에 그렇게 흥분하는 한국사람들의 심리도 알만하다. 韓流가 漢流를 뒤엎는다? 착각. 大國 중국이 2000여년 래 최초로 韓流를 받아들이는 그 고마움 내지 감지덕지도 없지 않아 있으리라.

2005.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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