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로병사, 태어나서 자라다가 늙으면 쇠약해져 병이 생기고 죽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태어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동서고금, 그리고 종족, 민족을 막론하고 죽음에 대해 신경을 써왔다. 이로부터 시신처리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土葬, 火葬, 水葬, 風葬, 平葬, 天葬... 인간은 실로 다양한 시신처리를 구사해왔다. 유교문화권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모발 하나 흐트릴세라 잘 다듬어 땅에 묻고 봉분을 하는 土葬을 많이 했다. 불교문화권에서는 불로 더러운 육신을 태워 열반의 경지를 창출한다는 火葬을 많이 했는데 일반인들은 골회를 모셨고 스님들은 사리를 모셨다. 물을 인간의 기원과 귀의처로 신비화한 중국 남방의 일부 종족들에게는 水葬이 행해졌고 꽁꽁 잘 싼 시신을 나무판자에 태워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낸다. 사막의 일부 족속들에게는 風葬이 행해졌는데 건조한 기후조건에 시신이 많이 미아리가 된다. 이동을 특징으로 하는 유목민족은 땅에 묻되 남에게 알리지 않도록 봉분을 하지 않는 平葬을 많이 했다. 일대의 영웅호걸 칭키스칸은 바로 이런 平葬을 해서 지금도 그의 무덤은 찾을 길이 없다. 인간의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보는 티벳에서는 시신을 칼탕쳐 까마귀떼나 독수리에게 먹이는 天葬을 한다. 土葬, 火葬, 水葬, 風葬, 平葬, 天葬...은 각 종족이나 민족이 자체의 전통문화나 민속신앙에 근거하여 나름대로 창조한 장례문화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현 시점에 있어서 이런 장례문화가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土葬, 이른바 많은 ‘명당’자리에 시신이 들어섬으로 산 인간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 한국과 같이 좁은 국토에서는 이것이 보다 심각한 문제로 부상된다. 그리고 水葬, 風葬, 天葬은 시신에 대한 ‘무책임’한 ‘폐기처분“ 같은 맛을 풍겨 인간존엄에 대한 논란의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실로 시신에 대한 처리문제, 현대인간들의 골치덩어리의 하나다. 현대는 이 시신과 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현재 각 민족, 각국에서는 나름대로의 새로운 합리적인 장례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전통적인 장례문화에서 합리적인 면은 받아들이고 불합리한 면은 제거하거나 다른 종족이나 민족의 합리적인 장례문화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아예 제3의 새로운 장례문화 창출에 고심하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넓은 땅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土葬을 근절하고 火葬을 권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근간에 火葬을 전제로 한 가족납골당이 유행하는 듯 하다. 그러다가 가족납골당이라는 것이 봉분형식보다 자리는 덜 차지하되 50보에 100보라,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족납골당이라는 새로운 ‘봉분’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요 최근간에는 새로운 장례문화로 樹木葬에 사람들이 눈 뜨고 있다. 사실 樹木葬이라는 것은 스위스나 독일 같은 일부 선진국에서 이미 행해지고 있다. 樹木葬은 간단하다. 시신을 火葬하고 골회만 추려 특정 나무 밑에 묻는 것이다. 독일은 법적으로 土葬을 근절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선을 공동묘지에 최장 20년밖에 묻어둘 수 없게 한다. 그러나 樹木葬의 경우는 99년간 묻어둘 수 있게 한다. 이로부터 법적으로 樹木葬을 권장하고 유도한다. 독일의 경우 樹木葬은 樹木葬을 할 수 있는 전문 국립수목림이 정해져 있고 국가의뢰의 전문 樹木葬장례회사가 전담한다. 독일의 樹木葬은 국민들의 공감대속에 새로운 장례문화로 굳혀가고 있다. 한국은 얼마 전에 김장수 할아버지의 樹木葬이 치러져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김장수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최초로 樹木葬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명문 고려대학교 교수로 몸담고 있다가 정년퇴직을 했다. 그는 교육자답게 樹木葬을 유언함으로써 새로운 장례문화를 선도했다. 김장수 할아버지의 樹木葬은 지극히 간단하다. 골회를 한 그루의 나무 주위에 뿌려묻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나무에 ‘김장수 할아버지의 나무’라는 표말이 붙을 뿐이다. 소박해서 자연스럽다. 요 얼마 전에는 한국 TV에서 평범하면서도 멋진 한 사나이를 보게 되어 흐뭇했다. 그 사나이는 자기가 죽어 묻힐 나무를 자기로 손으로 심는 것이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바로 樹木葬을 유언한다. 자기는 죽어 그 나무의 밑거름이 되어 자손들의 쉼터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청명이나 추석이 되어 자손들이 찾아오면 자기가 심고 자기가 묻힌 그 나무 그늘 밑에서 땀을 들이고 쉬며 놀아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의 혼은 기뻐서 웃을 것이다는 것이다.
樹木葬, 落葉歸根의 자연스러움이 있어 좋다. 진실로 인간과 자연이 합일되는 경지를 창출해서 좋다. 그러니 거추장스럽게 火葬을 해서 골회를 추르니 어쩌니 하지 말고 아예 통째로 묻히자. 그래야 나무에도 온전한 밑거름이 된다. 나무에 밑거름이 되어 후대에 乘凉의 놀이터를 마련해주기, 인간세상의 아름다운 릴레이. 그리고 자기가 심은 한 그루의 나무에 귀의하기, 새로 태어나기, 멋지다. 樹木葬,현재까지 우리 인간이 창출한 가장 합리적인 장례문화로 손꼽힌다
인간의 생명은 일반 동물보다는 길데 일반 나무보다는 짧다. 우리가 좋아하는 소나무의 평균수명이 300년 좌우라 할 때 우리 어찌 소나무로 되어 보고 싶지 않으랴! 그래서 ‘백설이 만건곤할 때/독야청청’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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