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1년간의 교환교수노릇도 끝나고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되었다. 떠나가는 이 시각에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나는 서슴치 않고 감 한 알이라고 하련다. 그래 감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기에 나의 뇌리에 똬리를 틀었뇨?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추운 겨울 한국의 시골풍경에 가장 인상적인 것이 바로 이 감 한 알. 예전의 하늬바람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맵짠 찬바람이 쏴 불어대고 나무는 헐벗은 채 몸부림치고 대지는 얼어붙고 사람들 마음도 얼어붙은 삭막한 이 죽음의 계절, 바로 이 감 한 알이 있어 사람들 마음 훈훈해나고 살아난다. 한국에 지천에 널린 과일나무 하면 감나무와 밤나무가 아닌가 한다. 푸른 감이 노란 감으로 변하고 다시 빨간 감으로 변해가는 것이 한국 가을의 진풍경이다. 이 빨간 감을 따서 홍시를 만들고 꽂감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전통적인 한국 겨울철의 주요 과일 먹을거리. 그래서 가을철 빨간 감을 따는 아낙네의 마음은 푸근하다. 그런데 그 먹을거리가 귀했던 전통사회에 있어서 이 감을 따는 데는 불문율이 있었다. 감을 다 따지 않고 몇 알 남겨두는 것이다. 이른바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추운 겨울 먹을거리가 없어 헤매일 까치 같은 날 짐승을 먹을거리로 남겨두는 것이다. 한국의 인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추운 겨울 감 한 알 달리지 않은 앙상한 감나무를 보는 한국 사람의 마음은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불안하다. 이것이 한국인의 정서다.
한국에는 고시레 민속이 있다. 들이나 밭에서 일을 하다가 참을 먹을 때 사람이 먹기 전에 먼저 한 술 떠서 '고시레'하며 들이나 밭의 鬼나 神을 대접했다고 한다. 사실 한국 사람은 전통적으로 鬼神뿐만 아니라 길 가는 나그네도 눈에 띄면 막걸리나 식사를 대접했다. 나는 한국 고대 문학사를 배우면서 방랑시인 김삿갓이 방랑시인으로 남을 수 있는 비결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 비결을 바로 한국 사람들의 감 한 알에서 보았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고 베풀며 더불어 살기, 그래서 共生共存하고 共榮하기, 인간의 자아독존적인 파멸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은 근대화에 성공하면서도 이 감 한 알이 남아 있어 좋다. 산에 자생적으로 나고 떨어지는 밤이나 도토리, 다람쥐들의 밥이란다. 그래서 줏기조차도 저어하는 한국의 인심. 저 산의 짐승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달아주거나 들녘의 뭇 새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뿌려주는 거, 한국의 겨울철의 진풍경의 하나.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을 계기로 고착된 放生문화, 천주교에서 自省과 더불어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을 위한 금식기도... 그리고 구정 같은 큰 명절 때마다 불우이웃돕기성금기부하거나 자연재해가 들었을 때 성금기부하기, 한국의 겨울은 이런 감 한 알이 있어 나기에 퍼그나 훈훈하다.
그 빨갛게 상기된 감 한 알은 시골 할아버지의 넉넉한 마음이런가, 우리 인간의 영원한 포근한 자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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