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다. 누구나 다 공감하는 명제다. 기원 2세기 좌우 조조의「短歌行」‘對酒當歌, 人生幾何? 譬如如朝露...’는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을 은은히 울린다. 나는 한국 트로트 가수 김종환의「백년의 약속」의 ‘우린 백년도 살지 못하고 언젠가 헤어지지만...’하는 가사를 들을 때는 항상 코마루가 찡해 난다. 실로 짧은 인생에 대한 개탄은 문학사에 끊이지 않고 면면히 흘러내려온 영원한 주제의 하나다.
인생은 짧다는 명제로부터 다른 두 상반되는 명제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매 시각을 아끼며 열심히 살자는 명제↔인생은 짧기 때문에 되는 대로 막 살자는 명제. 인생은 이렇게 이율배반적이다.
우리는 이때까지 인생은 짧기 때문에 매 시각을 아끼며 열심히 살자는 명제에 더 공감하며 살아왔다. 나는 이 명제를 +명제로 부르기로 한다. 이 +명제는 사회적 요구에 부합되면서 자연히 우리의 드러난 의식(顯意識)의 가치추구로 되었다. 이에 반해 인생은 짧기 때문에 되는 대로 막 살자는 명제에 대해 우리는 터부시하며 살아왔다. 나는 이 명제를 -명제로 부르기로 한다. 이 -명제는 사회적 요구에 부합되지 못하면서 자연히 우리의 잠재의식(潛意識)속으로 붙박히고 만다. 사실 인간은 +명제만으로 못 산다. 너무 이 명제에만 매어달리면 우리는 살기가 따분해나고 너무 힘들어진다. ‘好人命不長’은 이것에 대한 한 주석이 되겠다. 실제로 ‘鬪私批修’의 극좌 세월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삭막하게 변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가장 대공무사한 사람이 실제로는 가장 自私自利한 사람식의 허위적인 인간을 키웠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정신적 결백증자들을 기웠던가. -명제는 적어도 이런 +명제가 파생시킬 수 있는 역효과를 커버하는 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명제가 획일적이고 조이는 문화라면 -명제는 일탈적이고 푸는 문화이다. 술 한 잔 하고 알딸딸하여 이 세상이 콩 알만 해보이고 내 멋대로 놀아날 때 나는 +명제로 받은 스트레스를 확 풀 수도 있다. 나는 술 한 잔 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의 정신건강상에서도 +명제와 -명제는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 +명제와 -명제의 균형체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다른 한 쪽을 偏廢하면 심신의 병이 생긴다. 나는 이 +명제와 -명제를 상수도와 하수도에 비기고 싶다. 상수도는 드러난 의식처럼 위에 보이는 곳에 있어 사람들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 그러나 하수도는 잠재의식처럼 밑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사람들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상수도, 맑은 물이 나오니 참 좋다. 그렇다 해서 하수도 없이 맑은 물만 흘러 보내도 문제가 된다. 적어도 물난리가 난다. 그리고 상수도의 맑은 물은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쓰면 오물로 되기 십상이다. 하수도가 없을 때 오물로 된 물은 더욱 큰 문제가 된다. 하수도는 적어도 오물을 처리하는 면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와 같은 도리로 -명제는 +명제의 ‘오물’을 처리한다는 의미에서 값지다. 하수도는 하수도로서 바로 이런 ‘오물’을 안고 거침없이 흐르고 처리해야 만이 나름대로의 존재가치를 실현하며 제 구실을 한다. 그리고 이 하수도의 ‘오물’이 정화되어 다시 상수도로 흘러들 수 있는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도 엄존함을 알아야 한다. 실로 하수도가 없는 도시를 상상할 수 없다. 하수도와 상수도의 주고받는, 그리고 돌고 도는 역동적 관계가 +명제와 -명제의 역동적 관계에 다름 아니다. 나는 +명제와 -명제를 또 공기에 비기고 싶다. 공기 없이는 못 사는 줄 누구나 다 안다. 그러면 공기란 어떤 것인가. 사실 우리는 공기 속의 산소 덕에 산다. 그렇다 해서 공기 속에 산소만 있을 때 우리는 산소중독에 걸리어 죽고 만다. 공기 속에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다른 원소도 있어야 한다. 물론 이산화탄소와 같은 다른 원소가 일정량을 초과하면 또한 사람을 질식시킨다. 보다시피 사람을 살리는 산소도 좋고 죽이는 이산화탄소도 좋고 적정량을 확보하고 얽히고설킨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야 만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기가 된다. +명제와 -명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 +명제 혹은 -명제를 극단적으로 추구해서는 인생의 파멸을 가져온다. 그럴진대 우리 인생은 +명제와 -명제가 얽히고설킨 유기적 관계임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제 남는 것은 +명제와 -명제를 적시적소에서 발휘하며 바렌스를 맞춰가는 삶의 지혜문제일 것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회에 해를 주지 않는 전제조건하에서 -명제는 얼마든지 통하고 발휘되어야 할 줄로 안다. 우리 사회는 이런 허용도가 점점 넓어지면서 죽 발전해온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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