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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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낮잠자기 (우상렬83)
2007년 05월 24일 22시 19분  조회:4508  추천:57  작성자: 우상렬

사천성 소재지 성도, 서부 대 개발 중추역의 하나. 나는 무슨 서부대개발이요, 뭐요 하니깐 성 도 사람들 붕붕 뜨서 들볶아치는 갑다 생각했다. 그런데 성도에 도착해서 볼라니깐 여기의 잠풍한 날씨마냥 여기 사람들 조용하다. 나른하게 조용하다. 얼마나 조용한가 하니 낮잠을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잘 자는 사람들이다.   

내가 성도에 제일 처음 오기는 지난 12월말, 한겨울. 물론 한겨울이래야 우리 동북의 겨울  하고는 게임도 안 되는 꽃샘추위 같은 추위. 그런데 나는 사천대학의 하루 출퇴근시간표를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특히 점심 12시부터 오후 2시 30반이라는데 머리가 갸웃해졌다. 적어도 우리보다는 1시간쯤 길다. 점심시간 왜 이리 긴 거야, 하고 그 영문을 알아보니 낮잠 자기 위해서란다. 어, 낮잠 자기~ 한 겨울철에도 낮잠 자기를 공식 출퇴근시간표에서 배려하니 이 아니 신선노름인가?

한번은 2시 30분이 되어 내가 소속된 학과사무실로 일을 보러 갔더니 비서노릇을 하는 아가씨, 아니 아줌마라 해야 더 적절하겠지, 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하~하~, 하품을 하고 앉아있는데 오늘 낮잠을 잘 못 자 피곤하다는 둥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눈에 노란 눈곱이 묻어있는 걸 봐서는 열심히 잤겠는데 말이다.

사실 나도 낮잠 자기다. 아니, 나는 여기에 아침잠자기에 저녁잠자기까지 합해 정말 못 말리는 잠자기다. 나는 아침밥을 먹고 한잠, 저녁밥을 먹고 한잠이니 낮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원래 식곤증이란 것에 약한가봐. 밥만 먹으면 잠이 오니 말이다. 그래서 언제가 병원에를 찾아 갔더니 의사선생님 말쌈이 원래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밥만 먹으면 포만감에 식곤증이란 것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상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때까지 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소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점심때 한잠 재워주는 것이었다. 나는 불쌍하게도 유치원이란 걸 못 다녀봤으니깐 더 행복했을 유치원 때 낮잠 잔 기억 같은 아쉽게도 없다. 그때 책상을 아무렇게나 쭉 이어놓고 담요 한 짝 덮고 자는 것이 하루 학교생활에서 제일 달콤한 시각이다. 그러다가 나의 낮잠 자기는 위 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아니 나이가 들수록 무형의 그 무엇에 빼앗기고 말았다. 고중 때 대학시험을 칠 임박에는 마치 누가 낮잠을 안  자고 밤잠을 적게 자는가에 따라 대학입학의 입낙이 결정된다는 착각 하에 정말 낮잠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냈다. 우리 선생님들이랑 부모들이 정색해서 하시는 말쌈이 잠을 적게 자는 놈이 대학입학이란다. 그러니 점심밥을 먹고 밀려오는 식곤증에 눈을 비비고 잡아 뜯으며 싸움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깜박 머리를 책상에 처박고 한잠 자고는 머리가 개운해지기는커녕 자서는 안 될 잠을 잔 죄책감에 그만 머리가 띵 해나기만 한다.

정말 고중 때 낮잠 안자고 공부해서 그런지 대학에는 겨우 붙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숨 훌 쉬면서 그 자고픈 낮잠을 푹 자자고 맹세했다. 그런데 이것이 또 개맹세될 줄이야! 내가 대학을 입학한 1980년대 벽두에는 전국이 4개현대화를 실현한다고 야단법석을 피울 때다. 그때 세계 선진국 일주를 시찰하고 돌아온 어마어마한 분들이 쩍 하면 하는 소리가 왜 선진국이 발전했는지 아오, 그 사람들은 낮잠을 안잔다 말이요. 우리가 낮잠을 잘 때 그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으니. 그때 내가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아주 존중하는 한 조선족의 거목도 한다는 소리가 꼭 이런 소리다. 그래서 나는 낮잠공포증에 걸렸다. 4개현대화를 위해서는 낮잠 자서는 안 된다. 낮잠 자면 개새끼. 이것이 나의 신조였다. 그래서 나는 또 지겨운 낮잠 자기와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대학교시절은 그래도 나의 주체사상이 확고하게 서 가던 시기였다. 그래서 낮잠 자기와 한참 싸움을 하다가 4개현대화고 무어고 60점 만세에 낮잠이 오면 오~ 왔냐? 반갑다하고 한잠 푹 자기. 사실 나는 낮잠을 자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대학교 때부터 나의 낮잠자기는 굳어진 습관으로 되었다. 내가 낮잠을 잘 자서 그런지 그래도 대학을 원만히 졸업하고 연구생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나의 이 낮잠 자기는 박사공부한답시고 한국에 유학가면서 흐지부지해지고 말았다. 한국은 이른바 현대화사회라는 것이다. 사람들 무엇이 바쁜지 종종 걸음들이다. 낮잠 잘 시간도 없어 사람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는 꺼벅꺼벅 잘들 존다. 쯔~쯔~, 불쌍한 사람들. 낮잠 잘 시간도 없다니. 나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좀 지날라니 내가 그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낮잠을 자자니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모두들 안자는 분위기가 나를 기죽이고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저 사람들 안자고 어떻게 견디나 했더니 커피를 뽑아 훌쭉훌쭉 마시며 정신을 차린단다. 그래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나도 훌쭉훌쭉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정신이 좀 맑아지는 듯 했다. 그런데 그놈 커피 많이 마시면 억지로 낮잠귀신은 몰아내되 코카인 중독에 속이 망가진단다. 그래서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다시 낮잠이 오면 오~ 왔냐? 반갑다, 한잠 자자이다. 마치 그립던 연인을 만난 듯이 말이다. 그때 나는 은근히 한국친구들로부터 저 봐, 중국 사람들은 저렇게 낮잠을 자니깐 못 살지 하는 눈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아, 네월아~ 나의 낮잠은 그 모양 그 대로.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낮잠효용론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낮잠자기거부종주국인 미국에서 어떤 대단한 신경과학가의 연구에 의하면 점심식사 후 한잠 자는 것은 몸에 그렇게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거저 약 10분간을 눈을 감았다 뜨도 그렇게 좋단다. 그러기에 차 운전할 때 식곤증이 올 때는 갓길에 들어서 한잠 자라는 것이다. 고속도로 갓길이 낮잠자기장소로 둔갑하는 순간. 송이송이 해바라기 미국을 따라가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낮잠자기에 대한 시각교정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약삭 바른 일본에서 화이트칼라들의 점심낮잠자기를 곁들인 휴게소들이 성업 중이란다. 점심 밥 먹고 곧바로 가까운 휴게소로 달려가 국부마사지나  받으며 눈 지긋이 감고 낮잠 흉내 내기가 가장 행복한 시각이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나는 낮잠옹호론자고 만세론 자인 것 같다. 천하 낮잠 없이는 못살 것 같으니 말이다. 여자, 애인은 없어도 살겠는데 말이다. 낮잠 한번 자고 나면 그렇게 정신이 거뿐하기로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사천성 성도에 오니 눈꼴사납고 꼴 볼견이 많다. 그런데 유독 세월아, 네월아~ 낮잠 잘  자는 내 친구들이 많아서 좋다. 나랑 어느새 친구가 되어버린 四川辣妹의 말이 재미있다. 자기는 여름이 무더우면 무더울수록 좋은데 그때 낮잠이 제일 달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세월아, 네월아~ 여름아 빨리 오너라하고 애인을 기다리듯이 기다린단다. 그리고 자기는 낮잠을 많이 자야 미녀가 된단다. 四川辣妹뿐이 아니고 여하튼 성도는 세월아, 네월아~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낮잠 없이는 하루의 즐거움을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성도는 休閑城市란다. 그래서 그들은 서부대개발이니 뭐요 하며 현대화요 뭐요 하며 낮잠을 빼앗아갈 가봐 은근히 두려워하는 듯도 하다. 사실 서부대개발이요, 현대화요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복된 삶을 위해서다. 점심밥을 먹고 나면 식곤증이 오는 것, 그래서 한 잠 자고 나면 거뿐한 거, 행복한 거…이것도 인간의 조그마하나마 복된 삶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잠이 오면 자는 거, 억지로 커피니 뭐로 부산을 피우지 말고 한잠 자는 것이 자연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사는 만병통치약이다. 그러니 세월아, 네월아~ 낮잠 잘  자는 우리 족속들, 할 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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