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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콤플렉스 (우상렬95)
2007년 10월 20일 09시 46분  조회:4460  추천:47  작성자: 우상렬

만세콤플렉스

우상렬


노무현 대통령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만세, 만세, 만만세 소리가 아직도 귀전에 쟁쟁하다. 또 한 번 조선은 참 만세를 잘 부른다는 감이 들었다. 사실 조선만의 얘기가 아니고 한국도 만세를 잘 부른다는 감이 든다. 만세 3창이 아닌가.

여하튼 우리 민족은 만세를 잘 부른다. 나는 우리 민족에게 만세콤플렉스가 있다는 감이 들었다. 만세를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콤플렉스.

우리 민족은 옛날 동북아세아의 광활한 지역을 무대로 활약한 줄로 안다. 기마민족 고구려의 호령소리와 날랜 말발굽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그러다가 역사는 돌고 돌아 그 호령소리와 말발굽 소리는 저 멀리로 비껴가기만 하고. 부여, 국내성, 평양으로의 고구려 수도 천도는 어쩔 수 없이 행해진 축소일로에 다름 아니다.
 
고구려의 멸망과 더불어 우리네 역사는 반도 속에 꼴깍 갇힌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구려는 하나의 가실 수 없는 아, 고구려의 恨으로 남는다.

그러다가 역사는 또 돌고 돌아 근, 현대에 들어서면서 북으로는 러시아, 동으로는 왜, 서로는 청, 하는 식으로 죄여오는 대국들의 등쌀에 숨 쉬기 조차 힘든 형국이 되고 만다. 결국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역사는 또 돌고 돌아 겨우 명맥을 유지했는데 대국의 틈서리에서 숨 쉬기 힘들기는 마찬가지. 현재도 그 형국은 마찬가지.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약소민족, 주변의 대국들이 못 살게 구는 약소민족. 살아남기가 바쁘다. 반만년 역사에 그렇게 많은 동이족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되 우리가 살아남은 것만도 기적이다, 기적. 감사할 일. 그런데 앞으로도 살아남을 일, 좀 유식한 말로 하면 민족, 국가의 생사존망이 가장 큰 이슈다. 대국의 그 틈바구니 속에서. 그래서 일단 悲願 하나가 생겨난다-우리나라 만세! 이것이 만세콤플렉스로 자리한다.

대한제국 만세! 그리고 3.1운동 때의 만세소리, 8.15광복 때의 만세소리가 바로 만세콤플렉스의 발산. 이 悲願, 이 만세콤플렉스는 國歌까지도 애국가라 불러야 직성이 풀린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길이 보전하세’ 여기서는 만세콤플렉스가 ‘길이길이’의 영원함으로 승화된다. 여기에 ‘하느님이 보호하사’가 업그레이드될 때 만세콤플렉스는 확실하게 확 풀린다.

우리는 고구려가 꺾이면서 천여 년의 역사에서 대국의 속국으로 많이 전락되어 왔다. 신라는 당을 섬겨왔고 고려는 송, 원을 섬겨왔고 조선조는 명, 청을 섬겨왔다. 이른바 사대외교를 해왔다. 대국의 임금은 황제고 우리는 왕밖에 안 된다.대국 황제 자리 뒤에는 용 도안이 새겨지지만 우리 왕 뒤에는 봉황 도안밖에 새겨지지 못한다. 그러니 머리를 조아리며 조공을 해왔다. 대국 황제는 만세고 우리 왕은 천세다. 만세 소리 한 번 못 듣는 우리 임금 불상도 하지. 우리네 백성들 한 맺힌다. 자기도 모르게 쌓이는 만세콤플렉스. 그러다가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 및 고종의 황제 선언은 우리의 이 만세콤플렉스를 한방에 확 날려버린다.

그런데 好景不長이라 일제가 대한제국을 밀어내고 새롭게 군림한다. 이에 새롭게 쌓이는 것은 만세콤플렉스.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이여, 부를 수도 없는 그 이름이여. 산산이 조각난 그 이름이여... 그러다가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등장하는 조선의 수령, 만세, 만세, 만만세! 우리의 만세콤플렉스를 마음껏 발산한다. 우리에게도 만세로 통하는 수령이 있다. 우리도 러시아의 ‘우라’나 중국의 萬歲와 동등하게, 아니 그것보다 더 크게 부를 수 있다. 만세, 만세에 만만세다! 기분은 한 없이 붕 뜬다. 여기에 가족적인 분위기의 어버이가 가미되니 만세, 만세, 만만세가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고 감정적 승화를 가져오며 그 도가 배가 된다. 그래서 눈물범벅이 되어서도 만세, 만세다. 금상첨화 격이니 그럴 수밖에.

이래저래 우리에게는 만세콤플렉스가 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발산 차원이 아니고 통일을 이루고 민족의 집결점을 이루며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에너지로 승화시킬 때다.

2007.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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