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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상렬
내가 조선에 실습교원으로 있을 때다. 하루는 모모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로동신문』을 쫙쫙 잡아 찢었다. 곧바로 고발이 들어갔다. 그 유학생은 안전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왜서 신성한『로동신문』을 찢었는가 하는 질문에 그 친구 대답이 참 재미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과 자기네 나라 대표단이 만나는 뉴스를 보도하는데 굳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로 표현했기 때문에 반발한 것이다고 했다. 그 친구 말 들어보니 그럴 듯 했다. 확실히 조선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이 외국 대표단을 만날 때는 꼭 신문이나 라디오, TV 같은 매체에서 ‘만나주셨습니다’로 표현한다. 어디까지나 위대한 장군님이 주체이니 만나주고 안 주고는 전적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의사에 달렸다. 그러니 만나주는 것은 하나의 대단한 恩典에 다름 아니다. 감지덕지해야 할 일, 이러루한 의미로 풀이가 되겠다. 그러니 그 유학생이 반발도 할 만 하다. 자기네 나라 대표단을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유학생 조선말을 참 잘 배운 모범생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유학생 소속국 대사관에서는 그 유학생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래서 그 ‘만나주셨습니다’ 사건은 유야무야 희미작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럼 왜 굳이 ‘만나주셨습니다’가? 그것은 극단적인 색채가 없지 않아 있지만 수령의 주체적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임금들이 전통적으로 이 눈치 저 눈치 보기에 바쁜데 우리의 수령은 당당한 주인이 되어 척 앉아 있는다. 그러면 다른 나라 대표들이 만나주시기를 바라며 너도나도 찾아뵙는다... 인민들이 보기에 얼마나 당당하고 주체적인 우리의 수령이냐! 그런 식이다.
그렇다. 내가 언젠가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에 갔다가 본 김일성이 즉흥시로 읊었다는「묘향산 가을날에」라는 시 한 수가 떠올랐다.
로대 위에 올라서니 천하절승 예로구나
묘향산 절경이야 태고부터 있는 것을
전람관 여기 솟아 푸른 추녀 나래 펴니
민족의 존엄 빛나 비로봉 더욱 높네
만산에 붉은 단풍 가을마다 붉었으리
노동당 새 시대에 해빛도 찬란하니
단풍도 고와라 더욱 붉게 물들면서
산천에 수 놓누나 이 나라 새 역사를
사대로 망국으로 수난도 많던 땅에
온 세계 친선사절 구름같이 찾아 든다
5천년 역사국에 처음 꽃 핀 이 자랑을
금수강산 더불어 후손만대 물려주리
이 시는 제목이 ‘묘향산 가을날에’이지만 실은 묘향산 가을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醉翁之意不在酒. 이 시에서 김일성은 묘향산 가을날을 빌려 외국 정상이나 사절 및 저명인사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선물한 물건들을 전시한 국제친선전람관의 상징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를테면 옛날에 우리가 사대로 남에게 갖다 바치기만 했다면 오늘은 우리도 당당히 남이 갖다 바치는 것을 받는 반만년 역사에 있어서의 새 시대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5천년 역사국에 처음 꽃 핀 이 자랑을’거늘! 순화되고 세련된 말로 다듬어진 마지막 단락의 ‘온 세계 친선사절 구름같이 찾아 든다’는 바로 이러한 뜻을 한 번 더 코멘트하는 詩眼. 이 시에서 김일성은 ‘민족의 존엄을 빛내’고 ‘이 나라 새 역사를’ 이끄는 조선 현시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일국의 수령으로서의 기개가 잘 나타나 있다 하겠다.
물론 유아독존이나 자아중심의 극단으로 흘러서는 안 되겠지만 인간은 주체적인 모습이 없어서는 안 된다. 주체와 객체의 바란스와 텐션을 잘 이루어나갈 때 인간이든 정치든 제대로 설 줄로 안다.
2007.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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