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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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콤플렉스
2009년 02월 24일 16시 25분  조회:4608  추천:57  작성자: 우상렬
그래 이 세상에 발표하지 않기 위해 창작하는 글쓰기가 있단 말인가? 없다. 인간은 대개 발표콤플렉스에 놀아나기 때문이다. 쓰지 않고는 손이 건질건질해서 못 견디는, 발표하지 않고는 막달이 다 찬 애기를 낳지 않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고 이상한 것, 이런 것들이 심층적인 무의식속의 발표콤플렉스의 증후군.  

인간에게는 분명 발표욕이 있다. 발표욕은 일반적인 표현욕하고는 좀 다르다. 일반 표현욕이 자연상태의 제멋대로의 것이다면 발표욕은 좀 세련된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것도 하나의 표현욕의 발산으로 볼 수 있다면 발표욕은 이런 제멋대로의 수다를 정제하고 적어도 진, 선, 미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발표욕이 분명 웃음은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드는 무의식적 표현욕을 기저에 깔고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발표욕을 충분히 긍정받을 때 인간의 심신은 건강해진다. 나는 소학교 때 선생님께서 전반 학생들 앞에서 나의 작문을 읽어줄 때 기분이 얼마나 붕 뜻는지 몰랐다. 온 하루가 내 세상 같았다. 그래서 세계 개명된 나라는 모두 언론자유, 출판자유를 보장하고 있는가보다.

인간은 이런 발표욕이 억압당할 때 이른바 발표콤플렉스가 생긴다. 이런 발표콤플렉스는 이제 갓 문학을 시작한 문학지망생들에게서 많이 보게 된다. 발표를 못 해서 안달을 하는 그런 콤플렉스말이다. 지난 ‘80년대 초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우리 반의 많은 친구들은 문학에 열광했다. 그때 우리 학부에서 학생들 스스로 꾸리는 ‘종소리’라는 팜플렛잡지에 짧막한 시 한편 발표했을 때도 우리는 좋아서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위로 들뛰고 땅이 넓은 줄 모르고 가로 휘저으며 지랄발광을 했다. 어쩌다가 정식잡지에 게딱지만한 작품 하나 발표하면 전반이 떠들썩해난다. 야, 누구 어디에 뭐 발표했단다, 부러워 침이 질질 흘릴 정도다. 여기에 보너스로 원고료라도 받아 술 한 잔 내면 그것은 온통 잔치 기분이다. 처녀동지들은 작품 발표한 남성 총각동지들을 잘 나고 못 나고를 떠나 은근히 점찍어 두기도 한다. 전도유망한 젊은이니깐. 그때 정말 우리 반에 별 볼 일 없는 한 친구가 우연히 단편소설 한 편 발표한 덕에 아래 반 멋진 처녀동지의 프로포즈를 받아 입이 한발만 해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그때 그 친구가 얼마나 미워났는지 몰랐다. 아니, 쥐꼬리만한 작품 하나 발표 못하는 내 주제가 미워났다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필만 쥐면 일필휘지식으로 내리엮는 족족 인쇄화되어 발표를 식은 죽 먹기로 하는 문학천재들을 은근히 질투의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아직 발표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봐.

이런 발표콤플렉스는 상당히 큰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한다. 삼엄한 문학대혁명시기 八大樣板戱만 횡행. 작가들의 발표욕을 일거에 묵살. 발표콤플렉스가 그 어느 때보다도 쌓이고 쌓였던 시기. 그것은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 아니, 압박이 있으면 반항이 있는 법으로 수시로 폭발할 수 있는 하나의 활화산이기도 했다. 그래서 잠재창작이란 문학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이 잠재창작이란 바로 심층적인 무의식적 동기에서는 발표콤플렉스가 분출된 것임에 틀림없다. 보다시피 발표콤플렉스는 일종 목숨을 건 창작으로 내몰기도 한다. 김학철의 <20세기 신화>를 좀 보자. 당시 김학철은 억울하게 ‘우파’분자로 인생을 다 ‘조졌다.’ 창작자유를 박탈당했다. 마음속에 만강의 분노가 태동친다. 발표콤플렉스도 용솟음친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술에 걸린 듯 미친듯이 놀아난다. 이에 김학철은 <20세기 신화>를 쓴다. 그 미몽을 깨치고 신화를 부시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20세기 신화>는 발표할 수 없었다. 김학철은 자기 스스로에게만 ‘발표’하고만 셈이 되었다. 속이 얼마간 후련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성차지 않았다. 체증에 걸린 것 같다. 만 천하에 발표하는 것만이 그 체증이 풀릴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일본말로 창작을 시작. 일본으로 반출해 발표할 타산. 그러다가 이것도 무산되고 작가는 심한 고역을 겪게 되며 결국 작품을 창작해서 30여년이 지나 한국에서 빛을 보게 된다. 이 발표도 작가의 비상한 각오를 전제로 한 것이였다. 보다시피 한 작가에게 있어서 발표는 이렇게 중요하고 집요한 것이다.

그럼 왜서 인간은 발표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가? 사실 글은 의식적인 현실차원에서 무슨 經國의 大事요, 立身揚名의 방편이 되기도 하겠지만 무의식적인 심층차원에서는 글쓴이 그 자신의 대상화, 제2의 나를 만드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이로써 ‘나’는 갈지라도 글은 ‘나’ 대신 이 세상에 영원히 남아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文章之不朽之盛事라는 것이 되겠다.

그런데 그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듯한 아픔 그 자체다. 어머니들이 자식 낳이를 하는 것과 꼭 같다. 그래서 어머니들에게 있어서 미운 자식 하나 없듯이 작가에게 있어서 자기 작품 우습게 보는 사람 없다. 다들 자기 작품을 갓난아기처럼 애지중지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단 발표되면 내 스스로가 사회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긍정을 받는 희열을 맛보게 된다. 여기에 긍정적인 여론이나 평론이 가미될 때 그 희열이 걷잡을 수 없이 배가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발표는 바로 이런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발표콤플렉스에 놀아날 때 발표만 하면 되는 식으로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코 꿰인 송아지처럼 전적으로 편집의사에 끌려 다니는 경우가 많다. 대개 문학지망생과 같은 햇내기들이 이렇다. 나도 아직 여기에서 못벗어났다. 발표콤플렉스에 놀아난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나 대가들, 김학철과 같은 대가들은 이렇지 않다. 그들은 자기들이 쓴 글의 토씨 하나 다칠세라 온전한 면모로 발표되기를 주장한다. 워낙 그들은 발표콤플렉스에서 벗어났고 일반편집들보다 레벨이 높음에라!

진정한 발표는 바로 이런 대가들처럼 발표콤플렉스를 벗어난 발표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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