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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라 올라라 어여차 비상천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8월12일 09시10분    조회: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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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널뛰기와 그네뀌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조선족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자치주 창립 69돐을 맞아 민속원에서 열린 민속운동대회에서 그네뛰기를 하고 있는 지춘란과 양옥단.


쿵쿵 뛰여라

한키 두키 솟거라

들에 가신 어머니

빤히 빤히 보이게

쿵쿵 뛰여라

구름 만큼 솟아라

강을 건너 산 넘어

고향 산천 보이게


1956년에 수집된 민요 <널뛰기>이다.

나무판자를 힘차게 구르자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몸에 금세 날개가 돋는다. 빨간 치마자락이 바람결에 부푼다. 가슴에 단 노리개가 해볕에 반짝인다.

이들은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경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높은 하늘을 만긱하게끔 도와주는 한팀이다.

1999년에 북경에서 열린 제6회 전국소수민족전통종목경기대회에서 17살 난 지춘란은 널뛰기 표현경기에서 금상을 받아안았다.

1998년, 9.3명절을 맞아 열린 운동대회에서 널뛰기를 하는 지춘란(왼쪽 선수).


손 닿으면 파란 물감 묻을 듯한 파아란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올랐다가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와 쑤욱 가라앉는 오감 짜릿한 전률, 지춘란은 지금도 널판 우를 떠나지 않고 있다.

“시집갈 준비 끝!”

어린 지춘란의 당찬 웨침이 늘 마을을 울렸었다. 해마다 단오명절, 9.3명절이면 지역 대회를 휩쓸며 우승상금으로 전자레인지며 세탁기며 랭장고, 자전거 등을 챙긴 그녀는 널뛰기로 시집갈 준비를 마쳤다.

우승상금은 그녀에게 단순한 상금 그 이상이였다. 꿈에 그리던 가전제품들을 하나씩 장만했고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누비며 활기찬 나날을 보냈다.

지춘란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를 준비하던 와중인 열둬서너살 때 3대 전승자인 스승 박철호와 연이 닿으면서 널뛰기를 시작했다. 추락으로 인한 부상위험도 잇달았지만 어린 나이에 당차고 끈기 있었던 지춘란은 널뛰기를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1999년과 2003년에 전국소수민족운동회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조선족을 대표해 국가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민족의 꽃’ 영예를 받아안았다.

그리고 19살부터 연길시청소년과외체육운동학교에서 널뛰기를 가르치며  널뛰기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다. 지금 그녀가 키워낸 선수들이 전국 무대에서 금상을 따내며 화려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지금 널뛰기 종목의 주요 보존단위는 연길시청소년과외체육운동학교이고 대표적인 기능보유자는 성급 전승인으로 있는 제4대 전승자 지춘란이다.

왜 널을 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녀성들이 ‘세상 구경을 하려고 널을 뛰였다’, ‘시집가 아이를 잘 낳기 위해서이다’, ‘귀신을 쫓으려고 널을 뛰였다’ 등의 이야기가 많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증할 만한 자료가 없지만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봉건륜리도덕의 구속으로 인해 부녀자들은 자유로운 외출이 불가능했다. 집안에만 갇혀 생활하는 부인들의 답답함, 담장 너머 사모하는 총각을 보고 싶은 처녀들의 마음, 자신의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싶은 욕망 등이 뒤섞여 녀인들이 널을 뛰였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널을 뛰기 시작했는지 그 시작도 분명하지 않다. 문헌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10세기 전부터 전승되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옛 문헌 《경도잡지》에는 “항간의 부녀자들이 흰 널조각을 짚단 우에 가로로 걸쳐놓고 량쪽 끝에 갈라서서 굴러 뛰는데 그 높이가 몇자씩 올라간다. 그때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서 떨어져나가는 것으로 락을 삼으니 이를 초판희라고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단오명절을 맞아 연길에서 열린 그네뛰기 대회.


씨름, 그네뛰기와 함께 널뛰기는 우리 지역에서 단오, 추석 명절 때마다 꼭 진행되는 민속놀이이다.

훈춘시 《체육지》의 기재에 따르면 훈춘지역에서는 1938년과 1940년 단오절에 씨름, 그네와 함께 널뛰기 경기도 했다. 20세기 50년대까지 조선족집거지역에서는 전통적인 널뛰기를 그대로 이어왔으며 정초나 단오절, 추석이면 그네뛰기와 함께 널뛰기가 반드시 행해졌다. 해방 이후 특히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창립된 후 해마다 9.3명절이 되면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 경기가 펼쳐졌다.

널뛰기를 보급하기 위해 우리 지역에서는 1984년부터 중소학교 학생들이 널뛰기 운동에 참여할 것을 제창했다. 룡정시 조양천진제1중학교, 훈춘시제5중학교 등 학교들에서 그네, 널뛰기 팀을 구성하고 민족 운동회나 경기대회에 선수를 파견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연변체육운동위원회와 주민정국의 후원으로 룡정시 조양천진제1중학교에 그네와 널뛰기 선수를 양성하는 체육학교를 세우고 4년마다 열리는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경기대회에서 길림성 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열린 널뛰기 대회로는 1984년에 도문시에서 제1회 전 주 중소학교 널뛰기 대회와 1989년의 룡정시 조양천진 제4회 조선족전통체육종목운동회가 열렸고 1996년 9.3명절에는 당시 모아산기슭에 자리잡은 조선족민속원에서 조선족민속체육경기대회가 열렸는데 널뛰기와 그네뛰기 종목에 전 주 8개 현(시) 대표팀의 56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널뛰기와 함께 꼭 등장하는 민속놀이가 그네뛰기이다.

1987년 9월에 있은 제12차 전 주 체육경기의 그네방울차기 결승경기는 환호소리로 가득차있었다. 그 전해인 1986년에 정식으로 전국 소수민족운동회의 지정 경기종목으로 된 터라 그해 그네뛰기대회는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9월 4일 오후, 연길시인민경기장에서 열린 그네뛰기 결승경기에는 모두 14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그때 인기를 끌었던 선수들중 한 사람은 전영옥 선수였다. 1984년 전 주 운동회 그네뛰기 시합에서 결승경기에 올랐고 이번 대회에서는 방울 60개를 차면서 앞자리를 노렸다. 그 뒤로 변련희 선수가 그네에 올라타자 경기장은 이내 뜨거운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변련희는 이미 성, 주, 시 운동회에서 등수에 오르며 재봉침 2대, 세탁기, 텔레비죤, 손목시계, 라지오 등 우승상품을 받은 적 있고 우리 주를 대표하여 신강에서 열린 전국소수민족운동회에도 참가했던 실력파 선수였다. 이번 경기에서 변련희는 10분 동안에 련속 82번이나 방울을 찼다. 이어 나선 선수는 룡정에서 온 리영 선수였다. 소매 짧은 노란 저고리에 무릎 우까지 오는 짧은 분홍색 치마를 입은 리영은 아직 애티가 가시지 않은 조양천1중의 학생이였다. 리영은 13번째 만에 방울을 차기 시작하였고 66개를 차면서 이날 전영옥을 제치고 2등을 차지했다.

이튿날 9월 5일에는 높이를 비기는 것으로 마지막단계 경기가 펼쳐졌다. 5.2메터의 높이부터 시작했는데 6.60메터 선에 와선 많은 선수들이 미끄러지고 리영, 변련희, 전영옥, 박선애, 리영복 5명의 선수가 남았다. 그 후 방울은 7.50메터까지 올렸고 경기 결과 높이뛰기 종목에서 변련희 선수가 1등을 하고 우승상품 세탁기를 받아안았다. 그 뒤를 리영 선수가 이었고 우승상품 재봉침을 받았다.

오랜 시간 그렇게 그네터는 마을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인기를 끌면서 옛날은 물론이고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사랑이 시작되는 곳으로 자주 등장했다.

그 옛날, 새벽안개가 걷히고 따스한 해살이 내리쬐는 마을, 옥색치마에 금박 물린 댕기는 아니더라도 치마자락과 저고리 고름을 바람에 나부끼며 그네 타는 처녀를 바라보는 총각들의 마음은 싱숭생숭 들뜨고 가슴은 콩닥콩닥 뛰였다.

아름다운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창공을 차고 나는 춘향의 자태에 반한 리몽룡의 운명적인 사랑도 그네터에서 시작됐다.

허리띠 질끈 묶고 머리수건 동여매고 발 굴러 그네를 차고 오르니 반쯤은 신선이 되는 기분을 느꼈을 녀인들, 밖으로 나들이를 못하고 가사에 시달리던 옛날 녀인들은 단오절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며 희로애락을 나눴다.

그네는 지방에 따라서 ‘굴리’, ‘근디’, ‘홀기’라고 불렀다. 그네뛰기의 시작도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중 외래설과 재래설이 가장 지배적이다.

외래설은 그네뛰기는 원래 중국 북방민족의 놀이였는데 춘추전국시기에 제나라에 의해 중원지역에 전파되였고 당나라시기에 조선반도로 전파되였다고 한다. 중국내 학술계에서도 두가지 주장이 존재하는데 한가지는 그네뛰기는 원래 하북성 동쪽에 위치한 산융이란 곳의 북방민족이 민첩한 몸놀림을 익히기 위한 놀이였으며 제환공이 집권하던 시기에 중원에 전파된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한가지는 그네뛰기는 한무제시기에 궁중에서 놀던 오락이라고 한다.

재래설은 그네뛰기는 조선반도에서 행하던 놀이인데 고조선시기에 이미 있었고 고구려시기에는 단오명절에 그네뛰기를 하였다고 한다. 그네뛰기가 어떻게 기원되였는지를 막론하고 예로부터 조선족의 전통민속놀이임에는 틀림이 없다.

“제6회 전국소수민족전통경기대회서 금메달 4개, 은메달 4개를 땄습니다. 지난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모두 놓쳤던 아쉬움은 털었으나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하나를 그만 놓쳐버려 너무 아쉽습니다.”

이는 당시 널뛰기와 그네뛰기 지도교원으로 있었던 제3대 대표적인 기능보유자 박철호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네뛰기가 전국소수민족전통경기대회 정식 경기종목으로 지정된 후 연변에서는 룡정1중과 조양천1중에서 시험적으로 민족 전통종목인 그네와 널뛰기를 개설했다. 하지만 당시 지도교원으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때 연변대학 체육학부를 졸업하고 조양천제1중학교에서 체조팀을 맡고 있던 박철호 교원이 선뜻이 그네와 널뛰기 지도를 맡아나섰다.

“그때 학교에서 낡은 교실을 내주어 훈련에 사용하게 됐는데 천정높이가 되지 않아 땅바닥을 파내고 널뛰기 고정대를 앉혔습니다. 겉으로 기초돌들이 들쑹날쑹 드러나 내려다보기조차 무서웠으니 아이들이야 오죽 무서웠겠습니까…”

박철호는 그때 룡정시 동성용에서 널뛰기로 소문난 한 부녀를 청해와 널뛰기 동작을 배우면서 요령을 모색해냈다고 한다. 그리고 제3회 전국소수민족전통경기대회에서 그네, 널뛰기 지도를 맡았던 현성범 감독을 찾아가 물으면서 훈련체계를 세웠다.

그의 노력으로 조양천제1중학교팀은 1987년부터 해마다 펼쳐진 전 주 중소학교 그네, 널뛰기 경기대회에서 늘 금메달을 땄고 1991년에 펼쳐진 제4회 전국소수민족전통경기대회에 참가해 그네뛰기 종목에서 금메달 2개를 안아왔다.

박철호의 제자인 지춘란 선수는 “선생님 덕분에 널뛰기와 그네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리론체계도 선생님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20세기 20년대초부터 그네뛰기를 전통체육경기종목으로 지정하여 거의 해마다 대회를 치러왔다. 1930년 5월 14일에 녀성단체인 룡정근우회에서 창의서를 제출하여 6월 2일 즉 단오날에 룡정 대성학교 운동장에서 그네뛰기 대회가 열렸는데 룡정의 김정숙이 1등을 하고 동흥촌의 박련숙이 2등을 했다고 한다. 그 후 1935년 9월 7일에 있은 연길지역 운동대회에서도 그네뛰기는 중요한 운동종목으로 지정되였으며 당시에는 높이 뛰는 것으로 승부를 갈랐다. 이해에는 김봉순이 38.1자 높이로, 김춘옥이 34.2자 높이로, 오순행이 33자 높이로 1, 2, 3등을 가렸다고 한다.

해방 이후 민족체육은 빠르게 발전했고 그네는 민간의 민속놀이에서 정식  민속체육종목으로 자리를 굳혔다. 1953년 11월에 천진시에서 전국 민족형식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그네뛰기는 표현종목으로 경기에 나섰다. 1975년에 북경에서 제3회 전국 여름철 체육운동대회가 열렸는데 연변에서 파견한 녀성선수들은 조선족의 그네뛰기와 널뛰기 경기를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여 2006년에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른다.

현재 그네뛰기의 보존단위 역시 연길시청소년과외체육운동학교이고 대표적인 기능보유자는 성급 전승인으로 있는 지춘란과 주급 전승인으로 있는 양옥단이다.

연변대학 체육학원에서 그네뛰기와 널뛰기를 가르치고 있는 양옥단은 2011년에 전국소수민족운동대회에서 그네뛰기 은상을, 2025년에 전국소수민족운동대회에서 은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그네에 오르는 순간에는 모든 고민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마치 하늘을 나는 한마리 새가 되는 기분입니다. 그네는 단순한 민속놀이 의미를 넘어 우리의 전통과 문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조선족집거지역에서 그네뛰기를 내용으로 류행되던 민요 <그네노래>가 있다.


밀어야 휘영

굴러라 훨훨

앞산이 건듯

뒤강이 넘실

갔다 왔다

올렸다 내렸다

제비 한쌍

소리개 한쌍

로송나무 흔들

바람개비 후얼

치마꼬리 훨훨

댕기꼬리 훨훨

굴러라 올라라

어여차 비상천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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