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리현 행수조선족향 금강촌을 찾아서
지난 7월말, 벌리현조선족중학교 김규환교장, 벌리현 신화서점 박성호부경리의 안내로 벌리현 행수조선족향 금강촌을 찾았다.
벌리현성에서 40여분을 달려서 벌리현 행수조선족향 금강촌에 들어서자 마을외곽에 자리잡은 대형 입쌀가공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입쌀가공기업이 발빠르게 조선족마을의 입쌀가공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들어선 것일가라는 선입견에 물었더니 금강촌의 성민위 지원 프로젝트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외딴 곳에서 어떻게 성민위 지원 프로젝트를 쟁취했는가 라는 궁금증을 안고 금강촌사무실을 찾았다.
작고 아담한 금강촌사무실에서 리동춘(47) 촌주임 겸 당지부서기, 왕도평(36) 회계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작달막한 키에 다부지게 생긴 리동춘 당지부서기의 언행에서 짧은 대화였지만 고향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수가 있었다. 금강촌의 력사와 현재, 미래를 얼음우에 표주박 밀듯 술술 내리 읊는 리동춘당지부서기의 모습에 금방 빨려들었다. 멀리 사천성에서 조선족남편을 만나 이곳에 왔다는 왕도평회계는 조선족마을의 며느리답게 우리말도 알아듣고 간단한 대화도 가능하다고 하니 친근하게 느껴졌다.
소개에 따르면 금강촌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되던 1949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화남현 등지의 이주호들과 벌리현 산하 조선족마을의 농가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마을이여서 력사가 상대적으로 짧다고 했다. 린근의 동명촌과 합병한 금강촌의 호적 농가는 289호, 인구는 709명에 달하며 촌 관할면적은 4.43평방킬로미터, 경작지면적은 6204무에 달하는데 그중 94%가 수전이다. 금강촌도 여느 조선족마을처럼 해외로무, 대도시진출로 인해 현재 마을에 상주하는 농가는 45호, 인구는 84명에 불과하다. 촌민 382명이 한국이나 대도시에서 로무에 종사하고 있으며 60세 이상 촌민이 264명에 달해 금강촌의 고령화현상도 심각했다.
2021년부터 촌주임 겸 촌당지부서기를 담임했다는 리동춘당지부서기는 일찍 아르헨티나, 한국 등 해외에서 로무를 하고 국내의 청도 등 지역에서 장사를 하다가 귀향하여 촌민들과 상급부문의 신임으로 중책을 맡게 되였다고 했다.
현재 대부분의 조선족촌들에서 토지를 타민족에게 양도하고 농사를 짓는 농가가 적은 실정이지만 금강촌만은 력대로 내려오며 석청룡, 강송군 등 당시 촌간부들이 앞장서서 본촌의 토지를 도급맡아 규모화, 기계화 농사를 견지해온 조선족마을로서 벌리현은 물론 칠대하시에도 벼생산 전업촌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리동춘당지부서기는 이러한 선배들이 다져온 훌륭한 기초를 어떻게 하면 더욱 빛을 발하게 할수 있을가를 고민하며 벌리현, 칠대하시, 흑룡강성의 해당부문을 찾아다니며 지원 프로젝트를 쟁취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벼농사특색마을건설이란 비전으로 흑룡강성민족사무위원회의 지원자금 693만원을 유치했다. 하여 3200평방미터의 부지에 건평이 근 800평방미터에 달하는 최신식 가공설비를 갖춘 현대화 입쌀가공공장을 건설했다. 입쌀가공공장이 정상 가동되면 일일생산량이 30톤에 달하고 20명의 촌민들의 취업을 해결하여 60만원의 로무수입을 창출할수 있으며 촌집체소득도 년간 20만원 증가할수 있다고 한다.
촌사무실의 입쌀제품전시대에는 각종 류형의 '금강입쌀' 계렬제품들이 가지런히 진렬되있었다. '도화향' 품종으로 밥맛이 부드럽고 찰지며 구수하다며 전국각지의 구매상들과 입쌀판로 개척에 관한 협상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벼농사특색마을 건설에 박차를 가해 벼농사와 관광의 융합도 실천함으로써 청소년들의 농사체험 학습기지도 설립해 수학연수와 같은 다양한 행사를 가지고 싶다는 리동춘당지부서기의 포부에서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아직 구상단계이지만 선조들이 개척한 이땅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만은 확실히 읽을수가 있었다.
'어른들을 공경해야 마을이 잘된다'며 리동춘당지부서기는 현재 자녀들이 외지에 나가있어 독거로인이나 준 독거로인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촌지도부의 중요한 업무라고 밝혔다. 현재 150평방미터의 로년활동실이 있으며 3.8절, 로인절, 음력설 등 명절이면 어른들을 모시고 윷놀이 등 행사도 조직하고 때로는 자비를 내서라도 명절이면 더욱 외로워하는 로인들을 모시고 식사대접도 한다고 했다. 선한 영향력의 파급효과로 금강촌의 존로경로문화도 더욱 농후해지고 있다고 한다.
벌리현 인대대표로도 활약하는 리동춘당지부서기는 인대대표의 권리와 의무를 충실해 수행하며 수시로 실제업무에서 봉착한 난제와 촌민들의 애로사항도 해당부문에 반영함으로써 농민부담경감 등 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도로보수공사, 동명촌과 금강촌의 3킬로미터 도로공사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는 리동춘당지부서기는 최근 외지에 갔던 촌민이 귀향하여 마을에 정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금강촌을 살기좋은 마을로 건설해 귀향, 귀농하는 촌민들이 늘어나고 단결하고 화합하는 화목한 마을로 가꾸어 가고 싶다고 밝혔다.
/진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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