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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불과 흙과 바람의 조화…도자기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2024-11-25 09:39:37
조글로미디어(ZOGLO) 1970년1월1일 08시00분    조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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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 상태에 가까운 흙을 물에 반죽하고 그것을 매만져 모양을 잡은 다음 가마에 넣고 구우면 유의미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 일련의 과정은 완미를 위한 수련의 과정이다. "



도자기로 유명한 강서성 경덕진에 있는 중국도자기박물관으로 가면 이런 문구를 볼 수 있다.

“석기시대에 탄생한 도자기는 인류의 력사라고 말할 수 있다. 도자기는 세상 만물의 근원을 품었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담긴 도자기의 ‘정체’는 무엇일가?

그릇이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면서 음식을 담고 저장할 그릇이 필요했고 그로 인하여 토기가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에 생활도구로 태여난 토기는 그 뒤에 끊임없는 발전을 거쳐 실용성과 예술성을 갖춘 도자기 공예품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그러니 어찌 ‘인류의 력사’라고 아니 말할 수가 있겠는가.

연변박물관에서 민속연구부 연구원으로 지냈던 한광운은 ‘도자기’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도자기는 점토를 빚고 굳히고 열을 가해서 만드는 제품입니다. 그 과정에서 빛갈이나 색, 내구성을 좋게 하려고 유약을 바릅니다. 도자기의 몸에 덧씌우는 약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가 합쳐진 말입니다. 도기는 일반 점토를 사용하고 불의 온도도 1000도 정도면 만들 수 있고 자기는 ‘고령토’라는 특별한 점토를 사용하고 불의 온도가 1200~1300도 이상이여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걸 합쳐서 도자기라고 합니다.”

도문시량수진민속박물관에 소장되여있는 백자.

사실 초기의 토기는 원시적인 로천소성 기법으로 구웠다. 이렇게 구운 토기는 구울 때 온도가 600~800도밖에 안돼 물을 담으면 쉽게 풀어져버려 사용에 한계가 있었다. 모양 또한 빗살무늬, 민무늬, 미송리식으로 간단하였고 선사시대에서 력사시대로 접어들면 비교적 정교하고 복잡한 모양이 나왔다.

고대시기에 도기가 등장하게 된 것은 구리를 제련하는 가마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구리의 용융점인 1000도에 도달하기 위해 열의 방출을 막는 방법이 생겨났고 따라서 흙도 높은 온도에서 구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구워서 나온 도기는 물을 담아도 흙이 풀어지거나 물이 새지 않았다. 그리고 문명과 기술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도기는 또 단순한 음식보관용이 아닌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권위용이거나 제사용으로 사용되였고 제작기술도 발전했다. 진시황릉의 병마용은 당시 고대 문명의 도기 발전의 궁극적인 모습이였다.

하지만 초기의 도기는 여전히 물을 흡수하는 성질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술이나 고급 음식물을 보관하기 어려웠다. 이런 와중에 중동에서 유약이 나오고 중국에서 점성이 일반 흙보다 높은 고령토를 찾아 사용하면서 기존보다 훨씬 섬세한 도기를 만들 수 있게 되였다. 여기에 중국에서 1300도 이상 온도로 굽는 가마기술까지 개발되여 우리가 흔히 아는 자기의 초기 형태가 제작되였다. 그리고 자기는 음주례절이나 다도와 같은 고급 식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자기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의 도자기 제작 기술은 실크로드와 같은 무역로를 통해 유럽, 중동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며 영향을 미친다.

조선반도에서는 대표적으로 선사시대의 토기, 신라토기, 가야토기, 고려청자, 분청사기 그리고 조선백자 등이 있다. 초창기 조선반도는 도자기 기술이 미약해 대부분은 대륙의 도자기를 수입해서 사용했다.

그 후 당나라시기에 도공들이 조선반도로 흘러들면서 도자기 기술이 전래되였고 한편 당나라로부터 도자기 수입이 계속되면서 자체생산 수요가 생겨나 청자의 초기 형태인 해무리굽청자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한광운은 “백자와 흑유자도 소량이지만 이 시기에 처음으로 조선반도에서 제작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고려시대 중기에는 중국의 청자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을 만큼의 완성도에 다다르게 되였고 10, 11 세기에서는 송나라로부터 다양한 제조기법이 소개되여 고려 도공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독특한 고려자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였다.

도문시량수진민속박물관에 소장되여있는 해주항아리.

“기원 전후의 신라, 백제 시기에는 유약을 바른 도기가 많이 생산되였습니다. 색갈은 누른색, 누른 밤색, 누른 풀색, 풀색, 붉은 밤색 등이 많았고 도기에 장식된 무늬를 보면 릉형, 사각형 무늬가 많았습니다. 이 시기에 도자기의 일종인 오지그릇이 생산되기도 했습니다.”라고 한광운은 전한다.

도기의 발전과 더불어 자기도 생산되였는데 고령청자기와 리조백자기가 매우 유명하다. 청자는 곡선미에 담록색을 띠며 유약이 맑고 부드러워 화려함을 보여준다. 백자는 조선 리조시기에 많이 류행되였는데 맑고 깨끗하여 소박함을 보여준다. 도자기는 주로 왕실과 사대부 계층에서 사용됐다.

중국의 도자기가 매우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을 자랑한다면 조선반도의 도자기는 주로 자연을 모찌브로 한 문양이 많이 사용됐다.

그 뒤 반도에서 살던 사람들이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하여 조선족부락을 일구면서 조선반도에서 제작된 도자기제품들이 20세기 40년대까지 많이 흘러들어왔고 또 이미 정착을 한 조선족들은 조선반도 서민층의 도자기 제작 기법을 본받아 현지의 흙을 리용한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연변지역의 조선족들은 주로 오지그릇과 질그릇을 만들어 썼다.

해방 후 조선족집거지역에는 촌이나 향을 단위로 질그릇을 굽는 전문제작소가 있었다. 물론 오지제작공장도 있었다. 도문시 량수진에 있는 오지공장이 바로 20세기 50년대에 세워진 유일한 오지제작공장으로서 동북3성 조선족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오지독, 항아리, 단지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그때에는 집집마다 김치독, 쌀독, 물독으로 여러개 지어는 수십개씩 장만해놓고 사용했다.

한광운은 “연변박물관에 많은 오지제품이 소장되여있는데 그중 1984년 연길시에서 수집한 오지독이 력사가 길고 공예가 특이합니다. 20세기초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 모양을 보면 아가리가 좁고 배가 불룩하며 밑굽이 납작합니다. 그리고 허리 부분에 꼬인 줄덧무늬가 한바퀴 새겨져있습니다.”라고 알려줬다.

공장처럼 찍어내는 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요즘, 그는 여전히 도자기의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만든다.

조선족의 전통 부엌세간에서 질그릇을 빼놓을 수 없다. 질그릇은 검은 도기에서 유래되였는데 질그릇을 구워낼 때 유약을 바르지 않으며 가마 안에서 바람과 불길이 오래동안 어울려 불심이 세차게 타오를 때 솔가지들을 한꺼번에 많이 집어넣고 지피다가 굴뚝과 아궁이를 막고 연기검댕이를 입혀서 구워낸다. 20세기 80년대까지만 해도 연변지역의 농촌에는 질그릇 제작 장인들이 많이 있었으며 항아리나 단지, 독, 물동이 같은 기물들을 만들기도 했다. 질그릇은 다른 도자기처럼 특별한 문양이 없다. 다만 그릇 표면의 웃부분이나 중간에 돌림판을 돌리면서 손톱이나 나무가지로 간단한 기하무늬를 새긴다.

연변의 질그릇 제작 장인들은 마지막에는 기념으로 남길 매우 작은 물동이를 만들었는데 겉면에는 련꽃이나 함박꽃, 모란꽃을 그려넣기도 하였으며 그것을 선물용으로 쓰기도 했다.

현재 조선족도자기공예법은 주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중국조선족민속원에 자리잡은 ‘자연공예’ 도자기공방을 운영중인 ‘도예의 달인’ 김영옥(59세) 도예가는 그 대표 기능 보유자이다.

“이제 도자기는 내 삶이고 내 인생입니다. 지금껏 흙과 인연을 맺고 걸어왔으니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 공방에서 흙으로 작품을 빚고 불로 완성시키며 도예의 길을 고집해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흑룡강성 화남현 삼하향 영창마을에서 태여난 김영옥은 어릴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할머니 배복순에게서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은 어머니 윤봉숙를 따라 김영옥은 자연스럽게 도자기를 만들며 자랐고 그 뒤 연길로 건너와 길신조각공장에서 조각을 배우고 그림공부도 했다. 그러다 1995년에 안도현 송강진제2직업학교에서 조각을 가르쳤고 그 와중에도 도예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을뿐더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린시절의 추억과 어머니가 들려주던 도자기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아 끝내는 도자기에 전념하는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공방을 통해 단순히 전시만 하는 도자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계속 쓰고 싶어지는 도자기를 만들어내고저 합니다. 좋은 미감을 지니고 있어 곁에 두고 보아도 좋지만 자연스럽게 자꾸 손이 가고 평소에 쓸 때 더 좋은 그런 도자기 말입니다. 일상에서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사용하며 ‘아, 얘는 이런 면이 너무 좋다’라고 느낄 수 있는 도자기를 더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차리는 밥상은 모두 손수 빚고 구운 그릇들로 가득 채워진다. 우리 어머니들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더욱 빛나게 해주던 그릇들이였다.

그러면서 그릇들을 마주하면 “어릴적 어머니가 가마 옆에 앉아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저를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라고 터놓는다.

공장처럼 찍어내는 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요즘, 그는 여전히 전 과정을 수공으로 작업한다. 훨씬 더디고 어려울 텐데도 그걸 고집하는 특별한 리유는 손으로 직접 만들며 매 작업물에서 미세한 변화를 느끼고 싶어서이다.

김영옥은 주로 돌림판을 리용하여 도자기를 빚는다. 그리고 문양은 모란꽃 아니면 진달래꽃, 색갈을 머금은 점토로 립체감이 나게 꽃문양을 만들어 붙이기도 하고 풀잎을 따다 색을 먹여 자기에 꾸욱 눌러서 풀잎 모양 대로 문양을 찍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그는 본인만의 도자기 세계를 고집스럽게 차곡차곡 완성해간다.

무의미 상태에 가까운 흙을 물에 반죽하고 그것을 매만져 모양을 잡은 다음 가마에 넣고 구우면 유의미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 일련의 과정은 완미를 위한 수련의 과정이다. 하기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요령을 부리는 일도 없이 해오던 일을 꾸준히 해나가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가는, 묵묵히 도자기를 빚는 도예가의 모습은 경외감을 불어일으킨다.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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