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과학기술로 흙에서 노다지 캐는 사람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7월9일 10시34분    조회:280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흑룡강신문=하얼빈)강효삼 특약기자 = 년 71세의 최학수농민은 연수현연하진동명촌 5툰의 한 보통 농민이다. 허지만 그는 동명촌은 물론 중국조선족의 그 많은 농민들이 앞다투어 한국행을 했어도 여적 한번도 출국하지않고 줄곧 마을에 남아 논농사와 밭농사로 한국에 가 돈버는 사람 못지 않게 치부하고 있는데 손발도 부지런하지만 그 무엇보다 머리를 써서 과학기술로 "흙에서 노다지를 캐내는 사람으로" 평판이 높다.

  그는 일찍 료녕성창도란곳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부터 특별히 과학기술에 농후한 흥취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가정이 곤난하여 초중 2학년에서 중퇴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시작했지만 손에서 기술서적을 놓지 않았고 1962년 친척의 소개로 흑룡강성 연수현 동명촌에 이주해와서 농사를 지을때도 농업기술을 힘써 연찬하여 1965년부터 줄곧 생산대의 벼모기술원으로 활약하였다.

  논농사에서 노다지를

   동명촌은 연수현에서 가장 큰 조선족마을로 405여세대의 조선족이 있다.헌데 지금까지 고집스레 마을에 남아 열심스레 흙과 씨름하는 사람은 최학수농민형제뿐이다. 그 중에서도 최학수씨가 더 고심한데 남처럼 서두른다면 그도 얼마든지 한국에 가 돈도 벌고 대도시에 가서 호강할수도 있지만 항상 신문잡지를 보면서 앞당겨 시세를 내다보는 그에겐 남과 다른 삶의 신조가 있었다.즉 농촌에서도 머리써서 농사나 기타 업종을 잘 하면 한국가 고생하며 버는 돈 못지 않게 잘살수있다는것이다.그는 이러한 자신의 신조를 로동의 성과로 보여주었다

  2천년초부터 조선족들의 대량으로 출국하면서 남아 도는 땅이 많게 되자 최학수농민은 2007년까지 혼자서 십헥타르의 토지를 다루었다. 그때 마을에 이같이 대면적의 농사를 짓는 사람은 유일하게 최학수농민뿐이였다. 이에 어떤 사람은 최학수가 논을 많이 임대하기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이 적다고 여기고 되도록 그가 농사를 짓지 않도록 하려고 뒤에서 이런 저런 방해도 놀았고 어느 해는 도둑이 그의 집 창고에 숨어들어 30마대나 되는 벼며 양수기등을 훔쳐가기도 하였지만 그의 농사의지는 꺾지 못했다.

  더욱이 벼농사를 지으면서 뚝힘으로 보다는 과학기술적으로 지여야 더 많은 수확을 얻을수있다고 확신하는 그는 새것을 창조하는 정신으로 벼농사에 부딪친 난제를 해결하였다

  2001년 봄이였다. 이른 봄부터 벼모를 키워야하는데 부식토를 실어올 곳이 없었다. 산도 개인이 맡으면서 산임자들이 산에서 부식토를 파가지 못하게 하기때문이다.해서 어떻게 하면 흙없이도 벼모를 잘 키울가 고심하던 끝에 문득 언젠가 신문에서 본 "8.1농장"에서 흙대신 벼등겨로 벼모를 키우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상기한 그는 남들이 하는 일 왜 자기라고 못하랴? 싶어 자기집에서 자체로 실험에 착수하였다.처음 1푼지기의 면적에 시작하였는데 후에 그가 등게로 벼모를 키우는 실험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 농업기술보급참에서 기술원들을 파견하고 실험에 해당한 물자를 대량 지원하여 도합 여섯개의 온실을 설치하고 7푼지기 면적의 대량 실험을 하였는데 현농업기술보급참의 일군들과 함께 5년동안의 각고한 노력을 거쳐 마침내 연수현에서 벼등개로 벼모를 키우는데 성공함으로써 자신의 농사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농사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렇듯 농사도 많이 짓고 다양한 작물재배에도 앞장선 그의 성과를 인정하여 현정부로부터 선후 세차레나 "로동모범"칭호도 받게 되였다.

  2008년도에 들어서면서 전처럼 많은 토지를 임대할수없게 되자 그래도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2헥타르의 적은 면적을 다루게 되였다.헌데 한국에가서 뭉치돈을 벌어온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버릇처럼 "아직도 농사일인가?"는 말이 귀에 거슬릴대로 거를린 그는 한국에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간 사람못지 않게 돈버는것을 보여주고 싶어 농사일에 더욱 열성을 냈다.신문을 늘 손에서 떨구지 않는 그는 어느날신문에 실린 논판에 벼와 오리를 함께 키운 경험소개를 듣고 자기도 그렇게 하였다. 그리하여(2007년부터 3년동안)몇백마리 오리를 기르면서 면적이 적은 대신 '오리농업"을 도입하여 쌀의 질이 좋음으로 남보다 값을 더 받았고 밭에서 나는 기타 작물재배수확까지 합쳐 한해에 5,6만원을 족히 수입할수있어 정녕 그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한국에 가 고생하며 버는 돈 못지 않아 자부심을 가질수있었다.

   밭에서 노다지를 

  농업기술에 대한 그의 탐구는 비단 벼농사뿐 아니였다. 다른 식물재배도 마찬가지 과학기술적으로 재배하여 성공해보려고 대면적의 벼농사를 지으면서도 그는 이런 저런 분들과 손잡고 들쭉,패모,오이,포도 등 다양한 업종을 재배하여왔었는데 그 중에서 오이재배에 성공하여 련속 3년동안 경영하면서 매년 5천원의 수입을 올린적 있다.후에 오이값이 너무 하락하여 그만 두었지만 늘 신문 잡지를 보면서 다른것을 생각해보던 그는 10년전부터 찰옥수수 재배에 달라붙었다.

  6월, 아직 옥수수 익을 철이 멀었건만 연수현 연하진 동명촌 5툰의 조선족 최학수(71세)와 그의 부인 강원실(67세)두 내외가 알심들여 다루는 한무 세푼의 옥수수는 벌써 언녕 소꼴이 다 나왔고 제각기 머리에 술을 단 이삭들이 방치처럼 매달려있다. "간점1호" (垦粘一号)라 불리는 이 찰강낭이는 가을에 가서 알이 여문 다음에 쌀을 내여 먹어도 좋지만 풋강냉이로 먹는것이 더 좋아 풋강낭이 이삭을 굽거나 삶아서 파는 장사군들의 인기를 끌었다. 이 종자는 최학수농민이 10년전 신문에 실린 정보를 보고 아성종자공사를 찾아가서 구입한 찰강낭이 종자인데 그때부터 10년간 한해도 빼놓지 않고 재배하여 성과를 올림으로써 이제 "간점 1호"찰강낭이는 그의 브렌드격인 농산품이 되였다.

  이 옥수수를 자래우기위해 최학수농민은 밭에 6개의 대형온실을 앉혔는데 해다다 3월 10일이 되면 온실에 모종을 시작한다, 그때는 아직 이른 봄이여서 밖에는 허연눈들이 쌓여있고 두텁게 얼음이 덮혀있지만 최학수농민은 서둘러 씨를 뿌린후 온실의 모종이 일정한 크기로 자랄때까지 한 20일은 아예 온실에서 살다싶이 한다. 이렇게 철을 앞당겨 키운 찰강낭은 온실안에서 우썩우썩 커나고 기온이 상승하는 6월이면 온실의 비닐박막을 벗겨내여 강낭이들이 로천에서 무럭무럭 자란다.드디여 6월말 지나 7월 4일부터는 이삭으로 팔려나간다.이삭의 크기를 보장하기위해 한 대에 똑 한개씩의 이삭만을 놓아둔다. 강낭이삭이 잘 팔리는 날은 앉은 자리에서 하루 400개씩, 그렇게 찰강낭이삭이 팔려나가는 한달동안 쥐나 도둑을 방지하기위해 옥수수밭 둘레에는 전기고양이 설비를 늘여놓고 밤이면 사람이 직접 강낭밭을 지키는데 아우성치는 모기들에게 뜯기면서 잠못자고 지키는 그 나날은 매우 힘들고 고달프지만 강낭이삭이 줄지여 팔려나가는 이때가 최학수로인에게는 가장 즐겁고 신나는 때라고 한다. 화학비료대신 농가비료로 키운 강낭이라 앉은 자리에서 한 이삭에 3원 내지 2원 50전을 받는데 다른 품종의 강낭이삭이 "간잠1호"로 위장하지못하게 "간점 1호"강낭이삭을 팔때 아예 강낭대까지 함께 판다.그래서 장사군들이 다른 강낭이를 "간점1호"로 속이지 못한다는것이다.

  이미 10년째 이 찰강낭이를 재배하면서 장사호들의 절대적인 신용을 얻어 최학수댁 강낭이라하면 장사군들이 다투어 사가기에 판매걱정없이 한무세푼의 적은 땅에서 얻어들이는 수입이 1만 5천원이나 된다고한다. 항상 주도면밀하게 머리를 쓰면서 그는 또 "간점 1호"찰강낭이를 심은 이랑 사이 남아 도는 땅에 벼모를 키워 그 수입만도 4천원을 올렸다고한다.

  지금 그는 자신의 집앞 터전밭에 온실하나를 더 앉히고 더덕재배를 시험하고있다. 지금 더덕들이 한창 넝굴을 뻗고있는데 만일 더덕재배에서도 성공하면 대량적으로 재배할 타산이다.효성스런 두 아들이 이젠 그만 노력하고 만년을 푹 쉬라고 하지만 의연히 책을 보고 신문을 보면서 최학수농민은 계속 새로운것을 모색하고있다.자신이 생각과 하는 일을 옴니암니 따지지 않고 늘 한맘으로 받들어주는 아내가 고마와서 하는 일이 더 성수난다는 최학수농민, 정녕 땅의 아들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이 일 저일 너무 많이 해서인지 머리엔 흰서리가 하얗게 내렸지만 언제나 왕성한 청춘의 기백을 가지고 더 많은것에 도전하는 그의 푸른 꿈은 마치 지금 그가 한창 자래우고 있는 더덕넝굴처럼 줄기차게 앞을 향해 뻗어가고 있다. 하기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조선족농민들이 모두 최학수같다면 부자안될 사람이 없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070
  • 공용서비스기업 신고 처음 초점화제로 지난 9일 흑룡강성정부는 '3.15'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소비자 신고 10대 초점화제를 발표했다. 이중 공용서비스기업에 대한 신고가 처음으로 초점화제로 되였다. 이밖에 교육연수서비스, 부동산중개서비스, TV홈쇼핑(电视购物) 선불식(预付式)소비, 핸드폰, 식품류, 보건품...
  • 2014-03-13
  • 11일에 국제야생동물보호학회(WCS)중국프로그램 집행주관인 류배기는 《앞으로 더 많은 동북범이 길림성 훈춘에 정착할것이다. 훈춘은 이미 로씨야동북범종군이 중국으로 확산하는 교두보로 되였으며 야생동북범종군 회복의 희망지이기도 하다.》고 했다. 소개에 따르면 동북범은 씨비리아범이라고도 하는데 서식지는 주...
  • 2014-03-13
  •   리한수로인 지난해에 70세를 바라보는 리한수가 경작지 40여헥타르를 도급맡고 초봄부터 동분서주하는 그를 보고 동네분들은 입을 딱 벌린다. 리한수가 그렇게 많은 경작지를 다루게 된데는 결코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였다. 다만 편안한 로년시기에 다시 농사꿈을 이루어보려는 심산에서였다. 장춘시 쌍양구 신촌에...
  • 2014-03-12
  • 우리 주 5만 8000여세대 가옥소유권증 해결 올해부터 가옥단체구입활동 엄금 우리 주에서는 현재 가옥소유권증 문제에 적극 나서고있다. 10일, 연길시부동산관리국에 알아본데 의하면 2011년까지 초보적인 통계로 주내 6만 9000여 세대가 집을 새롭게 구매한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이미 지난해까지 5만 8000여 세대에 력사...
  • 2014-03-11
  • 10일, 주기상국에 따르면 이번 주 우리 주 날씨는 기온이 비교적 낮고 강수가 다소 많다고 한다. 앞으로 한주간의 날씨를 살펴보면 12일에 섭씨 령하 4도~령상 2도, 13일에 섭씨 령하 10도~령하 1도, 14일에 섭씨 령하 9도~령상 2도, 15일에 섭씨 령하 6도~령상 4도, 16일에 섭씨 령하 5도~령상 4도, 17일에 섭씨 령하 4도...
  • 2014-03-11
  • 자가용을 직접 운전하며 조선관광을 할 길이 더 편리해 질 전망이다. 조선은 지난 2011년부터 중국인관광객의 라선시일대 자가용관광을 허용했다.그러나 자가용 조선관광을 가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이에 대비해 올해 연변주에서는 적극적으로 자가용관광을 계획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연변주관광국은 올해 조선...
  • 2014-03-07
  • 도문 통상구 다리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특파원 = 동북아개발개방을 한층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올해부터 중국권하-조선원정리 새 교량 건설,중국도문-조선 남양 새 교량 건설,중국 훈춘-조선 나선 철도건설,중국 훈춘-러시아 자르비노-동해-한국 부산,중국 도문-조선 청진-한국 부산 항선 구축 등에 거액...
  • 2014-03-06
  • 1월 1일부터 길림성의료보험 성내 타향진료 즉석결산을 가동함에 따라 향후 길림성은 전국적인 타향진료 즉석결산을 추진하게 된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길림성에서 해마다 근 1만명의 로인이 남방에 가 겨울을 나는데 이 수자는 해마다 증가되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은 길림성의 의료카드로 거주지에서 진료받...
  • 2014-03-05
  • 길림오동상표의 브랜드가치가 82.06억원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졌다. 얼마전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에서 조직하고 중국브랜드건설추진회, 중국표준화연구원에서 추진한 2013년 제조업자주브랜드가치평가에서 오동상표의 브랜드가치를 82.06억원으로 평가했다. 오동상표는 길림오동약업집단의 상징으로서 길림오동약업집단...
  • 2014-03-05
  • 3일, 중국동방항공회사가 연길공항에서 청도를 경유하는 연길-한국 MU2043 접속항공편업무를 시작해 려객들이 과거 환승으로 인한 불편함이 없게 되였다. 우리 주와 한국간의 경제무역, 관광, 인원왕래가 갈수록 빈번해지고있는 가운데 지방 항공편의 운수한계로 하여 많은 려객들이 장춘, 청도, 북경 등 공항을 전전하는 불...
  • 2014-03-0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