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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의 산증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2월29일 07시31분    조회: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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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장석주

지난 11월 초 중국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에서 ‘업무지도’를 맡고 있는 장석주 선생님이 “신문 기사로 접한 겨레말큰사전 사업회를 방문하고 싶다”며 연락을 주셨습니다. 사업회는 우리말 방송국인 흑룡강 방송국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우리말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계신 장석주 선생님과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장석주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겨레말큰사전≫에 대한 해외 동포들의 관심과 앞으로 완성될 ≪겨레말큰사전≫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하시며 사전 편찬의 중요성 및 조언 등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장석주 선생님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은 35년 동안 조선어 방송국에서 근무하시고, 얼마 전에 은퇴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어 방송국의 산증인이 아닌가 싶은데요. 오랫동안 몸담으신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은 중국에서 흑룡강성처럼 ‘성’에서 꾸리는 방송으로는 유일한 방송입니다. 성은 한국으로 말하면 ‘도’ 정도 되는데요. 길림성, 요녕성에 우리 동포들이 많긴 하지만 우리처럼 ‘성’의 예산으로 꾸리는 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저희 방송국 하나밖에 없습니다. 1963년 2월 20일 개국한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은 후년 2013년이면 50주년이 됩니다. 방송의 말씨는 지난날 한중 수교 전까지는 거의 북한의 맞춤법과 발음을 기준으로 했지만 현재는 글은 북한 표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고, 발음은 한국말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청취자들은 흑룡강성은 물론이고 길림성, 요녕성, 내몽골 지역의 우리 동포들과 우리말을 배우고자하는 중국의 기타 민족들입니다. 청취 인원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 민족이 흑룡강성에 46만, 요녕성에 38만, 길림성의 연변에 제일 많은 120~130만 정도 됩니다. 하지만 이 인원은 호적상에 남아있는 수치고, 실상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숫자에 못 미친다고 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비롯하여 북경, 상해, 청진, 청도 등의 대도시들로 나갔고, 미국, 러시아, 호주 등으로 이주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국의 우리 민족은 대변혁기ㆍ대이동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이 개국한지 벌써 50년 가까이 되는데요. 현재의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이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에서 국장으로만 11년을 근무 했는데요.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한국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재외동포재단의 도움이 있었고 특히 KBS방송국은 방송에 관련된 아나운서, 카메라맨 등의 인력 교육을 현지에 와서 직접 해 주었습니다. 한국의 한 제약회사도 저희를 10여 년째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지원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동네마다 찾아다니는 한국의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을 한 달에 한번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 행사로 운동대회를 했는데, 현재는 노인들과 어린이들 밖에 없으니 운동대회를 할 수가 없어요.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아주 삭막할 정도로 동네가 조용합니다.
 또한 흑룡강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웅변대회’ 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국 어린이 방송문화 축제로 인기가 높아 우리 동포뿐 아니라 다른 민족 사람들도 참여합니다. 금년에도 1등을 중국 사람이 했다고 합니다. 물론 조선족이 많이 참가하지만요. 건반악기 콩쿠르, 노래 자랑, 글짓기 대회 등 해마다 조금씩 장르를 바꿔서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회에서 우승한 아이가 10년 후에 베를린 음악회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아이의 재능을 우리가 키웠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또한 유공자 가족 어린이들에게 장학금 주기도 있어요.

 


흑룡강, 길림성, 내몽골에 가면 우리 ‘고유어’를 많이 들을 수 있어요. 외래어와의 교류 없이 고립된 동네에서 그대로 내려온 ‘우리말’이에요.

 

중국에 우리말 방송국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요.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 외에 우리말 방송국을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또 언론이나 출판사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중국에 우리말 방송은 연변 TV방송국을 비롯하여 연변 방송국 산하에 연길방송, 도문방송 등 10여 개가 있습니다. 국가방송으로는 중앙인민방송국에 우리말 방송이 한부서로 되어 있고요. 또한 국제방송이라고 있는데, 처음에는 중국의 우리 민족을 대상으로 했지만, 현재는 한국과 중국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해외 방송도 있습니다. 북경의 국제방송과 중앙방송, 흑룡강 조선어 방송국, 연변인민방송(라디오), 연변 TV방송국, 이들이 우리말로 하는 5대 방송사입니다. 이외에도 ‘군’에서 꾸리는 규모가 작은 방송국은 많이 있습니다.
 신문사도 많이 있는데요. 우선 흑룡강신문은 해외판, 국내판으로 발행되고 있으며, 북경, 청도, 한국에 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임직원이 200여 명이 되는 우리 동포 신문사입니다. 그리고 연변에 연변일보, 길림성에 길림신문, 요녕성에 요녕일보가 있습니다.
 출판사로는 연변인민출판사, 연변교육출판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요녕민족출판사가 있으며, 북경민족출판사 안에 우리글 전문 편집부가 있습니다. 잡지사도 여러 곳이 있어 문학잡지사, 전문잡지사, 교육잡지사 등이 많이 있습니다. 중국 동포들은 이렇게 언론매체를 통해서 말은 방송을 통해서 표준을 잡고, 글은 신문이나 다른 출판물을 통해서 기준을 잡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동포들이 사용하는 우리말에는 남북의 표기와 발음이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혹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우리말 사용에 대한 동포들의 혼란이나 어려움은 없습니까?

 아무래도 요즘은 경제와 문화적 접근이 큰 한국의 영향을 점차 많이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중국에서는 한국의 발음과 북한의 표기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한글 규범은 북쪽 기준에 따라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중국에 <조선어사정위원회>가 있는데, 조선어 말과 글 규범위원회에 해당됩니다. 이 위원회에서 법적으로 통과가 되어야만 기준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을 바꾸는 것이 쉬운게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외래어가 물밀듯이 밀려올까봐 개정을 막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도 발음은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한국의 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남북의 말과 글을 따로 따르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일상생활에서 별로 혼란은 없습니다.

방송국에 오래 근무하시면서 우리 동포들이 사는 지역 이곳저곳 여러 군데를 취재하셨을 줄 압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우리말 사용 모습은 어떻습니까?

 제가 방송국 일에 몸담은 35년 동안 취재를 많이 다녔습니다. 흑룡강, 길림성, 내몽골에 가면 ‘고유어’를 많이 들을 수 있어요. 외래어와의 교류 없이 고립된 동네에서 그대로 내려온 ‘우리말’입니다. 그런 동네를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옛말 그대로 써서 못 알아들어 다시 물어보곤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건 분명히 ‘고유어’지요. 그런 말들을 정리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아요. 이에 비하면 한국의 경상도, 전라도 말들은 서울말과 가깝거나 외래어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취재를 갈 때마다 그 지역의 촌사를 쓰려고 했습니다. 언제 누구에 의해서 그 마을이 세워지고 첫 학교의 교장과 촌장은 누구였는지, 그 고장에서 불리는 노래는 어떤 것이 있는지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예산이나 경비 문제로 결국 하지 못했죠. 우리 방송국 소임이 아니니까 하기도 힘들더라고요. 그게 엄청 큰 공정이고 프로젝트니까 국가에서 지원을 받기도 어려웠습니다. 예전에는 흑룡강성에만 소학교가 500개였어요. 행정촌이 최하 500개가 넘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만큼 규모가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애들이 없어서 소학교가 20여개로 줄었어요. 학생들이 없으니 어떤 학교는 학생 3명에 선생님은 13명인 학교도 있습니다. 인구가 줄고 언어가 사라지기 전에 조사를 하면 좋을 텐데 자꾸 아쉬움이 남습니다.

중국 연변에는 신분증을 비롯하여 어떤 상점의 간판이든 반드시 한글을 위에 쓰고, 한자를 그 밑에 같이 쓰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정부나 사회에서 지키려고 노력만 한다면 어디에서든 우리말은 오래오래 갈 것입니다.

 

우리 동포들이 거주하는 중앙아시아의 고려말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중국의 동포들이 쓰는 우리말은 아직까지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중국의 동포들이 사용하는 우리말의 생명력은 어떠하다고 보시는지요.

 재작년에 저는 중국 연변대학 60돌 경축행사에서 졸업생 10만명 대표로 <모교에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지난 60년 동안 연변대학은 전문가, 학자, 공무원 등의 졸업생 10만 명을 배출했는데 그것은 우리글과 우리말로 교육을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글을 가지고 있어 우리 후손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2년 전 라디오 방문단으로 유럽에 갔을 때, 미국에는 200만 동포들이 사는데 소학교 하나도 우리말로 교육하는 학교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러시아 경우는 ‘김마리아’, ‘빅토리아 박’ 이런 이름조차도 성만 우리 것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연변에는 신분증을 비롯하여 어떤 상점의 간판이든 반드시 한글을 위에 쓰고, 중국글 한자를 그 밑에 같이 쓰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간판에 우리글이 큰 글씨로 위에, 중국글 한자가 우리글 밑에 씌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이렇듯 정부나 사회에서 지키려고 노력만 한다면 어디에서든 우리말은 오래오래 갈 것입니다. 외래어를 막는 중국의 민족정책도 우리말을 잘 지키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떠한 차별 없이 각 민족의 언어를 모두 동등하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한국보다 외래어의 영향을 덜 받고 우리말을 더 잘 지켜나갈 것 같습니다.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말을 잘 지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연변 등 중국에서 사용하는 우리말 중 특이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연변에서 할머니를 ‘아매’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불리게 되었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학교 선생님도 할머니를 ‘아매’라고 가르칩니다. 한국에서는 삼촌은 ‘아제’라고 하던데, 연변에서는 고모나 이모를 ‘아제’라고 합니다.
 또한 해바라기를 ‘해자부리’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말이 지역어죠. 연변방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걸 아시는 분들이 5년, 10년 지나면 그분들이 다 없어지니까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의 말이 남아 있으면 《겨레말큰사전》에 다 담길 것이고, 해외의 우리 동포들의 말이 또 오를 것입니다. 또한 《겨레말큰사전》편찬 사업은 통일을 위한 큰 프로젝트이며, 이것을 이루고 통일이 된다면 거침없이 소통이 잘 되리라 봅니다. 우리말을 같이 쓰는 동포의 동질감도 더 커질 것입니다.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분들이 희망하고 갈망하는 《겨레말큰사전》편찬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겨레말큰사전》편찬에 하나의 벽돌이 되고 거름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공: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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