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연변음악교육의 견증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3월26일 22시30분    조회:570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라혜주

연변음악교육의 견증인 라혜주선생을 만나
연변주창립초기 제1대 음악교원 수백명의 음악전문인재 배양

87세 고령에도 피아노치기는 빠질수 없는 일과의 하나라는 라혜주선생.

올해 87세(1926년생)인 라혜주선생은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구 창립 경축대회에 참가한 일원으로 력사의 견증인이다.

당시 연변사범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있던 라혜주선생은 20여명의 학생을 지도하여 자치구창립 경축대회의 관악대에 참가해 국가를 연주하게 되였다. 2, 3만명을 수용할수 있는 서광장(현재 복무대로 주변)에서는 성대한 축제가 펼쳐졌고 행진대오는 연길시거리를 행진하면서 조선족자치구의 창립을 경축했다고 그는 회억했다.

라혜주선생은 자치주창립 초창기 제1대 음악교원으로 있던 시절 학생들과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흑백사진을 꺼내보였다. 그속에는 한 음악교원으로서 학생들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1947년 연변에서는 전선위문공작대를 조직하고 사평일대의 부대를 찾아가 순회공연을 했다. 룡정광명국민고등학교 연예대도 이 위문공작대에 참가했고 연예대에는 라혜주선생도 있었다. 7, 8월 두달간 위문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라혜주선생은 모교에 남아 교편을 잡게 되였다. 어린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애착과 소질을 보여줬던 라혜주선생은 룡정광명국민고등학교(현재 룡정중학교)를 다니면서 황병덕(일찍 조선음악학원 교원으로 임직, 일본음악학교 졸업), 문하연(나중에 조선음악대학 창시자로 활약), 박중기(길림사범대학 음악학부 졸업), 김광휘(도꾜음악학교 졸업) 등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음악교원으로부터 개별지도를 받게 되였다. 이렇게 그는 흥취로만 하던 음악을 보다 체계적으로 배울수 있었고 그것을 밑거름으로 부단한 노력을 이어가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말대로 《학습하는 한편 학생을 가르쳤다.》 이때부터 라혜주선생은 음악교육에 뛰여들어 수천수만명의 제자를 키워냈다.

룡정광명국민고등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있던 1948년, 그가 지도한 관악대가 연변지역 음악경연에서 우승을 따냈다.

룡정광명국민고등학교에서 3년간 음악교원으로 있던 라혜주선생은 1950년 연변사범학교로 전근해왔다. 때마침 그 이듬해인 1951년 연변사범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음악, 미술, 무용, 체육 등 예능전문반을 꾸리고 학생들을 모집했다. 라혜주선생은 허세록, 리인희, 지문영 등 3명의 정식교원과 3명의 시간교사와 함께 전문반의 학생들에게 음악기초리론, 화성학, 작곡기초지식, 편곡법 등 과목을 가르쳤다. 그뒤로 연변사범학교는 1976년에 중등음악전문반을, 1978년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된후에는 대학전과음악전문반을 꾸려 백여명의 음악전문인재를 양성했다. 그들중에는 허원식, 류영섭, 임영호 등 전문반에서 졸업하고 음악의 길을 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범반에서 공부하면서 나중에 작곡가로 된 김덕균, 김남호, 신봉학, 태옥단 등도 있으며 또 주내의 중,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사람이 있었고 또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라혜주선생의 앨범속에서 두툼한 책자가 눈에 안겨왔다. 1986년, 라혜주선생 교육사업종사 40년을 맞으면서 제자들이 스승에게 드리는 감사의 말씀이 담겨진 책자였다. 2005년 8월에는 자식들과 제자들은 라혜주선생 음악생애 60돐을 기념하면서 성대한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평소에도 연변에 있는 제자들이 찾아와 함께 식사도 하고 외지에서 사업하는 제자들이 연변을 찾으면 꼭 라혜주선생에게 인사드리러 온다고 한다.

라혜주선생의 영향은 자식들과 손군들에게도 미치였다. 둘째딸 라영은은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졸업한후 다년간 남경군구예술단에서 사업하였으며 전업후에는 상해의 한 박물관에서 당지부서기로 활약하고있고 넷째딸 라은영은 연변사범전과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한 뒤 현재 연길시소년궁전 건반악기지도교원으로 사업하고있으며 외손자는 상해음악학원 작곡학부를 졸업한후 미국류학을 마치고 현재 상해에서 음악학원을 경영하고있단다.

음악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 라혜주선생은 선후로 세번이나 농촌에 《추방》당했었고 《반혁명분자》, 《특무》 등 루명을 쓰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힘든 시절을 함께 보냈고 슬하에 아들 둘, 딸 넷을 두고 천륜의 락을 맘껏 누렸던 부인이 지난해에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거실에 놓여진 피아노뒤에는 아직도 부인이 투병중에 사용했던 침대가 고스란히 세워져있었다. 이전에는 부인과 함께 산책도 다니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별로 할일도 없다면서 62년 세월을 함께 보낸 부인을 그리워했다.

자치주의 창립과 성장과정을 음악교육현장에서 함께 한 라혜주선생에게 있어서 여든일곱은 그냥 수자에만 불과했다. 요즘은 메신저로 외지에서 사업하고 공부하고있는 자식들, 손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년의 락을 향수하고있단다.

(길림신문 김태국기자 / 연변일보 허국화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통화일양—핵심기술로 인삼산업 제1인자로 도약한다   ㅡ통화일양보건품유한회사 리청산총경리를 만나 리청산(李青山)프로필 1969년-1975년 군 입대 1975년-1985년 통화백산제약제3공장 주임 과장 당위서기 1985년-1987년 길림공학원 학습 1987년-1992년 통화백산제약제3공장 부공장장 공장장 1992년-2002년...
  • 2011-08-08
  • 저명한 조선족축구인이며 광주항대팀 코치 겸 통역 추명씨 “연변조선족출신이라서 그런지 타성에 몸담고있어도 항상 연변축구를 관심하게 되며 따라서 안타까운 점도 안두가지가 아니다. 연변축구는 수년전부터 슈퍼리그진출이란 목표를 내걸었는데 물론 연변축구의 슈퍼리그진출이란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것이...
  • 2011-08-08
  •   리동휘. 제1차세계대전의 포화가 세계를 뒤덮고있던 20세기초, 인류사상 가장 큰 획기적인 사변이 일어났다. 1917년 부패한 짜리로씨야에서 사회주의 10월혁명이 일어나 첫 무산계급 독재정권을 수립하였다. 10월혁명의 승리는 각국 무산계급투쟁을 고무하여주었고 세계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민족해방투쟁...
  • 2011-08-04
  • 김성만씨가 꾸린 “김예무대공연복장상점(金藝舞台演出服裝商行”은 10여년 줄곧 호황이다. 풍부한 무용전업경험을 갖고 부단히 혁신하여 부단히 변화하는 시장과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한것이 오늘날 그의 성공을 부른것이다.     심양 금가만태생인 김성만씨는 1979년에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 무...
  • 2011-08-02
  •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 ㅡ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심청송사장의 경영관 심청송(沈青松)프로필     1968년 흑룡강성 녕안현 출생 1991년-1993년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 1994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설립(합작) 1996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독립 2002년 단동항풍상무유한회...
  • 2011-07-31
  •       리성적이고 랭철한 두뇌와 판단, 정확한 수치와 판별을 요구하는 우리 나라 유명약학대학의 교수라는 겉모습에 따뜻하고도 감성적인 문학소년의 내면세계를 갖고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심양약과대학 제약공정학원 허영남교수(48세), 사물의 미세한 립자까지 파헤쳐 성분을 분석해내고 세상...
  • 2011-07-28
  • 조선 평안남도 중악군이 고향인 리추악(본명 김금주. 1901년~1936년)은 중국 첫 조선인 녀성공산당원이며 항일투사이다. 3.1 반일운동시 그는 양림과 인연을 맺었고 혁명반려로 되였다.   소련 10월 사회주의혁명의 승리는 조선인민들의 반일투쟁 승리의 신심을 크게 고무했다. 1924년말 그는 중국 광주로 떠났다.   19...
  • 2011-07-27
  •   올 3월 8일 중국인노래자랑에 위문온 민주당 박영선국회의원(오른쪽 세번째)과 함께 있는 윤영숙비서장(왼쪽세번째)과 중국인협회 회원들.   홍콩가수 장명민이 부른 노래 《나의 중국심》이 언제가부터 윤영숙씨의 주제가로 된것은 특별한 리유나 계기가 있은것이 아니다.무슨 가수도 아니고 또...
  • 2011-07-27
  • 칭다오서원장조선족학교 허룡 교장        [흑신 김명숙 기자]   칭다오서원장학교가 하루가 다른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4월 새롭게 부임된 허룡 교장의 심혈이 스며있다.허룡(62세, 길림성 화전시) 교장은 19살 어린나이에 교하시 홍송소학교를 설립했으며...
  • 2011-07-25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5) 민영 민족서점을 복합적인 문화산업기지로 육성할 터 연변민족서점 유한회사 허덕환 이사장을 찾아서          허덕환 이사장이 직원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허덕환 이사장 프...
  • 2011-07-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