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독립투사들의 혼백이 웃을수 있도록…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3월27일 09시30분    조회:747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세룡

2차대전이 결속된후 조선반도는 본의 아니게 외세에 의해 국토가 두동강남으로써 재중동포들은 근 반세기만에야 비로소 반도 남반부의 모국과 교류할수 있었다. 직접 총칼 들고 일제와 싸웠던 투사들은 대부분 저세상으로 떠나간 뒤 다행히 모국에서 그 후손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펼쳐 현재까지 수백명에 달하는 재중동포들이 혜택을 받고있는 실정이다. 심양세룡과학기술유한회사 김세룡사장 역시 그들중의 한 사람이다.

  김사장의 부친 김진성은 1914년 생으로 1932년 독립단체인 국민부에 가입해 중대참사로 무송, 안도, 신빈, 통화, 집안 등지에서 무장투쟁을 했다. 1934년 일제밀정을 처단하고 붙잡혀 무기도형에 언도되였고 서울 경성형무소에서 12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아 출옥, 부모님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왔으며 1961년 일제의 감옥에서 얻은 질병으로 한창나이에 타계하였다.

1982년 료녕대를 마치고 성수출입회사에 배치받은 김세룡사장(1958년 생)은 비교적 일찍부터 한국과 교류, 1985년부터 부친에 관한 자료를 준비해 한국보훈처에 제출하였는데 1990년에야 인정을 받았으며 1995년에는 한국의 광복50주년기념행사에 특별초청돼 청와대에서 부친의 훈장을 대신 수여받았다.
귀국후 그는 미국, 로씨야, 유럽 여러 나라들처럼 중국에서도 독립유공자유족회를 발족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1996년 드디여 “재중국독립유공자유족회”를 설립했는데 회원이 700여명에 달했다. 1994년 중앙선전부의 허가를 받아 한국보훈처와 무순시정부이름으로 “료동지역항전연구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였는데 중한참석자가 200여명에 달했고 수십편의 론문이 교류되였다. 현재까지 무순에서 4차례, 한국에서 1차례 이런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매번 김세룡회장이 행사총지휘를 맡아왔다.


2009년 무순서 개최된 제4회 료동항전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중한량국학자들


  재중조선족가운데서는 선친들이 분명히 독립투쟁에 헌신해왔는데 본인이나 증명자들이 이미 고인이 되였고 또 사료를 찾을수 없어 한국보훈처로부터 인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년간 김세룡씨는 100여명의 이런 당사자들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을 때마다 자기일처럼 안타까와하며 관련사료를 발굴할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었으며 중한량국의 관련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여 그중 17명이 끝내 한국보훈처로부터 인증을 받을수 있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후 중국에서 독립투쟁에 투신하였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들은 대략 20~30만명에 달할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독립단체의 요인들 외에는 당년의 일제 보존서류나 낡은신문들에서 관련기록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우기 하층병사들은 대개가 문맹들이여서 자필로 기록해놓은 사료가 없고 보존서류들에도 이름을 올리기가 어려운 상황이였지요. 그 후손들이 어디가 증명사료들을 발굴해내겠습니까? 하다보니 현재까지 극 소수의 독립유공자후손들이 모국에서 인증을 받은 상황이지요. 이외 초기에 민족주의계렬의 독립투쟁에 투신하였다가 후에 항일련군이나 해방군에 참군한 사람도 독립유공자에서 배제되고있는 상황이지요.”

  매차례의 국제적심포지엄이나 한국보훈처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김세룡회장은 공산당계렬의 항일투쟁에 투신한 선렬들도 모국의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제기했지만 아직까지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있는 실정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주의(主義)야 어떠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하겠다는 취지 하나로 총칼 들고 일제와 싸웠으면 어디까지나 충실한 애국자이고 독립유공자가 아니겠는가 하는것이 김세룡회장의 주장이다.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공무원철밥통을 버리고 개인사업을 시작한 김세룡사장은 다년간 한국과의 무역사업에 종사해왔으며 현재는 무역사업외 건축자재생산회사와 환경보호산업 그리고 액체비료생산에도 손을 대 지난해부터 산동지역에서 실험하고있는데 실험에 성공하면 본격적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세련되고 항상 정열적인 김세룡씨, 사업도 하랴, 독립사발굴에도 신경을 쓰랴, 항상 무거운 사명감을 안고산다는 그는 선조들이 청춘과 목숨을 바쳐가며 이루고저 하였던 독립투쟁정신과 투지가 있다면 우리 민족은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다며 기성세대들은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업적을 잘 전수해주고 옳바른 민족관, 도덕관, 그리고 굳센 의지를 전수해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력설하였다.                    

정기, 리덕권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광동지역 모바일 부품 선두주자 [심수 할루야전자 올들어 매출 실적 1억 2000만달러] 조선족 기업인 남화섭 총재(42세)가 이끄는 심수 할루야전자유한공사는 중국 최고의 모바일 부품 판매, 개발회사로의 비전을 꿈꾸며 이 분야에서 광동지역의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다. 고신기술 분야의 부품 수출입 무역이 주업인 이 회사...
  • 2005-09-07
  • [정의의 부를 위한 사업] —한국 '731부대죄증'연구소 소장 허유선생 인터뷰 '저가 중국에 오기전까지만 해도 731부대에 대한 료해는 교과서나 영화를 통해 약간 아는 정도였습니다. 1990년도 사업차로 중국에 왔다가 중국의 731죄증진렬관을 참관하게 되였는데 그때 일제침략군의 잔인무도한 폭행에 격분을 금치 못했...
  • 2005-09-06
  • 중국 문단에서 어색한 세대로 불리우는‘70후’ (70년대 생을 말함) 작가들은 상하 두 세대를 이어주는 군체로서 4년전부터 ‘미녀작가’로 불리는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였을뿐 실력파들로 불리우는 작가는 없었다. 그러나 ‘70후’작가군체에 ‘미녀작가’만 있는것이 아니라 실력파도 없지 않았으며 ‘미녀작가’속에서도...
  • 2005-09-06
  •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과 이웃한 한반도는 예로부터 중국과의 내왕이 밀접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어의 위치도 두드러집니다. 일찌기 공화국이 창립되기 전인 1940년대에 이미...
  • 2005-09-05
  • 베이징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한국부 엄춘연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기로 약칭함) 엄춘연(이하는 엄으로 약칭함) 기: 안녕하십니까? 엄: 안녕하십니까? 기: 바쁘신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선 본인소개와 회사소개 부탁드립니다. 엄: 저의 회사는 베이징시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 회사라고 하는데...
  • 2005-09-05
  • 기: 오늘의 문화현장에서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문예부 부장으로 다년간 활약하면서 많은 텔레비죤문예프로를 제작하셨고 또한 많은 훌륭한 음악작품을 창작하신 고창모선생님과 이야기를 자리를 함께 했다. 음악에 뜻을 두게 될 때는 언제부터였는지? 고: 집의 부친이 바이올린을 켰고 삼촌이 첼로를 켰다. 어렸을 때부터 ...
  • 2005-09-05
  • 베이징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김영 지배인과의 인터뷰 [img count='1' width='350' img] 사회자: 개혁개방 20여년간 중국은 전통산업의 양적 팽창에 힘입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국경을 초월하는 인터넷 산업에 대해 아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IT산업의 육성을 21세기초 국가의 중점산업 발...
  • 2005-09-01
  • 중앙민족대학 김명숙 선생님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전부 기로 약칭함) 김명숙(이하는 전부 명으로 약칭함) 기: 올해 7월이면 학생들이 졸업이잖아요. 현재 반급의 32명 학생들의 취직 방향은 어느정도 실현돼 가고 있습니까? 명: 취직은 학생들이 아직 자기가 취직한 자리를 공개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제 한두달 정도...
  • 2005-09-01
  • 중국기업문화촉진회 조선족연의회 김정섭 부회장과의 인터뷰 (기자)안녕하십니까? (사장) 안녕하십니까? (기자) 녜, 오늘 이렇게 바쁘신 시간을 내주시고 방송국까지 찾으시여 감사합니다. 백마강음식점 하면은 베이징에서 참 오래됐다는 인사을 받게 되는데요, 최초 영업을 시작한지는 언제지요? (사장) 백마강음식점은 19...
  • 2005-09-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