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끈질긴 노력과 인내로 이뤄낸 쾌거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5월29일 13시55분    조회:463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장성근
광동성조선민족련합회 장성근부회장



 불철주야 노력한 끝에 40대 초반의 나이에 장성근씨는 향항, 혜주, 천진에 3개의 전자회사를 설립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대학교의 문턱에도 들어가보지 못한 그가 이런 쾌거를 이뤄낸데는 그의 끈질긴 노력과 인내, 도전과 갈라놓을수 없다.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때문에 갈망했던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장성근씨는 고향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핸드빽생산공장으로 들어갔다. 4년동안 얼마 안되는 봉급이지만 월급날마다 월급봉투를 어머니의 손에 쥐여주던 효자이기도 하였다.

  스물세살이 되던 해, 심수에 가면 좋은 직장이 많이 있다는 입소문에 모인 20명 친구들과 단체표를 끊고  심수행을 한다. 정윤이라는 한국회사에 면접을 보았는데 장성근씨는 결국 탈락되고말았다. 두 어깨가 축 처진채 밖으로 나왔을 때 호주머니에는 200원밖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도 안되는 돈이였다.

  그는 같이 탈락한 친구와 함께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광주로 갔다. 친구의 소개로 청산핸드빽(당시 한국의 최고브랜드)공장에 입사하게 되였다. 1년 동안 개발실에서 많은것을 익혔고 라인관리라는 중책을 맡으면서 그는 오전 7시 30분에 출근, 새벽 2시에 퇴근하면서도 피곤을 모르고피타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후 동관에 있는 신발공장 소니, 대동 전자를 거쳐 LG 이노텍 구매담당 팀장 등을 전전하며 다방면에 걸친 경험을 쌓았다.

  10여년간의 탐색려행에 종지부를 찍은 그는 2003년에 창업키로 하였다. 말이 창업이지 프레스기 3대를 안장시킨 작은 공장규모였다. LG 협력사와 약속하고 시작한것이지만 물량확보를 위해 하루종일 업체를 찾아다니는 강행군의 련속이였다. 작은 물량이라도 납기를 철저히 지키는 한편 최상의 품질보장에 목숨을 걸었다. 이같은 노력덕분에 동종업계에서도 부러움을 살 정도로 업계의 인정을 받아 창업 2년후엔 공장부지 2만평방메터 대지로 확장 이전함과 동시에 천진공장도 문을 열었다.

  점차 규모를 늘려나가며 핸드폰-컴퓨터 부품을 비롯해 셋탑박스부품에도 자신이 생겼고 별도로 도금공장도 신설했다. 최근엔 국내 최초로 핸드폰내의 진통모터케이스를 개발 생산하고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정밀부품을 들여와 국내에 물품을 제공하는 무역회사도 설립했다.

  처음에는 LG 협력사로만 만족하던것이 지금은 삼성과 산요, 히다찌, 스미또모 등 한일 굴지의 IT 업체들의 주거래처가 되였다. 빠른 시간내에 상장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매진하는 장성근씨다.

  상승가도를 달려온 그지만 4년전 600여만원을 사기군에게 당했던 일부터 시작해 수차례 크고작은 좌절을 당하며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고 한다. 장성근사장은 “사람이 사람을 믿지 짐승을 믿겠는가? 그러나 간혹 이같은 믿음을 배신하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아프다”며 지금은 손해를 입히고 잠적한 사람들이지만 언젠가는 뉘우치고 돌아올것이라 믿는다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다. 

  시간이 나면 등산과 탁구로 심신을 단련한다는 그는 최근에 와서 바이어들과의 잦은 접촉덕분에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면서 밝게 웃는다. 2010년부터 광동성조선민족련합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지난해 혜주분회창립과 함께 련합회 부회장 겸 분회상무부회장으로 되여 민족사회발전에도 크게 일조하고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재일조선족녀성회 전정선회장을 만나     2011년 송년회 참가자들과 함께 있는 전정선회장(중간,한복 입은 녀성) 중국에서 어데가나 조선족 로인협회, 녀성협회, 축구협회가 있듯이 일본에도 조선족녀성회가 있다. 녀성회는 재일 조선족녀성들의 친구는 물론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며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되고있다...
  • 2012-09-02
  • 청도서성국제무역유한회사 박진희리사장       박진희리사장이 한국빙그레바나나맛우유를 살펴보고있다.   박진희(朴镇希)프로필 청도서성국제무역유한회사 리사장 북경 성국제무역유한회사 리사장 상해 성국제무역유한회사 리사장 청도한성경제무역유한회사 리사장 청도조선족기업협회 부회장 월드-옥...
  • 2012-09-01
  • “방송은 내 친구이자 내 인생의 전부”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실 서태문실장의 인생스토리         “방송은 내 친구이자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이는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마이크와 씨름을 해온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 실 서태문실장의 페부에서 우러러 나온 말이...
  • 2012-08-31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3세 이야기   상해시 조선족 한글교사 김영란씨 (흑룡강신문=하얼빈) 고미혜 = "상해에 사는 조선족아이들의 대부분이 우리말을 전혀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부모들의 열망으로 한글학교가 만들어졌죠."   지난 2010년 10월 상해시에 조선족 주말...
  • 2012-08-31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3세 이야기   "조선과 사업하려면 조선인의 특성을 먼저 리해해야 한다"   (흑룡강신문=하얼빈) 성혜미 = 조선족 청년 박진성(32)씨는 '대조선 사업가'다. 그는 "사업상 평양과 라진, 청진 등 조선에 매년 서너번 방문한다"며 "조선인들은 민족적 자긍심과 자존심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
  • 2012-08-31
  • 양국 사신 길 연구로 석사받는 조선족 임문성씨  "명청(明淸)시대 조선 사신을 맞는 중국 통관(通官·통역)은 임진왜란과 병자·정묘호란때 이주한 조선인 후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양국의 정치·문화·과학 등 교류에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습니다. 저도 양국을 잇는 현대판 통관이 되고...
  • 2012-08-28
  • 조선족 3세 이기용 하나대투증권 연구원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생업을 잃은 많은 사람이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전쟁과 분단으로 귀향길이 막히면서 중국에 남아 고된 생활을 이어가던 이들은 1992년 중·한수교와 함께 귀향길이 열리자 먹고 살기 힘든 중국을...
  • 2012-08-27
  • [민족단결의 꽃]-민족기업인 통화일양보건품유한회사의 리청산리사장을 찾아 통화일양보건품유한회사 리청산리사장,기업의 미래를 그려보는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였다. 통 큰 기업인-해마다 현지 민족사회에 70여만원 기부 《리청산리사장은 우리 민족사회에서 통 큰 기업인중의 한사람입니다.》 7년전 처음으로 통...
  • 2012-08-27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청도국제공예품성 리계화총경리   (흑룡강신문=청도) 리수봉 박영만 기자 = 청도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청양구와 이촌 중간에 위치한 청도국제공예품성은 중국판 '서울남대문'으로 불리우는데 그 관리자가 30대 초반 조선족녀성 리계화(33세, 사진)총경리이다.   공예...
  • 2012-08-24
  • 일전 대련시중산구상무국의 권기선부국장(조선족)의 노력으로 대련시현대기업협회가 시민정국으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아 관련 정책과 법률, 시장상황을 잘 몰라 어려움을 겪고는있는 대련시의 조선족뿐만아니라 중국, 한국, 조선, 일본 등 기업들에 교류플랫폼을 제공하게 된다.   4년전부터 대련시현대기업협회설립을...
  • 2012-08-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