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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품은 유감의 예술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8월9일 16시24분    조회:5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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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한영
“장백산촬영가” 한영을 만나다

“사진작품은 유감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30년간 장백산을 촬영했지만 내놓을만한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장백산을 소재로 한 개인사진전을 열고 사진작품집 《격정의 장백산》을 펴냈으며 연변촬영가협회 주석 등 직을 지낸 한영선생이지만 겸손한 자세로 기자의 취재에 응했다.
 


한영사진전 전경.

 


장백산과 사진과의 인연
늘 숭엄한 기분으로 장백산을 마주한다는 한영선생, 그와 장백산과의 인연은 말그대로 우연과 필연의 만남이였다.

외과의사였던 부친이 억울한 루명을 쓰고 농촌에 추방되였다가 1974년초 장백산림해에 자리잡고있는 백하림업국의 의사로 전근하면서 한영의 장백산과의 인연이 시작되였다. 그해 말, 한영은 백하림업국산하의 황송포림산작업소에 취직하여 망망림해의 벌목공이 되였다. 벌목은 고된 작업이였지만 또한 장백산이라는 신비하고도 거대한 자연을 리해하고 일초일목과 교감하는 과정이였다. 하루 작업을 마치고나면 온몸이 록초가 될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는 여가만 생기면 사진기를 가지고 여러가지 풍경을 담으면서 청춘의 랑만을 즐겼다.

한영이 촬영가로 성장할수 있은데는 아버지의 덕이 컸다. 그의 부친은 외과의사였지만 외국어에 능통하고 사진 등 여러가지 애호가 있는 다재다능한 지식인이였다. 특히 사진촬영에 조예가 깊었다. 한영은 어릴적부터 집에 있는 일본제 야시카카메라를 만지며 아버지한테서 사진기술을 좀씩 배웠다. 1979년 그는 장백산빙상훈련장에서 운동선수들이 속도빙상훈련을 하는 장면을 촬영하여 신화사에서 발간하는 《촬영세계》잡지에 발표, 작품은 이달의 작품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2년 백하림업국 공회 선전간사로 발탁되면서 그의 사진생애는 전격적으로 시작되였다.

1986년경, 세계급사진작가 진복례선생이 장백산풍경을 촬영하려고 장백산을 찾았다. 한영에게 진복례일행을 안내하는 행운이 차례졌다. 그는 장백산풍경을 렌즈에 담는 쵤영대가의 독특한 사진구도와 넓은 시각, 열린 사유를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감촉과 전률을 느끼였다. 아울러 그것은 비교적 페쇄적이였던 당시의 연변과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였다.

1990년 한영은 업무의 수요에 의해 연길로 직장을 옮기였다. 그는 《경제무역보》 기자, 《민족화보》 연길기자소 소장, 연변촬영가협회 상임부주석, 주석 등 직을 력임하면서 직업촬영가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사진전에서 부친을 비롯한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남긴 한영(뒤줄 좌5).

장백산의 영원한 매력을 찾아
 
장백산은 한영에게 예술의 원천이였고 령혼의 “세탁소”였다. 그는 연길로 직장을 옮겼지만 짧만 있으면 장백산으로 달려갔다. 한해에 거의 10여번, 한번 가면 며칠씩 체류해야 했다. 그는 렌즈에 장백산풍경을 담을 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것이 풍경사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훌륭한 풍경사진을 촬영한다는것은 날씨, 빛, 사진기술, 기회, 우연 등 많은 요소가 작용하기때문이다.
한영은 사계절의 색채가 완연히 다른 장백산의 풍경을 핍진하고 선명하게 재현하고저 120 반전필림(反转片)을 고집했다. 이 필림은 선예도가 높은 고품질의 사진을 현상할수 있는 장점을 가진 반면 필림 하나로 많아서 10여장 밖에 찍지 못하는 단점도 가지고있었다. 또한 원가도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샤타를 자주 누르지 않고서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얻는것이 당시 필림카메라를 사용한 촬영가들의 직업적습관이고 애환이였다. 서광이 비낀 장백산을 렌즈에 담으려고 눈보라치는 새벽에 령하 40도를 웃도는 엄한을 무릅쓰고 주봉에 오르고 한여름에 다습한 원시림에서 장시간 잠복해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수림속에서 며칠을 기다려도 날씨탓으로 효과적인 역광을 만날수 없을 때는 별수없이 관계단위와 교섭한후 연막탄을 사용해 빛의 역효과를 내는 등 고단한 작업들도 자주 있었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장백산의 봄(春到长白)”을 촬영할 때였다. 일행과 같이 장백산을 찾았는데 한주일동안 련속 비가 내려 사진을 찍을수 없어 호텔에 붙박혀있었다. 예전에도 날씨때문에 사진 한장 건지지 못하고 헛탕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지라 이번에도 운이 꼬였다며 하산하려던 마지막날, 한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홀로 사진기를 가지고 보슬비를 맞으며 장백산 우측비탈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날은 1996년 6월 중순의 어느 오전,  그가 1시간쯤 걸어 언덕에 올라서 보니 선경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펑버짐한 동토대에 분홍빛 만병초가 쫙 깔려있고 저 멀리 산등성이에는 잔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으며 장백폭포가 줄기찬 굉음을 쏟으며 한줄기 수채화를 연출하고있었다. 황홀경에 한동안 넋을 잃고있던 한영은 직업적습관대로 이내 펜탁스67카메라에 그 정경을 담았다. 비록 날씨때문에 전경이 좀 흐릿하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축복이였다. 기회와 우연, 인내와 도전정신이 어우러진 한폭의 작품이였다.


장백산의 봄


“사진작품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작품이지요. 같은 장소라 해도 똑같은 빛갈, 똑같은 색채, 똑같은 정경은 있을수 없지요. 찰나의 예술, 그 자체이지요.”
그날의 회억을 더듬는 한영선생의 얼굴에서는 회심의 미소가 어리였다.

하늘에서 장백산주봉을 부감하며 촬영하는것은 많은 촬영가들의 소망이다.

한영선생은 이런 행운을 두번 지녔다. 두번째 촬영은 2005년 10월 31일에 이루어졌다. 오전 9시 10분경, 한영선생이 탑승한 4인석 경비행기는 이도백하에서 리륙하여 장백산주봉으로 향했다. 10분후 비행기는 중조변경과 10여킬로메터 상거한 상공에 이르렀고 고도는 4200메터였다. 그는 안전벨트를 착용한후 비행기문을 열고 카메라를 들었다. 망망한 림해에 침엽수가 창끝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고 저 멀리 흰눈으로 소복단장한 장백산주봉이 흰구름과 어깨겨룸을 하며 거연히 솟아있었으며 천지(天地)의 조화를 보여주려는듯 뭉게구름이 주봉을 배경으로 포진해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거폭의 장관을 렌즈에 한장두장 담았다. 후에 그는 이 작품을 “웅위로운 장백산(巍巍长白山横卧天际)”이라고 명명했다.

장백산풍경 관련 사진을 수만장 담았지만 정작 마음에 드는 사진은 별로 없다는 한영선생의 말에는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장백산에 대한 그의 애정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으로도 리해할수 있다. 그는 매번 장백산을 대할 때마다 하나의 풍경이 아닌 그의 정신과 령혼, 내재해있는 문화적함의를 표현하려 극력 고심했다. 장백산은 광활하면서도 웅위롭고, 거칠면서도 순자연적인 무궁무진한 매력을 품은 예술걸작이다. 하여 그는 장백산풍경을 담을 때면 그 어떤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장백산의 진실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전력했다. 그리고 대중들이 쉽게 감상할수 있고 접수할수 있는 사실주의적촬영방법을 즐겨 활용했다.

길림성촬영가협회 애영후부주석은 한영선생의 사진전을 관람한후 “한영의 작품은 장백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그의 작품은 장백산을 동서남북, 공중과 지면 등 다양한 시각으로 담아냈는바 이는 작자의 다각적인 발견능력과 통제능력의 구현이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제재는 단일하여도 내용은 아주 풍부하다. 산뜻한 장백산의 봄, 울울창창한 장백산의 여름, 다채로운 장백산의 가을, 창망한 장백산의 겨울을 생동하게 담아냈다. 이 모든것은 사진작가로서의 그의 뛰여난 사진기술과 예술적기량을 말해주며 장백산에 대한 그의 뜨거운 사랑과 끊임없는 탐구정신, 그리고 격정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웅위로운 장백산.


조선족 원로촬영가 황범송선생은 “한영처럼 촬영, 서법, 외국어 등 다방면의 재능을 가진 촬영가는 연변에 몇명 안된다. 또한 그는 장백산풍경에 한결같이 심혈을 쏟은 대표적인 장백산촬영가의 한 사람이다.”라고 평가하였다.

한영선생은 “사진은 시각예술인만큼 어느 시각으로 접근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된 오늘 많은 젊은이들이 촬영에 흥취를 보이고있는데 좋은 일이다. 촬영기술은 물론이고 문화수양과 예술수양을 꾸준히 향상해야 새로운 시각이나 소재를 담은 작품이 나올수 있다. 거창하고 특이한 사물만 담으려 하지 말고 주변이나 일상에서 소재를 찾고 사라져가는 우리 민속과 같은 문화적소재를 많이 담았으면 한다.”며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한영선생은 연변촬영가협회 상무부주석, 주석을 력임하는 기간 “연변 10대촬영가” 평의, 중국연변국제촬영주간 등 행사를 조직하였고 《민족화보》 연변기자소 소장 시절에는 연변촬영가들의 작품을 화보에 대량 게재하여 연변을 홍보하고 연변의 촬영수준을 향상하는데 큰 역할을 놀았다. 또한 《연변50년》, 《중국·연변》, 《중국 연변—장백산》 등 10여권의 대형화첩을 책임지고 펴냈다. 그의 100여점 작품이 국내외 사진전과 사진공모에서 수상했으며 《중국예술촬영년감》에도 여러번 입선되였다. 그는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6월 7일 연길 백산호텔에서 가진 “한영사진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을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장백산을 소재로 한 작품 60점이 전시되였고 사진작품집 《격정의 장백산》에는 장백산의 다채로운 모습을 담은 작품 90점이 수록되였다.
 
글/사진 김창희

《예술세계》2012년 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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