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바위에도 구멍을 뚫는 기업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9월6일 21시58분    조회:1782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이영남

  
칭다오해승전자유한회사 이사장


  프로필

  이름: 이영남

  나이: 42세

  칭다오하이톱공업자동화설비유한회사 이사장

  칭다오조선족기업협회 부회장

  월드-옥타 칭다오지회 수석부회장

  즉묵시 정협위원

  즉묵시 소수민족연합회 부회장

  (흑룡강신문=칭다오) 이수봉 박영만기자 =  대학 두 개 졸업,  공무원생활 4년, 현재 칭다오에서 2개 전자회사를 경영하는 연변 화룡 출신인 이영남 이사장은 즉묵시 정협위원으로 활약하며,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칭다오 조선족사회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자주 거론되는 기업인이다.

  올해부터는 삼성계열사에 납품함으로써 삼성의 2차기업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지난 7월부터는 오더가 배로 늘어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글로벌경제 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오더가 절반씩 줄어 굶어죽는다고 아우성치는 것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분투정신'을 좌우명으로

  다부진 몸매에 곱슬머리를 한 이영남 사장의 입에서는 연박한 이론들이 실타래처럼 풀어져나왔고 칭다오조선족사회의 향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구구절절 묻어나왔다. 조부가 항일 독립군 출신이었던 가정 배경 때문에 이사장은 민족과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아주 강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경제 화두 보다 조선족사회에 대한 화두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발전이 곧 도리이다'(发展是硬道理)라는 중국어 서예글씨가 걸려있다. 그의 좌우명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노래 '바위섬'과 '필사적으로 해야 이긴다' 의 (爱拼才会赢)대만노래를 즐겨부른다고 말했다. 자기것을 지키고 뿌리내리고 바위에 구멍을 뚫는 '분투정신'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위기로 불황이 2년 지속되면 칭다오가 어떻게 될까, 또 장길도 개발이 탄력을 받아 연변(훈춘)이 잘 되면 어떻게 변화될까"가 고민하는 그다. 그만큼 고향에 대한 사랑도 깊었다.

  공무원 철밥통을 버리다

  이사장은 길림농업개간대학을 졸업하고 영길현 조1중에서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한 끝에 심양대학 시장마케팅학과에 입학했다. 1995년,심양대학 졸업후 심양시외사판공실 국제교류과에 배치 받아 4년간의 공무원생활을 했는데 철밥통을 버리고 칭다오로 왔다.

  아내가 근무하는 칭다오에 가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조명전자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바로 팀장으로 승진했고 그후에는 부총경리 요직에 올랐다.

  이 씨는 당시 한국회사에 근무하면서 '가장 훌륭한 직원이 되겠다며 성실하게 일했던 덕분에 많은 기업인들과 친분을 쌓았었다. 하지만 주위의 질투와 차가운 시선을 보면서 현실의 냉혹성을 절감하고 결연히 사직했다.

  "네가 하는데 내가 왜 못하겠나"하는 오기로 빈주먹으로 2003년 창업의 길에 나섰다.

  창업의 신기루 낳다

  정작 창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처음에는 막막했다. 창업 자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업 자본이래야 당시 집을 사려던 돈 20만위안이 전부였다. 그가 전자회사를 설립한다고 하자 아내는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이튿날 그는 아내 앞에 공증서를 내놓았다.

  "이 돈은 내가 아내 최현숙에게서 빌린 것이며 앞으로 회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채무관계는 절대 아내와 관계가 없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남편이 내놓은 공증서를 들고 보던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고 믿고 따르겠으니 힘을 내세요" 아내는 공증서를 찢어버린 후 눈물을 훔치면서 예금통장을 내놓았다.


이영남 사장(좌)이 생산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한국회사에 다니면서 성실한 자세로 닦았던 인맥과 평소에 친분이 있던 모든 사람을 불러 창업 '신고식'을 올렸다. 즉묵시공업 담당 부시장도 현장에 와서 격려해주었다.

  "저 이영남은 성실하게 살아왔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저를 믿는다면 도와주십시오. 돈있는 사람은 돈을, 오더가 있는 사람은 오더를, 경험있는 사람은 경험을 전수해 주십시요. 저를 믿고 도와준다면 훗날 꼭 보답할 것입니다"

  이튿날 많은 사람들이 약속대로 찾아와 주문하고 자금지원을 약속했다. 또 외상으로 물자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1000만위안까지 외상으로 주겠다며 마음놓고 사업하라고 격려했다.

  그는 기계 2대와 노동자 8명으로 200 제곱미터의 건물을 임대하고 고동소리를 울렸다.

  그러나 모든 일이 처음부터 만사가 순통한 것이 아니다. 원자재는 현찰을 주고 사는데 반면 생산한 전자제품은 납품해서 4-5개월후 결제를 받았다. 자금 압박이 커서 고리대를 쓴 적도 있었다. 원자재 결제와 직원들의 봉급을 주기 위해서였다.

  "바다를 걸어 들어간 적도 있고,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다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받았었다. 후에 마누라가 눈치채고 베란다를 봉해버렸다"며 초창기의  눈물나는 어려움을 실감있게 설명했다.

  이사장과 아내의 피나는 노력으로 바다에 떠오르는 기업이라는 이름을 가진 해승((海升)전자는 어려운 고비를 한번 또 한번 넘겼다. 창업 3년만에 매출액을 3000만위안으로 올렸다. 2007년에는 자동화설비회사를 설립했다. 이젠 고정자산이 2000만위안, 직원이 120명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도전은 계속된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오더가 50% 줄어 해승전자의 매출액은 3000만위안에서 2000만위안으로 떨어졌다. 당시 불황으로 오디오 4대를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 우리 회사는 시장조사와 분석을 거쳐 5개년 규획을 세우는데 방향을 정하기가 힘듭니다. 글로벌 위기에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 등 악재가 겁쳐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럴때는 돈이 있으면 예금하라고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죽습니다"

  이사장은 새로운 구상을 검토한 후 대담하게 실천에 옮겼다. 이사장은 "종양이 있으면 떼어버려야 새살이 돋아난다"며 원래하던 도금기업은 남에게 넘기고 지분만 다소 남겼다. 그의 생각이 적중했다.

  또 올해는 거래기업을 삼성계열사로 바꾸었다. 현재 70% 오더는 삼성계열사로부터 받고 30%는 국내기업으로부터 받는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기업으로부터 새기술 도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사장은 "단순한 노동밀집형과 임가공시대는 지나갔다. 핵심기술이 관건이다"고 말하며 또 실천에 옮기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1000만위안을 투자하여 자동화설비를 도입하여 새로운 출구를 모색한 것도 바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사장은 경영의 다원화 차원에서 하반기에는 현유의 전자 회사와 관련 있는 전자시장을 개척한다는 취지에서 가전제품 무역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변해야 산다는 경영철학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 이영남 사장은 "기업인은 외로운 사람이다. 상을 받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lixiufeng@hljxinwen.cn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상지시조선족중학교 계순옥교사 조선어문 교수개혁의 선두주자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9-05) 정봉길 기자 = 26년간의 교수실천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흑룡강성 상지시조선족중학교 계순옥(47세, 고급교사)교사는 조선어문 교수개혁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나가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1985년...
  • 2011-09-06
  •  [길림신문 2011-09-02  김영자 기자] 류혜숙(刘惠淑)프로필   전국우수민영중서의병원 원장으로 인민대회당에서 수상한 후    1959년 출생   1985년 연변의학원 졸업   1991년까지 선후로 연길시 흥안향위생소 연길시부유보건소 부녀아동보건원에서 사업   1992년부터 연변중서의병원 부원장 ...
  • 2011-09-02
  • 재한조선족 상인 김영복사장의 이야기   (흑룡강신문=서울 2011-09-01)라춘봉 특파원=“재한 조선족들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염가의 노동력을 판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 내려 있지만 특유의 센스와 지혜로 성공적인 상인으로 주목 받는 조선족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 음식점, ...
  • 2011-09-01
  • 조선족출신의, 하나은행 구로동 지점의 김순연대리가 중국인전용창구를 전담하며 최선을 다해 실적을 높인데서 은행 내부는 물론, 중국인(동포포함)고객들의 칭찬을 자자히 받고 있다. 중국 흑룡강 할빈 출생인 김순연 대리는 목단강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에 부로를 따라 모국에 온 후 2004년에 하나은...
  • 2011-08-31
  • [인터넷료녕신문 2011-08-26 박경상 리덕권 기자]  대련룡성목업유한회사 황진필 김룡철씨 대련룡성목업유한회사 황진필리사장과 김룡철공장장은 동갑(1964년생)으로서 길림성 화룡조중 동창생이다. 고중졸업후 황진필씨는 할빈동북림업대학을 마치고 연변림업관리소에 배치받아 일본에 가 연변지역에 진출한 목재회사...
  • 2011-08-29
  • 해외를 다니는 상선에서 핏자국만 남긴 채 종적이 사라진 중국동포 선원 노동자의 가족들이 피의 호소를 해 왔다. 회사측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하였다.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은 눈치만 보며 입을 닫았다. 그런데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망망대해에서 시신도 찾지도 못했지만 증거가 없으니 보상...
  • 2011-08-29
  • 최경선선생은1987년 2월부터 길림성 룡정시 지신중학교에서 교수생애를 시작하여서부터 지금까지 24년간 줄곧 영어과교수로 활약했으며17년간이나 학급담임교사로 혼신을 다 바쳐온 우수공산당원이다.   1991년에 교사대오가 부족한 지신중학교에서 최선생은 초중1, 3학년의 영어과교수와 초중3학년 담임을 맡게 되였...
  • 2011-08-26
  • [인터넷료녕신문 2011-08-23 박경상, 리덕권 기자] 기자는 일전 대련에서 젊음의 패기와 혈기로 넘치는 30대초반의 엘리트 조선족기업인 김성호씨(1978년생)를 만났다. 대형선박생산장비와 자동화용접라인설비로 무장된 대련가성공업유한회사외 무역회사 등 4개의 탄탄한 기업을 둔 그는 창업 10년만에 자수성가로 대련에 탄...
  • 2011-08-23
  • [료녕조선문보 2011-08-23 김창영 기자] 참다운 인맥으로 쌓아올린 성공의 금자탑 료녕성 철령방정종이박스유한책임회사 오광훈리사장을 만나본다 오광훈리사장 오광훈(吴光勋) 프로필 1969년 1월 13일 철령시 출생 1987년 9월-1991년 7월 대련리공대학 1991년 10월-1996년 8월 철령시 은주구민정국 1996년 8월-1997년 4월 ...
  • 2011-08-23
  • [길림신문 2011-08-22 전춘봉 특파기자] 이화녀자대학교 녀성학과 리해응박사를 만나 리해응박사 한국 이화녀자대학교에 녀성학이라는 학과가 있다. 녀성의 인간화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으로 대학에서 열점 학과로 인정받아 국내외의 학자들이 적지 않게 모여들고있다. 마침 이 학과에 박사과정 수료중인 리해응(조선족...
  • 2011-08-2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