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족음악의 터전을 지키는 나젊은 지휘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9월11일 09시12분    조회:447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조예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으면서 여러가지 대형문예공연이 련이어 펼쳐지고있는 가운데 연변가무단의 100여명에 달하는 관현악대를 혼신을 다해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나젊은 지휘가가 관객들의 이목을 유난히 끌고있는데 그가 바로 연변가무단 관현악대 수석지휘 조예천이다.

1948년, 연변가무단의 취주악대가 관현악대로 바뀐후 파란만장한 60년 세월을 헤쳐오면서 발전일로를 거듭했다. 특히 정진옥, 안국민, 최룡국 등 원로지휘들은 연변가무단의 관현악대를 자기의 눈동자처럼 아끼면서 연변을 “가무의 고향”으로 승격시키는데 한몫을 크게 이바지했다. 연변예술의 한시대를 풍미했던 제3대 지휘 최룡국선생이 퇴직한후 공백으로 남을번했던 관현악대지휘, 바로 그 자리를 알차게 채운 나젊은 지휘가가 우리앞에 “혜성”처럼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연변가무단 제4대 관현악대 수석지휘 조예천이다.

나젊은 지휘가 조예천은 연변가무단 관현악대 지휘계주봉을 이어받은후 깊은 음악수양과 풍부한 지휘경험을 바탕으로 관현악단의 음악수준을 대폭 향상시키고 높은 완성도의 명연을 이끌어내 지휘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지휘가로 향한 예술투혼

 조예천은 일찍 왕청진에서 태여났다. 조예천은 왕청현제2소학교에 입학한후 어머님의(황승희) 인도하에 음악교원 김정룡선생님을 모시고 손풍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김정룡교원은 절대음감을 소유한 조예천이 얻기 힘든 재목이라 점찍고 조예천을 연변예술학교 강광훈선생님한테 추천하였다.
1985년, 조예천은 연변조선족소년아동문예공연팀의 일원으로 국가 교육부와 문화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6.1절맞이행사”에 참가하여 중남해에서 양상곤 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을 모시고 손풍금연주를 멋들어지게 하여 지도자들의 접견까지 받았다.

1994년,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한 조예천은 대학입시를 거쳐 중앙음악학원 피아노학부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조예천은 어느 한 교향음악회를 관람하고 미흡한 연주와 해석에 저도 몰래 머리가 갸웃해지면서 관현악지휘에 도전하고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일어섰다.

이듬해 차츰 지휘의 매력에 푹 빠진 조예천은 아예 지휘학부 전업시험에 응시하여 합격된후 피아노학부로부터 5년 과정인 지휘학부로 진로를 바꾸면서 동시에 작곡공부도 함께 하였다.

조예천은 5년간 지도교원인 유봉교수님를 모시고 체계적으로 지휘를 배우면서 교수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성적도 남달리 우수하여 여러차나 중앙음악학원의 “인민장학금”, “우수전공실기장학금”을 획득하였다.

1999년, 졸업을 계기로 조예천에게 공연제의가 잇달아 들어왔다. 조예천은 2000년, 2001년 북경과 서울에서 열린 제1, 2회 “동방기원”국제현대음악절에서 수석지휘로 나서서 기량을 마음껏 뽐냈고 그후 선후로 중앙발레무교향악단, 중앙가극원 실내악단, 곤명시교향악단, 하북성교향악단, 산서성가극원교향악단, 중국청년교향악단 등 국내 유명한 교향악단의 객원지휘로 초청되여 중국대륙을 누비며 지휘가로서의 년륜을 쌓았으며 여러 대학, 교향악단의 객좌교수를 맡기도 했다.
 
금의환향
 
2003년 6월, 오랜만에 연길에 돌아와 잠시 휴식하고있는데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도움을 청했다. 한달후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초청을 받고 한국 제주도국제관악제에 참가하게 되는데 관악단의 지휘를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였다. 조예천은 한달간의 짧은 시간내에 심혈을 몰부어 예술학원의 관악단을 련습시킨 뒤 8월에 세계 22개국이 참가한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연변의 높은 교향악적수준을 과시하였다.

조예천이 귀국한후 어느날, 연변가무단의 박서성단장이 조예천을 찾아와 연변가무단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 말해주었다. “몇년뒤면 연변가무단 관현악대 수석지휘자리가 공백으로 남겨질 처지에 놓였소. 고향에 돌아와 그자리에 서준다면 더없이 고맙겠소.”

교향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고향에 돌아온다면 조예천은 많은것을 잃을것임이 자명한 일이였다. 그렇다고 태를 묻고 자라온 고향사람들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수는 없었다. 더구나 얼마나 많은 고향사람들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 사심없는 방조를 주었던가.

2003년말, 조예천은 드디여 모든 고민을 털어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민족음악과 고향악발전을 위해 기여하리라 작심했다.

2004년 3월, 박서성단장은 연변가무단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아직도 배움에 목마른 조예천의 마음을 헤아려 한국 최고의 예술전문대학인 한국국립예술종합대학 지휘학부에 보내 석사공부를 할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조예천은 한국에서 류학한 3년간 첫학기를 제외한 다섯학기 동안 우수한 성적으로 전액장학금을 받았고 아울러 한국국립예술종합대학 청소년관현악단과 한국원주시립교향악단의 수석지휘를 맡아했다.

2007년 8월, 조예천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그는 귀국하여 지금까지 줄곧 연변가무단 관현악단 수석지휘, 연변대학예술학원관현악단 상임지휘와 초빙교수를 맡으면서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교향악의 리념을 민족음악에 부여하고 예술성과 감상성에 립각하여 교향악적인 훈련과 작품배치를 하면서 교향음악공연, 교향음악보급, 민족음악예술의 교향화에서 모두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조예천은 5년간 연변가무단 관현악단을 이끌고 “새봄맞이음악회”, “장백의 여름” 교향음악회, “개혁개방 30돐 기념 대형음악회”, “공화국 창건 60돐 맞이 대형음악회”  등 수준 높은 대형음악회를 수십차 펼쳤다. 특히 음력설전야에 년례행사로 치러지고있는 “새봄맞이음악회”는 명절분위기를 더해주면서 기다려지는 공연으로 인기를 더해가고있다.

올해 6월,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전국소수민족문예회연에 참가하여 훌륭한 성과를 거둔 대형조선족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이여”의 전체 관현악 음악록음과 음악제작을 조예천지휘가 맡아하였었다. 현재 조예천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으면서 “자치주 창립 60돐 경축 연변우수작품음악회”와 “자치주 창립 60돐 경축 가무야회”, “연변텔레비죤라지오방송국 자치주 창립 60돐 경축 문예야회”  등 공연에 관련된 관현악음악녹음에 바삐 돌아치고있다.

2009년, 주정부로부터 “주우수청년전문기술인재”란 특수한 영예를 받아안은 나젊은 지휘가 조예천에겐 할 일도 많고 희망사항도 크다.

“교향악은 100여명의 악사가 모여 현악기, 관악기와 타악기들을 연주하는 합주체(合奏体)입니다. 현재 연변가무단 관현악단은 규모가 작아 실내악대구성에 불과하며 각 분야의 전문인재도 결핍합니다. 연변교향악단의 설립은 절박한 력사적시기에 직면하였습니다.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려는 정부의 전략에 힘입어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인재들을 고향에 불러들여야 합니다.”

연변의 경제실력이 날로 장대해지고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 연변에도 멀지 않아 세상에 자랑할만한 교향악단이 창단되고 다기능현대화적인 극장이 건설되여 우리의 문화예술인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치고 시민들이 고품격의 문화예술을 마음껏 향수할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연변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ㅡ료녕성체육운동기술학원 륙상지도원 김정호 1950년대 초기 장거리달리기에서 여러차 전국기록을 돌파하여 1953년에 첫패로 국가급운동원칭호를 받은 김정호(86)할아버지, 일전 기자는 그의 댁을 방문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는 한창 런던올림픽경기를 시청하고있었다. “할아버지, 우리 나라가 금메...
  • 2012-08-14
  • 철령시 청하구 강관화구장 자주창신능력과 과학기술로 지역경제 활성화 (료녕신문)Author:관리자 Date:8/10/2012 본사소식 2001년부터 10년간 철령시대외무역경제합작국(아래 합작국으로 략칭) 국장, 당조서기, 철령시과학기술국(아래 기술국으로 략칭) 국장, 당조서기로 사업하는 동안 철령시 산하 제반 분야의 자주창신능...
  • 2012-08-10
  • 쑤닝 전기 장진둥 회장, 지칠줄 모르는 도전정신으로 신화 일궈내 http://hljxinwen.dbw.cn   2012-08-10 11:14:45             (흑룡강신문=하얼빈) 매장크기 200m² 남짓한 작은 에어컨 도매상을 오늘날 중국 최대 가전판매업체로 일궈낸 이가 있으니 바로 쑤닝(蘇寧)전기의 장진동 회...
  • 2012-08-10
  • http://hljxinwen.dbw.cn   2012-08-10 11:08:43             미국남가주대학 피아노학부 석사연구생 김은희의 이야기   (흑룡강신문=연변) 김명록 연변 지사장 = 지난 7월 초 , 미국남가주대학 피아노학부 석사연구생 김은희양을 인터뷰했다. 취재시에 김은희부모님들도 동석하여 김은희 ...
  • 2012-08-10
  • http://hljxinwen.dbw.cn   2012-08-10 14:21:40                한춘: 시는 객관세계가 작가의 심령에 불러일으킨 촉동을 표현해야 한다    현대인의 시간은 과거와 속도가 다른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일부 사람에게만 다른 속도를 적용하고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일흔고개에 올라선 ...
  • 2012-08-10
  • “장백산촬영가” 한영을 만나다 “사진작품은 유감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30년간 장백산을 촬영했지만 내놓을만한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장백산을 소재로 한 개인사진전을 열고 사진작품집 《격정의 장백산》을 펴냈으며 연변촬영가협회 주석 등 직을 지낸 한영선생이지만 겸손한 자세로 기...
  • 2012-08-09
  • 잠자는 사람은 꿈을 꾸고 잠을 이기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 중국 IT계 선구자 장춘국가광전자산업기지발전그룹 류천문회장 연변일보 2012-8-8 9:49:13       목전 우리 나라에 두개밖에 없는 국가광전자산업기지중 하나인 장춘국가광전자산업기지발전그룹 ,산...
  • 2012-08-09
  • 역경 딛고 창업성공 이끈 녀강자 왕청보리수공예품유한회사 리사장, 보리수공예품강습학교 교장 박인자씨의 창업스토리 연변일보 2012-8-9 9:38:20   보통키에 수수한 차림의 박인자(46세)씨와 마주앉은것은 얼마전 그의 회사에서였다. 장애성빈혈로 점적주사를 맞고 왔다는 그녀는 얼핏 보아도 "녀강자"라고는 ...
  • 2012-08-09
  • [좋은 선생님26] 편벽한 시골학교에서 학생들과 더불어 34년 편집/기자: [ 신정자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08-07 23:06:37 ] 클릭: [ ] 흑룡강성 목단강시 동녕현조선족중학교 위정호교원의 사업담 강 하나를 사이두고 로씨야와 린접해있는 편벽한 시골학교에서 우리 말, 우리 글소리 강바람 타고...
  • 2012-08-08
  • 청도정양학교 근 1억원 투입, 신축 새 교사 입주 눈앞에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다. 국립학교마저 학생모집때문에 존페위기에 처해 허덕이고있는 와중에, 한 녀인이 민족교육의 불모지인 청도에 현대화 사립학교를 세운다고 했을 때...
  • 2012-08-0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