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한국 대구시 화교들의 대변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0월16일 09시15분    조회:469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손보충

 
 


2012년 한국 여수엑스포기간 중국에서 몰려든 손님 접대로 분망한 하루하루를 보낸 화교 한분이 있다. 한국 대구시에 위치한 연경식당(燕京飯店) 손보충(53)사장이다. 녕파시인민정부 류기(劉奇)시장이 여수엑스포 “절강 녕파주”행사 참석차 친선도시인 대구시를 방문하며 특별히 손보충사장을 만난것이 화제가 되여 많은 중국관광객이 대구시로 몰려들었고 그들 또한 식사 한끼는 꼭 대구시에서 소문이 짜한 연경식당을 고집했던것이다.

   2대째 대구시에서 살면서 중국과 한국의 우의증진을 위한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나서는 손보충씨의 중국사랑은 남다르다. 2007년 대구시화교협회 회장에 부임돼 지금까지 일하면서 대구시와 중국과의 교류증진을 위한 각종 행사에 깊숙이 관여하는것은 물론 든든한 후원자역할도 하는 등의 가교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 한국과 중국 량국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있다. 매년 10월 대구시의 중심가인 종로에서 수만명이 참가하는 중국문화축제를 개최해 한국인들에게 중국을 알리고 화교들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주는것도 그의 몫이다.

   2009년 손보충씨의 노력하에 대구시에서 한국인과 동일하게 화교들에게도 경로카드를 발급한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손보충씨는 2007년 대구시화교협회 회장에 부임되며 첫번째 사업으로 김범일 대구시장에게 화교들에게도 경로카드를 발급해야 한다는 요구를 제출, 대구시의 경제 문화발전에 대구시 소재 전체 화교들도 한국인 못지 않은 공헌을 하여왔다는것이 그의 리유였다. 현재 경로카드를 발급받은 대구시의 화교들은 뻐스와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료금이 면제되는 등의 많은 혜택을 한국인들과 똑같이 향수하고있다.

  이처럼 중국과 한국의 제반 분야 교류증진에 열성적인 손보충씨의 원적지는 산동성 연태시다. 지난 1998년 작고한 부친 손진(孫珍)씨가 1948년 당시 17세의 나이로 한국에서 열린 고모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대로 눌러앉은것이 한국정착의 계기가 됐다. 낯설고 물설은 타관에서 자리잡는 일이 쉬울리는 없다. 손보충씨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은 유복하지 못했다.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서 당시 한국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모두 그랬듯이 아버지도 모친 강운하(姜云霞)씨와 함께 식당을 운영했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 고향 떠난 타관에서의 슬픔을 참을길 없어서였는지 아버지가 워낙 술을 좋아했기 때문이였다.

  대구화교학교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손보충씨는 집안형편탓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서울 부산 등지를 떠돌며 20여년간 직장생활을 했었다. 중국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며 료리기술을 배워 후날 자립할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보충씨가 처음 자기 점포를 마련한것은 1994년. 대구시 남구 봉덕동의 방 두칸짜리 허름한 집에서 테이블 6개를 놓고 중화료리식당 “연경식당”을 오픈했다. 살림집이자 영업집이였다. 가족들은 손님들이 가고 난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수 있었다.

   처음 2년간은 장사가 잘되지 않아 고전했지만 “음식은 재료”라는 보충씨의 료리철학이 빛을 발했다. 손님들은 음식을 먹으러 왔지 시설을 보러 온것이 아니라는것이 그의 고집이자 철학이다. 최고의 재료만 고집하는 한편 새로운 료리개발에도 공을 들였다. 지금은 대구의 웬만한 중국식당에서도 다 내놓는 료리 “전가복(全家福)”은 사실 보충씨가 새로 개발한 료리임에 틀림없다. 이전에도 “전가복”이라는 료리는 있었지만 재료와 료리방법이 보충씨와 달랐다.  보충씨가  선보인 “전가복”은 연경식당의 대명사가 됐을뿐만아니라 대구시에 최고의 중국료리로 널리 알려졌다.

   넘쳐나는 손님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한데다 집주인이 임대료를  지나치게 올리자 보충씨는 2004년 대구시 수성구 중동으로 식당을 옮겼다. 59평방메터의 널직한 터에 250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규모로 거듭난 연경식당은 현재 20명의 종업원을 쓰고있다. 중국인 6명에 한국인 16명이다.

   큰 돈을 벌어 부자의 행렬에 들어섰지만 보충씨는 지금도 사치를 모른다. 번 돈은 화교협회의 일과 주위에서 권하는 좋은 일에 쓰기 바쁘다. 부인 손무평(孫茂萍)씨(47)는 그의 이런 그의 씀씀이가 못마땅해 다툰 적도 많았지만 몇년전 남편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여 지방정부의 정성어린 접대를 받고부터 생각이 바꿔져 이젠 남편이 하는 모든 일에 함께 참여한다고 표했다.

   손보충씨에 따르면 현재 대구시의 화교인구는 1,000명, 가장 많았을 때는 5,000명선을 넘어섰다.

   2009년 10월 손보충씨는 대구시로부터 명예대구시민증을 수여받았다. 녕파시 류기시장과 함께 있는 손보충씨(왼쪽).      

료녕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인터넷료녕신문 2011-11-22 특약기자 김경덕]  무순시제3병원 흉부외과 보통외과 리석현주임의사 무순의료계통에는 중국의 21명 의료골간사업단 일원으로 예멘공화국에 가서 의료사업을 충실히 완성한 한 나젊은 조선족의료일군이 있다. 그가 바로 무순시제3병원 흉부외과 보통외과 리석현주임의사(43세)이다.  ...
  • 2011-11-22
  • 10월중순의 하루 한 낯선 녀성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옛날에 우리 아버지가 연변문공단에서 농악무를 배워줬고 연변예술학교에서도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농악무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변의 농악무에 관한 보도나 론문에는 우리 아버지의 업적이 하나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필자는 전화를 받은...
  • 2011-11-17
  • 올해 34세에 나는 김성규는 고객과 함께 커온 무역인이다. 길림성영길현 태생인 김성규씨는 청도에 갓 진출했을때만해도 50원으로 일주일을 살았을만큼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자존심보다 자신심이 특별히 강했던 그는 꼭 성공하고야만다는 일념으로 시장을 답사하고 대상을 선택, 그러던중 플라스틱첨가제, 캐미칼(精细化...
  • 2011-11-17
  •  [길림신문 20211-11-15 김룡 기자] —연변축구평론계 거장 최동섭부교수 소년시절부터 의 꿈을 키워 최동섭은 1933년 9월 17일(음력)에 룡정 조양천의 한 농민가정에서 4남매중 막내로 태여났다. 너나없이 가난에 실달렸던 그 시절, 최동섭가정도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였다. 《가난한 집 자식이 일찍 셈이 든...
  • 2011-11-15
  • [연변일보 2011-11-14 리련화 기자 ]원 연변대학 조문학부 최상철교수가 편집위원으로 참가한 《중국소수민족신문전파통사》가 올해 2월 국가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인문사회과학성과상 저작류 2등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늦...
  • 2011-11-14
  • 협회경영의 새 모식을 연 김국성 회장, 협회주식제형식으로 전갈오공양식장 오픈,년 순수입 50만원을 예상 많은 협회가 회비와 협찬금에 의지해 운영되고 있을 때 협회를 산업화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 화제다. 바로 청도시성양구로인협회 김국성회장(1952년생)이다. 부대에서는 군관으로, 제대후에는 무장부...
  • 2011-11-11
  •   차철,최향란이 꾸리는 청향관 전통음식으로 청도에서  큰 인기   청도시성양구에 가면 청향관이 있다. 청향관은 연변전통음식으로 미식가들을 정복한 연변 청향관의 가맹점으로서 차철(72년생), 최향란(73년생)부부가 오픈 한 이래 솔화분 랭면 등 다양한 메뉴로 고객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을 졸...
  • 2011-11-11
  • 지린성 김시자민속식품유한회사 김시자 이사장을 만나   김시자(金時子) 프로필   1956년생   1972년 9월ㅡ1979년 영길현 삼가자향 화평초등학교 교원   1980년ㅡ1985년 창춘경제개발구 락동촌 6사 사장   1986년ㅡ1995년 창춘시춘진식품공장 공장장   1996년ㅡ2001년 창춘경제기술개발구 민속촌개장집 경리  ...
  • 2011-11-11
  •  중•한 교류 20년, 한국통 조선족 숫자 점차 증가   한국 최대 건축종합회사 동일건축에 건축사로 입사 심봉학   (흑룡강신문=선양 2011-11-10)초기 중국인의 한국 진출이 쉽지 않았던 시기에 중국에 밀려왔던 한국인 중 '중국 '이 되기를 꿈꾸던 많은 이들이 있었고 지금도 수많은 한국인의 중국 러시가...
  • 2011-11-11
  • 청도서원장학교 허룡교장 책임, 질량 봉사로 학교 운영   허룡교장은 길림성교하시실험소학교, 교하시 조선족중학교에 옹근 20년 교장 사업을 해온  길림성에서 인정해주는 교육계의 풍운인물이며 교하조선족교육의 일등 공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년 4월 서원장조선족학교 교장으로 부임돼 온 허룡교장은 사립...
  • 2011-11-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