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내가 즐기고 나눔을 실천할수 있는 일 “고로 나는 성공할수 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0월22일 13시38분    조회:803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성화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3) 박성화 
 
고객 60~70%가 한족
2010년 “3.15소비자지정상가”
“백년”상표 연변지명상표로

 
 
 
 
박사장의 말을 빌면 아는것이 너무 적어서, 그래서 하루 1시간이상은 독서한다.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인터뷰에 능하지 않은것을 보면.
《백년돌솥밥》이 2003년에 문을 열었으니 지금까지 장장 8년 세월을 넘기였다. 8년 항쟁끝에 일본을 몰아냈으나 그 력사처럼 창업도 쉬운 나날은 아니였다. 심혈의 대가로 수차의 영예를 지니였고 인젠 연변 8개 현시에 직영점(가맹점)을 앉히였고 작년에는 《백년돌솥밥》청도진출을 이루었다. 동북을 벗어나 넓은 시장개척의 첫 걸음마에 지나지 않으나 갈길은 멀고 앞날은 휘황하다.
 
젊은 나이에 음식업종에 뛰여들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 길을 고집하고있는 박성화리사장에게 성공할수 있다고 믿는 “밑천”을 물었더니 “내가 즐겨서 하는 일, 그 일로 하여 임직원과 고객과 사회와 나눔을 실천할수 있는 일, 지금까지 이렇게 걸어 왔고 또 앞으로도 이대로 걸어갈것이고, 그러기에 나는 꼭 성공할수 있다”는 답을 주었다.
 
많은 성공한 기업인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돈 벌려는 의욕에 창업을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그 일속에 빠져들어 인이 박히여 더는 떨쳐버릴수 없는 운명의 포로가 되였다.
아무리 피곤한 몸이라도 가게에 들어서면 상태가 달라지고 흥분되고 식사하는 고객의 즐거운 모습과 일하는 직원의 부담감 없는 심태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박성화리사장은 인젠 철저한 직업인으로 변신했다.
 
백년의 돌솥밥, 이제는 장사가 아니라 민족의 음식문화전통을 홍보하고 발전시키는 정신세계에서 고민하는 그녀에게 답은 하나, 내가 나무라면 직원들은 뿌리, 열매는 사회의 몫이다. 이러한 기업인의 령혼은 홍보에 가까운 빈말이 아니라 행동의 준칙, 기업경영의 리념이였다.
 
《백년돌솥밥》의 경영리념과 목표는 어딘가 독특했다.
 
기업목표: 직원들이 자가용이 있고 집이 있고 재부자유를 실현
기업사명: 고객에서 자연영양 돌솥밥 제공
가맹점리념: 회원사에 상상외 재부를 창조
기업가치관: 연변지역 납세대호로 성장, 해마다 300명 취업기회 창조.
 
우질봉사, 원자재에서부터 서비스에서까지 철저한 품질관리, 내집같은 느낌, “회사의 가맹점 등 확대는 더디게 진행되고있다. 무리하게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라 가맹점의 리윤을 보장할수 있는 전제조건에서만 실현가능한다”는 것이 박성화리사장의 경영원칙이다.
 
박성화리사장에게 사천 신선로를 위주로 하는 하이디로(海底 , 1994년 성립)가 인상이 깊었다. 각 성을 커버하는  직영형식의 대형기업체인데 청도 출장중에 그 흡인력을 느끼였다. 저녁 8시 넘어 하차했는데 그때까지 가게밖에 수십명 고객이 줄지어 대기하고있었다. 그녀에게는 잊을수 없는 매력이였다. 여기서 얻은 기업확대의 욕망, 그것은 직원에 대한 보살핌으로 돌아갔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직원들은 숙소에 돌아가면 가무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누리고있다.
 
사회에 대한 보답, 재부의 환원은 서서히 박성화리사장의 경영사상에 스며들고있으며 지금까지 적지 않은 액수의 자금을 빈곤학생, 빈곤호, 사회구역건설 등에 지원했다. 자신도 홍보하라는 PR시대에 뒤쳐있는 모습이지만 선하고, 착하고 아름다운것은 분명했다.
 
백년의 돌솥밥이라.
“백년을 녹이고 천년을 사는...”

사진 박군걸  글 한산


 
 
박성화 朴星 
 
룡정시 대소 출생
룡정시고중 졸업
길림재정무역학원졸없
연변주물자국 근무
연길시백년돌솥밥판점 개업(2003)
연길시공원분점 개업(2005)
연길시10대창업모범(2008)
《백년돌솥밥》 청도가맹점 개업(2011)
돈화시분점 개업(2011)
연변8개 현시 분점설치 완료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60)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실 서태문실장의 인생스토리    “방송은 내 친구이자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이는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마이크와 씨름을 해온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실 서태문실장의 페부에서 우러러 나온 말이다. 1983년 연변체육중등전문학교에 입학...
  • 2012-12-1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8)  한국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 회장 리상규시인을 만나     나는 가장 순수한 일을 하는 사람   조선족과 한족은 동반성장을 이룩해야   한번 시작한 일 포기하는 법 없어     어제 오후에 행사를 마쳤다. 연변대학사범학교 반디불 문학상 시상식이다....
  • 2012-12-14
  • 정직과 정열로 수놓은 무용인생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에서 본과생들과 연구생들에게 조선민족무용과 무용연구방법론 등 과목을 가르치고있는 최미선교수는 중국의 최고무용명문학부인 북경무용학원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별로 해놓은 일도 없어 쑥스럽다고 하면서 극구 취재를 사양하는 최미선교수와...
  • 2012-12-13
  • 나를 요구하는 한 이 길 끝까지 갈터 로인 장애인 빈곤학생돕기로 삶을 빛내이고있는 하애하씨의 일가견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몸이 불구여도 의지만 있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 "그들이 나를 요구하는 한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것이다." 이는 장애자의 몸으로 로인, 장애인, 불우학생돕기에 혼신을 다하...
  • 2012-12-13
  •       ▲ 중국의 저명한 서예가 이동휘 선생   이동휘(李東輝), 자는 희지(曦之), 또는 의인(依仁), 학이(學而),  시습재주(時習齋主)라고 부른다. 1971년도에 출생지는 중국  하북성(河北省) 보정시(保定市)이며,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엄격한    교육환경 속에서 학...
  • 2012-12-13
  • 우리 글 서예교육가-김정송     40대 중반이 넘어 서예교원이 되여 우리 글 서예보급과 서예교육에서 큰 성과를 올린 분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연변대학 사범분원 퇴직교원 김정송선생입니다. 196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매하구 등지에서 중학교 조선어를 가르치던 김정송선생이 서예교원을 맡게 된것...
  • 2012-12-12
  • “아이의 꿈은 독서에서 시작된다”   자식교육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우리 민족의 학부모들은 자식교육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있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학원에 다니고 소학교에 입학하기전에 한글을 떼고 수학계산을 척척 하는 아이들이 기수부지이다. 학교에...
  • 2012-12-10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56)  연변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 문학부 남철주임을 만나       1953년 항일녀성영웅을 제재로 한 첫드라마 “김옥희”방송   최근 년간 우리말방송드라마 해마다 180회씩 제작, 방송.      8월 6일, 일기예보는 이날 낮기온을 섭씨 29도라고 전...
  • 2012-12-1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