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기여, 봉사, 헌신… “뢰봉아바이”의 삶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1월19일 16시37분    조회:50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한무길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24)

현 주당위 당사연구실 로간부 당지부서기 한무길로인의 인터뷰


 

 
퇴직은 전근, 죽음은 이사일뿐이다. 그만큼 인민을 위한 일에 게을리하지 않을것이다!

분투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것이다…

 

 
“남을 도와주며 산다는것은 늘 웃으면서 살수 있는 활력소를 부여하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살아있는 뢰봉아바이” 한무길로인의 말이다. 얼굴 가득 인자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 한무길, 연길시 사회구역로인대학의 창시자이며 주당위 당사연구실 로간부 당지부서기 등 크고작은 직무 16가지를 걺어지고 80고령에도 지칠줄 모르고 삶의 현장을 누비고다니는 한무길로인을 찾아 그의 삶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뢰봉”으로 산 49년
 
1963년 3월 5일, “뢰봉을 따라배우자!”라는 모택동동지의 제사와 함께 전국적으로 뢰봉따라배우기 열조가 뜨겁게 일기 시작했다. 뢰봉사적을 학습하면서 한무길은 웬지 모를 동질감에 전률을 느꼈다. 전쟁시기군인이였던 자신과 평화시기군인이였던 뢰봉, 소학교졸업밖에 안되는 저학력에 작달막한 키마저도 자신과 너무 흡사한 뢰봉이 어느새 거부할수 없는 존재로 그의 마음속 가까이 다가서고있었다.

“유한한 목숨을 무한한 인민사업에 바칠것이다”라는 뢰봉의 좌우명을 자신의 생활신조로 간주하고 장장 50년동안 한무길로인은 살아있는 “뢰봉”의 삶에 충실했다.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주변이웃들의 편리를 도모해준 일, 두팔걷고나서서 구슬땀을 흘리며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일은 이루다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고 자연피해를 입은 재해구에 의연한 금액만 해도 8만원에 가깝다. 그런 한무길은 언녕 주변 사람들로부터 “뢰봉아바이”라고 불리운지 오래다.

우연한 기회에 독거로인 김봉숙을 알게 된 한무길은 김봉숙의 가슴저린 사연앞에 가슴이 젖어들었다. 앞못보는 소경으로 남의 집 헌 창고에서 생활하는 김봉숙, 손더듬으로 마을의 공중화장실을 다니는 김봉숙의 일상은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부터 도와줘야 할지 망설이던 한무길, 결국 안해와 상의끝에 아글타글 모아두었던 몇만원의 저금을 탈탈 털어 김봉숙에게 아담한 집한채를 사주었다. 한무길로인의 진심어린 도움에 김봉숙은 말을 잇지 못한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2008년에 사천성을 강타한 문천대지진, 한무길로인은 선뜻 3000여원의 의연금을 납부했고 김봉숙로인은 유일한 금붙이였던 결혼반지를 팔아 천원을 마련해 재해구에 의연했다고…장기간 한무길로인의 도움과 교육끝에 2010년 6월, 김봉숙로인은 영광스럽게 입당까지 했다.
 
뢰봉반”의 창시인
 
언제부터인가 한무길로인은 주변에 자신과 한마음인 로인들이 많음을 직감했다. 흩어진 힘을 한데 모으면 더 큰 힘이 되고 더 강한 사랑을 이뤄낼수 있는 법, 한무길로인은 끓어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유관부문을 뛰여다니며 노력한 결과 2004년 14명의 멤버들로 연길시에 민간뢰봉반을 건립, 뢰봉반활동의 발전을 위해 다시 북산가두 당위에 청시하여 민간뢰봉반을 가두당위에 귀속시키고 가두뢰봉반으로 명명한 뒤 회장직을 맡았다. 그렇게 북산가두당사업위원회의 적극적인 지도아래 뢰봉반은 주변 불우이웃돕기에서부터 착수해 살아있는 뢰봉의 진가를 발휘해나가기 시작, 몇년만에 뢰봉반은 뿌리에 뿌리를 뻗치듯 48개로 증설되였고 회원수만도 만명을 훨씬 초과했다. 이렇듯 수많은 “뢰봉”들의 사랑은 주변인들의 웃음과 감동으로 바뀌여갔고 이들의 손을 거쳐 헌금된 금액만도 180만원을 웃돌 정도이다. 현재 북산가두의 김옥선을 비롯한 수많은 불우아동들은 “뢰봉”들의 사랑의 마음이 듬뿍 담긴 후원금으로 근심걱정없이 학교를 다니고있다. 그 모든 활동의 선두에는 항상 한무길로인이 있었다.

나이는 수자에 불과한것임을 보기좋게 증명하듯 80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지 않는 로익장을 과시하고있는 한무길로인의 사적은 《가을단풍(金秋  )》을 비롯한 여러 잡지에 실렸고 그는 중공중앙조직부로부터 “우수당무공작자표병”, “전국우수공작자”, “전국리퇴직간부선진개인” 등 영예를 수여받았다.
 
사후 유체기증
 
“생각해보니 죽은후에도 여전히 사회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 있더라구요.”

무슨 뜻일가 잠간 머리를 갸우뚱하는 사이, 한무길로인은 어느새 기자앞에 한장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연변대학유체기증판공실과 맺은 합의서였다.

“죽으면 썩을 몸뚱이, 후대들의 의료사업연구를 위해 기꺼이 내드리기로 했습니다.”

호탕하게 웃어보이는 한무길로인의 웃음뒤로 진정한 대인배의 풍미가 다분히 풍겼다.

민족의 령혼이 깃든 우리말, 우리글이 후대들에 의해 더 널리 선양되고 보급되길 희망한다는 한무길로인, 베풀면서 살아온 인생덕분에 늘 웃으며 살수 있었다는 한무길로인이 오래도록 찬란한 웃음을 지을수 있기를 내심 기원한다.
 
글 은설 사진 박군걸

 한무길 략력        
 
1946년 14살나이에 참군
1960년 연변대학중문계에 추천
졸업후 연변교육출판사, 연변주당위당사연구실서 근무
2008년 주직속기관우수당원 등 8가지 영예 획득
2004년 민간뢰봉반 설립, 회장
2006년 가두뢰봉반 설립, 회장
2009년 신흥가두 민성사회구역 “새봄로인대학”  설립, 교장 겸 강사
2011년 신흥가두 민창사회구역 “봄빛로인대학” 설립 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되돌아보는 인생그라프 □ 허길성     청년시절의 허길성   사람들은 길고도 짧은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순간순간과 하루하루가 모여 하나의 트랙이 되는것 또한 인생이라고도 한다. 나 자신을 놓고볼 때 1939년생(고향은 조선 함경북도 길주군 갑산동임)이니까 만으로 올해 75세이다. “젊어서는 희망...
  • 2013-03-07
  • 중국과학원 심양응용생태연구소 김영환부교수 산과 나무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사람, 나무의 “웃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무엇인지 깊은 산속의 작은 풀잎의 스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그는 중국과학원 심양응용생태연구소에서 삼림생태를 연구하는 김영환부교수(47세)이다...
  • 2013-03-07
  • 학자형 전문가형 일인자 연변대학부속병원(연변병원) 김철호원장 연변대학부속병원(연변병원)의 이 몇년간의 눈부신 활약과 성장에는 다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 환자와 가족이 100% 만족하는 명품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언제나 온 힘을 쏟아부으며 아름다운 “항행”을 주도하는 “연변병원호” ...
  • 2013-03-06
  •  ‘전국동포산업재해인협회’남명자 총무국장   (흑룡강신문=중국주간) 나춘봉 기자 = 한국에 와 있는 동포들의 숫자가 대략 60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   대부분 중국동포들은 중국에서 한국말을 배웠다. 하지만 한국말과 글을 안다고 해서 한국의 풍습과 문화까지 다 안다고 할...
  • 2013-03-06
  •   THE NORTH FACE 연변총판대리점 한춘향사장 "경기불황으로 요즘처럼 고객수가 줄어드는것을 피부로 체감하고있는 류통업계는 일찌감치 비상경영중입니다. 그럴수록 더 력동적으로 점포가 움직여야 합니다. 불황이라고 움츠릴게 아니라 오신 고객들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정을 나눠주고 좋은 상품을 제안해 주고..." ...
  • 2013-03-05
  • 흑룡강성병원, 흑룡강성중일우호병원 부원장 김정석의학박사를 찾아 흑룡강성병원이라면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것이지만 1800여자리 침대, 3100여명 직원을 갖고있는 이 병원의 실무담당자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지난 12월 12일 할빈에서의 첫 취재에서 만난 흑룡강성병원 및 흑룡강...
  • 2013-03-05
  • -길림성 왕청현제5중학교 전철수교장 왕청현제5중학교 교장 전철수 길림성 왕청현제5중학교 전철수교장이 《길림성민족단결진보 선진집단》의 자랑찬 영예를 안고 병풍산 기슭에서 민족단결의 꽃을 아름답게 피워가고 있다. 2008년 11월, 한족학교인 왕청현제3중학교는 교사재건으로 수업할 교실이 없게 되였다. 이에 왕청...
  • 2013-03-05
  • 조선족녀기업가 김석순 당당하다, 멋있다, 우아하다… 김석순회장(48세)을 처음 만나는 순간 떠오르는 느낌은 대략 이렇다. 그는 외모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를 발산한다. 깔끔하게 빗어넘긴 짧은 머리, 조선족녀성으로서는 보기 힘든 170센치메터가 넘는 큰 키 그리고 부드러운듯하면서도 목적의식이...
  • 2013-03-04
  • "중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의 자녀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한민족의 일원으로 육성하려면 하루속히 '재외한국학교지원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황찬식(57) 재중국한국인회장은 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와 국회가 재외국민의 교육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면서 법적&m...
  • 2013-03-01
  • 저명한 조선족물리학자 김광성교수의 외길 인생 자석은 왜 서로 붙을가, 지남침은 왜 항상 남쪽을 가리키지?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봤을 법한 의문들…살아가면서 그 수많은 의문들은 삶에 부대끼며 지나온 길에 하나 둘씩 잃어버린다. 하지만 한 소년은 달랐다. 헐벗고 굶주리던 그 시절에도 그의 호주머니...
  • 2013-02-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