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불타는 구지욕이 낳은 1호 박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0일 14시25분    조회:50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서영근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0)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 못할 “통신학습”
 
 
 


장장 2년동안 국제서신 “통신학습”
 
궁체, 판본체 대가들로부터 가르침 받아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서 서예에 심취해 침식을 잊은 20대의 청년이 있었다. 굶주린 사람이 빵을 먹듯 서예에 대한 집착과 여러 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는 등 천부적인 소질로 주위의 이목을 끌었던 청년…

“천부, 경험, 노력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참된 스승의 옳바른 가르침이였습니다. 아쉽게도 당시 연변에는 조선 청봉체가 거의 유일하다싶이 했고 전통한글서예가 꿈이였던 저한테는 그것이 비애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한글서예를 체계적으로 배우고싶었던 청년, 그는 과연 어떻게 그 꿈을 이루었을가?

한국 최초로 서예학박사의 영광을 따낸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눈길에 아련한 추억이 묻어나고있었다.

…1994년 8월 “아름다운 한글서예 중한련합전”이 펼쳐졌다. 이미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고 입선된 경력으로 때이르게 중국조선족서예가의 반렬에 올라있던 서영근씨는 그번 대회에도 출품해 상을 받았다. 특히 그 기쁨이 배가 된것은 그번 대회에 처음으로 “궁체”라는 한글서체를 접하게 된것이였다.
 
“아, 바로 이것이다!”

너무나도 몰랐던 전통한글서예의 고아함과 중후감에 단통 넋을 앗겨버렸고 무지의 부끄러움보다는 기분이 좋았다. 가르침을 받을수 있는 스승을 찾았다는 판단에서였다.
중한수교 이후 최초로 펼쳐진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글서예대회였고 또한 그에 걸맞게 한국을 대표하는 이름난 서예가 60명의 작품이 전시돼있어 영근씨의 가슴을 높뛰게 했다.

“당시 대회장에서 한국서예가들의 리력과 련락방식을 상세히 밝힌 책자를 배포했는데 그걸 잘 챙겨가지고 와서 열심히 ‘독파’했습니다.”





서영근씨가 그 책자를 “독파”한 리유는 단 한가지, 바로 스승을 찾자는데 있었다. 그리고 책자에 올라있던 60명 서예가중에서 30명을 “엄선”해 스승으로 모시고싶다는 편지를 올렸다. 달포가량 지나서 15명 서예가로부터 회답편지가 왔다. 중국 멀리에서 한글전통서예를 배우겠다는 마음이 갸륵하다며 체본과 함께 당시 연변에서는 도저히 구할수가 없었던 한글전통서예책자들을 보내왔다.  

그때로부터 서영근씨의 “통신공부”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인터넷과 디지털이 공백으로 돼있던 시절이라 모든 “수업”이 편지로 전개됐다. 한국의 스승님들이 보내온 체본을 편지에서 가르친대로 열심히 베껴쓰고 거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다시 편지로 한국에 보내 가르침을 받는 국제 “통신공부”는 장장 2년이나 이어졌다. 그동안 영근씨는 한국 궁체의 대가 산돌 조용선, 판본체의 대가 예광 장성연 등 서예가로부터 한글전통서예의 흐름과 장법을 익히면서 한글전통서예학습에 튼튼한 기석을 마련했다.

영근씨의 배움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1997년에 이르러 영근씨는 한국의 문학과 서예를 보다 더 깊이 연구하고자 류학길에 올랐다. 신근한 노력을 거쳐 2001년 2월 국어국문학과 학사과정을 졸업하고 2003년에는 제주대학교 문학석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이어 국립 경상대학교 국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한후 2008년 2월에는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서예사상 최초로 제1호 서예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영근씨의 이한 성취에 대해 당시 그의 지도교수였던 효봉 여태명선생은 “좋은 제자를 만나 너무 기뻤다”면서 “그는(서영근) 자격과 인품,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이미 충분히 준비돼있었다”며 “항상 겸손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의 자세가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고 높이 치하했다.

장장 2년동안 국제 서신으로 펼쳐졌던 잊지 못할 “통신학습”, 감명깊은 서영근교수의 “배움의 길”을 듣고나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지욕(求知欲)”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진짜로 배움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지식에 대학 욕심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하리라…
 
온복남기자
 
 
서영근 략력
 
 1972년 도문시 월청진 출생
사)중국연변문자예술협회 회장(법인대표,설립자 2008~현재)
재한동포서화협회 회장(설립자)
중국연길시조선문서예가협회 창시인(초대회장. 1996~2003)
중외서화예술교류협회 상무부회장
한국 최초 서예학박사(원광대학교)
현재 한국 서정대학교 교수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류미옥(53살)씨,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줄 모른다.그래서 그녀는 “웃음아줌마”로 소문났다. 그는 연길 예스마일치과병원을 운영하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치과의사이다. 그녀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귀맛 좋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그녀에게 몇년전부터는“노래부르는 치과의사”라는 새...
  • 2013-08-21
  • 석희만은 연변대학 미술학부의 창시자이자 조선족 서양화단을 이끈 선구자의 일원이다. 아울러서 그는 중국현대미술의 변화와 전개라는 력사적인 맥락에서 주목되는 화가이며 미술교육가로 명망이 높다.   석희만은 거의 한세기에 걸친 파란만장한 인생과정에서 격변하는 력사적사건들과 미술사조를 거치면서 중국조선...
  • 2013-08-20
  •   저명한 농민벼재배전문가 최죽송 1964년도에 있은 전국농업회의에서 당시 국무원 총리 주은래는 《중국의 남방에는 벼재배전문가 진영강이 있고 북방에는 벼재배전문가 최죽송이 있다》고 높이 평가한적이 있다. 이때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벼재배전문가를 평함에 있어서 《남진북최(南陈北崔)》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 2013-08-19
  •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의 사업담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 우리 민족교육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30년을 묵묵히 기여해온 사람, 넓은 흉금과 후더운 사랑으로 사생들을 감화시키며 민족전통문화를 고양하면서 민족특색있는 학교건설을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여온 사람, 그가 바로 장...
  • 2013-08-19
  •  LIG그룹 손해보험 '글로벌팀' 하광호 팀장   LIG그룹 손해보험 '글로벌팀' 하광호 팀장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기자= "저의 세대는 대부분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피땀을 흘려 뒷바라지를 해주었죠.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부모님들이 겪은 시련과 아픔을 절실히 느꼈어요. 지금도 고된 노동과 차가...
  • 2013-08-19
  •   연변방송음악사상 살아있는 전설,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선생은 《고향산기슭에》 의젓하게 서 계신다. 백발을 이고 지팽이를 짚고선채 유유히 흘러가는 해란강을 굽어 저 멀리 산야를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겨있다. 《고향산기슭에 올라서니 사철푸른 소나무 반겨주고 유유히 해란강은 흘러가누나 아- 사랑스런 산...
  • 2013-08-16
  • 연변민족복장학교 김영희교장 인터뷰   연변민족복장학교 김영희교장.   "한가지 기술을 장악하게 되면 평생직업을 찾은것과 다를바 없다" 이는 연변민족복장학교의 김영희교장이 한 의미심장한 말이다. 연변에서 지정한 연변로무송출분야의 복장양성기지인 연변민족복장학교(교장 김영희)에서는 20여간 1만여명의...
  • 2013-08-14
  • 장춘조선족기업가협회 김용규회장은 성공도 즐거운 일이지만 베푸는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말한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한국 대우중공업 중국지사에 일반사원으로부터 길림성두산공정기계유한회사의 사장(총경리)으로 자기 자리를 굳힌 그는 기업가로서 부를 축적하는데만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많은 조선족기업가...
  • 2013-08-14
  •   《처녀의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 《베짜기 노래》 등 명곡을 불러 이름을 떨친 가수 방초선은 중국조선족이 배출한 성악가로 널리 알려져있다. 방초선은 중국지역에서뿐만아니라 국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있으며 예술단체, 정치분야 등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국가1급 성악가이다. 국무원에서 수...
  • 2013-08-14
  • ㅡ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심청송리사장의 인생철학 1968년 흑룡강성 녕안현 출생 1991년€1993년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 1994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설립(합작) 2002년 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설립 2005년 길림 집안국제화물운송대리유한회사 설립 2008년 단동시정협위원 2010년 조선 평양에 별심합작...
  • 2013-08-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