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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 펼친 청운의 꿈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0일 14시38분    조회: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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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최은랑
아리랑주간이 만난 살람(52)

중국프로축구 최년소감독 북경팔희팀 최은랑씨를 만나

 


중국축구 축구 본연을 제외한 기타 요소 악영향 끼쳐
 
실력과 경험을 쌓은 뒤 고향의 축구 위해 이바지할터

 
 
19세기 50년대로부터 “축구의 고향”으로 불린 연변은 수많은 축구인재들이 용솟음쳐나왔지만 대다수가 선수로서만 꽃을 피운 축구인들이였다. 특히 1992년 중국축구 프로리그가 개시되면서부터 연변팀 이외의 타팀에서 고삐를 잡은 조선족감독은 렴승필, 추명, 리호은 등 몇몇에 불과했다. 조선족축구팬들은 연변팀보다 타팀에서 활약하고있는 조선족감독의 출현을 학수고대했고 그한 기대는 모름지기 불타는 목마름이 되고있었다.

그러던 올해 2월, 조선족축구팬들의 갈증에 샘물이 되는 소식이 수도 북경으로부터 날아왔다.

연변 도문시가 고향인 조선족 최은랑(31세)씨가 중국프로축구 2부리그인 북경팔희팀(이하 팔희팀)의 주감독에 선정됐다는 소식이였다. 2부리그라면 현재 연변팀이 소속돼있는 리그였고 따라서 올해 조선족축구팬들의 관심은 이왕의 연변팀에서 팔희팀 두개로 늘어났다. 리유는 간단했다. 청운의 꿈을 안은 삼십이립의 조선족 최은랑씨가 좌정하고있기때문이였다. 중국프로축구사상 최년소감독이란 타이틀아래…

당연히 궁금증이 일었고 꼭 만나보고싶었다. 여러 갈래로 수소문하던차 마침 기회가 왔다.

국내 우리글 매체중 최초로 최은랑씨와 단독인터뷰를 가졌던 길림신문사 스포츠담당 김룡기자가 우리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7월 22일 룡정해란강체육장에서였다. 
하루전인 7월 21일 중국프로축구 갑급리그 제18라운드 시합차로 고향을 찾은 최은랑씨는 이날 2군팀들간의 경기로 재차 룡정해란강체육장에 나와있었던것이다.

사전에 약속을 한 김룡기자가 최은랑씨에게 필자를 소개했다.  

알고보니 최은랑씨는 길림체육학원을 다닐 때부터 김룡기자와 함께 과외축구를 했었고 돈독한 친분을 쌓고있었다. 

우선 팔희팀의 올리그 성적이 시원찮아 주감독자리를 내놨다는 풍문에 대해 진위파악에 나섰다. 특히 연변의 몇몇 대표적인 우리글 매체들마저 전날 연변팀과의 경기를 기사화하면서 확인도 없이 최은랑 대신 당붕거를 팔희팀의 주감독으로 적고있어 팬들의 의혹을 자아냈기때문이였다.

돌아온 대답은 물론 “NO”였다. 당붕거는 구락부의 추천으로 잠시 최은랑씨를 도와주러 왔을뿐 팀의 감독은 아니였다. 현재까지 팀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사령탑”은 역시 최은랑씨였다.

“올 2월 팔희팀의 감독직을 맡아 오늘까지 오면서 많은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특히 중국축구는 축구 본연을 제외한 기타 요소들이 오히려 경기를 지배하고있다는 느낌이였습니다.”

최은랑씨는 자신의 “감독경질설”에 대해 구락부 부총경리로 초빙받았던 서량이 주감독자리에 오른 자신을 시기질투하던차 팀의 부진을 리유로 사단을 일으켰고 결국 구락부 주석 곽유유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사실을 례로 들었다.  

어릴적부터 꿈이 축구였던 최은랑씨는 도문시제2소학교, 도문시제1중학교를 거쳐 지난 2001년 길림체육학원에 입학해 체육전업을 전공했다. 이어 2008년 4월 졸업과 함께 일본으로 류학, 일본축구협회기지, 일본축구학원, 일본 니이가다하크쵸구단(J1) 등을 전전하며 본격적인 축구연수에 나섰다. 동시에 FC KOREA(당시 일본 3부리그팀), 일본 도꾜지역 청소년축구팀 코치로 활약하며 아시아 선진 축구 학습에 나섰다.

2012년 일본에서 감독코치학을 전공하고 잠시 귀국했던 최은랑씨는 팔희팀의 우수한 대우와 집요한 요청에 기타 구단의 초청을 거절하고 팔희팀의 조리감독직을 수락했다. 당시 구단이 주감독물색에 나선 상황에서 최은랑씨가 잠시 팀을 맡아 두주일간의 훈련을 시켰다. 뜻밖에도 이 두주일간의 훈련을 눈여겨본 구단주가 어느날 그를 불러 정식으로 주감독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생각밖이여서 많은 고려를 했습니다. 결국 구단의 비전이 나를 사로잡았고 최종 감독직을 수락하게 되였습니다.”

현재까지 갑급리그대결에서 4승 3무 12패로 순위 최하위를 기록하며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있는 최은랑씨는 “꿈과 목표를 가진것과 그렇지 않은것의 차이는 크다”며 “감독직 수행을 마치는 날까지 내가 생각하는 선진지식과 전술을 팀에 주입할것”이라고 했다.

올해 팀의 목표를 갑급리그 보존에 두고있는 최은랑씨는 향후 더 많은 실력과 경험을 쌓은 뒤 고향의 축구를 위해 이바지할 꿈도 갖고있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신철국기자
 
 
최은랑 략력
 
1981년 길림성 도문시 출생
2001년 9월-2005년 7월 길림체육학원/체육교육 전업
2005년 9월-2008년 3월 일본센다이대학 대학원/체육과학연구 감독지도학
2011년 4월-2012년 1월 일본축구협회기지/일본축구학원서 연수

 
집교경력
2008년 4월-10월 FC KOREA(당시 일본 3부리그팀) 코치
2009년 3월-2011년 3월 일본 도꾜지역 청소년축구팀 코치
2011년 5월-2012년 1월 일본축구학원 1팀에서 지도자연수
일본 니이가다하크쵸구단(J1) 1팀에서 지도자연수
2012년 2월-현재 북경팔희팀 주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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