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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요구하는 한 이 길 끝까지 갈터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3일 15시19분    조회: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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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하애하
나를 요구하는 한 이 길 끝까지 갈터
로인 장애인 빈곤학생돕기로 삶을 빛내이고있는 하애하씨의 일가견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몸이 불구여도 의지만 있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

"그들이 나를 요구하는 한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것이다."

이는 장애자의 몸으로 로인, 장애인, 불우학생돕기에 혼신을 다하고있는 훈춘시석양홍양로원 원장이며 훈춘시장애인관리쎈터 책임자인 하애하씨(55살, 지체장애자)의 일가견이다.

3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열몇번의 크고작은 수술을 거쳤지만 평생 지체장애라는 한을 달고 살게 된 허애하씨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강인한 성격을 가지게 되였다. 그는 고중을 졸업하고 교하백화종업원으로 근무할 때에나 사업의 요구로 훈춘광무국 서부탄광에 전근했을 때에도 마른일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여 "3.8붉은기수" , "녀강자", "우수공산당원" 등의 영예를 지니였다. 1993년에 기업에서 인원을 감축하는 바람이 불자 하애하씨는 선뜻 로임을 중지하고 적은 남겨두는 수속을 하고 단위를 나와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남편과 함께 아이스크림장사도 하고 돼지도 기르고 려관, 식당도 꾸리면서 또 다른 인생의 희로애락을 맛보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온 양로원이라는 사업에 눈길을 돌리게 되였다.

1998년, 그는 치매에 걸려 고생하다가 이태만에 돌아간 어머니와 해내외 진출붐으로 하여 고독하게 남아있는 주변의 로인들을 보며 그들을 관심하고 돌보는 사업이야말로 그가 해야 할 최종 사업이라는데 모를 박았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끝을 보고야마는 성격인 그는 즉시 시민정국과 시장애인련합회를 찾아 신청보고를 하였고 그들의 지지로 자금을 모으고 집을 개조하여 그해 5월에 드디여 훈춘시 첫 양로원을 꾸리게 되였다.

지만 양로원사업은 말 그대로 쉽지 않았다. 건립초기에 그는 로인들의 머리를 씻겨드리고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하다보니 힘에 버거울 정도였다. 게다가 일부러 그를 골탕 먹이는 로인들도 있어 한번 해야 할 일을 두번, 세번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로인들이 기분만 좋아진다면 이런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담담히 웃어넘기군 했다. 그는 모든 음식을 로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로인들이 무엇을 요구하면 즉시 달려나가 사다드리군 했다. 그리고 로인들이 아픈 기색을 보이면 제때에 약을 대접하거나 병원에 모시고 가 병을 보이군 하여 로인들로부터 사랑스러운 "딸"로 불리우군 했다.

애하씨가 로인들을 친부모처럼 생각하고 돌본 이야기는 부지기수이다. 한번은 전할머니가 병이 도져 입원하게 되였는데 외국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미처 도착하지 못하자 그는 밤낮없이 전할머니를 보살펴드렸다. 전할머니의 자식들이 도착해서야 의료일군들과 같은 병실의 사람들은 전할머니의 림종까지 지키며 "효성"을 다한 그녀가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모녀"지간인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감탄해마지 않았다.

로원에는 또 치매에 걸린 권할머니가 있었다. 그는 정신이 온전할 때에는 부드럽고 친절하다가도 병이 발작하기만 하면 사람을 때리거나 머리끄뎅이를 잡아채면서 못살게 굴었는데 그때마다 하애하씨는 그를 붙들고 아기마냥 달래면서 그가 잠들 때까지 두어시간씩 잔등을 다독여주군 했다.

번은 한 로인의 부탁을 들어주다가 목숨을 잃을번한 사연도 있었다. 2001년 어느날, 89살에 나는 손화민로인이 병이 위급한 가운데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고싶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전화선이 광풍에 의해 끊어지는바람에 련계할수 없어 하애화씨가 직접 택시를 타고 왕청으로 향했다. 그런데 겨울이라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 택시가 눈깜짝할 사이에 깊은 산골짜기에 굴러떨어졌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들은 안깐힘을 다 써서 겨우 골짜기를 기여오른후 지나가던 운전수에 의해 구원됐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기적 같다는 하애하씨는 로인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이런 기적을 이루어낸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당시 손화민로인이 미안한 나머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던 일과 림종전에 붉은 종이에 “감은”이라는 두 글자를 써주던 일을 생각하면 그녀는 지금도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했다.

는 지난 6일 장애인창업경험교류회에서 "부모님과도 같은 로인들을 잘 모시고 그들의 요구를 잘 들어주는것이 나의 천직이자 의무이기에 자랑할바가 못된다"며 "오히려 내가 장애인으로서 사회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은 이상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하기에 그는 1998년에 훈춘시 첫 양로원을 세우고 2009년에 훈춘시 첫 장애인관리쎈터를 세운후 십여년 사이 선후하여 492명의 로인과 장애인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자기의 친부모, 친형제처럼 살뜰히 보살펴준외에 불우학생돕기, 재해지구의연 등 기타 약소군체돕기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는 2006년에 연변봄비애심회에서 꾸리는 수재원을 돌아본후 불우아이들을 돌보는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애심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수재원에 1200원의 성금을 내놓았고 그후 7년 동안 수재원에 도합 1만원 좌우의 성금을 의연했으며 훈춘시특수교육학교에 6000원의 성금을, 사천 문천 재해구에 2000원의 성금을 내놓았다. 그리고 윤만보로인의 아들이 대학에 붙자 양로원비때문에 고민하는 그를 무상으로 보살펴드리는 한편 그가 세상을 뜨자 그의 아들 윤흥룡의 학비도 4년 동안이나 대주었다. 그가 성심성의껏 도와준 대학생은 7명이나 되며 후원금액은 도합 15만여원에 달한다.

양말 한컬레, 옷 한벌도 사기 아까와하는 그가 약소군체돕기에 통이 크게 나서는것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리해하기 힘들어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한다. 그때마다 하애하씨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아무런 불만도 힘든 점도 없다고 한다. 그는 그저 외지에 있는 아이들한테서 좋은 소식이 날아들거나 안부의 전화가 올 때면 그 이상 더 행복한 일이 없다고 한다.

"로인 장애인, 아이들이 나를 요구하는 한 나는 이 길을 꾸준히 걸어갈것이다." "전국경로효심의 별", "우수기업가", "성직업도덕모범", "성자강창업모범", "성민족단결진보모범", "성10대 경로자녀" 등 수두룩한 영예를 받아안은 그는 지나친 피로축적으로 하여 2010년에 대장암말기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시한부생명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도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과의 사랑을 이어가며 밤낮없이 동분서주하고있다.

연변일보 차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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