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정직과 정열로 수놓은 무용인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3일 16시01분    조회:426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최미선
정직과 정열로 수놓은 무용인생
 

点击浏览下一页

 

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에서 본과생들과 연구생들에게 조선민족무용과 무용연구방법론 등 과목을 가르치고있는 최미선교수는 중국의 최고무용명문학부인 북경무용학원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별로 해놓은 일도 없어 쑥스럽다고 하면서 극구 취재를 사양하는 최미선교수와의 인터뷰는 지인을 통해서야 어렵사리 이루어졌다.

최미선교수는 자신은 인간의 덕목을 그 어떤 기술보다 우위로 본다고 하면서 취재내내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의 이러한 세계관은 스승이셨던 박용원선생님의 준절한 가르침과 갈라놓을수 없다.

1956년에 왕청현에서 출생한 최미선교수는 1972년 10월에 “10년 동란”후 첫 패로 연변예술학교 무용학부에 입학하여 무용인생의 스타트를 뗐다. 1975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뒤 4년간 화룡현문공단에서 무용배우로 활약하다가 모교로 돌아와 교편을 잡으면서 박용원선생님에게서 우리 민족 무용의 진수를 전수받기 시작했다.

‘평생 중국조선족무용에 헌신하라’는 선생님의 준절한이름이 평생 저를 ‘괴롭히면서’ 제가 앞으로 나갈수 있는 동력이 되였습니다. 선생님의 제자를 자식처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씨와 성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철두철미한 장인정신이 바로 나의 무용인생의 버팀목이 되였습니다.”

미선교수는 박용원선생의 문하에서 조선족무용의 고유의 률동과 숨결을 탐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였다. 성공의 초석은 언제나 땀과 노력으로 다져지는 법이다. 그의 성과는 단계별로 무용표현, 무용창작과 무용교수에서 낱낱이 구현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초까지 최미선교수는 무용표현에서 유독 뛰여난 실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1980년, 전국 제1회 무용콩클에서 표현 3등상을 수상하기 시작하여 1982년, 1983년에는 연변청년무용콩클에서 련속 2년간 표현 1등상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에는 동북3성군분구 무용콩클에서 표현 1등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기 그는 일본, 미국, 한국 등 나라의 요청으로 조선족무용을 선보여 관중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미선교수는 배움을 인생의 락으로 생각하고 배움의 고삐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1998년에 한국 세종대학에서 석사학위를, 2004년에 한국 명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동안 갈고 닦은 재질이 무용창작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무용창작은 2006년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이해부터 그는 1년에 평균 4, 5편의 무용작품을 쏟아냈다. 2006년 무용시 “천년아리랑”중의 “북춤”은 전국소수민족무용콩클에서 우수종목상을, 2009년, 무용 “희나리”는 전국 “제자”컵 무용콩클에서 표현 2등상과 창작 3등상을 수상하였으며 2009년 국경절에는 문화부의 초청으로 국경 60돐 “부흥의 길” 창작소조에 편입되여 국가문화부로부터 영예증서를 발급받았다. 2011년에는 30회 TV드라마 “장백산 아래 나의 집”에서 무용안무를 맡아 우리 무용의 아름다운 가락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최미선교수는 지금까지 300여명에 달하는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적지 않은 제자들이 대학과 문예단체들에서 두각을 내밀고있다. 그중 굵직굵직한 국가급상을 수차 수상한 남성군무 “서혼”을 창작한 연변가무단의 안무가 김희는 최미선교수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찍 길림성 제8기 인민대표(1993년), 중국부녀 제7차 전국대표대회 부녀대표로 당선되고 현재 연변민간문가협회 부주석, 연변무형문화유산전문가소조 성원으로 활약하고있는 최미선교수는 무용을 자신의 분신으로 삼고 교수와 학술연구 및 창작에서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하고있다.

연변일보 김인덕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27)   ― 청도 미신커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 리사장 리향란 인터뷰       새로운 창업 2개월 전망 밝아        다함께 건강하고 즐기는 사회 희망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어            사...
  • 2012-12-07
  • 한 녀교수의 조선족연극 사랑   연변대학 연극학부 학부장으로 사업하고있는 한영희교수는 20년간 조선족연극의 교수와 연구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이루어 학계와 연극계의 주목을 받고있다. 1965년 연길시의 한 평범한 로동자가정에서 태여난 한영희씨는 연길에서 소학교, 초중, 고중 교육을 마친 뒤1984년, 중국연극...
  • 2012-12-06
  • 30년간 한우물만 판 리룡문농민 암소 한 마리로 시작한 소사육업... 현재 년간 150마리 출하규모 형성   암소 한마리로 소사육업을 시작한 화룡시 팔가자진 상남촌의 리룡문농민(49세)이 30년간 한우물만 판 결과 지금은 년간 소 150마리 출하 규모를 형성하여 화룡시에서 소사육 1인자로 손꼽히고있다. 가정별생산량...
  • 2012-12-06
  •     (흑룡강신문=서울) 윤교원 특약기자 = 20년동안 오로지 이미용 기계를 개발하면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어 오는 중소기업인을 만났다. 외산 제품이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용기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토대로 한국 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는 ㈜하성전자 하충현 대표를 인터뷰 했다. &n...
  • 2012-12-05
  • 고전춤을 추고 있는 박설화 부교수   (흑룡강신문=연변) 윤운걸 길림성특파원 = "무용은 마음의 정감표현으로 그 마음의 정감을 제대로 무용이란 예술로 표현하자면 반드시 그 무용의 내용이 깊이가 있어야 한다"라고 서두를 떼고 있는 박설화 부교수 무용가이다.   그는 자기가 걸어온 무용예술이란 시공간을 다음과 ...
  • 2012-12-05
  • 30대 판소리 무형문화재 전승자 최려령     무형문화재 전승자 하면 년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떠올리지만 연변 전통음악 분야에는 30대 판소리 전승자가 있습니다. 주급 판소리 전승자 최려령씨를 만나봤습니다. 1993년 최려령은 당시 연변대학 예술학원 민악학부 주임인 작은 할아버지 방룡철의 소개로 연변의 ...
  • 2012-12-04
  •     연변라지오영화텔레비죤방송국예술단의 최향화양을 만나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헌례영화《해란강반의 벼꽃향기》에서 주인공 김향화역을, 텔레비죤련속드라마 《장백산기슭의 우리 집...
  • 2012-12-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