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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하는것이면 나는 포기한다. 작은것부터 시작하여…; “제품가치와 기업의 리념이 중요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4일 08시37분    조회:4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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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정웅렬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57)

― 연길 모닝클로리 중국1호점 전웅렬대표 인터뷰
 
 
 

성실과 용기가 나의 자본

브랜드 가치로 기업 업그레드 실현

모닝클로리 중국1호점 개업

 
 
문구전용백화점을 경영하는 이가 남성이라면 조금은 생각외로 느껴질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전통적인 남성이미지와는 거리가 있기때문이다.
커피숍에서 만났다. 30대였다.

“내가 감동을 느끼는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북대시장 큰길옆 코너에 얼음과자를 파는 한족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북대시장에 소백화점 가게를 가지고있어 늘 만나군 했습니다. 무얼 바라고 남자란 사람이 이렇게 부지런히 얼음과자를 파는가고 물으니 돈을 벌어서 집을 산다는 것이였습니다.  당시 그의 말을 롱담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과연 그 한족남자는 몇 년후 아파트를 장만하였다. 그후에는 그는 그 자리에서 계속하여 얼음과자를 팔았다. 이번에는 결혼을 해야하기에 얼음과자를 판다고 했다.

“지금 그 한족 얼음과자장사는 결혼도 했고 남 부럽지 않게 벤츠자가용을 몰고다닙니다.”

성공이란 우리의 생각외로 이루어지기도 하는것이다. 비천한 업종이 없는것처럼  성공은 사업의 규모나 사회적 위치와는 무관한것이다.

지난 90년 초에 여러가지 소상품을 두루 경영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문구에 손을 댔다.

“한번은 뻐스정류소에서 한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얼핏 들었습니다. 고무지우개 하나 사려고 북대에서 뻐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오는 길이라고 했다. ”

아이디어가 생기는 순간이였다. 북대시장에 문구가게를 챙기기로 하였다. 장사에 문외한인 그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거기에 20-30전을 더 붙여 팔았다.  뻐스를 타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경제적이고 효익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물건을 들여오는 루투를 전혀 모르고있었다.

처음에 손님들은 가격이 백화점보다 높다고 불평했지만 날이 가면서 그래도 편리하다면서 문구점을 지속적으로 찾았다.

전웅렬대표의 문구생애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당시 북대시장부근에 문구점이 없은것이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남들이 하는것이면 절대로 따라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주저없이 포기합니다. 나만의 일을 고집합니다. 그리고 가장 작은것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북대시장에 백화점을 차리는것을 시작으로 가게를 늘여갔다. 2개에서 4개, 4년사이에 17개로 늘였다. 바늘에서 단추, 찝게에서 건전지에 이르기까지 다른 가게에 없는것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았다. 당시 문구상점이 연길에 8-9개 있었으나 결국 오늘날까지 살아남은것은 전웅렬대표 문구점 등 2곳뿐이였다.

“지구력이 중요합니다. 한가지를 꾸준히 해야지 이 산에서 저 산 쳐다보듯 오르고 내리면 세월밖에 흘러가는게 없습니다. 그리고 돈보다 품질이 우수해야 합니다. ”
그 시기 동업자들은 문구라는 소상품을 가볍게 여기고 더 큰 사업에 뛰여들었지만 실패를 모면하지 못했다.



전웅렬대표는 “콩콩”이라는 이름으로 문구점을 10년 넘게 경영하다가 2005년 11월에 “모닝클로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새로운 비전을 시작하게 되였다.

“한국문화가 나를 키웠습니다. 한국 문구브랜드 모닝클로리를 접하면서 문구시장의 싸구려제품을 떠나 진정으로 민족제품을 홍보하기로 하였습니다. 또 이것을 계기로 브랜드 가치를 충분히 인식했고 제품가치와 기업의 리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였습니다. “

모닝클로리 중국1호점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에 들어섰다. 모든 제품은 자신이 직접 시험사용했고 시장조사를 게을리지 않았으며 직원평가제도를 도입했다.
연변에서는 처음으로 문구슈퍼를 도입했다. 여러가지 우려도 많았고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객에게 자률을 줄수 있고 직원수를 줄일수 있었다. 첫 한달 매출액이 지난 달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성공적인 도전이 된것이다.

“문구는 아직도 소규모 경영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얼굴이 필요없어요, 지금은 민족브랜드의 자호감을 십분 느끼고있습니다. 돈을 떠나서 우질제품만을 경영합니다.”

20전짜리 고무지우개에서 시작된 전웅렬대표의 문구가게, 지금은 밴츠자가용을 몰고다니는 한족남성과 너무나 흡사한 점이 많다.

“문구사업은 내 여생의 전부일것입니다. 비록 남자이긴하지만 인젠 18년이란 정이 든 사업이라 포기란 없습니다.”

성공에는 거창한 시작이 필요없는 것이다.
 
 인물사진 박군걸 글 한뫼
 
 
정웅렬 략력
  
중국 도문시 출생(1968)
도문시 2소학교. 졸업
연변특산물유한회사, 도문시병원 직원
연길시북대백화상점 개업(1994)
연길 두란노백화점 대표(현재)
연변과기대 최고경영자 과정(2002)
연길시행복가정협회장(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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