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더 좋은 외식문화 소개하고 다양화함에 힘써; “나는 성공한 기업인보다는 성공한 가족인이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8일 10시11분    조회:646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신주열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77) 

― 연길해피나라푸드서비스유한회사 신주열사장 인터뷰       


 
 

한국음식 전통맛과 지역화 접목해야

신세대 새로운 외식문화 추구에 부응해

오픈시대 노하우는 각자의 몫

 

 
어제 한국인 신주열사장을 만났다.

연변의 선배들은 그를 “연변사위”라고 부르고 동년배나 친구들은 “연변아빠”라고 부른다.

국적이 한국이니 당연 한국인이요, 연변색시를 만나 연변에서 결혼하고 아이 둘의 아빠가 되고 역시 연변에서 생활하고 사업하고있으니 당연 “연변인”이기도 하다.

그가 하는 사업은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일, “해피나라 피자”이다. 지금은 젊은층에서 선호하는 음식으로 레스토랑이나 배달이 자주 되는 음식으로서 피자문화가 서서히 연길에도 자리잡아가고있다. 하지만 신주열사장이 첫 중국행을 선택한 때는2000년도, 피자가 중국사회에 막 알려지기 시작할 시점이다.

많은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신주열사장도 중국어 언어연수를 떠났다. 북경 등 내지를 선택할 대신 심양에 착륙했다. 한국인은 대개 언어연수라면 동북, 특히 연변은 택하지 않는것이 관례로 된다.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있어 중국어를 배우는 언어환경이 리상적이지 못하기때문이다.

“저는 9월 2일에 심양에 도착하여 3일에 연길에 왔습니다. 마침 9.3자치주성립 명절날이더군요.  연길에 있는 한국인 지인들을 만났고 연길에 대하여 호감이 있었구요. 며칠후 북경에 유람갔고 거기서 다시 연길에 왔어요. 이렇게 연길에 정착했어요. ”

연길에서 처음에는 돈까스, 팥빙수 등을 만들어 팔다가 피자를 함께 경영하였다.

“2002년에 해피나라 피자를 경영했어요,  연길에서는 처음으로 레스토랑 피자전문점을 오픈했어요. 당시 연길에 피자점이 한집 있었는데 레스토랑식이 아니고 배달위주였어요.”

피자는 당시 연변의 백성에게는 서먹한 개념이다. 피자는 이딸리아 음식으로서 1830년 캉파니아주 나폴리에서 피체리아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였다. 19세기 후반 이딸리아가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빈곤이 격화되자  많은 이딸리아인들이 미국으로 이민했으며 1920년대부터 이딸리아 이민자 중 많은 이가 미국 북부를 중심으로 피자점을 경영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자는 미국에서 유명음식으로 되였고 미국음식계는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피자의 세계화를 추진했다.





한국은 주한미군병으로부터 피자문화를 접수하였고 처음에는 일부 호텔, 레스토랑에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경영되였으나 1980년대에 이르러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대중음식중 하나로 되였다. 이러한 피자가 신주열사장의 힘에 입어 연변에 본격적으로 진출, 보급화를 시작했다.

“저는 학교에서는 전기를 전공했어요, 피자에 대해 모릅니다. 사업항목을 정하고 피자기술을 배웠어요. 책에서 배우고 스승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수없는 실습을 거듭했지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구요. 오픈하고 나서는 첫 6개월은 적자지요. 1년이 지나서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

“우리는 음식의 서구화를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입맛의 다양화를 향수합니다. 한국의 새로운 배달문화, 외식문화, 레스토랑문화를 연변에 소개하고 발전시키고 싶었고 또 그렇게 노력해오는 과정에 즐거움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고 저의 인생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피자는 먹는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맛보고 또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 돕는 문화가 더욱 아름답다는 신주열사장.

금년 5월 제22회 전국장애인돕기날을 맞아 회사직원과 자원봉사자 19명과 함께 모든 재료와 설비를 싣고 훈춘특수교육학교를 찾아 장애인어린이들에게 200여인분 피자를 손수 만들어 선물했다.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서비스는 기본입니다. 해피나라는 각종 이벤트를 수차 조직, 소비자들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있어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보답이 따르는 법이다. 신주열사장에게 있어서 그 보답은 평생을 함께 할수 있는 부인을 만난것이다.

“저의 부인은 연길 조선족이예요. 일하는 과정에서 만났어요. 예술대 출신이지요. 매사에서 저와는 토론의 상대이고 교류의 상대이죠. 저의 부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있어요. 나의 허다한 허물과 부족점을 커버해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

자신은 성공한 기업인이기보다는 성공한 가족인이라며 만족해하는 신주열사장.

인터뷰 내내 늘 즐거워 하는 신주열사장이였다.
 
한산
 
 
신주열 략력

 
한국 경북 안동 출생
한국 경일대학교 졸업
해피나라푸드서비스유한회사 사장(2002-현재)
연변과기대 CEO 6기 졸업
연길 옥타 회원
연변조선족음식협회 회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농악무》와 나의 아버지 하태일 50년대 흥겨운 농악무의 한장면, 앞줄 꽹과리를 손에 들고 앉은 자세로 춤추는 사람이 하태일선생 《연변농악무》는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예술형태로 공연에서 마지막 종목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관중들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력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있다. 우...
  • 2012-08-05
  • 금융위기 실패 딛고 선 조선족사나이 편집/기자: [ 김웅견습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08-03 09:56:38 ] 클릭: [ ] -연변가신경제무역유한회사 최중철사장을 찾아 최중철(35살)이 연길시 애단로 흠전빌딩에서 한국KCC금강화학공업 장판무역을 시작한것은 2010년 3월이다. KCC 장판은 친환경재료로 제...
  • 2012-08-03
  • -중국프로축구 최년소감독 북경팔희팀 최은랑씨를 만나   19세기 50년대로부터 “축구의 고향”으로 불린 연변은 수많은 축구인재들이 용솟음쳐나왔지만 대다수가 선수로서만 꽃을 피운 축구인들이였다.   특히 1992년 중국축구 프로리그가 개시되면서부터 연변팀 이외의 타팀에서 고삐를 잡은 조선족...
  • 2012-08-02
  • 건군절을 며칠 앞두고 필자는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대좌 리광남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주숙하는 기회를 만났다. 리광남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장비부 고급공정사, 전문기술대좌다  리광남(1950년출생)은 1970년에 참군, 1995년 대좌계급을 수여받았다. 그는 선후로 과학연구항목 수십건을 완수하여 1, 2, 3등 공을 각각...
  • 2012-07-30
  •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20년 동안 묵묵히 했어요. 한중 수교 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는데, 앞으론 눈치 덜 보고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내 최대의 조선족 동포단체 재한동포총연합회가 재한다문화총연합회로...
  • 2012-07-27
  • 연변일보   암을 선고받고도 자기의 일터를 꿋꿋이 지켜온 녀성이 있다. 딸로서 엄마로서 또한 수감인원들의 “큰언니”로서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씩씩하고 충실하게 보내는 그가 바로 돈화시간수소의 유일한 녀경찰 김해옥(46세)씨이다. 수감인원 관리사업에 몸 잠가온 9년간 그녀는 녀성 특유의 섬세...
  • 2012-07-27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한국 증권업계 전산(컴퓨터 관련)인력가운데 유일한 중국인으로 조선족 김성희(33)씨가 현재 대우증권에서 근무하고있다.   최근 몇년 한국증시에 상장하는 중국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한국금융의 중심지 서울 여의도에 중국인 전문인력도 증가하는 추세다.   ...
  • 2012-07-26
  •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못할 “통신학습”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 서예에 심취해서 침식을 잊은 20대의 청년이 있었다. 굶주린 사람이 빵을 먹듯 서예에 대한 집착과 여러 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는 등 천부적인 소질로 주위의 이목을...
  • 2012-07-26
  • http://hljxinwen.dbw.cn   2012-07-25 10:16:43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으로 임용   (흑룡강신문=하얼빈) 정봉길 기자 김세영 견습기자 =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조선족,28세)씨가 올해 미국 하버드대학 물리학부 광학전공 박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
  • 2012-07-25
  •   공식석상에서 늘 빛갈고운 한복차림이였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시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함순녀(48세)한테서는 차분한 카리스마가 풍겼다. 현재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자 연변무용가협회 주석인 함순녀는 오로...
  • 2012-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