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는 문학애호가일뿐… 산보하고 음악 듣고; “‘목포의 눈물’ 가장 좋아해”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8일 10시45분    조회:499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조룡남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2) 

원로시인 조룡남 선생님을 찾아뵙고                   
 

 
 

김학철같은 분 모시고… 아쉬움 없어
 
문학에서의 만족… 최선을 다해
 
글짓기는 나의 정보를 세계인과 교류하는것


 
지난번 연길역 동쪽 대주호텔 부근에서 우연히 조룡남시인을 만났다. 산보하고 귀가하는 중이라했다. 건강상태는 작년에 뵙던 모습과 별다름이 없었고 오히려 정신상태나 건강상황이 더 나아진듯 했다. 매일 40여분 산보하고 차를 타거나 도보한다는것이였다. 늘 MP3를 지니고 음악을 들으며 깨끗한 공기를 즐기고 삶에 대한 만족감과 감사의 마음으로 그 누구보다도 즐겁게 여생을 향수하고있었다.

조시인님의 자택에서 나눈 이야기는 20여년전에 처음 시인님을 만나 나눈 이야기와 비슷했다. 내용이 다를뿐 분위기나 기분은 여전했다. 늘 잊혀지지 않는 고생의 나날이 화제였지만 불만이 없고 유쾌하고 즐겁고 또 겸손하였다.

《황성의 달》이란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로 인하여 조룡남 나는 독초가 되여버렸어요.”

《황성의 달》 노래는 1902년 일본에서 첫 발표되였다. 조룡남시인은 학생시절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 회억하고있다.

“《황성의 달》곡이 흘러나왔다. 당시 한 학생이 흰옷을 입은채 무대에서 독무를 추었다. 춤이 끝나자 일본인 교장이 무대에 올라가 그 학생을 포옹하듯이 끌어안았다. 흥분된 표정이 력력했다. 《황성의 달》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후날 이 점을  심심히 느끼였다. 우리 집 옆은 재봉점이였는데 일본군인이나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바지나 웃옷을 기웠다. 당시 전반 사회가 어려운 생활고를 치르고있었고 일본인들도 그러했다. 주인집에서는 이들에게 먹을거리를 조금씩 주기도 했고 일본인들은 점차 재봉집에 한번 두번 더 자주 모이였다. 이들은 때론 함께 모여 많지 않은 음식을 나누어 먹고 나중에는 노래도 하는데 《황성의 달》이였다. 고향에 대한 애수,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거고 그래서 나중에는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

우리 조선민족의 《아리랑》과 비슷하다 할가? 김학철선생이 소속되였던 조선의용대는 늘 일본점령구 부근 지역에서 대일선전공세를 벌이였는데 그때 《황성의 달》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 적의 진영에서는 병사들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당시 대일선전에는 김염의 녀동생 김위도 참가했었다.

“내가 연변사범학교에 다닐 때 일이였어요. 동반 학생이 길가에서 종이장 하나를 주어왔어요. 《황성의 달》가사가 적힌것이였어요. 원래부터 그 노래에 깊은 애호가 있는지라 나는 흥분에 겨워 그 종이를 가로채다싶이 했지, 일어로 된것이였기에 곧바로 백호연선생을 찾아갔고 노래가사 4절을 조선문으로 번역해달라 청했지요. 그렇게 번역된 가사를 나는 보배처럼 여겨 집에 고이 보관해두었어요.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되였거든. 문화대혁명때 집을 수색하면서 나온거야, 당연 조룡남의 독초가 되여버렸어. 일본노래이니깐, 기실 나는 지금도 그 노래가 가지고있는 정서에 늘 젖어있군 해요. ”

지금도 조룡남시인은 맏아들이 구해준 《황성의 달》노래를 즐겨듣고 고이 간직하고있다.



우리들 이야기는 자연히 시와 문학을 외면할수 없었다. 문학과 자신에 대한 조룡남시인의 자세는 겸손함과 솔직함이 짙었다.

“나 만년에 와서 늘 문학과 자신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거든. 연변이란 울타리에서는 성과가 있다하겠지만 광의적인 범위에서 평가하면 나 아무것도 아니야. 원인은 3가지 있어요.  아는것이 없다는게 첫째 원인이요. 나 명문대를 나온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서를 많이 한것도 아니며 더욱이 외국어를 몰라요, 치명적이지. 독서는 하늘에 이르는 길이라 하는데 나 그렇지 못했어요. 그리고 견문이 빈약해요. 력사적 배경도 있겠지만 지리, 인문, 력사, 철학에 대한 지식이 없고 해외나 중국 많은 지역을 다녀보지 못한것도 하나의 원인이요. 마지막으로는 타고난 예술재질이 없어요. 실제 생활은 있으나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재간이 없어요. 지금 이 점을 승인해요. 나는 젊은 때의 고생을 전부 보상받았다고 봐야지요, 하지만 예술적으로 평가할 때 나는 실패한 인생이지. ”

조선족문단에서 문학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조룡남시인, 랭정하고 부끄럼없는 자아평가를 하면서 인생에 대한 만족을 드러냈다. 2010년에는 시집을, 2011년에는 동시집을 출간했고 금년에는 수필, 래년에는 산문집을 출간한 타산, 지금 원고정리를 다그치고있다.

건강상황이 썩 리상적이지 않는 오늘에도 독서는 필수였다. 최인호의 《상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은 그가 좋아하는 책들이다,

“내 일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목포의 눈물》이지, 그리고 《대지의 항구》, 《황성옛터》도 무척 좋아해요. 사실말이지 추도곡 대신 《목포의 눈물》을 방곡했으면 좋겠어요. 허- 허…”

인생을 써야 예술생명이 있다는 조시인님,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반디불문학사 학생회원들은 그의 집을 찾아와 만남은 갖고 문학적 가르침도 받는다. 조시인은 이들에게 문학명작을 개편한 드라마도 보여주고 작품도 수정하여준다.

아쉬움과의 리별은 욕심을 버리는것.

조룡남시인이 우리 모두에게 보여준 모습이겠다.
 
한뫼
 
조룡남 략력

 
중국 훈춘시 출생(1935)
연변사범학교 졸업
훈춘2중 교원, “우파”로 됨
연변인민출판사 《아리랑》 편집부 (1984)
제7기, 8기 연변주정협 상무위원
시집 《그 언덕에 묻고 온 이름》 등 수십권 출간
중국소수민족문학상 등 수상.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선족청년작곡가 박광춘 신미디음악회가 10월 28일 연변TV방송국 스튜디어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박광춘이 최근년간 창작한 새로운 가요와 음악작품들을 신미디음악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담아 표현하였다. “세상은 우리것이야”“청춘스타트”“오아시스” 등 17수의 음악으로 구성되였고 열정 사랑 찬미 등 세 부분...
  • 2005-10-31
  • 광복 60주년을 맞아 올해, 덕수궁미술관에서는 8월말부터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보통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일제 강점기 중국 땅에서 화가이자, 고고학자, 나아가 혁명가로 활동하다 끝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에 뼈를 묻어버린 한낙연(韓樂然)을 기념하는 ‘광복 60주년 기념 한낙연 특별전...
  • 2005-10-31
  • [원제:할빈시고려회관 안중근의거96주년기념좌담모임 소집] 2005년 10월 27일 10월26일 안중근의사 의거 96주년에 즈음해 할빈시고려회관은 안중근의사 기념좌담모임을 소집했습니다. 회의는 리민 전 흑룡강성정협위원회 부주석이 기증한 ,이란 글발의 휘호족자 두폭을 전달했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안중근의사의 생애와 ...
  • 2005-10-28
  • 《퉁소마을》인 훈춘시 밀강향에서 태여나 자라 꾸준한 탁마로 중국 문화예술부상인 문화(文華)예술학원상 제2회민족악기연주콩클에서 1등상을 수상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최민(25살)이다. 1993년, 훈춘시문화관에서 《퉁소마을》조성을 위해 밀강향에 퉁소 100대를 지원했다. 어려서부터 마을 로인...
  • 2005-10-28
  • 효자효녀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효도하는 성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15세밖에 안되는 초중생이 학교로부터 '효자상'을 받았다. 그가 바로 상지시조선족중학교 초중 2학년 4반의 류춘길학생이다. 춘길학생은 학습성적도 우수하거니와 학우간에 우애단결하고 학교 각항 제도도 모범적으로 ...
  • 2005-10-27
  •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조선 국방공업을 이끌어온 시세다.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여난 연부위원장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체코의 프라하공대를 류학한후 로동당, 정무원(현 내각), 국방위를 오가면서 조선 국방공업과 경제건설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항일빨찌산 유자녀로 김일성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
  • 2005-10-26
  • 1983년. 중국작가협회 길림성 분회 부주석, 상무위원회 위원이던 그는 베이징으로 전근한다. 이어 중국 작가협회에서 발간하는 '민족문학'주필이 된다. 그때만 해도 조선족은 북경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5년 만에 베이징 호적(시민)이 된다. '베이징 시민'은 특혜였다. 조선족으로는 처음 베이징 명예시민이 된 것이다. 등...
  • 2005-10-26
  • [원제:《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호평속에 다카쿠라켄 장예모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제18차동경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오른 영화 《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는 장예모감독과 다카쿠라켄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개막식에서 이 작품은 세계영화인들과 일본관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의 중국영화...
  • 2005-10-25
  • [원제: 중국조선족항일사 연구하는 만족당사학자-조문기] - 다련래 조선족항일사에 관한 저서, 론문 대량 발표 다년간 신빈현 당사지방사연구판공실 주임직을 담임했던 조문기(만족 57세)씨는중국조선족항일사연구에 조예가 깊어 중국조선족사회는 물론 한국에도 꽤 알려졌다. 조문기씨가 중국조선족항일사에 관심을 가지기...
  • 2005-10-25
  • 중국의 대표적인 음악가인 정률성선생(1914~1976)의 출생지와 관련,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은 한국 광주남구의회 유 순남 의원이 지난 17일 정률성선생의 호적과 화순 능주소학교 제적부, 정률성아버지 정해업씨의 토지소유대장자료 등을 토대로 정률성선생의 출생지가 화순이라고 주장하면...
  • 2005-10-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