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국 퀼트의 멋 세계에 알리는 조선족 여성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2월4일 10시40분    조회:595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원선
 

  국제대회서 수차 수상…중국 퀼트업계의 일인자로 군림

  제자양성에 안깐힘, 가장 큰 염원은 중국 퀼트협회 설립

  (흑룡강신문=하얼빈) 인터넷 검색창에 '김원선'이란 세 글자를 입력하면 그녀와 관련된 수많은 검색기사가 뜬다. 그 중에서도 이 이름을 가진 퀼트예술가의 연락처를 알려는 카페나 제자로 되고 싶어하는 사람, 기예교류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올린 글이 유독 눈에 띈다.

  김원선씨가 대체 어떤 손재주가 있길 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의 만남을 간절히 원하는걸까? 하지만 이들이 올린 글을 자세히 보면 궁금증이 곧 풀린다.

  김원선(65세, 조선족)씨는 중국 퀼트예술의 일인자로 불리며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녀는 2차례 중국 국제가정용방직품 디자인대회상을 수상했으며 청화대학 예술학과의 객좌교수로도 임명된바 있다. 또한 지난 2007년 도쿄국제퀼트박람회에서 선보인 '차자언홍(姹紫嫣红)'은 2등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2010년 연초, 문화부 등 여러 부서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2010국수정화-민속문화축제'에서 선보인 김원선의 작품은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같은 해 퀼트복장차림으로 상하이국제퀼트축제에 참석한 김원선씨는 수많은 퀼트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그때 수많은 복장 디자이너들이 모두 김원선과 합작하고 싶다는 의향을 드러냈다. 하지만 김원선씨는 "그저 간단한 옷만 만들 수 있을 뿐 복잡한 디자인은 할 줄 모른다"며 겸손하게 사양했지만 퀼트애호가들은 간단해도 독특한 풍격이 너무 매력적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퀼트예술이란 말 그대로 자투리 천을 한데 러프스티치해 이불, 방석, 휴대폰주머니, 동전지갑 등 일상용품을 만들어내는 수공예술을 말한다. 단순한 장식성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장식화 등 예술품은 실용적인 특징까지 갖추었다. 유럽, 미국, 일본, 한국에서 퀼트예술은 이미 널리 유행되고 있으며 최근 연간, 퀼트예술은 중국에서도 점차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전에 김원선씨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던 통계사일을 했지만 그때부터 퀼트예술에 대한 이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김원선씨는 화가는 붓과 먹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면 자기는 바늘과 오색실로 다양한 색깔의 천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절대 예술가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작품창작에서는 희망도 함께 수놓아 가고 있다는 김원선씨, 그녀는 한평생 오색실과 함께 어우러지며 살았다고 말했다.

생동한 작품 창작에 안깐힘

  다수인들은 퀼트예술이 한 평면위에서 천을 잇고 그림을 수놓는 것이라 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말하지만 김원선의 작품을 보면 마치 살아숨쉬는 것처럼 생동하게 만들졌거나 심지어 3D효과가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원선씨의 '백화쟁염(百花争艳)'작품을 보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저녁하늘의 불꽃을 연상케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 작품만으로도 김원선씨는 세계 퀼트대가로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했다.

  국제박람회에서 2등상을 수상한 '차자언홍'은 정교한 창작수법과 화려하면서도 과장된 색채운용방식, 한국 국기 태극팔쾌도의 창작성이 한데 어우러지며 개성과 격정으로 넘치는 작품으로 퀼트예술의 독특한 매력을 한껏 어필했다는 평을 받았다.

  1997년, 한국섬유박물관에서 중한일미 4개국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때 중국에서 유일하게 김원선씨를 요청했고 그의 '차자언홍'은 2등상을 수상했다.

  김원선은 이 작품에서 보편적인 바늘질법이 아닌 '거꾸로 세 땀 박는(倒三针)' 독특한 수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원선씨는 "외국 전시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외국인들은 중국의 퀼트기술이 뒤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래서 그때 독특한 '거꾸로 세 땀 박는(倒三针)' 수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퀼트창작에서 보편적인 바느질법을 사용할뿐 '거꾸로 세 땀 박는(倒三针)'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이러한 수법을 고집하는 것은 한걸음씩 물러나다가 결국은 앞으로 크게 전진하는 중화민족의 풍격을 작품에서 드러내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일본이 나의 영향을 받아 '거꾸로 세 땀 박는(倒三针)' 수법이 아주 유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퀼트의 문화적인 함의는 바느질법에 대한 운용뿐만 아니라 아주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디자인에도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김원선씨는 퀼트이불을 펼쳐보이면서 "이 이불의 주제는 오색실에 감춰진 할머니의 꿈이다. 양쪽에 각각 24개의 작은 천조각이 있는데 각각 할머니의 오늘과 내일을 대표한다. 그리고 양쪽켠에 있는 18개 작은 천조각은 대대손손 부자가 되라는 상징이다. 이 2개의 큰 천조각은 손자의 부모이고, 일년 사계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심아래에서 하루하루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며 바깥쪽은 자투리 천으로 꿰맨 것인데 할머니 한 평생의 꿈과 희로애락을 표현한다"며 작품에 깃든 깊은 뜻을 설명했다.

  김원선씨는 또 한땀한땀 바느질을 하는 것은 참을성을 키우기 위해서이고 한데 붙이는 것은 이웃사이, 형제자매사이에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늘 손자에게 얘기한다고 말했다.

  일본전시회에 참가했을 때 일본에서 25년간 퀼트지식을 가르친 일본인은 김원선씨의 작품을 보고 나서 눈에 보이는 기묘한 세계를 작품에 융합시키려는 노력은 했지만 김 선생처럼 한땀한땀의 바느질로 참을성을 키우고 서로 붙이는 것은 단결성을 육성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작품마다 인성교육이 느껴지는 김 선생의 창작이념을 따라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56개 민족 어머니의 예술 이어가고 싶어"

  성적이 우수한 색채협회의 학생이 "남성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복장이 최고"라고 치켜세워자 김원선은 "여성들이 착용하는 장식품은 여성들의 눈에 들지 못하면 절대 착용하지 않기에 여성들의 물건은 반드시 여성이 만들어야 한다"며 "여성들은 애를 낳고 키우면서 모든 것을 묵묵히 후대들에게 전해주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어머니문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원선은 타이완의 여홍문화전시회에 대해 "그곳에는 100명의 어머니들이 함께 일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어머니 협회를 조직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도와주고 싶었다. 암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남편이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2분만이라도 햇빛을 보면 얼마나 좋겠는가며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하얼빈에 와서는 어머니협회를 설립해 어머니의 예술을 대대로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56개 민족의 퀼트가 모두 아주 예쁘고 민족마다 특색이 짙을 뿐만 아니라 함유된 뜻 또한 다양하다고 말했다.

  동족 동자문의 4개 각은 동서남북을 가르키는데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묘족의 동자문은 자녀가 길상여의하기를 바라는 뜻이 함유되어 있다.

  김원선씨는 "현재 56개 민족의 퀼트를 수집하고 있는데 이미 14개 민족의 퀼트를 찾았다"며 이런 것들을 한데 모아 중화민족 대단결의 퀼트로 만들어냄으로써 중국 퀼트예술의 정교함을 보여주고 싶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김원선씨는 현재까지 모두 무료로 퀼트창작을 가르쳐 주고 있다며 이로 퀼트 애호가가 많아지고 사람마다 자기 본민족의 물건을 만들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정부에서도 동족, 묘족, 몽골족들의 퀼트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김원선씨는 "56개 민족의 퀼트 프로젝트를 실시하려는 것은 그저 함께 하는 친구가 필요해서이다. 많은 감상자들이 중국의 퀼트를 얘기할 때면 프랑스를 얘기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그저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만약 중국에서도 여럿이 함께 전시회에 나간다거나 협회가 생긴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줄곧 협회를 설립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방직공업협회에서 퀼트색채예술위원회를 내올 예정이어서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통계사로부터 퀼트 전문가가 되기까지

  전에 김원선씨는 퀼트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통계사일을 했었다. 어머니가 복장 재단사인 이유로 집에는 늘 자투리 천이 남아돌았다. 그때 퀼트를 만든다면 가족들이 기뻐하리라 생각하고 찻잔 깔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에는 젊었으니까 하루에 3개를 거뜬히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장장 3년동안 만든 퀼트작품을 남에게 모두 선물했다.

  김원선은 전문적인 색채양성기구에 다닌적이 없지만 색채에 대한 이해력은 남달랐다. 생활가운데서 색채에 대한 경험을 조금씩 쌓았다는 그녀는 평소 길옆에 깔린 모자이크 타일 색갈의 조합에도 꼼꼼히 눈여겨 본다고 한다. 특히 색갈에 대한 남다른 민감성은 평소 관찰을 즐겨 하는 습관과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퀼트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관찰에 더욱 열중했다. 어딜 가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그녀는 화보책에 나온 색갈 조합을 잘 관찰했다가 더 아름다운 색갈이 나올 수 있는 조합을 연구했다고 한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는데도 퀼트에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는 김원선씨는 퀼트를 잘 할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수시로 가위, 바늘 등 도구를 챙겨가지고 다닌다. 어딜 가든 영감이 떠오르는 물건을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체놓고 가위질을 한단다.

  김원선씨의 작품은 모두 작은 원단을 이어서 만든 것인데 작품에 이용된 원단은 모두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이다. 그래서 김원선씨는 퀼트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이 1m에 120위안하는 원단과 비싼 도구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김원선씨의 학생들은 바늘, 자, 가위, 실에 몇 조각의 천만 있으면 김 선생의 강의에 참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선씨는 "전부 자투리 천을 이용하기에 나의 작품에는 큰 천조각이 없다"며 "전에 어머니가 아주 작은 자투리 천도 버리지 않고 모두 이용했었는데 나도 그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안 그녀는 아침마다 야채시장으로 갔다. 앙파에서 까낸 껍질을 줏기 위해서였다. 양파껍질은 천연재료인데다 천조각에 염색하면 아주 고운 색깔이 나왔기 때문이다. 노란색 양파껍질이 짙은 갈색으로 염색되는 것에 야채상인들도 모두 놀라워 하면서 어떻게 양파껍질로 이렇게 고운 색이 나올 수 있냐며 그후부터는 아예 양파껍질을 모아놓았다가 주기도 했는데 답례로 그들에게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퀼트예술 중국 문화와 갈라놓을 수 없어

  퀼트로 인해 김원선은 수많은 외국 동업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김원선은 그들과 퀼트예술, 참가작품뿐만 아니라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 고수와 전승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교류를 이어갔다.

  2006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연구토론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프랑스의 예술가가 전자형(钱字型) 도안이 유럽에서 중국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듣고 도저히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던 김원선씨는 당나라 때 이미 이런 도안이 있었고 그때 벌써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기에 유럽에서 온 것이라고 보면 안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면서 1992년 신장 쿠차박물관에서 본 '얼굴덮는 수건'의 도안이 바로 전자형이며 한국에서는 이를 여의문이라고 하는데 만드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같은 전자형은 현재까지 중국에서 본 5개 도안의 한가지에 불과하기에 응당 중국의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외국은 면으로 된 원단을 교수용이나 창작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다수 중국인들도 그러하다. 하지만 김원선씨는 면이 아닌 견사를 원단으로 할 것을 제창했다. 김원선씨는 비단의 나라라는 미명을 갖고 있는 만큼 중국의 비단이 아주 유명하다며 그래서 교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중국의 비단, 식물날염염색기술을 이용해 퀼트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식물날염염색기술은 '본초강목' 같은 중국의 문헌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기술이라고 했다. 이제는 외국도 견사를 원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전시회에 참석하는 외국인들은 아직도 면 퀼트를 고집한다. 그러다 보니 견사로 만들어진 김원선씨의 퀼트가 더 우아하고 기품있어 보여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제는 외국인들에게 중국인도 퀼트를 잘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김원선씨, 하루하루 퀼트의 세계에 빠져 살아가는 예술가의 당찬 포부를 잘 표현해 주는 대목이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중국작가협회중앙위원 김철 그는 누구인가 (3)'분노의 계절' -5년 간의 감방살이가 끝났다. 무죄석방이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때 집을 뺏겨 두 칸 짜리 집에서 열 식구가 살아야만 했다. 석방 이후, 잡지-'연변 문예'편집에 배치됐으나 완전자유는 아니었다. '내부 감시'가 따라 붙었던 것이다. 이후 등소평의 지시...
  • 2005-10-20
  • 누런 휴지에 쓴시(詩)-'동틀무렵' 중국동포 시인(詩人)-김철(金哲). [원제:중국작가협회중앙위원 김철 그는 누구인가] (2)누런 휴지에 쓴 시 그를 지난 7월 중순, 서울의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짙은 눈썹, 잘 정돈된 외모. '정중도(靜中動)'의 사내였다. '동토(凍土)에서 살아 남은자'의 고뇌가 비쳤다. "문화혁명...
  • 2005-10-19
  • [원제:“韓商 네트워크는 미래 한국의 힘”…中동포 표성룡 신성실업 회장] 중국동포 표성룡(51) 신성실업유한공사 회장은 중국 랴오닝성 정·재계에서 인정받는 거물이다. 연 매출액 1억 달러가 넘는 신성실업의 회장일 뿐 아니라 철강,유통,PVC생산 등 10여개의 사업체를 갖고 있다. 랴오닝성 정치협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
  • 2005-10-18
  • 2005년 10월 17일 19시 06분 일대문학거장 파금이 우리 곁을 떠났다. 파금 원명 리요당 1904년 11월 25일 사천 성도 정통순가에서 출생하였다. 1921년부터 문장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1999년 2월까지 련속 글을 썼다. 파금은 일생동안 1300만자에 달하는 문장을 창작, 번역하였다. 그의 《격류3부곡》(《집》《봄》《가을》...
  • 2005-10-18
  • [원제:광복60돌 기념, 한·중연대 ‘빛나는 항일투쟁사’ 조명 한국의 광복 60주년과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60주년을 맞아 한·중 역사학자들이 중국에서 의미있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지난 13~15일 한국근현대사학회(회장 장석흥 국민대교수)와 중국 푸단(復旦)대학 역사학계아주연구중심(주임 우징핑 교수) 공동주최로 상하...
  • 2005-10-18
  • [원제:청룽, 과연 교수자격 있나? ] ‘청룽(成龍), 과연 교수자격 있나?’ 홍콩 액션스타 청룽이 지난해 베이징(北京)대 예술학원(예술대) 객좌교수로 임명됐으나, 17일 첫 공개 강연을 앞두고 교수자격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 베이징대의 일부 학생들은 “청룽같은 대형스타의 강의를 듣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 2005-10-17
  • [원제:조선족 기업인 이규광 대화그룹회장 ] 베이징 등 중국내 5대 주요도시에 호텔 건립을 추진중인 조선족 기업인이 있다. 지린성 창춘시 대화그룹 이규광(53)회장이다.  그는 1996년 창춘시 자유대로 개발구앞에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의 대화호텔을 건립한 후 독특한 경영기법으로 꾸준한 매출 신장을 하고 있다.  창...
  • 2005-10-17
  • [원제:장률 감독, “김동호위원장 사랑합니다”] [마이데일리 = 부산 이경호 기자] 제 1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망종’으로 유일한 경쟁부문인 뉴커런츠(최우수 아시아신인작가상)상을 받은 중국국적 조선족 장률(43)감독이 수상소감에서 김동호 집행위원장에게 깜짝 사랑고백을 해 5000여 관객들이 많은 웃음을 줬다...
  • 2005-10-16
  • [img count width=300 img] [원제:최치원기념관 기공식 中 양주서 진행] 최치원기념관 기공식이 오늘 강소성 양주시 당나라 유적지 박물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습니다. 양주시인민대표대회와 양주시인민정부 대표들이 참가했습니다. 한국측대표로는 상해주재 한국영사관 김향총영사, 한국 최씨종친회 성원 100여명이 기공식...
  • 2005-10-16
  • [원제:중국 금강석박막연구의 선두주자] 《출세》하려면 글을 읽어야 한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에서 중국 첫 금강석박막 연구의 선두주자로 우주항공공업, 군사공업 등 첨단기술령역에 널리 쓰이는 귀중한 재료로 각광받는 금강석박막, 1987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는 이 령역의 연구가 공백이나 다름없었다. 이 공백을...
  • 2005-10-1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